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화아아악!

눈이 멀 것만 같은 강렬한 백색광이 엘리시아의 얼굴을 사정없이 강타했다.

라피스 제국 아카데미의 지하 깊숙한 곳에 자리한 징계 전용 특실. 사방이 마법 무효화 합금인 미스릴과 둔탁한 철제로 둘러싸인 거대한 원형 심문실의 공기는 숨이 막힐 정도로 무거웠다. 그 방 한가운데에 놓인 검은 철제 탁자 너머로, 세 명의 수석 심문관들이 살기를 가득 담은 마력 등불을 일시에 켜 든 참이었다.

"아, 눈뽕……."

엘리시아는 저도 모르게 작게 읊조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눈을 찌르는 듯한 광포한 빛의 향연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안 그래도 마차 안에서 꿀맛 같은 단잠을 자다가 막 깨어난 참이었다. 안대를 벗자마자 들이닥친 이 무지막지한 백색광은 잠투정이 심한 영애의 신경을 긁기에 충분했다. 엉덩이에 닿는 철제 의자는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사방에서 풍기는 눅눅한 곰팡이 냄새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수석 심문관 아르센은 엘리시아의 찌푸린 미간을 '죄인의 두려움'으로 멋대로 해석한 모양이었다. 그가 탁자 앞으로 한 걸음 바짝 다가서며, 가죽 장갑을 낀 손으로 서류 뭉치를 가볍게 툭툭 쳤다.

"엘리시아 데 로스벨트 영애.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모양이군. 이곳은 대의회 직속의 이단 심문실이다. 그대의 가문도, 아카데미의 그 어떤 연줄도 이곳에서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해."

그의 목소리에는 자비라곤 찾아볼 수 없는 냉혹함이 서려 있었다. 양옆에 시립한 보조 심문관들 역시 팔짱을 낀 채 엘리시아를 내려다보며 위압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그대가 아카데미 내 금기 구역에 보관되어 있던 이단 마도서를 사적으로 유출하고, 이를 사용해 황실과 학우들을 저주하려 했다는 구체적인 고발이 접수되었다. 순순히 배후를 자백한다면, 목숨만은 아카데미 퇴학 및 영지 유배 수준에서 살려주지. 하지만 끝까지 입을 다문다면…… 사법의 이름으로 영혼까지 탈탈 털리게 될 것이다."

자백하면 퇴학에 영지 유배라고?

엘리시아의 눈이 순간적으로 반짝였다.

'퇴학에 영지 유배? 그거 완전 포상 아닌가?'

아카데미라는 귀찮은 굴레에서 벗어나, 그토록 염원하던 변방 영지로 내려가 평생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꿀잠을 잘 수 있는 지름길이 아닌가. 귀가 솔깃해진 엘리시아가 막 입을 열어 "그럼 지금 당장 퇴학 장에 서명하겠다"고 말하려던 찰나였다.

띠링!

머릿속에서 맑고 고운, 그러나 엘리시아에게는 저승사자의 방울소리와도 같은 시스템 알림음이 울려 퍼졌다. 눈앞에 반투명한 푸른빛의 장부가 떠올랐다.

[★행동 비용 매니저 장부 경고★] [※ 긴급 상황: 일일 규정 불면 누적 버프 수치가 위험 수위에 도달했습니다!] - 현재 누적 수치: 490 / 500 - 경고: 누적 수치가 500을 돌파하는 순간, 대가로 '강제 무수면 일주일 버프'가 즉각 작동합니다. (일주일간 단 1초도 잠들 수 없으며, 뇌가 맑은 정신으로 고통받게 됩니다.)

[현재 행동에 따른 예상 비용 분석] 1. "자백하고 퇴학당하겠다"고 말할 경우: - 예상 귀찮음 비용: 9,999,999 골드 (황태자 카일의 폭주, 마탑주 렌의 심문실 폭파 시도, 성기사단장 요한의 광신적 구출 작전 동시 발발) - 남주들의 호감도 자극 및 집착 지수 폭등: +400% - 불면 누적 수치 증가: +80 (즉시 500 돌파, 일주일 무수면 확정)

2. "나는 무죄다"라고 구구절절 변명할 경우: - 심문관들과의 불필요한 키보드 워리어식 설전 발생. - 불면 누적 수치 증가: +30 (즉시 500 돌파, 일주일 무수면 확정)

엘리시아는 장부의 붉은색 경고 글씨를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일주일 동안 한숨도 못 잔다고? 그건 죽음보다 더한 고문이다.'

하루에 최소 열두 시간은 자야 세포가 유지되는 체질인데, 일주일 무수면이라니. 장부는 무자비했다. 남주들의 집착을 자극하거나 불필요하게 열을 내며 말을 섞는 순간, 수면권은 영원히 박탈당할 터였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단 하나뿐이었다.

[★장부 추천 최적의 방관 루트★] - 지침: '극단적인 침묵과 무대응(멍 때리기)'. - 침묵 지속 시 효과: 상대방의 피로 지수 200 폭등 및 스스로 정답을 자각하는 유도 효과 발생. - 소모 비용: 0골드 / 불면 누적 수치 증가: 0

완벽한 무반응. 그것만이 살길이었다.

엘리시아는 슬그머니 한 손을 올려 턱을 괴었다. 그리고 눈앞에 서서 침을 튀기며 열변을 토하는 아르센 심문관을 아주 멍하고 영혼 없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의 입술이 움직이며 뭐라 나불거리고 있었지만, 엘리시아의 뇌는 이미 그 소리를 '백색 소음'으로 필터링하고 있었다.

'아, 배고프다. 이따가 나가면 감자 스프나 먹을까. 아니야, 스프는 숟가락질하기 귀찮으니까 그냥 빨대로 빨아먹을 수 있는 셰이크가 낫겠지…….'

"내 말이 들리지 않는 건가, 로스벨트 영애!"

아르센이 탁자를 내리치며 소리쳤다. 그의 이마에 핏대가 곤두섰다.

"지금 침묵으로 일관하면 혐의를 인정하는 것으로 간주하겠다! 이단 마도서를 숨겨둔 배후가 누구냐? 황태자 전하인가? 아니면 마탑의 시벨리우스인가? 어서 대답해라!"

엘리시아는 대답하는 대신 길게 하품을 참았다. 눈가에 이슬이 살짝 맺혔다. 숨을 쉬는 것조차 기력이 아까운 마당에, 저 영양가 없는 질문에 일일이 대꾸해 줄 여력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는 오히려 의자 등받이에 몸을 깊숙이 기대며 자세를 고쳐 잡았다. 비록 철제 의자가 엉덩이를 시리게 만들었지만, 며칠간 누적된 피로를 해소하기 위해 이 타이밍에 잠깐 눈을 붙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스르륵.

엘리시아의 눈꺼풀이 서서히 내려앉았다.

"이, 이 자가 지금 심문관 앞에서 눈을 감아?!"

보조 심문관 중 하나가 경악을 금치 못하며 외쳤다.

"수석님! 이 자는 지금 사법의 권위를 완전히 우롱하고 있습니다! 보통 기개로는 이 강렬한 마력 등불 앞에서 눈을 감을 수 없습니다. 이건 분명…… 배후에 엄청난 세력이 버티고 있음을 과시하는 무언의 경고입니다!"

"음…… 그렇군."

아르센의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과연, 황태자가 직접 호송 기사를 붙여준 이유가 있었어. 이토록 고압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다니. 오히려 우리를 하찮게 내려다보는 저 오만한 눈빛이라니……!"

엘리시아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아니야, 그냥 졸린 거야. 제발 그만 해석하고 나 좀 자게 내버려 둬.'

하지만 심문관들의 머릿속 소설 집필은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엘리시아의 무반응을 '고도로 훈련된 침묵의 항거'이자 '심오한 도덕적 우위의 표현'으로 해석하기 시작했다.

"수석님, 어쩌면 이 영애는 우리가 스스로의 모순을 깨닫기를 기다리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황실의 문양이 찍힌 호송 마차를 타고 온 그녀를 우리가 함부로 건드렸다간, 대의회 자체가 풍비박산 날 수도 있다는 것을 무언으로 경고하는 게 아닐지……."

"맞다. 저 의연한 태도를 봐라. 죄 지은 자의 눈빛이 아니다. 오히려 죄 없는 자가 세상을 향해 던지는 가장 숭고한 방조의 눈빛이야."

실제로 엘리시아의 머리맡에는 요한이 선물한 무제한 음성 녹음용 성물인 '공명석 펜던트'가 품 안에서 가볍게 흔들리고 있었다. 차가운 금속 감촉이 피부에 닿을 때마다 엘리시아는 '아, 귀찮은 물건이 참 많기도 하지' 하고 생각할 뿐이었지만, 심문관들의 눈에는 그것마저 심상치 않은 마법 도구로 보였다.

콰아앙!

더는 참지 못하겠다는 듯, 아르센이 손바닥으로 심문대를 격렬하게 내리쳤다. 철제 탁자가 요란한 굉음을 내며 흔들렸다.

"대답해라! 로스벨트! 네 침묵이 아무리 단단하다 한들, 사법의 칼날 앞에서는 무력할 뿐이다! 더는 우리를 시험하려 들지 마라!"

귀를 찢는 듯한 소음에 엘리시아의 얇은 눈꺼풀이 마침내 번쩍 떠졌다.

'아, 진짜 시끄럽네.'

단잠을 방해받은 고양이처럼, 엘리시아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짜증이 머리끝까지 솟구쳤다. 대답을 하자니 불면 버프가 터지고, 안 하자니 이 무식한 심문관들이 계속해서 탁자를 치며 소음을 유발할 기세였다.

가장 빠르고, 에너지 소모가 적으며, 저 시끄러운 주둥이들을 단번에 닥치게 만들 방법이 무엇일까.

엘리시아는 귀찮다는 듯이 주머니 구석으로 손을 불쑥 집어넣었다. 손끝에 무언가 딱딱하고 차가운 금속체가 걸렸다.

'아, 맞다. 저번에 황태자가 줬던 거.'

그것은 지난 사흘 전, 황태자 카일이 "그대의 평온을 방해하는 자가 있다면 이 열쇠를 보여주라"며 억지로 쥐여주었던 황실 고유 특별 면책용 '은빛 열쇠'였다. 설명서에 따르면 황실 직속 친위대의 불가침 영장 효과를 지니고 있어, 황족을 제외한 그 누구도 이 열쇠의 소지자를 구금하거나 심문할 수 없다고 했다.

엘리시아는 손가락 끝으로 열쇠를 끄집어냈다. 그리고 정말로 귀찮다는 듯, 마치 길가에 굴러다니는 쓰레기나 다 쓴 깃펜을 버리듯이 탁자 한가운데로 툭 던져 굴렸다.

또르르르, 탁.

은빛 열쇠가 둔탁한 철제 탁자 위를 가볍게 구르다 아르센의 손앞에 멈춰 섰다.

"이게 무슨……?"

아르센이 미간을 찌푸리며 열쇠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 표면을 확인한 순간, 그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사정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열쇠의 손잡이 부분에는 제국 황실을 상징하는 황금 이무기의 문양과 함께, 황태자 카일 에르하르트의 개인 인장이 선명하게 음각되어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열쇠 자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은은한 마력은 오직 황실 비밀 공방에서만 주조할 수 있는 특수 합금의 기운이었다.

"황…… 황실 불가침 영장?!"

아르센의 목소리가 보기 좋게 뒤집어졌다.

"이, 이것은 황태자 전하께서 직접 수여하시는 초법적 면책특권의 상징……!"

옆에 서 있던 보조 심문관들의 얼굴 역시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황실 불가침 영장. 그것은 대의회 법조항 따위는 가볍게 씹어 먹는, 제국 최고의 권력자가 내리는 무적의 패스포트였다. 이 열쇠를 소지한 자를 심문하는 것 자체가 황태자의 권위에 도전하는 반역 행위로 간주될 수 있었다.

"어, 어떻게 이 영애가 이걸 가지고 있는 거지?"

"전하께서 직접 이 영애의 뒤를 봐주고 계신다는 뜻이 아닌가!"

심문관들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그들의 다리가 사정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고압적으로 어깨를 으쓱이던 아르센은 황급히 열쇠를 양손으로 받쳐 들고, 허리를 90도로 꺾어 정중하게 숙였다.

"영, 영애……! 이토록 귀중한 신표를 지니고 계셨다면 진작 말씀해 주셨어야지요!"

그의 목소리는 이제 애걸복걸하는 내시의 그것과 다를 바 없었다.

"저희가 황태자 전하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무도하게 영애를 구금하는 결례를 범했습니다. 부디 노여움을 거두어 주십시오!"

엘리시아는 그들의 꿀 먹은 벙어리 같은 태도 변화를 보며 속으로 깊은 평화를 느꼈다.

'오, 진짜로 조용해졌네. 개이득.'

말 한마디 섞지 않고 침묵만 지켰을 뿐인데, 상대방이 알아서 기어가며 입을 닥쳐주니 이보다 더 완벽한 '최적의 방관 루트'가 없었다. 눈앞의 장부 창을 보니, 불면 누적 수치는 여전히 490에 멈춰 서서 안전을 유지하고 있었다. 일주일 무수면이라는 파멸적인 페널티를 완벽하게 회피한 것이다.

"저, 저희는 즉각 심문을 중단하고 영애를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이 등불도 당장 끄도록 해라! 눈부시지 않으냐!"

아르센이 다급하게 소리치자, 보조 심문관들이 허둥지둥 마력 등불을 꺼뜨렸다. 어두컴컴해진 심문실 안에서 엘리시아는 편안하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마차로 돌아가 다시 잠을 청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콰아아앙!

심문실의 철제 이중문이 거친 마력 폭발과 함께 산산조각이 나며 안쪽으로 날아들었다. 자욱한 먼지 안개 속에서 한 여성이 씩씩거리며 걸어 들어왔다.

"비올레타 영애?!"

아르센이 소리쳤다.

들어온 자는 비올레타 데 헤이즈였다. 그녀는 심문실 외부의 대기실에서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을 실시간 마법 구체로 지켜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은 질투와 분노로 흉측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비켜요! 이 멍청한 심문관 놈들! 저 가증스러운 년의 가짜 연기에 속아 넘어가다니!"

비올레타는 광기에 찬 눈빛으로 탁자 위에 놓인 증거 보관 궤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리고 자신의 마력을 폭발시켜 보관 궤의 잠금장치를 강제로 부수어 버렸다.

파앙! 하는 파열음과 함께 궤가 열리며, 그 안에 들어 있던 서류 뭉치들이 허공으로 날려 흩어졌다.

비올레타가 흩어지는 서류 중 하나를 낚아채며, 엘리시아를 향해 핏대를 세우고 소리쳤다.

"황태자 전하의 은빛 열쇠라고?! 웃기지 마! 엘리시아, 네년이 전하를 가스라이팅해서 뜯어낸 게 분명해! 그리고 여기 봐라! 네가 이단 마도서를 기증받았다는 이 기증서……! 이것 역시 네가 위조한 음모의 증거다! 내가 만천하에 네 가식을 고발하겠다!"

비올레타가 거짓 음모의 증거 자백 도발을 최고조로 꺼내들며 악을 쓰는 순간, 흩어진 서류들 사이로 기묘한 마력의 파동이 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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