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관을 타고 흐르는 건 단순한 피가 아니다.
우주의 심연에서 끌어올린 보랏빛 파멸의 마력.
쿠구구구구-!
대지가 비명을 지른다.
무너져 가던 던전의 잔해가 보랏빛 마력 폭풍에 휩쓸려 분쇄되기 시작한다.
파사삭!
바스러진다.
바람을 가른다.
휘몰아친다.
당신의 몸을 중심으로 뿜어져 나온 폭풍은 반경 백 미터 안의 모든 것을 지워버렸다.
이것이 바로 신화급 특성, '스펙터 스크롤'의 위엄이다.
"하하, 하하하!"
터져 나오는 실소를 참을 수 없다.
F급이라는 최약체의 사슬이 단숨에 끊겨 나간 기분.
하지만 기쁨도 잠시.
귀를 찢는 날카로운 사이렌 소리가 고요해진 대기를 흔든다.
위우우우웅-!
멀리서 먼지 구름을 일으키며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는 검은색 장갑차들.
차체에 선명하게 새겨진 붉은 용의 문양.
국내 최고이자, 무자비하기로 소문난 거대 길드 '흑룡'의 마크다.
"거기 멈춰라!"
콰창!
문이 부서지듯 열리며 시커먼 전투 슈트를 입은 자들이 내린다.
폭풍을 감지하고 들이닥친 흑룡 길드의 엘리트 정찰대다.
그들의 눈빛은 오만하기 짝이 없다.
먹잇감을 발견한 하이에나처럼, 그들의 시선이 당신의 해진 헌터 옷과 F급 마력 계측기에 머문다.
"정체불명의 강력한 마력 반응 진원지가... 고작 이 흙먼지 구덩이에 구르던 F급 찌레기라고?"
대장으로 보이는 흉터 많은 사내가 침을 지익 뱉으며 다가온다.
그의 손끝에서 치명적인 붉은 화염 마력이 매끄럽게 피어오른다.
화르륵!
피어난다.
스릉!
검을 뽑는다.
"야, F급. 방금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지? 숨김없이 불어라. 허튼짓하면 즉결 처형이다."
흑룡의 엘리트들이 당신을 비웃으며 포위 구도를 좁혀온다.
숨이 막힐 듯한 살기가 사방에서 조여온다.
평소의 당신이었다면 이 압도적인 기세에 눌려 무릎부터 꿇었을 터다.
하지만 지금, 당신의 심장은 터질 듯이 뛰고 있다.
두려움이 아니다.
뇌리를 지배하는 것은 온몸을 짜릿하게 적시는 기묘한 전율.
새롭게 얻은 신화급 힘이 당신의 손끝에서 당장이라도 폭발하고 싶어 날뛴다.
갑질에 찌든 저 오만한 놈들의 목덜미가 아주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무릎을 꿇려 주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하지만, 아직은 정체를 숨겨야 할 때일지도 모른다.
당신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으며, 선택을 종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