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죽 소파 깊숙이 몸을 묻은 사내의 눈빛은 거만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가 테이블 쪽으로 툭 던진 태블릿 PC 화면 속에는 낯익은 얼굴들이 보입니다. 당신과 함께 던전 밑바닥에서 흙먼지를 마시던 F급 동료들. 차가운 쇠창살 뒤에서 피떡이 된 채 벌벌 떨고 있는 모습입니다.
"서도진 씨,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지?"
흑룡 길드의 악질 간부, 강태훈이 장난스럽게 입꼬리를 올립니다. "F급 버러지 주제에 운 좋게 살아남았으면, 처신을 잘해야지."
지익.
그가 테이블 위로 두꺼운 종이 뭉치를 밀어 넣습니다. [특별 전방 기동대 종신 계약서] 말이 좋아 기동대지, 던전 최전선에서 고기방패 삼아 굴리다 버릴 노예 서약서입니다.
"여기에 사인해. 그럼 네 동료들은 무사히 풀려날 거야."
강태훈의 등 뒤에 서 있던 거구의 경호원 둘이 위압적으로 다가섭니다. 당신의 어깨를 거칠게 짓누르는 손길.
콰득.
일반적인 F급 헌터라면 비명도 못 지르고 뼈가 으스러졌을 압력. 하지만 당신의 혈관 속에 흐르는 건 우주를 뒤흔들 신화급 핵심 특성입니다. 이 힘을 단 1%만 해방해도 이 빌딩 전체를 고기다짐육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이 새끼들이 진짜 선 넘네.'
울컥 솟구치는 살기를 억누르느라 어금니가 으드득 갈립니다. 머리는 이미 얼음처럼 차갑게 분노의 가성비를 계산하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이놈들의 목줄기를 뜯어버리는 건 일도 아닙니다. 하지만 흑룡 길드의 뿌리까지 뽑아버리려면 감정을 죽여야 합니다.
"어라? 표정이 왜 그래? 불만 있어?"
덩치 큰 경호원이 건방지게 당신의 머리채를 잡으려 손을 뻗습니다.
휘익-!
공기를 가르는 난폭한 손아귀.
착.
당신은 일부러 풀린 인형처럼 바닥으로 고꾸라지며 손길을 피합니다. "으악! 살, 살려주세요! 사인하면 되잖아요!"
찌질한 F급 연기를 내뱉으며, 바닥을 짚은 당신의 손끝이 시커멓게 물듭니다. 눈동자 밑바닥에서는 이미 저승사자마저 지릴 살기가 이글거립니다.
강태훈이 그 꼴을 보고 비열하게 폭소를 터뜨립니다. "하하하! 진작 이럴 것이지! 쥐새끼마냥 뽈뽈거려 봤자 내 손바닥 안이야."
그가 피우던 담배를 테이블에 비벼 끄며 당신을 내려다봅니다.
"기회는 딱 한 번이다." "순순히 노예가 되어 지하 수용소로 기어 들어가 우리 패를 기다릴래?" "아니면 오늘 밤 가차 없이 이놈들의 목을 따버리고 판을 엎을래?"
선택의 순간이 눈앞으로 닥쳐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