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금속의 끝부분이 뒷목덜미의 솜털을 지긋이 누르는 감각은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미용 가위만 한 크기의 주색 앰플 주사기. 그 바늘 끝이 내 피부를 뚫고 척수액이 흐르는 연수 부근까지 침투하기 직전의 정적 속에서, 나는 심장의 박동 소리가 귓전에서 고막을 찢을 듯 울리는 것을 느꼈다.
째깍. 째깍.
거실 저편에 걸린, 이가 맞지 않는 시계초침이 어긋난 박자로 불길한 이조음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도진의 가죽 장갑이 팽팽하게 당겨지며 가죽 특유의 삐걱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스쳤다. 그의 거친 호흡이 내 정수리 위로 떨어지는 순간, 내 머릿속에서는 어젯밤 무의식이 타전한 소설 원고의 문장이 붉은 낙인처럼 선명하게 번뜩였다.
[`침입자의 오른손이 구부러질 때…… 그 순간이 사냥개의 숨통을 끊을 유일한 틈이다.`]
지금이다.
"으, 으으윽……!"
내 목구멍을 찢고 나온 것은 끔찍한 악몽에 질린 듯한 기괴한 짐승의 울음소리였다.
나는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뜨지 않았다. 몽유병자의 통제되지 않는 신체적 발작, 그것이 내가 선택한 완벽한 알리바이였다. 맥박 제어로 차갑게 식어 있던 내 몸의 전신 근육이 스프링처럼 튕겨 올랐다.
나는 허공을 향해 오른팔을 거칠게 휘둘렀다. 내 손아귀가 정확하게 겨냥한 것은 내 목덜미를 누르고 있던 도진의 두꺼운 손목이었다. 가죽 장갑의 미끄러운 감촉을 움켜잡는 순간, 나는 온 체중을 뒤틀며 그의 팔목을 아래로 꺾었다.
"……윽?!"
도진의 입에서 억눌린 단말마가 터져 나왔다.
그의 오만한 얼굴이 당혹감으로 일그러지는 것이 반쯤 감긴 내 눈꺼풀 틈새로 들어왔다. 주입 직전의 붉은 주사 바늘이 내 목덜미 피부를 스치며 허공으로 솟구쳤다. 나는 멈추지 않았다. 손목을 잡은 손귀에 광적인 악력을 가하며, 내 상체를 그대로 그의 가슴팍을 향해 던졌다.
쿠당탕!
무거운 정적이 지배하던 거실에 고막을 찢는 파열음이 일었다.
도진의 거구는 내 갑작스러운 몸부림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 거실 바닥의 두꺼운 카펫 위로 그의 몸이 처참하게 내동댕이쳐졌고, 그의 손에 들려 있던 금속제 주사기는 허공에서 기괴한 궤적을 그리며 굴러떨어졌다. 대리석 바닥 타일에 부딪힌 주사기가 날카로운 자당음(刺撞音)을 내며 소파 밑 어둠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우현 씨!"
은혜의 비명이 거실 벽면을 타고 차갑게 흩어졌다.
언제나 얼음처럼 차분하던 그녀의 목소리에 난생처음으로 이물질 같은 균열이 가 있었다. 그녀의 발소리가 다급하게 바닥을 두드렸지만, 나는 여전히 의식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몽유병자의 연기를 이어나갔다.
"불…… 불이 꺼지지 않아…… 왜 아무도 물을 주지 않는 거야……."
나는 초점을 잃은 눈동자로 허공바라보며, 바닥에 쓰러진 도진의 위로 덮치듯 쓰러졌다. 내 몸뚱이가 그의 가슴과 어깨를 가로막아 누르는 형국이 되었다. 도진은 신음하며 나를 밀쳐내려 팔을 뻗었지만, 나는 발작적으로 그의 팔을 휘감아 쥐며 몸을 흐느적거렸다.
바르르 떨리는 내 손끝이 도진이 입고 있던 의료용 조끼의 우측 측면으로 향했다.
도진이 나를 밀어내기 위해 상체를 뒤틀 때, 그의 조끼 지퍼가 미세하게 벌어진 틈이 내 손끝에 걸렸다. 거칠고 질긴 지퍼의 이빨이 내 손가락을 긁었으나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직 이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아내가 설계한 지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차가운 이성만이 내 손끝을 움직였다.
서걱.
아주 미세한 마찰음과 함께 내 손가락이 그의 옆구리 깊숙한 지퍼 포켓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 안에는 차갑고 빳빳한 종이 뭉치가 들어 있었다. 은박 로고가 박힌, 도진이 늘 가지고 다니던 수분 처방 분석 요약표 리플릿이었다. 내 처방 약물의 성분과 인지 왜곡 프로세스의 수치가 기록되어 있을 유일한 물리적 실체였다.
나는 그것을 손아귀에 꽉 쥐고, 소매 안쪽의 깊은 안감 사이로 밀어 넣었다.
"우현 씨! 정신 차려봐요! 나를 봐요!"
은혜가 내 어깨를 붙잡고 강하게 흔들었다.
그녀의 손길에 밀려나는 척하며, 나는 슬그머니 도진의 몸 위에서 굴러 내렸다. 바닥에 누워 거친 숨을 몰아쉬는 내 이마에는 식은땀이 가득 고여 있었다. 이는 연기가 아니었다. 방금 전 무의식의 소설 문장을 해독하고 행동으로 옮긴 대가로, 내 우뇌 깊은 곳에서부터 타들어 가는 듯한 과전류가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머릿속 어딘가가 가위로 오려낸 것처럼 텅 비어 버렸다.
기억의 소실.
이번에는 무엇이 사라졌을까. 어머니가 내 손을 잡고 걸어가던 시골길의 흙내음이었을까, 아니면 대학 시절 가장 아끼던 만년필의 색상이었을까. 소중한 무언가가 내 자아에서 강제로 뜯겨 나간 상실감이 머릿속을 짓눌렀지만, 나는 입술을 깨물며 그 고통을 삼켰다.
"……은, 은혜야?"
나는 초점을 흐린 채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바닥에 쓰러진 도진은 황급히 안경을 추스르며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의 단정했던 이마에는 붉은 쓸림 자국이 선명하게 남았고, 언제나 오만하던 그의 눈빛은 굴욕감과 독기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김 선생님……? 왜…… 왜 여기 계시죠?"
나는 갈라진 목소리로 물으며, 바닥에 주저앉아 머리를 감싸 쥐었다.
"내가…… 또 가위에 눌린 건가요? 내 목에…… 방금 뭐가 닿았던 것 같은데……."
내 시선이 은혜를 향했다. 그녀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완벽하게 연출되던 상냥한 아내의 가면 밑으로, 감추지 못한 당혹감과 공포가 어른거렸다. 그녀의 시선은 소파 밑으로 반쯤 삐져나온 붉은 주사기 앰플과, 엉망이 된 채 헐떡이는 주치의 도진을 번갈아 쫓고 있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우현 씨. 그냥…… 가벼운 몽유병 발작이 와서 김 선생님이 도와주려던 것뿐이에요."
은혜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나는 그녀의 하얗고 고운 손을 꽉 쥐었다. 일부러 손끝을 바르르 떨며, 세상에서 가장 무력하고 상처받은 피해자의 얼굴을 만들어 보였다.
"은혜야, 나 무서워…… 저 사람이 내 뒷목을 잡았어. 차가운 바늘 같은 게…… 내 머릿속을 찌르려고 했어. 저 사람이 나한테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나를 지켜준다고 했잖아……."
내 처절한 애원이 거실의 정적을 찢었다.
은혜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녀는 도진을 쏘아보았다. 그 눈빛에는 남편을 통제하려는 차가운 지배욕 외에도, 도진의 독단적인 약물 강도 증가에 대한 명백한 거부감과 가책이 섞여 있었다.
"김 도진 씨."
은혜의 목소리가 얼음장처럼 차갑게 가라앉았다.
"오늘 처방은 무리라고 분명히 말씀드렸을 텐데요. 우현 씨의 자아가 붕괴하면, 우리가 세운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다는 걸 모르십니까?"
그녀의 말투에서 평소의 나긋나긋한 아내의 어조는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도진은 옷에 묻은 먼지를 거칠게 털어내며 차가운 헛기침을 뱉었다. 그의 손가락끝이 텅 빈 조끼 주머니를 스쳤으나, 다행히도 그는 자신이 잃어버린 리플릿이 내 소매 속에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그저 기습당한 분노에 눈이 멀어 씩씩거릴 뿐이었다.
"……환자의 발작 강도가 예상을 뛰어넘는군요. 오늘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하지만 한은혜 씨, 경고하는데 약물 농도를 높이지 않으면 이 낙원은 조만간 무너질 겁니다."
도진은 소파 밑에 떨어진 주사기를 신경질적으로 주워 가방에 처넣었다.
그가 현관문 너머로 사라지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나는 은혜의 품에 얼굴을 묻고 부들부들 떠는 연기를 멈추지 않았다. 은혜의 가슴팍에 얼굴을 대고 있는 동안, 그녀의 심장이 불안하게 요동치는 소리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녀의 완벽한 가상 낙원에, 드디어 메울 수 없는 거대한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
다음 날 정오.
포레스트 힐 402호의 거실은 기괴할 정도로 고요했다. 유리창 너머로 쏟아지는 정오의 햇살은 눈이 시릴 정도로 찬란했지만, 집 안의 공기는 여전히 어둡고 축축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은혜는 아침 일찍부터 서재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어젯밤 도진의 독단적인 행동과 내 발작이 그녀에게 적잖은 충격을 준 모양이었다.
나는 안방으로 걸어가 문을 걸어 잠갔다.
그리고 방 구석, 은혜가 정성스럽게 가꾸는 커다란 화분 앞으로 다가갔다. 흙먼지 냄새 사이로 미세하게 풍기는 축축한 이끼 향.
나는 무릎을 꿇고 앉아 조심스럽게 화분 안쪽의 흙을 파헤쳤다. 손가락 끝에 딱딱한 비닐의 촉감이 닿았다. 그것은 여동생 민아가 은혜의 눈을 피해 숨겨둔 초소형 주파수 무전 장치였다.
아직은 이것을 꺼내 켤 때가 아니다. 도진의 야간 침투 경로와 기습 시간대를 민아가 원거리에서 제보해 주기로 약속한 날은 아직 이르지 않았다. 나는 무전기가 흙 속에 무사히 묻혀 있는 것만 확인한 뒤, 다시 정교하게 흙을 덮어 흔적을 지웠다.
스르륵. 소매 안쪽에서 어젯밤 도진에게서 탈취한 빳빳한 리플릿을 꺼냈다.
종이 표면에는 세련된 은박 로고가 박혀 있었다. 펼쳐진 리플릿 내부에는 복잡한 화학 기호와 함께 내 이름, 그리고 '마인드 아키텍처 제어 수치'라는 기괴한 단어들이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정우현 - 인지 리셋 3단계: 처방 농도 0.05% 증가 시 단기 기억의 80% 소실 유도.]
손끝이 차갑게 식어 내렸다.
아내가 내게 매일 아침 건네던 그 따뜻한 커피와 영양제들, 그리고 평온한 일상의 규칙들이 실상은 내 뇌를 천천히 파괴하고 자아를 지워나가는 정교한 독약이었다는 사실이 활자로서 완벽하게 증명되어 있었다.
"결국…… 전부 가짜였어."
내 목소리가 고요한 안방에 나직하게 울렸다.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보다, 오히려 기괴할 정도의 냉소적인 안도감이 찾아왔다. 내가 미친 것이 아니었다. 내 감각은 정확했고, 내 의심은 합당했다.
나는 리플릿을 꼼꼼히 접어 내 낡은 소설 구상 수첩의 이중 내피 속에 숨겨두었다. 이제 이 규칙의 해법을 역이용해, 도진과 은혜가 설계한 이 유리 감옥을 안쪽에서부터 산산조각 내야 할 차례였다.
나는 거실로 걸어 나갔다.
창밖의 풍경을 보기 위해 거실의 거대한 통유리창 앞으로 다가갔다. 포레스트 힐의 정원은 여전히 평화롭고 아름다운 초록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들이 반짝이는 햇살을 튕겨내고 있었다.
그 찬란한 초록빛 사이로, 기묘한 불일치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거실 유리의 미세한 왜곡 때문이 아니었다.
정원 울타리를 빽빽하게 메우고 있는 가시나무 숲, 그 어두운 음영 사이에서 아주 불길하고 이질적인 물체가 번뜩였다.
빛을 반사하지 않도록 정교하게 그을음 처리를 한 검은색 금속 관.
그 끝에 달린 반사판이 가시나무 이파리 사이로 아주 미세하게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그것은 집 안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외부에서 설치한, 고성능 잠망경의 렌즈였다.
렌즈 너머에서 이쪽을 집요하게 응시하고 있을 누군가의 시선이 피부에 닿는 것처럼 소름 끼치게 전해졌다.
형사 강태석.
그 냉혹한 사냥개가 마침내 은혜가 쳐둔 철옹성 같은 장벽의 틈새를 뚫고, 이 가상 낙원의 턱밑까지 그 칼날을 들이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