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신……! 당신이 날 이렇게 버려? 두고 봐! 내 입에서 뭐가 나올지!"
지하 연습실의 무거운 철문을 넘어 복도로 흩어지는 서도관의 비명은 처절했다. 양팔을 붙잡은 경찰들의 구두 굽 소리가 멀어질수록, 네온 엔터테인먼트의 지하 공간을 채우는 침묵은 오히려 뜨겁게 달아올랐다.
연우의 손바닥 위에서 스마트폰 액정이 파르르 떨렸다. 멜론웨이브의 전산망이 정상화되었다는 문자 메시지 위로, 거짓말처럼 한 장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어스름한 안개 속에서 정면을 응시하는 한채아의 눈빛. 그 어떤 가공도 거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푸른 불꽃을 닮은 시선이었다. 그 눈동자 아래로 선명한 활자가 박혔다.
[한채아 - Mirage (신기루)]
그와 동시에 연습실 벽면 구석에 매달린 낡은 하만카돈 스피커가 무거운 저음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웅장하면서도 쓸쓸한, 물속에서 울려 퍼지는 듯한 몽환적인 신디사이저 패드가 공간의 공기를 단숨에 바꾸어 놓았다. 전국의 음원 이용자 서브 터미널과 스트리밍 앱을 통해 동시에 송출되기 시작한 'Mirage'의 가이드 플레이 세션이었다.
"어……?"
벽에 기대어 숨을 고르던 민혁이 멍하니 스피커를 올려다보았다.
단 5초의 전주. 하지만 그 짧은 소절만으로도 심장을 옥죄는 듯한 압도적인 공간감이 귀를 파고들었다. 마치 깊은 심해 속으로 가라앉았다가 급격히 수면 위로 솟구칠 때의 해방감과 닮아 있었다.
인터넷 커뮤니티는 이미 실시간으로 뒤집어지고 있었다.
- 야, 방금 멜론웨이브 메인 배너 클릭했는데 이거 누구 목소리냐? - 한채아 신곡? 미친, 전주부터 소름 돋았어. 둥둥 울리는 베이스 장난 아니다. - 방금 서도관 끌려가는 뉴스 보고 왔는데, 노래 듣자마자 대가리 깨짐;; - 보컬 들어온다. 와, 목소리에 필터 아예 안 씌운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선명하냐?
수천, 수만 명의 귀로 동시에 파고드는 한채아의 목소리는 정교한 기계음으로 문지른 요즘 아이돌의 보컬과는 궤를 달리했다. 그것은 청각을 넘어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차가운 카타르시스였다.
하지만 연우의 눈앞에 떠오른 '미래 음원 장부'의 시각화 지표는 마냥 아름답지 않았다. 붉은색 경고등이 신경질적으로 깜빡이고 있었다.
[경고: 아티스트 한채아의 누적 성대 하부 미세 염증 스크래치 수치: 94.2%] [경고: 아날로그 음향 이퀄라이저의 주파수 수용 한계 초과 임박.] [인과율의 채무 정산 잔여 시간: 00:03:14]
‘역시 무리였나.’
연우의 턱끝이 단단히 굳어졌다.
지난 사흘간, 96시간이라는 촉박한 시간 제한 속에서 한채아는 말 그대로 자신을 갈아 넣었다. 물속에서 소리를 내지르는 수중 훈련과 지옥 같은 호흡 조절은 그녀의 트라우마를 깨부수었지만, 물리적인 성대에는 피할 수 없는 미세한 상처들을 남겼다.
지금 스피커를 통해 흐르는 음원은 완벽하지만, 곧 이어질 방송사 라이브 무대와 실시간 스트리밍 세션에서 그녀의 성대가 버텨내지 못한다면 장부의 성공 확률은 순식간에 영(0)으로 수렴할 터였다.
그때, 연습실 중앙에 서 있던 채아가 마이크 스탠드를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그녀의 손가락 끝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성대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뜨거운 열감과 피 비린내를 숨기려는 듯, 그녀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눈동자에는 두려움 대신 지독한 오기가 서려 있었다.
"실장님."
갈라진 목소리였지만, 눈빛만큼은 흔들리지 않았다.
"저, 끝까지 가요. 여기서 멈추면 평생 신기루로 남는 거잖아요."
연우는 그녀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비즈니스 파트너로서의 냉혹함을 가장한 채, 그는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성대가 찢어지든 말든, 내가 산출한 가치는 100%여야 해. 네 목소리로 증명해라, 한채아."
매정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 담긴 신뢰를 채아는 본능적으로 읽어냈다. 백 실장은 단 한 번도 자신을 포기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채아가 마이크를 향해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곡의 하이라이트, 3단 고음을 넘어서는 초고역대의 클라이맥스가 다가오고 있었다. 낡은 이퀄라이저의 바늘이 미친 듯이 요동치며 적색 영역을 때렸다. 찌르르하는 기계적 과부하 소음이 공기를 찢기 직전이었다.
"아아아아――!"
마침내 채아의 목구멍을 뚫고 터져 나온 고음은,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듯한 영역으로 치솟았다.
귀청을 때리는 고음이 아니라, 영혼을 긁어내리는 듯한 투명하고도 압도적인 울림이었다. 낡은 스피커의 진동판이 한계에 도달해 찢어질 듯 떨리는 순간.
연우의 시야에 황홀한 황금빛 활자가 폭발하듯 펼쳐졌다.
[인과율 변제 정산 성공!] [채무 이행률: 100.0% (수중 극한 훈련 및 성대 한계 돌파 완료)] [특전 활성화: 한채아의 보컬 주파수 성대 초재생 각성 완료.]
그 순간, 기적처럼 채아의 목소리에 섞여 있던 미세한 잡음과 쇳소리가 완벽하게 사라졌다.
마치 상처 입은 성대 세포들이 순식간에 다시 배열되는 것처럼, 그녀의 고음은 한 점의 균열도 없이 매끄럽고 단단하게 연습실 천장을 뚫고 날아올랐다. 이퀄라이저의 찌르는 듯한 붉은 경고등이 차분한 청색으로 내려앉으며, 가장 완벽한 형태의 황금 비율 하모니를 그려냈다.
"……!"
민혁은 입을 벌린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평생 수많은 천재라는 아이들을 보아왔지만,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현상은 '천재'라는 단어조차 모욕하는 신의 영역에 가까운 가창이었다. 찢어질 것 같던 성대가 오히려 더 깊고 단단한 울림을 만들어내며 음향 기기 자체를 지배하고 있었다.
마지막 여운이 안개처럼 내려앉으며 'Mirage'의 첫 플레이가 끝났다.
고요함이 찾아온 지하 연습실.
민혁은 제자리에서 주저앉듯 소파에 몸을 묻었다가, 이내 벌떡 일어나 연우의 어깨를 굵은 손으로 퍽퍽 내리쳤다. 그의 눈가에는 이미 뜨거운 눈물이 흥건하게 고여 있었다.
"연우야……! 연우야, 들었냐? 방금 그거 들었어?"
"아픕니다, 대표님. 살살 치시죠."
연우가 미동도 없이 대꾸했으나, 민혁은 아랑곳하지 않고 울컥하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우리가…… 우리가 해냈어! 저 빌어먹을 대기업 놈들이 짓밟아 놓은 우리 자식이, 마침내 세상 밖으로 나왔다고! 이 목소리를 누가 부정해? 누가 감히 채아를 가짜라고 불러!"
민혁의 목소리는 자조적이면서도 뼈저린 확신으로 가득 찬 자화자찬이었다. 그동안 중소 기획사의 서러움에 눈물 흘려야 했던 세월의 응어리가 한순간에 씻겨 내려가는 듯한 해방감이 그의 얼굴에 어려 있었다.
채아는 마이크 스탠드를 잡은 채 조용히 어깨를 떨었다. 그녀의 뺨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이 마이크 헤드 위로 툭, 떨어졌다.
하지만 연우는 감상에 젖을 시간이 없었다. 그는 곧바로 스마트폰을 켜고 실시간 음원 차트의 추이를 확인했다.
"이제 시작입니다. 울 시간은 차트 1위 찍고 나서도 충분해요."
연우의 냉정한 목소리에 민혁이 코를 훌쩍이며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오후 6시 정각 음원 공개. 오후 7시, 첫 실시간 진입 순위가 떴다.
[한채아 - Mirage : 실시간 차트 100위 진입]
중소 기획사의 신곡으로서는 나쁘지 않은 출발이었으나, 연우의 눈은 이미 그 너머를 보고 있었다. 코어 미디어가 뒤에서 조종하는 담합 카르텔의 인공지능 추천 알고리즘이 가동되고 있을 터였다. 그들은 자사 소속 아이돌의 곡을 상위권에 고정시키기 위해 기계적인 스트리밍 수치를 밀어 올리고 있었다.
그러나 진짜 '원석'의 무게는 기계 따위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오후 7시 30분. 커뮤니티와 SNS를 타고 '한채아 라이브 가이드 영상'과 '실시간 음원 반응'이 들불처럼 번져 나갔다.
- 이게 진짜 한채아 목소리라고? 라이브가 음원이랑 똑같잖아 미친;; - 코어 미디어에서 가스라이팅 당해서 성대 접 접혔다는 소문 돌았는데, 그냥 신을 데려다 놨네. - 노래 너무 슬픈데 또 존나 웅장함. 퇴근길 마포대교 위에서 듣다가 울었다. - 음원 사이트 일 안 하냐? 왜 이 노래가 100위에 박혀 있어? 빨리 추천 눌러라.
대중의 자발적인 화력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오후 8시.
[한채아 - Mirage : 실시간 차트 42위]
오후 9시.
[한채아 - Mirage : 실시간 차트 17위]
그리고 오후 10시. 음원 발매 단 4시간 만에, 차트의 상위권을 철옹성처럼 지키고 있던 코어 미디어 소속 아이돌 그룹들의 곡이 하나둘씩 아래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그들이 수십억 원의 바이럴 자금과 플랫폼 담합으로 견고하게 쌓아 올렸던 인공지능 추천 알고리즘은, 오직 대중의 순수한 '반복 재생'과 '유입 화력'이라는 압도적인 물리량 앞에 서서히 망가지기 시작했다. 기계적인 하트 수와 스트리밍 봇들의 트래픽이 실제 사람들의 감동 어린 클릭에 밀려 폭사하는 순간이었다.
[한채아 - Mirage : 실시간 차트 5위]
"올라간다…… 계속 올라가!"
민혁이 소리를 질렀다.
자정을 앞둔 오후 11시 50분. 대한민국 최대 음원 플랫폼 멜론웨이브의 실시간 차트 최정상에 마침내 단 하나의 이름만이 우뚝 섰다.
[1위 : 한채아 - Mirage (신기루)]
코어 미디어가 자랑하던 1위 곡은 차트 아웃의 굴욕을 겪으며 저 멀리 밀려났다. 완벽한 학살극이었다. 자본과 권력으로 대중의 귀를 마취시키려던 거대 카르텔의 심장부에, 네온 엔터의 지하 연습실에서 쏘아 올린 단 한 발의 화살이 정확히 꽂힌 것이다.
연우는 화면을 응시하며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강태신, 당신이 세운 제국의 벽은 생각보다 얇아.’
미래 음원 장부의 회계 수치가 황금빛으로 가득 차며 네온 엔터의 예상 수익 지표가 천문학적인 숫자로 변해갔다. 한채아라는 원석의 진짜 가치가 마침내 시장에서 올바른 가격으로 정산받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였다.
연습실의 낡은 철문 틈새로 쾅, 쾅, 하는 거친 노크 소리가 울렸다. 민혁과 채아가 깜짝 놀라 문 쪽을 바라보았다.
들어온 사람은 땀 범벅이 된 네온 엔터의 유일한 경리 직원이었다. 그녀의 손에는 붉은색 도장이 선명하게 찍힌 법적 등기 우편물이 들려 있었다.
"실장님! 대표님! 이거…… 방금 법원에서 야간 특별 송달로 온 건데……!"
허겁지겁 우편물을 건네받은 민혁의 얼굴이 순간 흙빛으로 변했다.
연우가 민혁의 손에서 서류를 낚아채듯 빼앗아 읽어 내려갔다. 서류의 상단에는 서울중앙지방법원의 직인과 함께 묵직한 활자가 박혀 있었다.
[채권 가압류 처분 통지서] - 채권자: 주식회사 코어 미디어 그룹 대표 강태신 - 채무자: 주식회사 네온 엔터테인먼트 - 결정 사항: 채무자의 해외 투자 유치 계좌를 포함한 법인 명의의 모든 예금 채권에 대한 전면 압류 및 가압류를 명함.
"이, 이게 무슨……."
민혁이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해외 투자 유치 계좌가 묶였다고? 우리가 이번에 미국 인디 레이블이랑 진행하던 계약금 입금 계좌잖아! 영감이…… 강태신이 우리 자금줄을 완전히 틀어쥐겠다는 거야!"
서도관이 구속되고 음원 차트가 폭발하는 순간에도, 최종 보스인 강태신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사법적 파멸을 앞두고도 자신이 가진 금융권의 인맥과 거대 자본의 영향력을 동원해 네온 엔터의 목줄을 죄어온 것이다.
자금줄 차단. 중소 기획사로서는 단 일주일도 버티지 못하고 부도를 맞이하게 할 냉혹한 사형 선고였다.
연우의 눈빛이 그 어느 때보다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의 손가락 끝이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채아가 건네주었던 암호화 USB의 단단한 감각을 더듬었다. 강태신의 탈세 및 이면 계약 육성이 담긴, 그를 단숨에 매장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
그때, 연우의 스마트폰이 다시 한번 진동했다. 발신자 제한 표시의 짧은 문자 메시지였다.
[백 실장, 노래는 잘 들었네. 하지만 돈이 없는 아티스트가 빌보드라니, 너무 가여운 신기루 아닌가? - K]
강태신이었다.
연우는 메시지를 내려다보며 어둠 속에서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전쟁은 이제 막 진짜 막을 올렸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