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로 잠입하려던 벽시계 안 무선 톱니바퀴 조절 장치가 마구 요란하게 거꾸로 공회전하며 굉음을 토했다.
카카카칵, 카르륵.
고막을 찢을 듯한 금속 마찰음이 귓전에서 폭발했다. 뇌신경을 사정없이 짓누르던 초고주파의 이명이 정수리를 찌르고 들어와 척수까지 얼려 버리는 기분이었다. 바닥에 쓰러진 내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가, 이내 지독한 황달빛 아지랑이로 뒤덮였다. 이대로 의식을 잃으면 끝장이다. 영원히 이 완벽하게 박제된 낙원의 수인(囚人)으로 남게 되리라.
"우현 씨…… 제발 움직이지 말아요."
은혜의 목소리가 들렸다. 언제나처럼 다정하고 상냥한 톤이었지만, 그 밑바닥에는 벼려진 칼날 같은 서늘함이 도사리고 있었다. 내 시야의 가장자리로 그녀의 하얀 실루엣이 다가왔다. 손에 쥔 주사기 바늘 끝에서 투명하고 차가운 액체가 뚝, 떨어져 장판 바닥에 미세한 얼룩을 남겼다. 저 약물이 내 전두엽에 닿는 순간, 오늘 아침 내가 겨우 주워 담았던 자아의 파편들은 흔적도 없이 소멸할 것이다.
테라스 유리창 너머에서는 젖은 코트를 입은 강태석 형사가 미친 듯이 이중창을 두들겨 대고 있었다.
쿵! 쿵! 쿵!
"정우현! 당장 그 벽에서 떨어져! 그 시계는 통신 장치이자—!"
천장 스피커에서 찢어지는 듯한 하울링과 함께 흘러나온 그 목소리는, 내가 알던 가상 낙원의 안내음이 아니었다. 날것 그대로의, 가공되지 않은 외부의 비명. 그 순간 내 우뇌를 관통하는 강렬한 과전류와 함께 극심한 두통이 밀려왔다. 머릿속의 무언가가 타들어 가는 느낌. 내 소중한 기억 중 하나가 또다시 영구히 지워지고 있다는 공포가 엄습했다. 대학 시절 동기들과 나누었던 싱거운 농담이었을까, 아니면 어머니가 끓여 주시던 김치찌개의 냄새였을까. 무엇인지 인지하기도 전에 사그라드는 기억의 통증을 느끼며, 나는 이빨이 부러질 정도로 어금니를 악물었다.
이 왜곡을 끝내야 한다. 내 손으로 직접.
나는 바닥을 기었다. 손끝에 닿는 차가운 금속의 질감. 벽난로 옆에 장식용으로 세워져 있던, 묵직하고 끝이 갈라진 무쇠 지렛대였다. 손가락 뼈마디가 하얗게 동색이 되도록 지렛대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우현 씨, 안 돼요!"
은혜가 다급하게 소리치며 내 어깨를 붙잡으려 손을 뻗었다. 그녀의 평정심이 처음으로 균열을 일으키며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나는 온 힘을 쥐어짜 내어 몸을 돌렸다. 그리고 수갑을 푸는 죄수의 심정으로, 내 손목을 옥죄던 보이지 않는 쇠사슬을 끊어 내듯 무쇠 지렛대를 거꾸로 고속 회전하는 거실 벽시계를 향해 내리쳤다.
깡—!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겉면의 강화 유리가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비산했다. 은혜의 얼굴 위로 투명한 유리 파편들이 비처럼 쏟아졌고, 그녀는 본능적으로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하지만 시계는 멈추지 않았다. 거울 뒤편에 숨겨진 하우징 내부에서 조절 장치는 여전히 미친 듯이 거꾸로 돌며 기분 나쁜 기계음을 토해 내고 있었다. 카카카칵, 카카카칵.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그 불길한 소리.
나는 다시 한번 지렛대를 치켜들었다. 어깨 관절이 빠질 듯한 고통이 밀려왔지만 상관없었다.
"그만둬요! 제발!"
은혜가 내 등을 붙잡아 끌어내리려 했다. 가녀린 체구라고는 믿을 수 없는 억척스러운 힘이 내 셔츠깃을 잡아당겼다. 옷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내 몸이 뒤로 쏠렸지만, 나는 악을 쓰며 지렛대를 시계 하우징 정중앙에 수직으로 내꽂았다.
콰직!
플라스틱 프레임이 완전히 으스러지며 내부의 복잡한 회로판이 모습을 드러냈다. 주황색 LED 표시등이 미친 듯이 점멸하는 그 틈새로, 알루미늄 포일처럼 얇은 차폐막과 함께 기괴하게 꼬여 있는 금속선들이 보였다.
그 순간, 머릿속에서 번개처럼 스치는 기억이 있었다.
매일 밤 정각, 거실 복도의 시계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리고 오직 정각에만, 초침이 3분씩 미세하게 뒤로 밀려났다. 아내는 그것을 기계의 사소한 불량이라고 상냥하게 웃어넘겼다. 하지만 아니었다. 3분씩 뒤로 밀리던 시간, 정각마다 찾아오던 기묘한 이명. 그 모든 것은 내 뇌가 이 집안의 인지 왜곡 장치와 동기화되는 주파수 조정 시간이었던 것이다.
벽시계 프레임 내부, 한가운데를 관통하여 벽 내부 깊숙한 곳으로 연결된 굵은 동축 무선 케이블. 그것이 바로 내 오감을 마비시키고 시간 감각을 지배하던 인지 교란 안테나의 본체였다.
"이게…… 당신이 말한 평범한 시계의 속살이군."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으스러진 시계 내부를 손가락으로 헤집었다. 스파크가 튀며 손끝이 타들어 가는 극렬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손가락을 멈추지 않았다. 구운 고기 냄새 같은 지린 탄내가 내 코끝을 찔렀다.
"우현 씨, 제발 내 말을 들어요! 그걸 건드리면 당신 머리가……!"
은혜의 외침은 더 이상 내게 닿지 않았다.
내 시선은 오직 회로판 깊숙이 박힌 청색 동축 케이블에 고정되어 있었다. 나는 지렛대의 갈라진 틈새를 케이블 사이에 끼워 넣고, 온 체중을 실어 아래로 꺾었다. 지렛대의 지렛대 원리가 작용하며 벽 내부의 고정 장치가 뜯겨 나가는 둔탁한 진동이 손목을 타고 전해졌다.
드드득, 콰아아앙!
시계 하우징 전체가 벽면에서 떨어져 나오며 콘크리트 가루가 하얗게 피어올랐다.
그 엄청난 소음과 파괴의 현장 한가운데서, 은혜는 얼어붙은 듯 멈춰 섰다. 그녀의 손에 들려 있던 주사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니, 주사기뿐만이 아니었다. 그녀가 내 등 뒤를 노리며 옷 속에 숨겨 두었던 날카로운 과도가 쨍그랑하는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대리석 바닥 위로 미끄러져 갔다.
"아…… 아아……."
은혜의 입술에서 바람 빠지는 듯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평생 단 한 번도 흐트러진 적 없던 그녀의 완벽한 매무새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머리카락은 산발이 되어 뺨에 달라붙었고, 넓게 벌어진 눈동자는 초점을 잃은 채 바닥에 부서진 시계 잔해만을 응시했다.
그녀는 다리에 힘이 풀린 듯 뒤로 주저앉았다. 주저앉은 그녀의 손이 바닥의 유리 파편을 짚어 붉은 피가 배어 나왔지만, 그녀는 통증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언제나 나를 내려다보며 상황을 통제하던 지배자의 위엄은 온데간데없었다. 오직 계획이 완전히 어그러진 자의 처참한 절망과 당혹감만이 그녀의 얼굴에 가득했다.
"끝났어, 은혜야."
나는 지렛대를 바닥에 던져 버리고, 손을 뻗어 벽 내부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던 청색 동축 케이블을 움켜쥐었다.
파지직!
강렬한 전류가 내 손바닥을 타고 흘러들어와 온몸의 근육을 수축시켰다. 눈앞이 번쩍이며 잠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손을 놓지 않았다. 이 더러운 끈을 잘라 내지 않으면, 나는 평생 이 가상의 감옥에서 아내가 주는 약을 받아먹는 가축으로 살아야 한다.
"으아아아악!"
나는 비명을 지르며 케이블을 몸쪽으로 단숨에 잡아당겼다.
뚝.
무언가 끊어지는 명쾌한 소리가 거실의 소음을 뚫고 내 고막에 박혔다.
그 순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내 시야를 뿌옇게 흐려 놓았던 지독한 황달빛 아지랑이가 파스스 소리를 내며 사방으로 흩어져 사라졌다. 마치 눈앞에 끼어 있던 더러운 기름막을 한 꺼풀 벗겨 낸 것처럼, 세상의 윤곽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선명하고 차갑게 되살아났다.
동시에 거실 천장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던 기계적인 노이즈가 뚝 끊겼다. 사방을 지배하던 정적.
그리고 통유리창 너머의 풍경이 변하기 시작했다.
어두컴컴한 숲길과 영원한 저녁의 어스름이 깔려 있던 창밖의 풍경이, 마치 홀로그램 비디오가 꺼지듯 픽셀 단위로 깨져 나가며 허공으로 증발했다. 그 자리를 채운 것은 눈이 시릴 정도로 강렬하고 뜨거운 여름날의 태양광이었다.
오후 3시.
진짜 태양이 거실 안쪽 깊숙한 곳까지 쏟아져 들어왔다. 먼지가 부유하는 공기의 흐름, 대리석 바닥의 차가운 감촉, 그리고 내 손바닥에서 흘러내리는 붉은 피의 진짜 색깔이 태양광 아래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아내가 그토록 정교하게 가꾸고 통제해 왔던 '영원한 낮과 밤의 주기'가, 오직 벽시계 안의 장비 한 대를 분쇄함으로써 너무나도 허망하고 장쾌하게 무너져 내린 것이다.
"하…… 하하……."
내 입에서 헛바람 같은 웃음이 흘러나왔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운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다. 이 통쾌함, 내 감각이 마침내 진짜 현실과 맞닿았다는 이 확신. 아내의 가사 행동 지침 규칙이라는 정교한 감옥의 벽에, 드디어 거대한 구멍을 뚫어 버린 것이다.
바닥에 주저앉은 은혜는 쏟아지는 햇살을 피하려는 듯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흐느끼고 있었다.
"우현 씨…… 당신은 몰라요…… 무슨 짓을 한 건지…… 이제 그들이…… 그들이 올 거예요……."
그녀의 목소리는 더 이상 나를 가스라이팅하던 지배자의 속삭임이 아니었다. 그것은 거대한 재앙을 앞둔 목격자의 비명에 가까웠다.
그때, 테라스의 이중창이 완전히 깨져 나가며 날카로운 유리 파편들이 거실 안쪽으로 쏟아졌다.
쨍그랑!
거친 발소리와 함께 젖은 코트를 입은 강태석 형사가 거실 안으로 들이닥쳤다. 그의 한 손에는 여전히 붉은색 경고등이 깜빡이는 소형 수신기가 쥐여 있었고, 멧돼지 같은 그의 눈매는 충혈되어 번들거렸다.
"정우현! 괜찮나?"
강태석이 내게로 다가오려다, 바닥에 주저앉아 피를 흘리고 있는 은혜를 보고 멈칫했다.
나는 거친 숨을 내쉬며 은혜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옆에는 충격으로 인해 뒤집어진 그녀의 명품 가죽 핸드백이 널브러져 있었다. 핸드백 내부의 소지품들이 대리석 바닥 위로 지저분하게 쏟아져 나와 있었다. 립스틱, 거울, 그리고 몇 개의 알약 케이스들.
내 시선이 핸드백 내부의 가장 어둡고 깊숙한 비밀 칸에 머물렀다.
찢어진 안감 사이로 삐져나온, 반쯤 접힌 서류 한 장이 보였다. 햇빛 아래 노출된 그 종이에는 낯익은 로고가 박혀 있었다. 그리고 그 서류의 한가운데, 굵은 고딕체로 인쇄된 이름이 내 심장을 멈추게 만들었다.
[피의자/환자 성명: 정민아]
그 옆에는 붉은색 직인과 함께 날카로운 활자가 박혀 있었다.
[응급 정신의학적 격리 및 임상 치료 의뢰서]
내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이 집안에서 유일하게 나를 '오빠'라고 부르며, 은혜의 눈을 피해 단서를 건네던 내 여동생 민아. 그녀의 이름이 왜 아내의 가장 은밀한 가방 속, 정신병원 격리 의뢰서에 적혀 있는 것일까.
의뢰서 하단에 적힌 신청인의 이름은 정갈한 필체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신청인: 한은혜 (관계: 자매)]
자매? 은혜와 민아가 자매라고?
내 머릿속의 세계관이 다시 한번 거칠게 뒤흔들렸다. 나는 바닥에 쓰러진 은혜를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눈물이 범벅이 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며, 피 묻은 손을 뻗어 그 서류를 감추려 했다.
"보지 마요…… 우현 씨, 제발……."
그녀의 떨리는 손끝이 서류에 닿기 직전, 나는 서류를 낚아챘다. 그리고 그 아래에 적힌, 주치의 김도진의 친필 서명과 함께 기록된 날짜를 확인한 순간, 나는 숨을 쉴 수 없었다.
날짜는 3년 전, 우리 가족을 집어삼켰던 그 화재 사고가 일어나기 정확히 일주일 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