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쾅! 쾅! 쾅!*
낡은 철문이 비명을 지르며 흔들렸다. 청담동 변두리 터널 옆, 습기가 가득 찬 지하 연습실의 공기가 거친 진동과 함께 깨어졌다. 벽면 거울에 맺혀 있던 물방울들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인터폰 화면은 이미 푸른색과 붉은색의 플래시 세례로 가득 차 있었다. 수십 명의 연예부 기자들이 든 카메라 렌즈들이 벌떼처럼 웅성거리며 좁은 계단을 타고 밀려내려오고 있었다. 그 선두에는 번쩍이는 조명 빛을 받으며 이빨을 드러내고 웃는 서도관이 서 있었다.
"백연우! 당장 문 열어! 숨는다고 네 도둑질이 가려질 줄 알아?"
서도관의 앙칼진 목소리가 철문을 뚫고 들어와 고막을 찔렀다.
연우는 들고 있던 아이패드를 가볍게 돌려 쥐었다. 그의 손가락 끝은 미동조차 없었다. 오히려 눈동자 너머에서 엷은 푸른빛이 감돌았다. 시야 한구석에 반투명한 에메랄드빛의 '미래 음원 장부'가 스르륵 펼쳐지고 있었다.
================================= [미래 음원 장부 - 실시간 세무 분석] - 대상 곡: 'Mirage' (오리지널 악권) - 현재 여론 점유율: 코어 미디어 82% vs 네온 엔터 18% (표절 프레임 작동 중) - 인과율의 채무 정산 상태: 94% 완료 (한채아 가창력 개방 수치 99.9% 유지 중) - 특이 사항: 적대 세력의 '기습 폭로' 이벤트 발동. 역포위 격상 반격 성립 가능성 95% =================================
"연우야, 저놈들이 진짜 미쳤나 봐. 기자들을 여기까지 끌고 오다니……!"
윤민혁 대표가 주먹을 꽉 쥔 채 앞으로 나섰다. 그의 넓은 어깨가 분노로 잘게 떨리고 있었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한채아 역시 창백해진 안색으로 철문을 노려보았다. 그녀의 가녀린 손가락이 이불깃을 으스러지게 움켜쥐었다. 과거 코어 미디어에서 가스라이팅을 당하며 겪었던 무대 공포증의 잔재가 척추를 타고 자극을 주는 듯했다.
연우는 채아의 곁으로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짚었다. 차갑고도 단단한 손의 온기가 전해지자, 채아의 흔들리던 눈동자가 이내 독기를 품으며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걱정할 것 없습니다. 제 발로 단두대에 올라와 주겠다는데, 굳이 문을 닫아둘 이유가 없죠."
연우가 턱짓을 하자, 민혁이 침을 크게 삼키며 잠금장치를 풀었다.
*철컥.*
문이 열림과 동시에 터져 나온 것은 눈이 멀 것 같은 플래시의 폭풍이었다.
찰칵거리는 셔터 소리가 좁은 지하 복도를 가득 메웠다. 먼지 냄새와 비린 습기가 섞인 공기 사이로, 서도관이 어깨를 으스대며 걸어 들어왔다. 그의 뒤로는 검은 양복을 입은 코어 미디어 소속 경호원 세 명이 험악한 기세로 길을 텄다.
"결국 문을 여는군, 백연우 실장. 아니, 이제는 도둑놈이라고 불러야 하나?"
서도관이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마이크를 연우의 코앞까지 들이밀었다. 뒤따라온 카메라맨들이 연우의 얼굴을 클로즈업하기 위해 렌즈를 들이댔다.
"여러분, 보십시오! 이 가혹하고 열악한 지하실에서 일어나는 추악한 실태를! 여기에 서 있는 백연우가 바로 우리 코어 미디어가 수개월간 공들여 준비한 신곡 'Mirage'의 가이드 음원을 해킹하고 도용한 주범입니다! 이미 저희 데이터망에 명확한 IP 추적 흔적이 남았습니다!"
서도관의 목소리가 좁은 지하실 벽에 부딪혀 웅웅 울렸다. 기자들의 질문이 사방에서 쏟아졌다.
"백 실장님, 정말 코어 미디어의 메인 서버를 해킹하신 게 맞습니까?" "한채아 씨의 전속 계약도 이 표절 곡을 미끼로 체결된 건가요?"
서도관은 기세를 몰아 연우의 멱살을 잡을 듯이 손을 뻗었다. 그의 눈에 서린 자격지심과 가학적인 흥분이 폭발하고 있었다. 과거 늘 자신보다 한 발 앞서 나갔던 천재 프로듀서 백연우를 완벽하게 밟아 뭉개버릴 기회였다.
"말을 해봐, 이 사기꾼 새끼야!"
서도관이 오른손을 높이 들어 올려 연우의 뺨을 향해 사정없이 휘둘렀다. 기자들의 카메라 셔터가 미친 듯이 터져 나갔다.
그러나 둔탁한 타격음은 들리지 않았다.
*탁!*
공중에서 멈춰 선 것은 서도관의 손목이었다. 연우의 오른손이 그의 손목뼈를 정확하고 매섭게 움켜쥐고 있었다. 마치 쇠창살에 갇힌 것처럼, 서도관의 손목은 단 1밀리미터도 움직이지 못했다.
"윽……!"
서도관의 미간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연우는 그의 손목을 움켜쥔 채, 서서히 힘을 주어 아래로 꺾어 내렸다. 뼈가 맞물려 서걱거리는 소리가 미세하게 들릴 정도였다. 연우의 눈빛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타인을 오직 비즈니스의 부속품으로만 보던 그 냉혹함이 고스란히 담긴 눈동자였다.
"손버릇이 여전히 나쁘군, 서도관 프로듀서."
연우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으나, 지하실 안의 모든 소음을 단숨에 잠재울 만큼 힘이 있었다.
"해킹? 도용? 데이터망 추적?"
연우는 잡고 있던 서도관의 손목을 툭 던지듯 놓아버렸다. 서도관이 중심을 잃고 뒤로 비틀거리자, 경호원들이 급히 그를 부축했다. 연우는 한 걸음 앞으로 걸어 나와 실시간 중계 카메라의 붉은 표시등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카메라 잘 비추십시오. 지금부터 코어 미디어의 수석 프로듀서라는 자가 얼마나 멍청한 짓을 저질렀는지, 실시간으로 증명해 보일 테니까."
연우가 들고 있던 아이패드의 화면을 넓은 벽면에 설치된 대형 모니터로 송출했다. 푸른 스크린 위에 복잡한 소스 코드와 디지털 타임스탬프, 그리고 네트워크 로그 기록이 빼곡하게 떠올랐다.
"이것은 어제 귀사에서 '최초 유출 경로'라며 언론에 배포한 해킹 로그 파일입니다. 맞습니까, 서도관 씨?"
"그래! 네놈들의 IP가 선명하게 찍혀 있는 증거다!"
서도관이 붉어진 얼굴로 소리쳤다. 하지만 연우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그럼 이 화면을 보시죠."
연우가 패드 화면을 쓸어내리자, 붉은색의 또 다른 분석표가 겹쳐졌다.
"저희가 사용한 음원 파일에는 특수한 디지털 워터마크와 함께 '역추적 패킷'이 심겨 있었습니다. 당신들이 훔쳐 가 수정한 가이드 음원의 메타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입니다. 수정 기록에 강제 각인된 고유 맥 주소(MAC Address)와 외부 접속 IP 주소를 확인해 주십시오."
화면 중앙에 선명한 텍스트가 붉게 깜빡였다.
[Origin IP: 211.234.XX.XX (Core Media Head Office - Producer Room 1)] [Device MAC: 00-14-22-01-23-45 (Seo Do-gwan's Personal Workstation)]
기자들 사이에서 일제히 헉 소리가 터져 나왔다. 카메라 플래시가 이제는 연우가 아닌 모니터 화면과 서도관의 얼굴을 향해 번쩍이기 시작했다.
"이, 이게 무슨……! 이건 조작이야! 위조된 데이터라고!"
서도관의 목소리가 뒤집어졌다. 그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려 뺨을 타고 턱 끝으로 고였다.
"위조라뇨."
연우가 주머니에서 낡은 서류 한 장을 꺼내 들어 올렸다. 그것은 과거 연우가 기획 실장 시절 보관했다가 회귀하면서 챙겨둔, 서도관이 서명한 극비 원작 가이드 폐기 수령증이었다. 서류 하단에는 코어 미디어 전용 스탬프 인장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여기 찍힌 특수 인장의 일련번호와, 이번에 유출된 음원의 블록체인 등록 인장이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저는 이미 일주일 전, 'Mirage'의 전체 오리지널 악보와 개발 스템 데이터를 저작권 등록 협회에 타임스탬프를 찍어 등록해 두었습니다. 법적 생성 일자가 저희가 훨씬 앞섭니다."
연우의 목소리는 잔인할 정도로 정교했다.
"즉, 당신들이 '우리가 표절했다'고 주장하는 그 곡은, 애초에 서도관 씨 당신이 우리 네온 엔터의 데이터를 불법으로 해킹해 가려다 역으로 덫에 걸려 제 발로 흔적을 남긴 결과물이라는 뜻입니다. 도둑질을 하려다 도둑 맞았다고 동네방네 소문을 낸 꼴이죠."
기자들의 웅성거림이 파도처럼 번졌다.
"서 프로듀서님! 해킹 발원지가 본인의 작업실 컴퓨터라는 게 사실입니까?" "코어 미디어가 중소 기획사의 곡을 먼저 탈취하려 했다는 의혹에 대해 해명해 주십시오!"
질문 폭탄의 방향이 순식간에 180도 뒤바뀌었다. 서도관의 얼굴은 이제 흙빛을 넘어 하얗게 질려 가고 있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치며 도망칠 구멍을 찾았다.
"이, 이건 음해다! 당장 철수해! 전부 다 카메라 꺼!"
서도관이 경호원들을 재촉하며 좁은 지하 복도를 빠져나가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그의 뒤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쿵!*
윤민혁 대표가 덩치 큰 몸으로 출구를 완벽하게 가로막았다. 그의 단단한 가슴팍이 서도관의 어깨를 묵직하게 밀쳐냈다. 민혁은 팔짱을 낀 채, 이빨을 드러내며 통쾌하게 껄껄 웃었다.
"야 인마. 남의 사무실 들어올 때는 차비를 내고 기어 다녀야지, 기껏 카메라 다 불러놓고 그냥 가시려고?"
"이거 놔! 윤민혁, 네까짓 게 감히 코어 미디어를 상대로……!"
서도관이 악을 썼지만, 민혁의 우람한 체구 앞에서는 종이 인형처럼 무력했다.
그 순간, 연우의 시야에 떠오른 '미래 음원 장부'의 수치가 전율하듯 붉은 빛을 토해냈다.
================================= [실시간 바이럴 역류율: 350% 돌파!] - 대중 인지 흐름: '코어 미디어의 파렴치한 도둑질' 및 '약자 탄압' 프레임 급속 확산 중 - 네온 엔터테인먼트 여론 점유율: 18% -> 74% (폭발적 급증) - 인과율의 채무 정산 완료율: 100% 달성! =================================
*띠링.*
[인과율의 채무가 완벽히 변제되었습니다.] [한채아의 성대 하부 미세 염증 수치가 0%로 조정됩니다. '골든 하모니' 상태가 영구 활성화됩니다.]
연우는 자신의 가슴을 짓누르던 미세한 압박감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몸속 가득히 차오르는 신선한 에너지가 그의 신경망을 깨웠다. 그것은 목숨을 담보로 한 지옥 훈련의 체력적 한계를 온전히 뛰어넘은 자만이 얻을 수 있는 시스템의 완벽한 보상이었다.
연우는 떨고 있는 서도관의 앞으로 다가가 그의 눈을 똑바로 쏘아보았다.
"서도관 씨. 질문과 증명에는 삼박자가 필요한 법입니다. 첫째, 누가 곡을 썼는가. 둘째, 누가 먼저 등록했는가. 그리고 마지막 셋째……."
연우가 고개를 돌려 피아노 앞에 서 있는 채아를 바라보았다. 채아는 연우의 눈빛에서 확신을 읽었다. 그녀는 깊은숨을 들이쉬었다. 성대 깊은 곳에서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청량하고 압도적인 울림이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누가 진짜 이 곡의 주인인가."
채아가 입을 열었다. 아무런 반주도 없었다. 열악한 지하 연습실의 낡은 음향 장비조차 필요 없었다.
"~♪"
그녀의 목소리가 허공을 가르는 순간, 웅성거리던 기자들의 숨소리가 일시에 멎었다.
그것은 단순한 노래가 아니었다. 성대의 상처를 극복하고, 가스라이팅의 사슬을 끊어낸 천재 보컬의 순수한 영혼이 담긴 포효였다. 지하실의 눅눅한 공기를 단숨에 정화시키는 듯한 맑고 투명한 음색이 벽면의 거울을 미세하게 울렸다. 고음역대로 치닫는 순간에도 단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마치 천상의 악기가 울리듯 완벽한 파형을 그리며 공간을 지배했다.
기자들은 넋을 잃은 채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것조차 잊어버렸다. 몇몇 기자는 들고 있던 녹음기를 떨어뜨릴 뻔하기도 했다.
서도관은 그 압도적인 가창력의 질량 앞에서 완전히 주저앉았다. 남의 곡을 훔치고 흉내 내는 것에만 급급했던 그의 얄팍한 재능으로는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진짜 '원석'의 압도적인 무게감이었다.
"이게…… 진짜 'Mirage'의 목소리입니다."
연우가 서도관을 내려다보며 선언했다.
"이제 누가 표절이고 도둑인지, 대중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게 될 겁니다. 서도관 씨, 당신과 코어 미디어는 오늘부로 가요계에서 가장 파렴치한 절도범으로 낙인찍히게 될 테니까."
현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기자들은 실시간으로 기사를 송출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두드려댔고, 서도관은 경호원들의 장막 뒤로 얼굴을 가린 채 쥐새끼처럼 도망치듯 지하실을 빠져나갔다. 완벽한 역포위이자 카운터 펀치였다.
민혁이 연우의 어깨를 툭 치며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 연우야! 네가 진짜 해냈어! 저 새끼 얼굴 찌그러지는 거 봤냐? 완전 십 년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간다!"
채아 역시 가슴을 쓸어내리며 연우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가에 맺힌 눈물은 더 이상 슬픔이나 두려움의 눈물이 아니었다.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았다는 안도감과, 이 냉혹하지만 든든한 프로듀서에 대한 깊은 신뢰의 표현이었다.
"고마워요, 피디님……."
채아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연우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머릿속은 이미 다음 단계의 계산으로 빠르게 넘어가고 있었다. 코어 미디어를 완벽하게 매장하고 'Mirage'를 차트 정상에 올리는 일만 남았다.
그러나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거대 카르텔의 수장 강태신은 이 정도로 무너질 인물이 아니었다.
그때였다.
연우의 양복 안주머니에서 날카로운 진동음이 울렸다.
발신인은 네온 엔터테인먼트의 음원 유통을 담당하는 대형 플랫폼 '멜론웨이브'의 실무 팀장이었다.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다. 연우가 전화를 받아 귀에 가져다 대자, 수화기 너머에서 사시나무 떨듯 떨리는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백, 백 실장님! 큰일 났습니다! 지금 당장 유통망에 문제가 생겼어요!]
연우의 미간이 좁아졌다.
"무슨 일입니까. 차분히 말하십시오."
[그게…… 코어 미디어의 대주주이자 우리 플랫폼 유통 총괄 부서장인 최 이사가 방금 직접 지시를 내렸습니다. 네온 엔터테인먼트의 신곡 'Mirage'에 대한 모든 전산 노출 지분율을 0%로 조정하고, 내일 예정되어 있던 첫 페이지 메인 배너 등록을 일방적으로 취소 처리하겠다고 합니다! 이건 사실상 플랫폼 내에서 우리 음원을 아예 매장하겠다는 소리입니다!]
연우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차갑게 굳어 들어갔다.
아무리 좋은 곡을 만들고 여론에서 승리하더라도, 대중이 듣는 플랫폼의 입구 자체가 원천 봉쇄당한다면 차트 진입은 불가능하다. 거대 카르텔이 가진 가장 추악하고 강력한 무기, '유통망 독점 자폭 테러'가 시작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