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걱.
날카로운 금속 날이 플라스틱 피복을 파고드는 소리는 기이할 정도로 선명했다. 아내의 손에 들린 주방용 가위가 랜선을 조여들자, 인터폰 화면 속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던 사내의 얼굴이 가로선으로 찢겨 나갔다. 지직거리는 노이즈 너머로 그가 들어 올렸던 흰 종이 뭉치, ‘실종자 명단’이라는 굵은 고딕체 활자가 순식간에 검은 화면 뒤로 침몰했다.
아내 한은혜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전원 버튼을 깊숙이 눌렀다. 툭, 하는 기계음과 함께 거실을 채우던 기계 합성 음성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잘려 나간 랜선 단면에서 가느다란 구리선들이 짓이겨진 채 삐져나와 있었다. 은혜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가위를 쥔 그녀의 손가락끝에는 붉은 플라스틱 찌꺼기가 묻어 있었다.
“이제 조용하네요, 우현 씨.”
그녀의 미소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한 대칭을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뒷목을 타고 올라온 가혹한 열기가 소뇌를 사정없이 짓이겼다. 척추를 타고 내려가는 신경망마다 수천 개의 바늘이 동시에 꽂히는 듯한 격통이었다. 머릿속이 끓는 기름처럼 요동치며 시야 모서리가 타르처럼 까맣게 물들었다. 뇌신경이 타들어 가는 냄새가 코끝을 스치는 착각이 일었다. 인터폰 너머의 실체를 인지하려 했던 대가였다. 귓가에서 삐 소리가 고주파로 울려 퍼졌다. 침을 삼키려 했지만 목구멍이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우현 씨? 얼굴이 많이 창백해요. 역시 주치의 선생님 말씀대로 환청 증세가 심해진 모양이네요.”
은혜가 서늘한 손으로 내 뺨을 감싸 쥐었다. 인간의 체온바람치고는 지나치게 차가운 감촉이 피부를 타고 흐르자, 머릿속의 통증이 잠시 마비되는 착각이 들었다. 그녀의 엄지손가락바닥이 내 눈밑을 부드럽게 쓸었다. 마치 고장 난 인형의 눈을 맞춰주려는 정교한 손길이었다.
“가서 쉬어요. 약은 내가 다시 준비해 줄 테니까.”
나는 그녀의 손길 아래서 숨을 헐떡이며 고개를 숙였다. 뺨에 닿은 서늘함 뒤로, 잘려 나간 인터폰 선에서 풍기는 매캐한 고무 탄내가 폐부 깊숙이 박혔다. 환청이 아니다. 저 선은 실제로 존재했고, 조금 전까지 화면 속에서 움직이던 강태석 형사의 얼굴 역시 실재했다. 이 집의 방음벽을 뚫고 내 인지 체계를 뒤흔들기 위해 그가 찾아온 것이다.
나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서재를 향했다. 등 뒤로 은혜의 시선이 접착제처럼 끈적하게 달라붙는 것이 느껴졌다. 서재 문을 닫고 걸쇠를 잠그는 순간에야 참았던 신음이 터져 나왔다.
자정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책상 위에 놓인 노트북 화면의 푸르스름한 광원이 어두운 서재 안을 유령처럼 비췄다. 머릿속의 통증은 가라앉지 않고 오히려 관자놀이를 망치로 두드리는 듯한 박동으로 변해 있었다. 무의식이 손끝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키보드 위에 얹은 손가락이 내 의지와 무관하게 미세하게 떨렸다.
타다닥. 타닥.
어둠 속에서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시계 초침 소리를 집어삼키며 울려 퍼졌다. 내 눈은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지만, 뇌는 그 문장들을 실시간으로 인지하지 못했다. 오직 손끝의 감각만이 살아 움직이며 액정 위에 검은 글씨들을 배설해 냈다.
[ 402호의 서쪽 정원, 잔디는 일주일 전 깎여 나간 상태다. 젖은 밤이슬을 머금은 흙 위로 무게 82킬로그램의 군용 부츠 자국이 깊이 4센티미터로 패어 들어간다. 침입자는 차가운 가죽 장갑을 낀 손가러으로 3년 전 방화 사건의 수사 보고서를 움켜쥐고 있다. ]
글자가 박힐 때마다 뇌수의 뒷부분이 바늘로 쑤시는 것처럼 찔러댔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입술 사이로 비린 피맛이 배어 나왔지만 멈출 수 없었다. 이것은 소설이 아니다. 이 집안의 기만적 평화를 뚫고 들어오는 가차 없는 물리적 실체의 기록이었다.
[ 그는 거실 창문 아래의 통풍구로 몸을 낮춘다. 그의 품에 안긴 황갈색 서류 봉투 안에는 '피의자 정우현'의 지문 감정서와 함께, 불에 탄 단독주택의 평면도가 들어 있다. 그는 지금 창문 내부의 무선 신호 방출기를 탐색하고 있다. ]
강태석 형사. 그는 단순히 문을 두드린 것이 아니었다. 아내가 차단한 인터폰 너머에서, 그는 이미 이 집의 물리적 경계를 침범해 들어오고 있었다. 3년 전의 방화 사건. 내가 저질렀다고 은혜가 속삭이던, 그래서 나를 이 ‘가상 낙원’에 가두고 치료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던 그 비극의 실체가 서류 봉투 속에 담겨 있었다.
“아윽……!”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손가락이 굳었다.
단지 문장을 읽어 내려갔을 뿐인데, 뇌 속에서 무언가 툭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소중한 기억의 파편 하나가 강제로 뜯겨 나가는 감각이었다. 그것은 서서히 멀어지는 안개처럼 내 의식의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 첫 소설 데뷔식 날의 기억이었다.
낡은 대학 강당의 삐걱거리는 나무 단상, 내 이름이 호명되었을 때 터져 나오던 낯선 이들의 박수 소리, 그리고 맨 앞줄에서 낡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던 어머니의 젖은 얼굴.
‘안 돼…….’
나는 마음속으로 절규하며 그 기억을 붙잡으려 손을 뻗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얼굴은 이내 이목구비가 문질러진 석고상처럼 하얗게 바스러졌다. 박수 소리는 이명으로 변했고, 강당의 나무 냄새는 인지 저하 약물의 가래 끓는 화학취로 대체되었다. 내 삶의 가장 찬란했던 성취의 순간이 영구히 소멸하는 자리에는 오직 텅 빈 진흙 구덩이 같은 공허만이 남았다.
자아의 일부가 잘려 나갔다. 그 대가는 참혹할 정도로 정직했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나는 소매로 그것을 거칠게 닦아냈다. 나약함에 취해 있을 시간이 없었다. 잃어버린 기억의 무게만큼, 내 손에 쥐어진 이 잔혹한 진실의 값어치는 무거워야 했다.
나는 흔들리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책상 서랍 깊숙한 곳에서 가죽 수첩을 꺼냈다. 볼펜 끝을 꾹 눌러 쥐자 금속 촉이 종이를 찢을 듯이 박혔다. 은혜가 매일 아침 내게 주입하는 ‘가사 행동 지침’이라는 기만적인 규칙들에 맞서기 위해, 나는 오직 물리적 사실에만 입각한 나만의 ‘역(逆) 수칙’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1. 정원의 잔디는 젖어 있으며, 외부인의 침입은 실재한다. 그것은 환청이 아니다. 2. 강태석 형사가 가진 3년 전 화재 보고서는 내가 진범이 아닐 가능성을 가리키고 있다. 3. 뇌의 통증은 진실에 가까워질 때 발생하는 인지 제어 장치의 저항 반응이다. 고통을 거부하지 말고 이정표로 삼아라.
펜을 쥔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 관절이 하얗게 동트듯 일어섰다. 내 뇌를 망가뜨리며 나를 영원한 어린아이로 만들려는 저들의 수작에 놀아나지 않겠다. 머릿속의 한구석이 통째로 날아간 듯한 기묘한 상실감 속에서도, 내 이성은 오히려 칼날처럼 예리하게 벼려지고 있었다.
수첩을 품에 넣고 일어섰다. 서재 문틈 사이로 거실의 미세한 공기 흐름이 느껴졌다. 은혜는 아직 부엌에서 약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잔을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벽을 타고 희미하게 전달되었다.
바로 그때였다.
거실 한가운데서 기이한 마찰음이 들려왔다. 타이어가 급제동할 때 나는 듯한 날카로운 쇠 긁는 소리였다.
스르륵, 서재 문을 열고 거실로 발을 내디뎠다.
벽면에 걸린 거대한 가구식 벽시계가 어둠 속에서 기괴하게 떨리고 있었다. 정각을 가리키던 침들이 제자리에 멈춰 서지 못하고, 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자석에 이끌리듯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초침이 뒤로 튈 때마다 벽 내부에서 둔탁한 톱니바퀴의 비명이 울렸다.
서걱, 서걱, 서걱.
그것은 단순한 시계의 오작동이 아니었다. 시계 프레임 너머, 벽 속에 감춰진 무선 동축 케이블과 교란 안테나가 과부하로 인해 거꾸로 타들어 가며 내는 물리적인 파열음이었다. 시계 바늘이 비현실적인 속도로 역회전하기 시작했다. 거실의 인위적인 정적이 깨어지고, 어둠 속에서 톱니바퀴들이 마구 요란하게 공회전하며 굉음을 토해냈다.
귀를 찢는 듯한 마찰음이 거실의 두꺼운 방음벽을 타고 길게 흘러내렸다. 목재 프레임 내부에서 톱니바퀴들이 서로의 이빨을 갉아먹으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미친 듯이 날뛰던 초침이 12시 방향을 지나쳐 거꾸로 흐르기 시작하자, 내 머릿속의 이명 역시 그 속도에 맞춰 한층 더 날카로워졌다.
스르릉, 툭. 툭.
초침이 뒤로 한 칸씩 밀려날 때마다 관자놀이 부근의 미세혈관이 터져 나가는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나는 벽시계를 향해 천천히 발을 내디뎠다. 바닥재를 타고 전해지는 진동은 단순한 기계의 오작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고전압의 전류가 좁은 회로 내부에서 격렬하게 충돌하며 내뿜는 물리적인 몸부림에 가까웠다.
시계 밑에 멈춰 서서 손을 뻗었다. 손끝이 둥근 유리에 닿기 직전, 후끈한 열기가 손가락 피부를 먼저 자극했다. 건전지 몇 개로 움직이는 평범한 벽시계가 내뿜을 수 없는 온도가 유리 표면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우현 씨.”
그때, 등 뒤에서 차가운 공기가 밀려왔다. 발소리조차 없었다.
돌아선 그곳에 은혜가 서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언제 준비했는지 모를 하얀 도자기 잔이 들려 있었다. 잔 위로 피어오르는 부연 김 속에서 달콤하면서도 어딘가 비린, 익숙한 화학약품 냄새가 풍겼다. 그녀는 내 손끝이 시계 프레임에 닿아 있는 모습을 아주 천천히, 눈동자만을 움직여 응시했다.
“시계가 많이 낡았나 봐요. 내일 아침에 사람을 불러서 새로 바꿀게요. 그러니까…….”
은혜가 한 걸음 다가왔다. 그녀가 내딛는 걸음에 맞춰 거실 천장의 미세한 조도가 한 단계 낮아졌다.
“그건 만지지 말고, 내가 탄 차를 마셔요. 머리가 아플 때는 따뜻한 게 도움이 돼요.”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다. 하지만 그 음조에는 미세한 균열이 가 있었다. 평소처럼 완벽하게 정돈된 고저가 아니라, 급하게 녹음된 테이프를 재생한 듯 끄트머리가 팽팽하게 당겨진 음색이었다.
나는 시계 유리에 대고 있던 손가락을 거두지 않았다. 오히려 손끝에 힘을 주어 굳게 밀어붙였다.
“은혜야.”
“네, 우현 씨.”
“이 시계 말이야.”
내 목소리가 나조차 낯설 만큼 쩍쩍 갈라져 나왔다.
“왜 소리가 나지 않지?”
“방금 전까지 소리가 났잖아요. 기계가 고장 나서 그래요.”
“아니, 정각에만 소리가 나지 않아. 그리고…….”
나는 고개를 돌려 거꾸로 돌고 있는 초침을 똑바로 응시했다. 은백색의 침 가느다란 끝부분이 이제 11시를 향해 역행하고 있었다.
“지금은 자정이 지난 시간인데, 왜 이 시계는 11시로 돌아가고 있는 거지?”
은혜의 입꼬리가 바르르 떨렸다. 그녀는 들고 있던 찻잔을 거실 탁자 위에 소리 없이 내려놓았다. 탁자 유리에 도자기가 닿는 둔탁한 마찰음이 울리는 순간, 벽시계 내부의 비명이 한 옥타브 더 높아졌다.
“우현 씨, 당신은 지금 피곤한 거예요. 주치의 선생님이 말씀하셨잖아요. 사소한 감각의 불일치에 집착하기 시작하면, 결국 당신의 뇌가 스스로를 파괴할 거라고.”
그녀가 내민 손이 허공에서 가볍게 흔들렸다. 그것은 붙잡으려는 손짓이 아니라, 내 시선을 차단하려는 정교한 장벽 같았다.
하지만 나는 멈출 수 없었다. 무의식 속에서 써 내려갔던 그 잔혹한 원고의 문장들이 뇌리에서 불꽃처럼 튀었다.
‘시간 인지 왜곡 교란 안테나.’
벽시계 프레임 내부에 동축 무선 케이블 형태로 박혀 있다는 그 실체가, 지금 내 눈앞에서 과부하를 일으키며 타들어 가고 있었다. 내가 아내의 통제 약물을 거부하고, 잘려 나간 인터폰 선 너머의 실체를 인지하려 한 순간부터 이 완벽한 가상 낙원의 시스템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쩍—!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시계의 둥근 유리 전면에 거미줄 같은 금이 가기 시작했다.
금이 간 틈새로 흰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매캐한 오존 냄새와 플라스틱이 녹아내리는 탄내가 서재에서 났던 것보다 훨씬 강하게 거실을 채웠다. 깨진 유리 조각 사이로, 정교한 태엽 장치 대신 붉고 푸른 배선들이 복잡하게 엉킨 회로판의 단면이 흉측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 한가운데에서 주황색 LED 표시등이 미친 듯이 점멸하고 있었다.
“이게…… 네가 말한 평범한 시계야?”
나는 뒤로 물러서며 은혜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에서 상냥한 아내의 가면이 완전히 조각나 흘러내리고 있었다. 눈빛은 얼음장처럼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고, 굳게 다문 입술은 일직선을 그리고 있었다. 그녀는 깨진 시계 내부의 회로판을 보며 나지막하게 혼잣말을 읊조렸다.
“결국…… 여기까지 온 거네.”
그녀가 품속에서 작고 하얀 주사기를 꺼내 들었다. 금속 바늘 끝에서 투명하고 차가운 액체 한 방울이 툭, 떨어졌다.
“우현 씨, 미안해요. 하지만 이건 당신을 지키기 위한 거예요. 그 기억을 다 되찾으면, 당신은 정말로 미쳐 버릴 테니까.”
그녀가 내게로 달려들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쿵! 쿵! 쿵!
안방 너머, 테라스의 이중창을 세차게 두드리는 거친 타격음이 집안의 굉음을 뚫고 들어왔다.
유리창이 깨질 듯이 흔들리는 소리에 은혜의 움직임이 뚝 멈췄다. 나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 테라스 쪽을 바라보았다. 짙은 어둠이 내린 정원 너머, 불 꺼진 유리창에 누군가의 형체가 바짝 밀착해 있었다.
그는 젖은 코트를 입은 사내였다. 인터폰 화면 속에서 보았던, 멧돼지 같은 눈매를 가진 강태석 형사였다.
그는 한 손으로 유리창을 두드리며, 다른 한 손으로는 거실 벽시계를 향해 소형 수신기 같은 기계를 치켜들고 있었다. 기계의 액정 화면에 붉은색 경고등이 요란하게 깜빡이는 것이 유리창 너머로도 선명하게 보였다.
그리고 마침내, 벽 내부에서 시작된 전류의 폭주가 정점에 달했다.
파지직! 하는 스파크 소리와 함께 벽시계 내부에서 푸른 불꽃이 튀었다. 그와 동시에 거실 천장의 스피커가 지직거리는 노이즈를 뿜어내며 기괴한 음성으로 울부짖기 시작했다.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섞인 합성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완전히 변조되지 않은, 다급하고 거친 실제 사내의 목소리였다.
- 정우현! 당장 그 벽에서 떨어져! 그 시계는 통신 장치이자—!
목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머릿속을 관통하는 가혹한 충격파가 내 온몸의 신경을 마비시켰다.
붉은 불꽃이 시야를 가득 채웠고, 나는 그대로 거실 바닥으로 쓰러졌다. 멀어져 가는 의식의 끝자락에서, 은혜가 주사기를 쥔 채 내게로 천천히 다가오는 실루엣이 보였다. 그리고 테라스 유리창이 날카롭게 깨져 나가는 굉음이 고막을 사정없이 때려눕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