정말이지, 당신은 적당히 하려고 했다. 목표는 단 하나, 딱 중간만 가자는 것. 튀지 않고 주목받지 않으며, 아카데미의 유령처럼 지내다 졸업장을 손에 쥐는 미래만을 그렸다. 전생의 그 지긋지긋한 마법 전쟁과 제국 멸망의 소용돌이에 비하면, 낙제생 코스프레는 식은 죽 먹기여야 했다.
하지만 당신은 한 가지 중대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껍데기는 약골 낙제생 ‘루인’의 몸일지언정, 알맹이는 세계를 구워삶던 대마법사의 영혼이라는 것을.
"자, 다음! 루인 알델! 빨리 나와서 마력석에 손 올려라. 시간 없다!"
실기 평가를 진행하는 폰 가르시아 교수가 카랑카랑하게 찌르는 목소리로 외친다. 그는 흥분할 때마다 대머리에 남은 소중한 세 가닥의 옆머리를 이리저리 쓸어 넘기는 유쾌한 버릇이 있다. 오늘 역시 이미 두 가닥이 땀에 젖어 이마에 야무지게 달라붙어 있다.
당신은 심호흡을 하며 단상 앞으로 걸어간다. 교탁 위에는 불길하게 빛나는 시퍼런 마력 측정석이 놓여 있다.
‘좋아. 아주 얇게, 모기 날갯짓만큼만 마력을 흘려보내자. 불꽃 한 가닥 간신히 피우는 수준으로.’
당신은 슬그머니 마력석에 손가락 끝을 갖다 댄다. 정말이지 장난치듯 미세한 힘을 툭, 실어 보냈을 뿐이다.
문제는 대마법사 기준의 ‘미세함’과 이 싸구려 아카데미 보급품의 ‘허용 한도’ 사이의 격차가 안드로메다만큼 넓었다는 사실이다.
지리릿! 하는 마찰음이 울리는가 싶더니, 마력석이 미친 듯이 붉게 달아오른다.
—쿠구구궁! 콰아아앙!
고막을 찢는 굉음과 함께 측정석이 사방으로 산산조각 나며 대폭발을 일으킨다! 눈이 멀 것 같은 백색 섬광과 거대한 마력 폭풍이 교실 전체를 휩쓴다.
"엄마야!"
가르시아 교수가 찢어지는 비명을 지르며 교탁 밑으로 슬라이딩한다. 학생들은 충격파에 밀려 엉덩방아를 찧고, 교실 안은 순식간에 자욱한 먼지로 아수라장이 된다. 그 아수라장 한가운데, 오직 당신만이 멀쩡히 서서 연기가 풀풀 피어오르는 손가락을 멍하니 바라본다.
아니, 이게 왜 터져? 교구 예산 횡령해서 짝퉁이라도 납품받은 건가?
당신이 황당함에 이마를 짚는 사이, 먼지구덩이 속에서 교수가 기어 나온다. 그의 머리칼 세 가닥이 안테나처럼 사표를 던지듯 사방으로 뻗쳐 있다.
"이, 이럴 수가...! 방금 그 마력 반응은... 계측 불가의 과부하?!" "말도 안 돼! 루인 저 녀석, 마력 바보 아니었어?!" "설마... 지금까지 힘을 숨기고 있었던 건가?!"
사방에서 쏟아지는 경악과 기묘한 경외감 서린 눈빛들. 아카데미 최약체가 한순간에 정체를 숨긴 괴물 천재로 오인당하는 순간이다. 가르시아 교수가 눈을 황소처럼 크게 뜨며 당신에게 달려들 기세를 취하고, 동급생들의 웅성거림은 겉잡을 수 없이 커진다.
진실을 다 털어놓자니 귀찮은 청문회와 실험 쥐 신세가 기다릴 터. 그렇다고 입을 꾹 닫고 있자니 분위기가 너무 웅장하게 흘러간다. 이 폭풍 같은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당신의 머릿속이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