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저기요, 이단심문관 양반. 굳이 그렇게 핏대를 세우며 내 영혼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을까요?"

당신은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쉰다. 눈앞에서 잔뜩 인상을 쓴 채 금빛 성력을 뿜어내는 이단심문관 프란체스코는 벌써 10분째 당신의 이마에 손을 얹고 대치 중이다. 그의 시그니처 대사인 "빛의 이름으로, 네 죄를 고하라!"를 자그마치 스물일곱 번이나 들었을 때, 당신은 슬슬 인내심의 한계를 느낀다.

빨리 끝내고 기숙사로 돌아가서 갓 구운 슈크림빵을 먹으며 낮잠을 자야 한다. 이 귀찮은 인간을 떼어놓기 위해, 당신은 아주 미세한, 정말 눈곱만큼의 고대 마력을 툭 흘려보내기로 결심한다. 툭 치면 억 하고 알아서 떨어져 나가겠지 싶어서.

어라, 그런데 아뿔싸. 몸은 낙제생인데 영혼에 담긴 대마법사의 그릇이 너무 컸던 탓일까? "툭" 하고 흘리려던 마력이 백두산 폭발급 "콰아아아앙!"으로 터져 나와 버린다.

방 안의 모든 유리창이 동시에 산산조각 나고, 하늘을 덮은 구름이 거대한 소용돌이를 그리며 보랏빛 고대 마법진을 형성한다. 프란체스코는 그 압도적인 마력의 중압감에 무릎을 꿇으며 눈을 부릅뜬다.

"이, 이 마력의 깊이는...! 제국 전복을 꾀하는 마도 혁명군의 배후... 고대마법 연맹의 숨겨진 총수, 바로 당신이었군!" "아니, 저기요? 저는 그냥 잠을 자고 싶었을 뿐인데요?"

해명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의 눈에는 이미 당신이 세상을 파멸시키려 강림한 악의 원흉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그리고 그 착각은 단 하루 만에 온 세상으로 퍼져나간다.

그날 이후, 당신의 평화로운 일상은 아주 완벽하게 파멸한다. 조용히 숨어서 꿀을 빨려던 아카데미 라이프는 안녕이다. 교단은 당신을 '인류 최대의 위협'으로 규정했고, 소문을 들은 황실 연합군과 온갖 세력들이 당신의 목을 노리고 몰려들기 시작한다.

"나타났다! 전설의 마도 황제 시온!"

숲속에서 겨우 낮잠을 청하려던 당신의 머리 위로 화살 비가 쏟아진다. 당신은 귀찮다는 듯 하품을 하며 손가락을 가볍게 튕긴다. 순간, 대기가 뒤틀리며 수천 개의 화살이 한순간에 먼지가 되어 사라진다. 압도적인 무력. 세상 사람들은 당신의 가벼운 손짓 한 번에 오금을 저리며 가공할 절대강자라며 경외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당신의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 간다.

"아니, 제발 잠 좀 자자고, 이 인간들아!"

오늘만 벌써 마흔두 번째 습격이다. 방금 전에는 제국에서 제일간다는 엘리트 나이트들이 덤벼들었으나, 당신이 귀찮아서 내뿜은 마력 풍압에 밀려 저 멀리 날아가 버린다.

강하면 무슨 소용인가. 하루에 최소 10시간은 자야 하는 예민한 신체인데, 사방에서 24시간 내내 들이닥치는 자객들과 군대 때문에 불면증 치료제를 달고 살아야 하는 처지가 된다. 게다가 한술 더 떠서, 어디선가 나타난 반란군 무리까지 당신의 발치에 넙죽 엎드린다.

"혁명의 수장 시온 님! 저희 마도 혁명군 전원이 당신의 깃발 아래 모였습니다! 지시를 내려주십시오!" "저리 가! 저리 가라고! 난 혁명 같은 거 안 해!"

반란군을 밀어내기 무섭게, 저 멀리 지평선 너머에서 다시 수만 명의 연합군과 황실 성기사단이 무기를 겨눈 채 먼지를 휘날리며 달려오고 있다. 그 대혼란의 중심에 서서, 당신은 휑한 초점 없는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본다.

평화는 끝났다. 이제 당신에게 남은 미래는, 이 빌어먹을 전장의 한가운데서 밀려오는 졸음을 쫓아가며 영원히 끝없는 싸움을 이어가는 일뿐이다. 최고의 게으름뱅이가 도달한, 가장 피곤하고 바쁜 절대강자의 길. 당신의 찬란했던 낙제생 백수 계획은 이렇게 영원한 종말을 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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