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새벽 두 시, 이중 방음창 밑바닥 깊은 틈새를 뚫고 수거한 고물 무전기가 파지직 소리를 내며 긴급 발신음을 켠다.

"……오빠?"

정적을 찢고 나온 주파수음은 지독하게 낯설고도 선명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무전기 본체를 가슴팍에 끌어안았다. 오른쪽 엄지손가락으로 스피커 구멍을 짓누르다시피 압착했다. 플라스틱 모서리가 살을 파고들어 비명을 지르고 싶을 만큼 아팠지만, 내 온 신경은 욕실 문 너머의 어둠으로 뻗어 있었다.

지잉, 지이이익.

손바닥 틈새로 비집고 나오는 미세한 고주파 고음이 내 심장박동을 사정없이 두들겼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잠들어 있을 아내, 한은혜의 귀는 기괴할 정도로 예민하다. 밤낮의 경계가 모호한 이 포레스트 힐 402호에서 그녀는 미세한 소리 하나만으로도 내 인지 상태를 재측정하는 여자였다. 나는 젖은 욕실 타일에 무릎을 꿇은 채, 환풍기 스위치 아래로 몸을 한껏 웅크렸다.

무전기 다이얼을 가장 낮은 눈금으로 내렸다. 손가락 끝이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미끄러졌다.

"민아…… 야?"

내 목구멍을 타고 흘러나온 목소리는 쇳가루가 섞인 것처럼 갈라져 있었다. 내 기억 속에서 반쯤 뜯겨 나가 형체만 간신히 남은 동생의 이름. 그 이름을 발음하는 순간, 오른쪽 관자동놀이 부근에서 바늘로 찌르는 듯한 예리한 통증이 치솟았다. 뇌신경 세포가 타들어 가는 감각. 뇌 속에 얇게 발라진 은박지가 뜨겁게 달아오르는 착각이 일었다. 진실에 다가설 때마다 내 영혼의 일부를 대가로 지불해야 하는 잔혹한 뇌의 형벌이 시작되고 있었다.

- 오빠, 내 목소리 들려? 들리는 거지? 제발…… 말 좀 해봐.

무전기 너머, 정민아의 목소리는 잘게 떨리고 있었다. 울음을 참기 위해 아랫입술을 짓이기고 있는 듯한 호흡음이 규칙적인 잡음 사이로 전해졌다. 그것은 아내가 매일 내게 보여주는 인위적이고 완벽한 미소와는 전혀 다른, 날것 그대로의 훼손된 감정이었다.

"들려. 크게 말하지 마. 벽이…… 다 듣고 있어."

나는 변기 뚜껑 위에 무전기를 올려놓고, 그 주위를 수건으로 겹겹이 감쌌다. 소리가 외부로 새어 나가는 것을 원천 차단하기 위한 임시방편이었다. 오직 수건 사이의 좁은 틈새로만 동생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도록 조율했다.

- 오빠,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지금 내 말 잘 들어. 시간이 없어. 그 여자…… 한은혜, 오빠 아내 아니야.

머릿속이 징 하고 울렸다. 욕실 거울에 서린 얇은 물 안개 너머로, 매일 아침 내게 다정한 눈빛으로 수칙을 건네던 은혜의 얼굴이 겹쳐졌다. '우현 씨, 오늘은 날씨가 흐리니 거실 커튼을 열지 마세요.' '우현 씨, 내가 준 약을 먹어야 머리가 맑아져요.' 그 부드러운 목소리들이 일순간 차가운 철창의 쇠창살로 변해 내 목을 죄어오는 기분이었다.

"무슨…… 소리야. 은혜 씨가 내 아내가 아니라니. 우리는 여기서 결혼해서……."

- 다 거짓말이야! 오빠 머릿속에 쑤셔 넣어진 가짜 기억이라고! 언니는…… 원래 그런 사람 없었어. 오빠가 소설가로 데뷔하기 전부터 오빠를 감시하고 통제하려고 설계된 사람이야. 오빠가 쓴 원고 봤지? 그 원고에 써진 게 진짜 오빠가 겪은 일들이야. 그 여자가 오빠한테 먹이는 약, 그거 단순한 영양제나 진정제 아니야. 오빠 뇌를 바보로 만들어서 기억을 매일 밤 리셋시키는 약물이라고!

민아의 폭로가 이어질 때마다, 내 머릿속 깊은 곳에서 거대한 해일이 일어났다.

스스스스.

머릿속에서 무언가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내 유년 시절의 한 조각이었다.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어머니와 함께 먹었던 노란 참외의 단맛, 그 냄새와 공기의 온도. 아득히 먼 기억의 영토 한 구석이 하얗게 표백되며 영구히 사라지는 감각이었다. 뇌신경이 타격을 입어 자아의 일부를 상실하는 대가. 하지만 나는 그 고통을 악물고 견뎠다. 이 지독한 인지 감옥의 벽을 깨부수기 위해서라면 내 영혼의 절반을 잃어도 상관없었다.

"설계자…… 라고?"

나는 떨리는 손으로 바지 주머니에서 낮 동안 몰래 찢어 보관해 두었던 '은혜의 생활 수칙 가이드' 종이 조각을 꺼냈다. 매일 아침 은혜가 내 침대 옆 협탁에 올려두는 미니멀한 서식의 종이. 거기에는 언제나 기괴할 정도로 건조한 규칙들이 인쇄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종이의 우측 상단에는 아주 작고 미세하게, 은박으로 인쇄된 기하학적 로고가 박혀 있었다. 세 개의 동심원이 찌그러진 형태로 얽혀 있는 기묘한 문양. 그것은 단순한 장식인 줄로만 알았다.

"민아 씨, 아니, 민아 야. 매일 은혜 씨가 주는 수칙 종이 위에…… 은박 로고가 있어. 동심원 세 개가 찌그러진 모양이야. 이게 뭔지 알아?"

수화기 너머에서 흡, 하고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났다. 이내 민아의 목소리가 한층 더 다급해졌다.

- 오빠, 그거…… '마인드 아키텍처'의 불법 임상 센터 로고야. 김도진 소유의 사설 연구소 문양이라고! 김도진이 오빠 주치의랍시고 일주일에 한 번씩 약 처방하러 오지? 그 새끼랑 한은혜랑 한패야. 오빠를 완벽한 통제 상태로 두고 뇌 인지 재구성 실험을 하는 거라고. 그 집 전체가 실험실이야! 오빠가 매일 보고 듣는 모든 감각이 다 설계된 매뉴얼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거야!

그 순간, 내 온몸의 솜털이 일제히 일어섰다.

지옥 같은 정적 속에서 나 혼자 미쳐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매일 밤 무의식중에 타이핑되는 잔혹한 소설 원고를 보며, 내가 정말 정신병에 걸려 내 아내를 살인마로 의심하는 망상증 환자일지도 모른다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불신해 왔다. 은혜의 완벽한 미소와 다정한 가스라이팅 앞에서 내 이성은 갈가리 찢겨, 나 자신을 향한 의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지금 무전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민아의 울음 섞인 목소리, 그리고 그녀가 제시한 명징한 물리적 단서—김도진의 로고와 마인드 아키텍처라는 실체적 단어. 그것들이 내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흩어져 있던 퍼즐 조각들을 단숨에 하나의 잔혹한 진실로 꿰어 맞추었다.

나는 미치지 않았다.

내 의심은 망상이 아니었다. 이 집이, 이 아내가, 내 삶을 둘러싼 이 평화로운 낙원이 통째로 가짜였다.

가슴 밑바닥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그것은 공포를 넘어선, 기묘한 해방감이었다. 마침내 나를 묶고 있던 보이지 않는 사슬의 정체를 똑똑히 식별해 냈다는 짜릿한 승리감. 지옥의 어둠 속에서 오직 나 혼자만이 아니라는 사실이, 저 너머에 내 편이 존재한다는 확신이 내게 전폭적인 지지대로 작용하며 무너져 가던 자아를 단단히 지탱해 주었다.

"김도진……."

나는 이빨을 갈며 그 이름을 되뇌었다. 매번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내 이마에 손을 얹고 "우현 씨, 뇌의 시냅스가 아직 불안정해서 그래요. 약을 거르지 마세요"라고 속삭이던 그 의사의 흰 가운이 피칠갑을 한 도살업자의 옷처럼 느껴졌다.

- 오빠, 들려? 내가 지금 그 집 주변 외곽 도로에 있어. 은혜가 눈치채지 못하게 조심해야 해. 김도진이 야간에 불시에 침투하는 루트가 있어. 그 새끼, 오빠가 인지 상태를 자각하는 기미가 보이면 기습적으로 마취 약물을 주입해서 기억을 통째로 세척하려고 할 거야. 내가 무전으로 계속 감시하면서 그 새끼가 움직이는 시간대를 제보할게. 오빠는 그동안 집안의 중앙 제어 마스터 키를 찾아야 해. 그게 있어야 외부로 나갈 수 있어.

"마스터 키……."

- 그래. 그 집의 모든 스마트 도어와 방음창을 한 번에 열 수 있는 물리적 키야. 은혜의 서재나 침실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거야. 그걸 찾아야 우리가 오빠를 구출할 수 있어. 형사 강태석도 지금 3년 전 사건을 쫓으며 이 주변을 돌고 있어. 기회가 왔을 때 단 한 번에 끝내야 해.

민아의 목소리는 절박했으나 극도로 명료했다. 나는 수건 틈새로 흘러나오는 그녀의 지시를 머릿속에 깊이 새겼다. 규칙 괴담의 해법은 간단했다. 상대가 설계한 규칙의 허점을 찾고, 그 규칙이 작동하는 물리적 기제를 역이용하는 것. 은혜가 내 오감을 통제하기 위해 설치한 이 완벽한 낙원의 요새를, 이제는 내가 역으로 그녀를 가두는 감옥으로 만들어 주리라.

"알았어, 민아 야. 내가 찾을게. 마스터 키를 찾고 나서 다시 무전할게."

- 오빠, 조심해. 제발…… 들키지 마.

나는 무전기의 전원을 조심히 껐다. 욕실 안의 환풍기 소음만이 여전히 고요하게 울리고 있었다.

심장이 갈비뼈를 부술 것처럼 날뛰었지만, 시선만은 그 어느 때보다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나는 무전기를 다시 비닐에 싸서 변기 수조 뒤편 깊숙한 곳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수건으로 손에 묻은 물기를 닦아내고 욕실 거울을 바라보았다. 거울 속의 남자는 휑한 눈동자를 하고 있었지만, 이내 잔혹할 정도로 단단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은혜가 원한 완벽한 남편의 미소.

이제 나도 그녀에게 똑같은 미소로 화답할 준비가 되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욕실 문의 잠금장치를 풀었다. 금속 마찰음이 나지 않도록 손잡이를 극도로 천천히 돌렸다. 거실은 여전히 조명이 모두 꺼진 암흑 상태였다. 통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숲길은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 있었고, 오직 집 안의 미세한 비상등만이 붉은 눈동자처럼 바닥을 비추고 있었다.

발소리를 죽여 안방으로 돌아가려던 그 순간이었다.

척.

아주 미세한, 하지만 분명한 이질적인 진동이 내 발바닥을 타고 전해졌다.

거실 메인 현관문 쪽이었다. 평소라면 이 시간에 결코 움직이지 않을 Central Smart Home System의 작동음이 고요한 정적을 깼다.

띠리리링, 띠리릭.

비밀 잠금장치가 해제되는 기계적인 벨 소리가 어두운 거실 벽면에 반사되어 내 고막을 때렸다. 나는 자리에 얼어붙었다. 은혜는 지금 안방 침대에서 자고 있어야 했다. 그렇다면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은 누구란 말인가.

철컥, 하고 무거운 철제 방화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이어지는 발소리.

하나가 아니었다.

가볍고 익숙한 슬리퍼 마찰음—그것은 은혜의 발소리였다. 그녀는 언제 밖으로 나간 것일까. 아니면 애초에 침대에 있었던 것 자체가 내 왜곡된 감각의 오류였나?

하지만 내 신경을 더 날카롭게 자극한 것은 은혜의 발소리 뒤를 잇는, 또 하나의 묵직하고 거친 구두 굽 소리였다.

뚜벅, 뚜벅.

남성의 발소리다. 묵직하고 규칙적인 무게감이 실린, 아주 익숙하고 오만한 발걸음.

"……이번 처방 단계가 가장 중요합니다, 은혜 씨."

어둠을 뚫고 들려온 것은 낮고 건조한 남성의 목소리였다. 주치의, 김도진이었다.

"우현 씨의 자각 증세가 임계점을 넘기 전에, 완전히 인지 리셋을 진행해야 합니다. 준비는 되셨습니까?"

안방으로 통하는 복도 모퉁이 그늘 뒤로 몸을 숨기며, 나는 숨을 완전히 멈추었다. 어둠 속에서 은혜의 차가운 목소리가 낮게 대답했다.

"안에서 자고 있어요. 들어가시죠, 박사님."

두 사람의 발소리가 내가 숨어 있는 복도 쪽을 향해 아주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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