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흙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청명고등학교 운동장 한구석.

왼쪽 무릎에서 시작된 타는 듯한 통증이 척추를 타고 뇌수까지 치밀어 올랐다. 강태오는 어금니가 으스러져라 깨물었다. 비명 대신 뜨거운 뜨물이 목구멍 안쪽으로 삼켜졌다.

[소유주 강태오의 좌측 무릎 부하도: 35.00%] [부작용: 1단계 강박 신경증(Obsessive Compulsive Neurosis)이 활성화됩니다.]

시야 우측 하단에 떠오른 핏빛 경고창이 망막을 찔렀다. 이명이 고막을 찢을 듯이 울렸고, 주변의 소음이 기괴할 정도로 왜곡되어 들리기 시작했다. 사소한 자갈이 굴러가는 소리, 동료들의 거친 거친 숨소리 하나하나가 쇠창살로 고막을 긁는 것처럼 신경을 자극했다. 강박 신경증의 발현이었다. 심장 박동수가 분당 140회를 상회하며 가슴팍을 사정없이 두드렸다.

그 혼란스러운 감각의 균열을 깨고, 거친 손아귀 하나가 태오의 어깨를 억세게 틀어쥐었다.

"어이, 강태오."

코를 찌르는 시큼한 땀 냄새와 함께 낯익은 얼굴이 시야를 가로막았다. 박성민이었다. 대한축구협회 고위 임원의 조카이자, 청명고의 황태자로 군림하는 녀석의 입꼬리가 비열하게 삐져나와 있었다.

"실력도 없는 퇴물 새끼가 그라운드에서 폼 잡지 마라. 쓰러진 척 동정표라도 얻어 보시려고? 눈물겹네, 아주."

박성민이 태오의 가슴팍을 툭툭 치며 악수를 청하듯 오른손을 내밀었다. 눈빛에는 명백한 조롱과 멸시가 가득했다. 감독의 총애와 협회의 뒷배를 믿고 안하무인으로 날뛰는 녀석의 전형적인 기싸움 방식이었다. 뒤틀린 인대와 관절의 통증 속에서도 태오의 눈동자는 얼음처럼 차갑게 가라앉았다.

태오는 성민이 내민 손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대신 제자리에서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왼쪽 무릎에 하중이 실릴 때마다 장부가 계산하는 수치적 통증이 신경망을 타고 흘렀지만, 그는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손 치워라. 땀 냄새 난다."

태오의 나직한 목소리에 박성민의 얼굴이 단숨에 굳어졌다.

"이 새끼가 진짜 돌았나……."

"공 잡고 입 털 시간 있으면 네 디딤발 위치나 신경 써. 수비할 때 무게중심이 그렇게 뒤로 빠져 있으니까 매번 턴 동작에서 고속도로가 뚫리는 거다."

"뭐?"

박성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태오의 지적은 정확했다. 성민은 탄탄한 피지컬을 믿고 무리하게 덤비는 경향이 있었고, 특히 상대의 측면 돌파를 제어할 때 디딤발의 제동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전생에서 유럽 무대의 정점까지 경험했던 태오의 눈에는 그의 그런 수비 자세가 마치 걸음마를 갓 배운 어린아이의 재롱처럼 허술해 보였다.

최길환 감독의 호루라기 소리가 날카롭게 피치를 갈랐.

삐익ㅡ!

"잡담하지 말고 훈련 재개해! 주전 조, 하프라인에서부터 다시 압박 시작한다!"

감독의 고함에 박성민이 이빨을 갈며 태오의 귓가에 속삭였다.

"뒤져봐라, 오늘."

경기가 다시 재개되었다. 공은 청백전의 흐름에 따라 태오가 속한 비주전 조의 수비 라인에서부터 흘러나왔다. 흙먼지가 바람을 타고 흩날리는 그라운드 위, 태오는 중앙 미드필더 위치에서 주변 공간을 탐색했다.

강박 신경증의 영향으로 시야가 다소 좁아졌지만, 오히려 주변의 불필요한 시각 정보가 차단되고 공의 궤적과 상대 선수의 움직임만이 극도로 선명하게 뇌리에 각인되었다.

'커버 섀도우(Cover Shadow).'

박성민이 태오를 향해 빠르게 접근해 왔다. 패스 길목을 몸으로 가로막으며 압박 가이드라인을 좁혀오는 전술적 움직임이었다. 최길환 감독이 평소 강조하던 전방 압박의 형태였지만, 박성민의 압박 궤적은 지나치게 직선적이었다. 상대의 무게중심 변화를 예측하지 않고 오직 힘으로 밀어붙이겠다는 심산이 훤히 보였다.

태오의 시야에 장부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가용 신용 자산 확인.] [좌측 무릎 부하 대환 버프 활성 가능.] [대환 조건: 민첩성 스탯 20% 한시적 상승 (지속시간 5초).] [실행하시겠습니까?]

'실행.'

머릿속으로 명령을 내린 순간, 태오의 왼쪽 허벅지와 종아리 근육이 미세하게 진동했다. 대퇴사두근과 비복근이 비정상적일 정도로 팽팽하게 수축하며 지면 반발력을 극대화할 준비를 마쳤다.

공이 태오의 발밑에 도달했다. 박성민이 기다렸다는 듯이 어깨를 들이밀며 거칠게 충돌을 유도했다. 축구 규칙의 한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파울성 몸싸움이었다.

하지만 태오는 충돌하기 바로 직전, 디딤발을 가볍게 굴렀다.

스텝 오버(Step Over).

공 위로 오른발을 가볍게 넘기는 동작과 함께 상체를 왼쪽으로 크게 기울였다. 박성민의 시선과 몸의 무게중심이 순간적으로 태오의 왼쪽 움직임에 쏠렸다.

'바보 같은 녀석.'

태오는 그 찰나의 순간에 디딤발의 방향을 반대로 틀었다. 민첩성 20% 상승 버프가 적용된 육체는 전생의 전성기 시절 못지않은 반응 속도를 선보였다. 오른쪽 아웃사이드로 공을 툭 밀어내며 좁은 하프 스페이스(Half-space)로 파고들었다.

"어……?!"

박성민의 입에서 당혹스러운 신음이 터져 나왔다. 이미 상체의 무게중심이 완전히 무너진 상태였다. 급하게 방향을 전환하려 했지만, 그의 뻣뻣한 디딤발은 흙바닥의 마찰력을 버텨내지 못했다.

슬립(Slip).

"으악!"

박성민이 중심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제 무릎에 제 다리가 걸려 흙바닥에 얼굴을 그대로 처박는 꼴사나운 모습이었다.

쿵!

바닥을 구르는 소리와 함께 박성민의 유니폼이 흙먼지로 범벅이 되었다. 콧등이 바닥에 긁혔는지 벌겋게 부어오른 채로 녀석이 흙바닥을 짚고 버둥거렸다.

태오는 뒤돌아보지도 않았다. 오픈 스페이스로 가볍게 치고 나가며 반대편 측면으로 쇄도하는 공격수를 향해 자로 잰 듯한 로빙 패스를 찔러 넣었다. 공은 수비진의 키를 가볍게 넘겨 정확히 동료의 발밑에 배달되었다.

"와…… 방금 뭐냐?"

"태오 턴 동작 미쳤는데? 성민이가 그냥 바닥에 구르네."

"바디 페인팅 한 번에 완전히 속았어."

터치라인 부근에서 대기하던 후보 선수들과 벤치에서 수군거림이 터져 나왔. 평소 박성민의 거만한 태도에 불만을 품고 있던 이들의 눈빛에는 은근한 통쾌함마저 서려 있었다.

태오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자신의 왼쪽 무릎을 내려다보았다. 다행히 장부의 임시 버프 덕분에 관절의 추가적인 물리적 손상은 없었지만, 신경증으로 인한 두통이 관자놀이를 지욱지욱 눌러왔다.

"태오야!"

그때, 저 멀리서 한준우가 땀을 뻘뻘 흘리며 달려왔다. 조금 전 아찔한 부상 위기를 넘겼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의 눈동자는 태오가 보여준 믿기 힘든 개인 기량에 대한 경외감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너 방금 움직임 진짜 미쳤어! 어떻게 그 타이밍에 그렇게 꺾냐? 무릎은 괜찮은 거야? 아까 쓰러질 뻔했잖아."

준우가 태오의 어깨에 손을 얹으려 했다.

탁.

태오가 거칠게 준우의 손을 쳐냈다. 준우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어……?"

"다가오지 마."

태오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머릿속을 지배하는 강박 신경증과 전생의 지독한 트라우마가 그의 이성을 갉아먹고 있었다.

'동료는 믿을 대상이 아니다.'

전생의 은퇴식 날, 무릎이 걸레짝이 되어 그라운드를 떠날 때 자신의 등을 토닥여주던 동료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협회와 구단의 압박 속에서 결국 살아남는 것은 오직 자신 혼자뿐이었다. 동료에 대한 신뢰는 곧 나약함의 반증이자, 스스로를 파멸로 이끄는 지름길이었다. 준우의 성실함과 호의는 고맙지만, 그것이 자신의 완벽한 그라운드 통제 계획을 방해하게 둘 수는 없었다.

"너 방금 무리하게 덤비다가 공간 다 내줬어. 내 탈압박이 아니었으면 역습 당해서 바로 실점 템포였다고."

태오가 차가운 눈빛으로 준우를 쏘아붙였다.

"네 수비 위치 선정은 최악이었어. 감독이 압박하라고 소리친다고 해서 무작정 발부터 뻗는 건 멍청한 짓이야. 3자 패스 길목을 차단하면서 지연시키는 게 먼저라고. 알겠어?"

"태, 태오야…… 난 그냥 네 무릎이 걱정돼서……."

"걱정할 시간에 네 전술적 움직임이나 복기해. 내 몸은 내가 알아서 관리하니까 동정 섞인 오지랖은 사양한다."

준우는 상처받은 표정으로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태오의 독선적이고 날카로운 태도에 주춤하며 한 걸음 물러섰다. 하지만 태오의 시선은 준우의 얼굴이 아닌, 그의 무릎 쪽으로 향해 있었다.

태오의 망막 위에 붉은색 경고등이 격렬하게 점멸하기 시작했다.

[포함된 대상: 한준우] [우측 무릎 십자인대 피로도: 89.00% (위험 단계)] [경고: 무리한 방향 전환 및 지면 마찰 시 인대 파열 가능성 매우 높음.]

'장부의 채권 채무 인수'로 한 차례 급한 불은 껐지만, 준우의 고질적인 하체 불균형과 최길환 감독의 무식한 전방 압박 전술이 계속되는 한 이 수치는 언제든 다시 임계점을 돌파할 터였다. 시한폭탄을 안고 뛰는 것과 다름없었다.

'이 녀석의 무릎이 박살 나면, 주전 미드필더 라인의 밸런스가 무너진다. 내 유럽 진출 포트폴리오에 차질이 생겨.'

태오는 철저하게 비즈니스적인 관점으로 준우의 상태를 계산했다. 동료에 대한 순수한 우정이 아니라, 자신의 완벽한 커리어를 위한 도구로서 준우의 신체를 보존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장부의 부하 대환 메커니즘을 완벽히 마스터하고, 준우를 자신의 완벽한 파트너이자 방패로 조련해야만 했다.

그때, 흙바닥에서 간신히 일어난 박성민이 씩씩거리며 소리를 질렀다.

"저 새끼 파울이잖아! 감독님! 저 새끼가 제 디딤발을 걸었다고요!"

성민의 고함에 벤치 쪽에 있던 최길환 감독의 안색이 흙빛으로 변했다. 자신이 차기 프로 구단 감독직 영전을 위해 애지중지 키우던 기득권의 황태자가 한낱 부상 경력이 있는 태오에게 조롱하듯 당했으니 속이 뒤집어질 만도 했다. 게다가 태오는 자신이 지시한 박성민 중심의 빌드업 전술을 무시하고 독단적인 개인 기량으로 경기를 풀어나갔다.

최길환 감독이 성큼성큼 피치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의 이마에 핏대가 굵게 솟아 있었다.

"강태오."

낮게 가라앉은 감독의 목소리에 운동장 전체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너 지금 감독의 전술 지시가 우스워? 박성민 축으로 빌드업하라는 지시, 기둥 뒤에서 귀 파면서 들었어?"

"전술적 선택이었습니다."

태오는 추호의 흔들림도 없이 감독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박성민 선수의 압박 타이밍이 반 박자 늦었고, 무게중심이 무너진 상태였습니다. 그 공간을 살려 하프 스페이스로 전환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공격 루트였습니다."

"닥쳐!"

최길환 감독의 고함이 운동장을 쩌렁쩌렁 울렸다.

"네 잘난 개인기 몇 번으로 팀 전술을 망쳐놔? 우리 팀은 한 사람의 천재를 위해 존재하는 팀이 아니야! 희생과 정신력이 없는 선수는 청명고에 필요 없다!"

최길환은 태오의 가슴팍에 붙은 비주전 조 조끼를 거칠게 가리켰다.

"주전 조 조끼 벗어. 그리고 당장 운동장 50바퀴 돌아."

운동장 50바퀴. 흙바닥으로 된 거친 운동장 육상 트랙을 50바퀴 도는 것은 멀쩡한 선수의 무릎도 갈아 넣는 살인적인 가혹 행위이자 혹사였다. 하물며 왼쪽 무릎 부하도가 35%에 달해 강박 신경증까지 앓고 있는 태오에게는 선수 생명을 끝내겠다는 선전포고나 다름없었다.

"못 돌겠다면, 당장 짐 싸서 나가라. 대학 진학 추천서고 뭐고 없을 줄 알아."

최길환 감독의 눈빛에는 비열한 확신이 서려 있었다. 이 정도로 압박하면 겁을 먹고 빌빌 기어올 것이라 믿는 눈치였다.

박성민은 뒤에서 옷에 묻은 흙을 털어내며 비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태오의 왼쪽 무릎이 다시 한번 욱신거렸다. 장부의 인터페이스가 붉게 물들며 그의 선택을 재촉했다.

여기서 굴복할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 이 썩어빠진 권력에 정면으로 들이받을 것인가.

태오의 입술 끝이 기묘하게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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