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머리 위로 무너져 내리는 건 거대한 잔해만이 아니다. 당신의 시궁창 같은 인생 그 자체다.

"이봐! 서도진! 거기 처박혀서 뭐 해? 빨리 안 뛰어?!" "쓸모없는 F급 새끼, 결국 발목을 잡는군!"

길드원들의 비명과 매몰찬 욕설이 고막을 찢는다. 녀석들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당신을 버렸다. 던전 붕괴. S급조차 생존을 장담 못 한다는 최악의 재앙이다.

쿠구구궁!

콰아아앙!

무자비한 바윗덩어리가 등 위로 사정없이 내리꽂힌다. 척추가 으스러지는 끔찍한 파열음.

뻐드득!

퍽!

뜨거운 선혈이 차가운 던전 바닥을 붉게 적신다. 시야가 흐려진다. 이대로 개죽음인가? 평생 F급 짐꾼으로 비웃음만 당하다가, 이 어두운 구덩이에서 썩어 없어지는 건가?

억울하다. 세상의 눈부신 '억까'에 이가 갈린다. 복수하고 싶다. 자신을 쓰레기처럼 버린 놈들의 목덜미를 통쾌하게 물어뜯고 싶다.

바로 그 순간.

화아아악!

암흑뿐이던 시야에 기묘한 보랏빛 불꽃이 피어오른다. 그것은 우주를 통째로 갈아 넣은 듯한 심연의 성좌. 절대적인 소멸의 위기 속에서, 영롱한 빛을 내뿜는 두루마기 형상의 유물이 나타난다.

[시스템 오류 발생.] [조건 없는 인과율의 균열을 감지합니다.] [차원을 초월한 신화급 유산, '스펙터 스크롤(Specter Scroll)'이 당신의 영혼을 선택합니다.]

쿵! 쿵! 쿵!

멈춰 가던 심장이 터질 듯 요동친다. 전신의 세포가 비명을 지르며 깨어난다. 상처가 아물고, 끊어졌던 맥박이 미친 듯이 박동한다.

이 힘을 받아들이는 순간, 당신은 더 이상 무력한 F급이 아니다. 세상의 꼭대기에서 판을 흔들 지배자가 된다.

다만, 너무 거대한 힘이다. 자칫하면 사방에 파동이 퍼져 바깥의 대형 길드 놈들에게 정체가 탄생하자마자 들통날 터.

"눈앞에 굴러온 황금 치트키를 썩힐 순 없지."

당신은 입술에 묻은 피를 쓱 닦아내며 미소 짓는다. 방법을 정해야 한다. 이 미쳐버린 신화급 권능을 어떻게 영혼에 새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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