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문의 육중한 잠금장치가 풀리는 묵직한 기계음이 지하실의 정적을 찢어발겼다. 서서히 어둠 안쪽으로 밀려 열리는 틈새를 바라보며, 내 손가락은 제어반 키보드 위에서 미친 듯이 춤을 추었다. 침입자의 정체를 확인하는 것보다 시급한 것이 있었다. 중앙 제어망의 전선을 뜯어내려던 은혜를 바닥으로 밀쳐낸 순간, 내 시야 구석에 위치한 통합 홈 허브 모니터에 기이한 붉은색 점멸 신호가 포착되었기 때문이다. 은혜가 구축해 둔 방화벽의 가장 깊숙한 바닥, 보안 로그의 최하단 숨김 폴더가 네트워크 일시 마비와 함께 잠금 해제되어 있었다.
모니터 화면이 거칠게 가로줄을 그리며 주황색 빛을 뿜어냈다. 그 푸르스름한 정적 속에서 재생된 3초짜리 무음 영상은 내 척수를 얼려버리기에 충분했다.
어두컴컴한 지하 주차장의 비상구 앞이었다. 세차게 내리는 빗줄기 사이로, 내 여동생 민아가 노란색 우비를 입은 채 서 있었다. 그녀가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초조하게 시계를 내려다보는 찰나, 등 뒤의 어둠 속에서 흰색 의사 가운 위에 검은 은피코트를 덧입은 사내가 유령처럼 솟아올랐다. 김도진이었다. 그의 정밀하게 다듬어진 손가락이 민아의 목덜미를 움켜쥐었고, 다른 한 손에 쥐여 있던 백색 약물 수건이 그녀의 호흡기를 사정없이 짓눌렀다. 민아의 얇은 양팔이 허공을 몇 번 허우적거리다 이내 꺾인 인형처럼 축 늘어졌다. 도진은 지극히 이성적이고 차분한 동작으로 그녀를 차량 뒷좌석에 밀어 넣고 문을 닫았다.
피가 머리끝으로 단숨에 솟구쳐 올랐다. 관자놀이의 혈관이 터질 듯이 요동치며 시야가 붉은 안개로 가득 찼다. 분노보다 먼저 찾아온 것은 이 지옥 같은 낙원이 설계한 기만적인 질서에 대한 증오였다. 나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키보드의 백업 단축키를 눌렀다.
타타탁, 탁!
해당 보안 로그 영상을 외부망이 차단된 단독 물리 드라이브의 암호화 영역으로 강제 밀봉 지정했다. 은혜가 다시 시스템 권한을 회수하여 이 잔인한 증거를 지워버리기 전에, 현실의 물리적 데이터를 완전히 격리해 두어야 했다. 화면에 '백업 완료 및 폴더 영구 밀봉'이라는 녹색 텍스트가 뜨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나는 주머니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손끝에 차갑고 딱딱한 금속의 감촉이 걸렸다. 여동생 민아가 은혜의 감시망을 피해 안방 구석, 흙먼지가 풀풀 날리던 벤자민 화분 아래 깊숙이 묻어두었던 초소형 주파수 무전 장치였다. 강태석 형사가 안방의 장벽을 넘어 침투해 찾아냈다고 소리치던 바로 그 장치와 동일한 대역을 공유하는 수신기였다. 나는 기기 측면의 작은 다이얼을 미세하게 돌렸다.
치이이이익-.
손끝을 타고 흐르는 미세한 정전기와 함께 귓가를 찌르는 주파수 이조음이 일었다. 이 차가운 금속체만이 나와 외부의 진짜 현실을 연결해 주는 유일한 끈이었다. 나는 숨을 죽이고, 수신기를 귀에 바짝 밀착한 채 다이얼의 눈금을 1밀리미터씩 조율했다. 잡음 너머로 아주 미세한, 쇠사슬이 쓸리는 듯한 마찰음이 섞여 들기 시작했다.
"민아... 정민아, 내 목소리 들려? 태석 씨, 거기 있습니까?"
목구멍을 찢고 나온 목소리는 잔뜩 갈라져 볼품없었다. 수신기를 쥔 손바닥에 축축한 식은땀이 고였다. 하지만 스피커에서는 오직 차가운 백색 소음만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밀려갈 뿐, 명확한 음성은 흘러나오지 않았다. 네트워크 차단 여파로 신호 강도가 극도로 낮아진 탓이었다. 나는 송신 버튼을 억세게 누르며 신호 수신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고막이 팽팽하게 긴장해 윙윙거리는 이명이 일기 시작했다.
그때, 등 뒤에서 옷자락이 쓸리는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바닥에 쓰러졌던 은혜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엉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그녀의 얼굴은 기이할 정도로 평온했다. 무릎에 묻은 지하의 시멘트 가루를 우아한 손짓으로 털어내는 모습은, 마치 조금 전의 육탄전이 고상한 티타임 도중 일어난 사소한 해프닝에 불과하다는 듯한 태도였다. 그녀는 천천히 걸어와 내 앞에 섰다. 미소는 여전히 완벽했고, 눈빛은 흔들림 없이 맑았다.
"우현 씨."
그녀가 내민 손에는 어느새 작은 유리잔과 백색 알약 두 알이 들려 있었다. 언제나 아침마다 내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내 뇌의 인지 기능을 서서히 마비시키던 그 투명한 약물이었다.
"또 가여운 환각을 보고 있네요. 민아라니요... 그 이름은 꺼내지 않기로 우리 약속했잖아요."
"닥쳐."
내 목소리에는 날 선 가시가 돋쳐 있었지만, 은혜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한 걸음 더 다가왔다. 그녀의 몸에서 풍기는 은은한 라벤더 향기가 지하실의 퀴퀴한 곰팡이 냄새를 덮어버렸다. 그 향기가 허파 깊숙이 들어올 때마다 머릿속이 몽롱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우현 씨의 동생 민아는... 3년 전 그 끔찍했던 주택 화재 사고 당시에 이미 실종되어서 사망 처리된 아이예요. 경찰서에서도 정식으로 사망 진단서가 나왔고, 당신도 장례식장에서 내 품에 안겨 몇 날 며칠을 울었잖아요. 기억나지 않으세요?"
그녀의 목소리는 너무나 따뜻하고 부드러워서, 순간적으로 내 발밑의 콘크리트 바닥이 허공으로 꺼지는 듯한 극심한 현기증이 일었다.
'정말인가? 민아는 이미 죽은 존재고, 내가 보는 모든 것은 약물 부작용이 만들어낸 망상에 불과한 걸까?'
내 고질적인 결함인 강력한 자기 의심증이 똬리를 틀고 머리를 들어 올렸다. 내 오감이 가리키는 현실과 은혜가 제시하는 완벽한 가짜 낙원의 수칙들이 정면으로 충돌할 때마다, 뇌세포 하나하나가 비명을 지르는 듯한 미열이 발생했다. 은혜는 내 눈동자가 흔들리는 그 찰나의 틈을 놓치지 않고, 약통을 내 입가로 조심스럽게 가져다 대며 속삭였다.
"당신 소설가잖아요. 뇌가 너무 많은 허구를 창조해 내서 진짜 현실과 혼동하는 거예요. 주치의 김도진 선생님도 말씀하셨잖아요. 이 약을 제때 복용해야만 그 잔인한 환각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자, 어서 약을 보충해요. 그래야 우리들의 평화로운 포레스트 힐로 돌아가죠."
그녀의 손가락이 내 뺨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얼음처럼 차가운 감촉이 피부를 타고 흐르는 순간, 뇌리 깊은 곳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아니다. 속으면 안 된다. 방금 전 내 눈으로 똑똑히 확인한 그 CCTV 영상 속 민아의 비명 지르는 얼굴은 결코 환각이 아니었다. 주차장의 물웅덩이에 튀던 비말의 각도, 민아의 신발 끝에 묻어 있던 진흙의 질감까지 모든 것이 너무나 완벽한 물리적 실체였다. 은혜의 가스라이팅은 나를 보호하기 위한 울타리가 아니라, 나를 영원히 눈먼 짐승으로 가두어두기 위한 보이지 않는 쇠창살이었다.
나는 이빨을 악물고 그녀의 손을 거칠게 쳐냈다. 유리잔이 바닥에 떨어져 쨍그랑하는 날카로운 파편 음과 함께 깨졌고, 하얀 알약들은 더러운 지하실 먼지 구덩이 속으로 굴러갔다.
"내 기억은 내가 찾아. 네가 만든 잔혹한 연극은 여기서 끝이야."
은혜의 완벽하던 미소가 아주 미세하게 일그러졌다. 그녀의 왼쪽 눈꺼풀이 0.1초 동안 가늘게 떨리는 것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바닥에 떨어진 알약들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더니, 이내 차가운 어조로 나직하게 읊조렸다.
"결국... 또 규칙을 깨버리는군요, 우현 씨. 그 대가는 당신이 감당해야 할 텐데."
그 순간, 내 머릿속에서 강렬한 과전류가 흐르는 듯한 극통이 발생했다.
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무의식중에 타이핑했던 '잔혹한 원고'의 한 구절을 강제로 해독하려 한 대가였다. 내 뇌세포가 현실의 모순점을 인지할 때마다 가장 소중한 기억 중 하나가 영구히 소멸하는 영혼의 침식. 이번에는 매년 여름마다 어머니와 함께 찾았던 동해 바다의 푸른 파도 소리와 모래사장의 차가운 촉감이 머릿속에서 하얀 소금 가루처럼 바스러져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정도로 고통스러웠지만, 사라진 기억의 빈자리를 뚫고 단 하나의 문장이 활자처럼 명확하게 뇌리에 박혔다.
[...도진의 수면 유도관은 서재 에어컨 필터 흡입구를 타고 전개된다. 낙원의 미풍은 사실 가장 안락한 질식의 통로이다...]
원고의 무미건조한 서술. 그것은 단순한 은유가 아니었다. 현실의 물리적 구조를 가리키는 정밀한 설계도였다.
지하실 도어락을 해제하고 들어오려던 검은 우비의 괴한, 혹은 김도진의 진짜 목적은 나를 물리적으로 타격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내가 지하실로 대피할 것을 미리 예측하고, 이 집의 중앙 공조 시스템을 역이용하려던 것이었다. 이 지하실과 바로 위층 서재는 내부 공기 순환을 위해 설계된 대형 덕트로 연결되어 있었다. 서재의 에어컨 필터 흡입구를 통해 흡입된 공기가 이 지하실로 바로 유입되는 구조였다.
"수면 가스..."
나는 이를 갈며 지하실 구석의 철재 계단을 타고 위층 서재로 단숨에 뛰어 올라갔다. 등 뒤에서 은혜가 "우현 씨! 안 돼요, 거기 가선 안 돼요!" 하고 다급하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멈추지 않았다.
서재 안은 기이할 정도로 고요했다. 창밖의 평화로운 숲길 풍경과 대조적으로, 방 한구석에 위치한 대형 매립형 에어컨의 송풍구에서 미세한 모터 구동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위이이이잉-.
공기를 빨아들이는 흡입 필터 그릴 사이로,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 미세한 무색무취의 기류가 일렁이는 것이 보였다. 머리가 서서히 무거워지고 손가락 끝의 감각이 마비되는 듯한 기분 나쁜 이조음이 방 안을 채웠다. 이것이 바로 은혜가 말하던 '낙원의 미풍'이자, 나를 잠재우기 위한 은밀한 덫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규칙의 파괴법을 알아낸 이상, 대처는 철저히 이성적이고 기술적이어야 했다.
나는 서재 책상 밑에 숨겨두었던 두꺼운 불침투성 방수포와 공업용 실리콘 테이프를 꺼내 들었다. 이 낙원의 모든 장치가 나를 가두기 위한 감금 장치라면, 나는 그 장치들의 연결 고리를 물리적으로 끊어버릴 뿐이었다.
서걱, 서걱.
테이프를 뜯어내는 거친 마찰음이 서재의 정적을 깨뜨렸다. 나는 의자 위에 올라서서 에어컨 전면의 흡입 필터 전체를 방수포로 덮어씌웠다. 그리고 사방의 틈새를 향해 실리콘 테이프를 서너 겹으로 겹쳐 붙이며 공기의 흐름을 완벽하게 밀봉했다.
"흡읍...!"
가스가 새어 나오던 틈새가 완전히 막히자, 흡입구 쪽에서 역류하는 공기의 압력 때문에 방수포가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다. 쉭쉭거리며 뿜어져 나오려던 기괴한 압력음이 이내 테이프의 강력한 접착력에 가로막혀 서서히 잦아들었다.
완벽한 밀봉이었다.
가장 믿음직하고 쾌적하게 느껴졌던 집 안의 중앙 공조 장치가 사실은 나를 잠재우기 위한 독약 수칙의 통로였음을, 내 손으로 직접 증명하고 파괴해 버린 순간이었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찌릿한 해방감과 통쾌함이 솟구쳤다. 아내가 설계한 완벽무결한 가상 낙원의 물리적 통제력이 내 손끝에서 뭉개져 가고 있었다.
나는 의자에서 내려와 이마의 땀을 닦아냈다. 이제 도진의 가스 습격은 무력화되었다. 수신기를 다시 쥐고 민아의 주파수를 추적해 이 요새 같은 집구석을 빠져나갈 탈출로를 확보해야 했다.
바로 그때였다.
달칵.
내 등 뒤, 서재와 지하실 통로 벽면에 매립되어 있던 예비 중앙 열공급 조절 밸브 장치에서 불길한 금속성 체결음이 들려왔다.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새 지하실에서 기어 올라온 은혜가, 땀과 먼지로 얼룩진 얼굴로 예비 제어반 앞에 서 있었다. 그녀의 차가운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그녀의 작은 손은 벽면에 튀어나온 붉은색 예비 중앙 수동 밸브를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온 힘을 다해 그 금속 밸브를 시계 방향으로 완전히 돌려 잠가 버렸다.
철커덕! 쿵!
지하실과 서재를 연결하는 모든 예비 환기창과 방화벽이 차례로 내려앉으며, 서재의 출입문마저 두꺼운 강철판으로 가로막혔다. 밀폐된 공간 안의 공기 흐름이 거짓말처럼 뚝 끊겼고, 사방의 벽면에서 후끈한 열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은혜는 잠금쇠를 체결한 체인 열쇠를 자신의 주머니 깊숙이 주저 없이 찔러 넣으며, 다시 한 번 무서우리만치 완벽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가스를 막으셨으니... 이제 이 안에서 서로 함께 말라 죽는 수밖에 없겠네요, 우현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