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백 실장님! 큰일 났습니다! 지금 당장 유통망에 문제가 생겼어요!"
수화기 너머 유통 실무 팀장의 목소리는 이미 반쯤 울음 가득한 비명에 가까웠다. 지하 연습실의 눅눅한 공기 사이로 찢어지는 듯한 수신음이 새어 나갔다. 방금 전까지 서도관의 표절 프레임을 박살 내고 승리의 온기가 감돌던 공간이 순식간에 동토처럼 얼어붙었다.
"차분히 말하십시오."
연우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미동조차 없는 그의 얼굴에 민혁과 채아의 시선이 꽂혔다.
"그게…… 코어 미디어의 대주주이자 우리 플랫폼 유통 총괄 부서장인 최 이사가 방금 직접 지시를 내렸습니다. 네온 엔터테인먼트의 신곡 'Mirage'에 대한 모든 전산 노출 지분율을 0%로 조정하고, 내일 예정되어 있던 첫 페이지 메인 배너 등록을 일방적으로 취소 처리하겠다고 합니다! 이건 사실상 플랫폼 내에서 우리 음원을 아예 매장하겠다는 소리입니다!"
대형 음원 유통 플랫폼 '멜론웨이브'의 메인 배너 취소. 그리고 노출 지분율 제로.
이것은 가요계에서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아무리 천재적인 곡을 만들고 여론의 지지를 받는다 한들, 대중이 음악을 소비하는 관문 자체가 콘크리트 장벽으로 막혀 버린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거대 카르텔 코어 미디어가 뻗친 추악한 손길이 마침내 시장의 목줄을 죄어온 것이다.
"최 이사 개인 연락처, 지금 당장 내 번호로 보내세요."
연우는 지체 없이 전화를 끊었다. 그의 눈동자 속에서 미래 음원 장부의 푸른 안개가 희미하게 명멸했다. 장부 한구석에 붉은 글씨로 깜빡이는 경고등이 보였다. 한채아의 성대 하부 미세 염증 스크래치 수치와 낡은 음향 시스템의 한계성이 지표 위에서 요동치고 있었다. 피를 토하듯 달성해 낸 인과율의 채무, 그 고결한 땀방울이 담긴 음원이 세상의 빛조차 보지 못하고 묻힐 위기였다.
민혁이 연우의 옷소매를 붙잡으며 허둥댔다.
"연우야, 멜론웨이브 최 이사라면 코어 미디어 강태신 사장하고 사석에서 형 아우 하는 사이다. 그 인간이 작정하고 막아서면 우린 유통할 길이 없어. 다른 플랫폼을 알아봐야 하는 거 아니냐?"
채아 역시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의 손은 재킷 주머니 속, 강태신의 추악한 비리가 담긴 암호화 USB를 부서질 듯 쥐고 있었다. 아직 복호화 키의 절반만 맞춰진 시한폭탄. 지금 터뜨리기엔 화력이 부족했다.
"아니요. 바꿀 필요 없습니다."
연우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그의 손가락이 화면을 미끄러지듯 움직여 새로 전송된 번호를 눌렀다.
뚜르르르.
신호음이 지하 연습실의 정적을 깨뜨렸다. 채아는 숨을 죽인 채 연우의 옆모습을 응시했다. 차갑고 매정한 비즈니스맨의 얼굴. 하지만 그 너머에는 결코 꺾이지 않는 거대한 벽이 버티고 있는 듯했다.
달칵.
[누구야. 바쁜 사람한테 귀찮게.]
전화기 저편에서 거들먹거리는 중년 사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멜론웨이브의 실세, 최 이사였다.
연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여보세요? 전화를 걸었으면 말을 해야 할 것 아냐. 누구냐고.]
연우는 여전히 침묵을 지켰다. 수화기 너머로 오직 차분하고 규칙적인 숨소리만을 흘려보낼 뿐이었다.
정적은 가장 잔인한 압박이다. 상대가 먼저 패를 보여주게 만드는 심리적 올가미. 수십 초의 시간이 흐르자, 짜증 섞인 한숨이 섞여 들기 시작했다.
[이 새끼가 장난전화질이야? 야! 너 누구냐고!]
최 이사의 목소리가 거칠게 벼려졌다. 그제야 연우가 입술을 뗐다. 지극히 낮고, 지독하리만치 평온한 어조였다.
"최형석 이사님. 마카오 윈팰리스 호텔 VIP 정킷방에서 개설하신 해외 가명 도박 계좌가 참 흥미롭더군요."
[……뭐, 뭐야?]
순간, 수화기 너머의 소음이 거짓말처럼 뚝 끊겼다. 최 이사의 거친 호흡 소리만이 마이크를 타고 불안하게 고막을 때렸다.
"달러화로 세탁되어 코어 미디어의 홍콩 페이퍼 컴퍼니로 흘러 들어간 무기명 채권의 일련번호들이 제 장부에 아주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금액이 대략…… 삼십칠 억 정도 되던가요? 멜론웨이브의 유통 지분을 넘겨주는 대가로 받으신 뇌물치고는 꽤 짭짤한 액수입니다."
[이, 이 미친놈이 무슨 헛소리를……! 너 누구야! 당장 경찰에 신고하기 전에……!]
"신고는 제가 해야지요."
연우가 피식 웃었다. 그 웃음소리에는 한 줄기 온기도 없었다.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에 이 자료가 넘어가면, 이사님의 남은 인생은 멜론웨이브의 배너가 아니라 교도소 식단표를 보며 보내게 될 겁니다. 강태신 사장이 당신의 뒤를 끝까지 봐줄 것 같습니까? 꼬리 자르기라면 국내 최고인 사람인데."
최 이사의 숨이 완전히 가빠졌다. 전화기 너머에서 의자가 거칠게 밀리는 소리와 함께 식은땀 흘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철저한 데이터 역경영. 회귀 전, 업계의 모든 더러운 자금 흐름을 꿰뚫고 있던 연우였기에 가할 수 있는 치명적인 일격이었다.
"선택은 간단합니다. 내일 아침, 'Mirage'의 메인 배너는 원래 자리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유통 노출 지분율은 기존 계약보다 5% 상향 조정하십시오. 십 분 드립니다. 전산망 원복 기사가 제 태블릿에 뜨지 않으면, 검찰청 고발장 접수 버튼을 누르겠습니다."
[잠, 잠깐만! 이봐! 대화로 해결하세……!]
뚝.
연우는 미련 없이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곁에서 넋을 잃고 바라보던 민혁을 향해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민혁이 형. 멜론웨이브는 해결됐습니다. 이제 남은 건 저기서 쥐새끼처럼 도망치려는 도둑놈을 잡는 일입니다."
연우의 시선이 연습실 입구 쪽으로 향했다.
경호원들의 등 뒤에 숨어 슬금슬금 빠져나가려던 서도관이 멈칫했다. 그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자신의 표절 음모가 포렌식 데이터로 완전히 탄로 난 마당에, 이곳에 더 머무는 것은 자살 행위였다.
"백연우…… 너, 너 대체 무슨 짓을 꾸미는 거야!"
서도관이 히스테릭하게 소리를 질렀다.
"꾸미다니요.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뿐입니다."
연우가 천천히 걸음을 옮겨 서도관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의 손에는 언제 준비했는지 모를 낡은 서류 봉투 하나가 들려 있었다. 연우가 봉투를 열어 한 장의 문서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회귀 첫날, 연우가 과거 기획실장 시절의 사물함 깊은 곳에서 회수했던 극비 원작 가이드 폐기 수령증이었다.
"이게 뭔지 기억하십니까, 서도관 씨?"
문서 하단에는 붉은색 인장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일반적인 회사 직인이 아니었다. 코어 미디어 기획실 내부에서 오직 극비 프로젝트를 폐기하거나 인계할 때만 사용하는, 특수 도료가 배합된 전용 스탬프 인장이었다.
서도관의 얼굴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그, 그게 왜 네 놈 손에……! 그건 분명히 폐기 처분하라고 지시가 내려왔던……!"
"폐기 처분하라는 지시를 받고, 당신이 이 곡의 원작 아키텍처를 그대로 훔쳐서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했죠. 여기 찍힌 전용 스탬프 인장과 당신의 친필 서명이 그 증거입니다. 지난 3년간 당신이 '천재 작곡가' 타이틀을 달고 발표했던 히트곡 세 곡이, 실은 제가 기획하고 채아가 가이드 보컬을 불렀던 곡들의 구조를 그대로 복사해 붙여 넣은 장물이라는 뜻입니다."
연우가 들고 있는 태블릿 화면에 두 악보의 주파수와 멜로디 전개 아키텍처 대조표가 실시간으로 떠올랐다. 완벽한 일치율 98.7%.
기자들이 미친 듯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터지는 플래시 불빛 속에서 서도관의 눈동자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렸다.
"이건 조작이야! 저따위 조작된 서류와 데이터로 날 모함하려 들다니! 법정에서 누가 저런 걸 믿어줄 줄 알아?"
서도관이 비명을 지르며 연우의 멱살을 잡으려 손을 뻗었다.
탁!
그 손을 가볍게 쳐낸 것은 민혁이었다. 민혁은 평소의 유순한 얼굴을 지워버린 채, 단단한 체구로 서도관의 앞을 가로막았다.
"서 작곡가님. 우리 네온 엔터테인먼트가 그렇게 만만해 보였습니까? 남의 자식 같은 곡들을 훔쳐다가 호의호식했으면, 이제 죗값을 치러야지."
채아 역시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녀의 눈빛은 더 이상 과거의 가스라이팅에 짓눌려 울먹이던 나약한 소녀의 것이 아니었다. 99.9%로 개방된 천재 보컬의 자존심과 독기가 서린 서늘한 눈동자가 서도관을 꿰뚫었다.
"당신은 단 한 번도 스스로 음악을 만든 적이 없어요. 내 목소리를 짓밟고, 피디님의 재능을 훔쳐서 만든 그 가짜 왕관…… 오늘로 끝이에요."
"이, 이 빌어먹을 년이 어디서 감히……!"
서도관이 폭발하듯 날뛰려던 그 순간이었다.
지하 연습실 입구 너머, 간담회장 지하 주차장 방향에서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일군의 무리가 들이닥쳤다. 푸른색 제복을 입은 사법경찰 수사관들이었다. 그들의 손에는 법원에서 발부한 압수수색 및 체포영장이 들려 있었다.
"서도관 씨 계십니까. 서울지방경찰청 광수대입니다. 저작권법 위반 및 타인의 업무상 비밀 누설, 그리고 업무방해 혐의로 체포합니다."
수사관들의 등장이 현장을 완벽한 침묵으로 몰고 갔다. 기자들은 이 역사적인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노트북 키보드를 부서져라 두드렸다. 실시간 속보가 포털 사이트 메인을 도배하기 시작했다.
[속보] '천재 작곡가' 서도관, 표절 및 원작 강탈 혐의로 현장 체포 유력. [단독] 코어 미디어의 추악한 이면, 네온 엔터테인먼트의 반격에 무너지다.
서도관은 사방이 꽉 막힌 사석포위망의 한가운데서 숨을 헐떡였다. 경찰관들이 그의 양팔을 붙잡아 꺾는 순간, 그의 이성이 완전히 붕괴했다. 탈출구가 사라진 쥐새끼는 결국 가장 치명적인 자폭 스위치를 누르게 마련이었다.
"놔! 이거 놓으라고! 난 아무 잘못 없어! 다 시켜서 한 일이야!"
서도관이 침을 튀기며 비명을 질렀다.
"이, 이건 원래 강태신 사장이 다 기획 지시했던 서류란 말입니다! 그 영감이 백연우 자료 다 뺏어오라고 했고, 저 스탬프 인장도 강 사장이 직접 찍어서 나한테 넘겨준 거라고! 난 그냥 시키는 대로 인장만 찍었을 뿐인데 왜 나만 잡아가!"
현장에 있던 모든 카메라 렌즈가 서도관의 일그러진 얼굴과 그의 입에서 터져 나온 자폭 발언을 그대로 담아냈다.
실시간 스트리밍 채널을 통해 전국으로 송출되던 화면 위로 시청자들의 댓글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 미친, 서도관 자폭 실화냐? - 강태신이 배후였어? 코어 미디어 진짜 쓰레기 집단이네 ㄷㄷ - 한채아 불쌍해서 어떡해... 그동안 누명 씌우고 목소리까지 훔친 거잖아. - 백연우 피디 대박이다. 증거 다 들고 와서 한 방에 보내버리네. 진짜 갓연우;;
전국 인터넷 게시판은 그야말로 화산이 폭발한 듯 달아올랐다. 코어 미디어가 구축해 놓았던 견고한 바이럴 카르텔이, 그들이 신봉하던 수석 프로듀서의 입을 통해 스스로 무너져 내린 것이다.
"강태신 사장님 지시였다는 말씀이시죠. 서도관 씨."
연우가 서도관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나지막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승자의 여유조차 배제된, 오직 냉혹한 확인 절차만이 존재했다.
"그래! 강태신 그 인간이 다 시킨 거야! 날 자르려고 하면 나도 가만 안 있어! 다 불어버릴 거야!"
경찰들에게 붙잡힌 채 개처럼 질질 끌려 나가는 서도관의 비명 소리가 지하 계단을 타고 멀어져 갔다.
"강태신……! 당신이 날 이렇게 버려? 두고 봐! 내 입에서 뭐가 나올지!"
서도관의 마지막 울부짖음이 완전히 사라진 지하 연습실에는 적막 대신 뜨거운 열기가 감돌았다.
진동음이 울렸다. 연우가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화면에는 멜론웨이브 실무 팀장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실장님! 전산 원복 완료되었습니다! 메인 배너 등록 및 지분율 정상화 완료했습니다!]
연우는 말없이 화면을 터치해 음원 플랫폼 메인 페이지를 열었다.
차가운 스마트폰 액정 위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서 있는 한채아의 모습이 번쩍이며 나타났다. 그 아래로 선명하게 박힌 타이틀 곡명.
[한채아 - Mirage (신기루)]
동시에 연습실 벽면에 설치된 낡은 스피커에서 웅장하고 몽환적인 전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모든 방해물을 찢어발기고 마침내 세상에 울려 퍼지는 진짜 천재의 목소리.
연우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이제 강태신의 목을 벨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