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도어록의 기계음이 고요한 서재의 공기를 잘게 쪼개며 흩어졌다.

띠리리링, 띠리릭.

금속 걸쇠가 풀리는 무거운 마찰음이 복도를 지나 내가 서 있는 서재 문턱까지 낮게 깔려왔다. 은혜의 슬리퍼 소리는 젖은 낙엽이 쓸리는 것처럼 스산했고, 그 뒤를 따르는 가죽 구두의 굽 소리는 시계초침보다 더 정확한 간격으로 바닥을 짓눌렀다.

뚜벅, 뚜벅.

그 오만한 발소리의 주인을 나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주치의, 김도진.

머릿속에서 경보음이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안방 침대로 돌아가기에는 이미 늦었다. 발소리는 복도를 지나 거실 중앙으로, 그리고 내가 있는 서재 방향으로 꺾어 들어오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내 그림자가 벽면에 길게 늘어졌다.

나는 그대로 서재의 낡은 가죽 소파 위로 몸을 미끄러뜨렸다.

가죽이 몸무게를 받아내며 끄응, 하고 낮은 비명을 질렀다. 나는 그 소리를 덮기 위해 일부러 몸을 크게 뒤척이며, 깊은 잠에 빠져 헛소리를 중얼거리는 몽유병자의 시늉을 냈다.

"……어머니…… 거긴, 불이……."

입술 사이로 흘려보낸 목소리는 갈라지고 낮았다. 오른팔을 이마 위에 툭 얹어 눈가를 가렸다. 손가락 틈새로 들어오는 미세한 어둠 속에서, 서재 문이 스르륵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틈으로 거실의 붉은색 비상등 광선이 길게 스며들어 와 가죽 소파의 해진 표면을 붉게 물들였다.

"우현 씨?"

은혜의 목소리였다. 평소의 상냥한 톤이었지만, 그 안에는 얇은 얼음판 같은 서늘함이 박혀 있었다. 발소리가 소파 옆으로 다가와 멈췄다.

"소파에서 잠들었군요. 최근 들어 밤마다 몽유 증세가 심해진다고 말씀드렸잖습니까, 박사님."

"뇌의 전두엽 부근에 가해진 인지 재구성 자극이 무의식적인 신체 활동을 유도하는 겁니다. 지극히 정상적인 거부 반응이죠. 시스템이 자리를 잡기 전까지는 흔히 일어나는 일입니다."

도진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건조해서 마치 메스로 잘라낸 단면 같았다. 그의 가죽 구두 끝이 내 시야의 가장자리에 걸렸다. 짙은 갈색 구두 표면에 반사된 비상등 불빛이 기괴하게 일렁였다.

스르릉.

도진이 가죽 가방의 지퍼를 여는 소리가 들렸다. 금속 이빨이 서로 맞물려 열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고막을 찔렀다. 뒤이어 사락거리는 비닐 마찰음과 함께, 차가운 금속 센서가 내 왼쪽 손목으로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스마트 바이오 센서. 환자의 심박수와 맥박, 피부 전도도를 실시간으로 측정해 뇌파의 안정 수치를 역추적하는 장치였다.

'들키면 끝장이다.'

그들이 내 손목에 센서를 부착하는 순간, 내가 의도적으로 깨어 있으며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다는 사실이 고스란히 탄로 날 터였다. 각성 상태의 맥박은 수면 상태의 맥박과 완전히 다르다. 내 심장은 이미 갈비뼈를 뚫고 나올 것처럼 쿵쾅거리고 있었다. 귀끝이 뜨거워지고 목덜미로 식은땀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나는 아랫입술 안쪽을 세게 깨물었다. 찌릿한 통증과 함께 비릿한 피 맛이 혀끝을 적셨다. 통증을 이용해 이성을 극도로 끌어올려야 했다.

'후우…… 흡…….'

뇌 속에서 내가 아는 가장 고요한 공간을 그리기 시작했다. 눈이 내리는 벌판. 아무런 소리도, 움직임도 없는 하얀 진공의 세계. 소설을 집필할 때 극도의 몰입 상태에 진입하기 위해 사용하던 나만의 마인드 컨트롤이었다. 숨을 들이쉬는 시간을 4초, 참는 시간을 7초, 내뱉는 시간을 8초로 유지하는 초저맥박 호흡법.

맥박을 강제로 떨어뜨려야 했다. 나는 내 심장을 통제하는 규칙의 설계자가 되어야만 했다.

쿵. 쿵. 쿵.

머릿속의 시계초침을 일부러 아주 느리게 돌렸다. 내 살결에 도진의 차갑고 딱딱한 손가락 끝이 닿았다. 그가 내 손목 터널 증후군 흉터 부근에 차가운 전극 패치를 밀착시켰다.

삐빅.

기계가 작동하는 짧은 이조음이 정적을 깨뜨렸다.

"맥박 분당 58회. 호흡 안정적. 완벽한 서파 수면(Slow-wave sleep) 상태군요."

도진이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소파 안쪽으로 가려진 내 오른손 끝이 미세하게 떨렸으나, 그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차가운 전극 패치를 통해 전해지는 기계의 진동을 느끼며, 나는 안도의 한숨을 속으로 삼켰다. 바이오 센서의 경보선은 분당 65회 이하의 안정적인 파형을 그리며 나를 '완벽하게 통제된 인형'으로 판정하고 있었다.

은혜가 소파 옆에 한 무릎을 꿇고 앉는 기척이 느껴졌다. 그녀의 손가락끝이 내 이마에 얹힌 오른팔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지극정성 어린 아내의 불쾌한 온기가 피부를 타고 스며들었다.

"다행이네요. 요즘 부쩍 눈빛이 날카로워진 것 같아 걱정했는데…… 아직은 제 손바닥 안이군요."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 은혜 씨."

도진의 구두가 소파 주변을 서성였다. 가죽이 짓눌리는 삐걱거림이 내 신경을 긁었다.

"최근 제출된 임상 데이터를 보니, 우현 씨의 뇌 신경망에서 기이한 이상 잔상이 발견되었습니다. 매일 밤 자정부터 새벽 2시 사이에 전두엽의 산소 포화도가 급격히 상승하더군요. 마치 무언가를 미친 듯이 창작하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럴 리가요. 집 안의 모든 스마트 펜과 종이는 제가 통제하고 있어요. 서재의 컴퓨터도 인터넷이 차단된 상태고, 자판 입력 로그에도 아무런 기록이 남지 않았습니다."

"로그에 남지 않는 기록이라……."

도진의 목소리가 한층 더 낮고 무거워졌다.

"그렇다면 무의식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기록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마인드 아키텍처 시스템이 우회 경로를 차단하지 못한 거죠. 우현 씨가 가진 소설가로서의 본능이, 우리가 주입한 가상 수칙들의 모순을 찾아내고 그것을 뇌의 다른 영역에 문장으로 새겨 넣고 있는 겁니다."

나는 닫힌 눈꺼풀 뒤에서 격렬하게 요동치는 눈동자를 숨기려 애썼다.

'잔혹한 원고.'

그것은 내 무의식을 우회하여 현실의 실체만을 기록하는 유일한 진실의 데이터였다. 도진은 이미 그 존재를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박사님?"

은혜의 목소리에 미세한 균열이 생겼다. 그것은 불안감이라기보다는, 자신이 공들여 만든 완벽한 장난감이 망가질지 모른다는 소유욕의 훼손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우현 씨의 자아 소멸 수치를 계산해 봤습니다."

도진이 품 안에서 종이 서류를 꺼내 넘기는 소리가 사박거렸다.

"현재 남아 있는 진짜 기억의 정량은 약 12% 수준입니다. 이번 주에 어머니의 얼굴과 유년 시절의 기억 블록을 완전히 지우는 데 성공했으나, 아직 지워지지 않은 핵심 앵커가 남아 있어요. 여동생 정민아에 대한 기억, 그리고 3년 전 화재 사고의 파편들."

도진의 차가운 분석이 내 귀를 타고 뇌리로 박혀왔다.

어머니의 얼굴.

그 단어가 내 귓가를 때리는 순간, 머릿속에서 강한 과전류가 흐르는 듯한 찌릿한 통증이 발생했다. 부작용이었다. 지워진 진실을 인지하려 할 때마다 뇌세포가 타들어 가는 이 끔찍한 제약. 나는 이빨을 꽉 깨물어 비명을 삼켰다. 기억하려 할수록 머릿속의 안개가 더 짙어졌다. 어머니의 미소가 어땠는지, 그녀의 목소리가 어땠는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오직 타들어 가는 재의 냄새만이 코끝을 스쳤다.

내 소중한 기억의 정량이 겨우 12%밖에 남지 않았다니.

"약물의 농도를 더 올려야 합니다."

도진이 냉랭하게 명령했다.

"현재 투여 중인 인지 저하제 희석액의 농도를 2.5밀리그램에서 5.0밀리그램으로 두 배 이상 올리십시오. 전두엽의 저항을 완전히 무력화해야 합니다. 기억 정량이 5% 미만으로 떨어지면, 우현 씨는 더 이상 스스로가 누구인지 의심하지 않는 완벽한 낙원의 주민이 될 겁니다. 당신이 원하던, 아무런 고통도 의문도 없는 완벽한 남편 말입니다."

"하지만 박사님, 농도를 그렇게 갑자기 올리면 뇌 신경망에 영구적인 손상이 올 수도……."

"선택하십시오, 은혜 씨."

도진의 목소리가 칼날처럼 은혜의 말을 잘라냈다.

"우현 씨가 3년 전의 추악한 진실을 기억해 내고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것을 보고 싶습니까? 아니면 약간의 자아 소멸을 대가로 치르더라도, 이곳에서 영원히 당신만을 바라보는 인형으로 살아가게 하겠습니까?"

침묵이 서재를 지배했다.

방 안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공기 청정기에서 흘러나오는 미세한 기계음만이 이 기괴한 침묵을 채웠다. 은혜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침묵은 이미 동의를 뜻하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내 어둠에 잠긴 뇌리 속에 낯익은 문장들이 한 줄씩 새겨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 무의식이 매일 밤 타이핑하던 '잔혹한 원고'의 실시간 잔상이었다. 눈을 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얀 백지 위에 검은 타자기가 철컥거리며 글자를 찍어내려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실체적 기록 14호: 침입자의 오른손이 구부러질 때, 가죽 소파의 가장자리에 숨겨진 마취 침이 작동한다. 침입자는 주사기를 쥐기 위해 손가락의 관절을 꺾을 것이며, 그 순간이 사냥개의 숨통을 끊을 유일한 틈이다.`]

뇌리에 도안된 소설의 문장들이 내 신경 세포를 자극했다.

마취 침.

내 손끝이 미세하게 소파 틈새를 더듬었다. 가죽 소파 시트의 틈새, 낡은 스프링과 먼지 사이에 차갑고 날카로운 금속 바늘 같은 것이 만져졌다. 은혜가 내 몽유병 증세를 제어하기 위해 소파 안쪽에 설치해 둔 비상용 마취 침 장치였다.

도진이 내 머리맡으로 한 걸음 더 다가왔다.

스르륵, 하면서 그의 옷자락이 쓸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감은 눈꺼풀 너머로 그의 움직임을 감각적으로 재구성했다.

그가 오른손을 구부렸다.

가죽 장갑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삐걱거림. 그의 손가락 관절들이 하나씩 굽혀지며, 가방 안에서 묵직한 물체를 꺼내 올리는 소리가 들렸다.

철컥.

그것은 주사기였다. 일반적인 의료용 주사기가 아니었다. 미용 가위만 한 크기의 거대하고 날카로운 금속 프레임에, 내부에는 핏빛처럼 붉은 주색(朱色) 약물이 가득 찬 앰플이 장착되어 있었다. 주사기 끝에 달린 바늘은 비상등 불빛을 받아 섬뜩한 붉은 광채를 뿜어내고 있을 것이었다.

"지금 바로 주입하겠습니다. 척수액이 흐르는 목덜미의 연수 부근에 직접 투여하면, 인지 왜곡 속도가 한층 더 빨라질 겁니다."

도진의 서늘한 목소리가 내 정수리 위에서 떨어졌다.

그의 숨결이 내 살결에 닿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가죽 구두의 압력이 내 소파 바로 옆 바닥을 짓눌렀다.

내 머릿속의 시계초침이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그가 내 목덜미를 찌르기 직전, 단 한 번의 기회뿐이다.'

나는 소파 틈새에 숨겨진 마취 침의 작동 레버를 손가락 끝으로 꽉 쥐었다. 맥박 제어로 차갑게 식어 있던 내 몸의 모든 세포가, 일제히 폭발할 듯한 탄성을 품고 팽팽하게 인장되었다.

도진의 장갑 낀 손이 내 뒷목덜미를 거칠게 움켜잡았다. 차가운 금속 바늘끝이 내 부드러운 살결을 지긋이 누르며 침투하기 직전의 감각이, 척수를 타고 뇌리까지 짜릿하게 전달되었다.

붉은 주색 액체가 담긴 주사기가 내 목덜미 정중앙을 향해 천천히, 하지만 거침없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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