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아, 역시 이불 속은 안전하고 마법 난방은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라니까."

창가로 쏟아지는 따스한 오후 햇살을 받으며, 당신은 아카데미 강의실 맨 뒷자리에서 기분 좋게 기지개를 켠다.

칠판에 칠흑의 고대 마법 공식을 열정적으로 적어 내려가던 전공 교수가, 당신의 기지개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쥐고 있던 분필을 툭 떨어뜨린다. 보통의 낙제생이라면 "당장 복도로 나가서 손들고 있어!" 소리를 들었겠지만, 지금 교수의 눈빛에는 깊은 경외심과 두려움이 서려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학장이 아카데미 전 교수진에게 은밀히 내린 특별 극비 지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분의 수면은 마력 순환을 위한 우주의 섭리이니, 날아가는 파리 한 마리라도 그분의 단잠을 깨우면 즉시 해고다.]

교수는 마른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 혹시 제 강의가 너무 시끄러워 잠을 방해했습니까, 칼리안 학생?" "아뇨. 원래 졸릴 시간이라서요. 계속 가르치시죠."

당신은 대충 손을 까딱하며 다시 책상 위에 머리를 기댄다. 사실 어제 새벽, 지하 깊은 곳에서 마왕을 부활시키려던 흑막들의 마법진을 '지나가다 귀찮아서' 발로 툭 차서 찌그러뜨린 것뿐인데. 그 결과 마법식이 꼬여 소환의 대상은 우주 저편으로 사출되었고, 흑막들은 마왕의 꼬리 구경도 하기 전에 자기들이 소환한 역풍에 쓸려 먼지가 되어 날아갔다.

하지만 상층부에는 이 사실이 극도로 와전된 모양이었다. '칼리안 공이 단 한 걸음의 발걸음으로 차원의 기둥을 비틀어 마역을 원천 봉쇄하셨다!'라고.

뭐, 아주 편리한 착각이다. 덕분에 이단 심문관의 수사망도, 아카데미 내부의 치열한 세력 다툼도 전부 당신을 비껴가고 있으니까.

방과 후, 학장실로 불려간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최고급 얼그레이 홍차와 산처럼 쌓인 명가 디저트였다. 백발의 학장은 거의 무릎을 꿇을 기세로 비굴하지만 지극히 충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찻잔을 밀어놓았다.

"오셨습니까, 아카데미의 보이지 않는 수호자시여! 이번 연금술사 사태도 완벽하게 '우연한 폭발 사고'로 조작해 두었습니다. 대중은 그저 대단히 운이 좋은 낙제생이 또 살아남았다고 믿고 있지요!" "잘하셨습니다. 난 그저 평범하고 멍청한 낙제생으로 묻어가고 싶을 뿐이니까요." "과연! 강함을 뽐내지 않는 진정한 절대자의 풍모! 이 늙은이, 똑똑히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학장의 기묘한 충성심은 이미 광신도의 영역에 발을 들인 지 오래였다. 당신은 이 영감이 무슨 망상을 하든 이제 알 바 아니라는 심정으로 티 푸드를 가득 입에 넣었다.

대외적으로는 우연의 신이 도운 덕에 목숨만 부지하는 F학점짜리 아카데미의 공식 멍청이. 하지만 실체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것으로 대륙의 파멸을 막아내는 어둠의 지배자.

창밖을 보니 저 멀리 교문 앞으로 황실 기사단이 엄숙하게 들이닥치는 모습이 보였다. 어제의 폭발 사건을 조사하러 온 콧대 높은 귀족들이리라.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당신에게는 충성스러운 학장과 교수진이라는 아주 든든한 고기 방패들이 잔뜩 대기 중이니까.

"뭐, 이런 이중생활도 나쁘지 않단 말이지."

당신은 입가에 묻은 크림을 훔치며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세상의 멸망을 막는 건 생각보다 귀찮은 일이지만, 백수의 안락함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다음 한 걸음을 딛을 주먹이 장전되어 있었다. 오늘도 완벽하게 멍청한 척하며 세상의 배후를 주무르는 절대강자의 유쾌한 일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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