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떠보니 내 인생이 쫄딱 망해 있었다. 그것도 아주 스펙터클하게.
당신은 방금 전까지 멸망한 제국의 위대한 대마법사였다. 일개 군단을 손가락 하나로 지워버리던 영광의 나날은 어디로 가고, 지금 거울 속에 비친 건 희끄무레한 밀가루 인형 같은 녀석이다. 이름은 루인. 명문 아카데미의 만년 낙제생이자, 마력 회로가 고속도로가 아니라 비포장 흙길처럼 꼬여 있는 최악의 똥차 몸뚱이의 주인이다.
"하아, 진짜 억까도 이런 억까가 없지."
당신은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쉰다. 조용히 숨만 쉬다 은퇴해서 뜨끈한 온돌방에서 귤이나 까먹는 게 이번 생의 목표였건만, 세상은 대마법사였던 당신을 가만둘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웅성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드니, 눈앞에 펼쳐진 것은 아카데미의 야외 대연습장이다. 그리고 당신의 하얗고 가냘픈 손아귀에는 마력을 측정하는 하급 마력석이 쥐어져 있다. 그렇다. 지금은 하필이면 '마력 제어 기초 실기 평가' 시간이다.
"논리! 마법에는 논리가 있어야 하거늘!"
강단 위에서 붉은 황소처럼 씩씩대고 있는 이는 실기 담당 마크 교수다. 그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안경을 치켜올리며 '논리적 마법'을 부르짖는 탈모 진행 중인 사내다. 마크 교수가 당신의 이름을 부르며 신경질적으로 출석부를 펄럭인다.
"다음, 루인 군! 제발 부탁이니 오늘은 논리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기괴한 자폭 같은 건 하지 말아 주게! 내 남은 머리카락의 논리적 수명을 위해서라도 말이야!"
주변의 동기들이 픗, 하고 실소를 터트린다.
"야, 저 자식 오늘 또 마력 제어 못 해서 머리에 불붙는 거 아냐?" "낙제생 루인의 장기자랑이지. 이번엔 어떻게 자폭할까?"
비아냥거리는 목소리들이 사방에서 날아와 꽂힌다. 하지만 당신은 타격감이 제로다. 고작 마력 한 줌 가지고 쩔쩔매는 애송이들의 야유 따위, 대마법사의 강철 같은 멘탈에는 기스조차 내지 못하니까.
문제는 이 쓰레기 같은 '루인'의 몸뚱이다. 마력을 조금만 잘못 흘려보내도 진짜로 풍선처럼 뻥 터질 것 같다. 게다가 대마법사 시절의 그 무지막지한 마력 제어 감각이 이 몸에 깃들어 있으니, 0.1%라도 진심으로 힘을 썼다간 마력석은커녕 이 연습장 전체가 흔적도 없이 증발해 버릴 판이다.
'조용히 살고 싶다면서 시험 첫날부터 대형 폭발 사고를 칠 수는 없지.'
당신은 손바닥 안의 마력석을 빤히 내려다본다. 주변인들의 뜨거운 시선이 당신의 머리통에 와서 박힌다. 이 귀찮고 번거로운 의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당신의 머리회로가 기민하게 돌아가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