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커덕! 쿵!
고막을 찢을 듯한 금속성 파열음이 서재의 사방을 난타했다. 지하실과 서재를 잇는 통로, 그리고 거실로 향하던 유일한 출입구 위쪽에서 육중한 강철 방화벽이 단번에 내려앉았다.
바닥이 잘게 진동했다. 차단벽의 틈새에서 미세한 쇳가루와 케케묵은 먼지가 뿜어져 나와 코를 찔렀다.
방금 전까지 아내가 서 있던 제어반 너머의 공간은 이제 완전히 단절되어 보이지 않았다. 오직 두꺼운 철판 너머로 웅웅거리는 모터의 잔향만이 벽을 타고 고스란히 전해질 뿐이었다.
"가스를 막으셨으니... 이제 이 안에서 서로 함께 말라 죽는 수밖에 없겠네요, 우현 씨."
방화벽 미세한 틈새에 매립되어 있던 스피커를 통해 아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평소와 다름없이 부드럽고 상냥한, 그러나 뼈마디를 시리게 만드는 온도의 고요함이었다.
서재 내부의 공기가 순식간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중앙 공조 장치의 필터를 밀봉한 대가는 혹독했다. 대류가 멈춘 방 안은 거대한 밀폐 용기와 다름없었다. 사방의 이중 벽면에 매립된 보일러 배관이 과열되기 시작했는지, 피부에 닿는 공기가 후끈하게 달아올랐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기도가 마르고 텁텁한 단내가 입안을 감돌았다.
스스로를 가둔 꼴이었다. 아내가 설계한 규칙을 부수기 위해 선택한 밀봉이, 도리어 나를 이 좁은 사면초가의 요새에 가두는 족쇄가 되었다. 관자놀이가 팽팽하게 부풀어 오르며 쿵쿵거리는 이명이 귓전을 때렸다.
치이이익-.
그때였다. 천장 구석, 책장 뒤편에 숨겨져 있던 비상 가스 노즐에서 미세한 안개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에어컨 흡입구는 막았지만, 아예 벽체 내부에 심어둔 독립형 노즐까지는 계산에 넣지 못했다. 희뿌연 기체가 천장 부근에서부터 소용돌이치며 서서히 아래로 하강했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 기체를 들이마시는 순간, 주치의 김도진이 설계한 그 기괴한 기억의 감옥 속으로 다시 침잠하게 되리라. 뇌세포가 타들어 가듯 둔탁한 통증이 이마를 짓눌렀다.
스스로를 의심하는 병적인 본능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내가 정말로 미친 것은 아닐까. 아내의 말대로 이 모든 것이 내 망상이 만들어낸 비극은 아닐까. 다리가 후들거렸다. 손 끝에 닿는 책장의 거친 나뭇결조차 현실이 아닌 가상의 질감처럼 느껴져 소름이 돋았다.
그때, 바지 주머니 속에서 아주 미세한 진동과 함께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 치... 지직... 오빠... 들려? 오빠!
주파수 무전기였다. 여동생 민아가 아내의 눈을 피해 안방 구석, 흙먼지가 풀풀 날리는 벤자민 화분 깊숙한 곳에 묻어두었던 바로 그 초소형 주전 장치였다. 흙냄새와 기계 특유의 납땜 냄새가 섞인 채 내 손에 쥐여져 있던 유일한 외부와의 통로.
나는 무전기를 입가로 가져갔다. 목소리가 젖은 모래처럼 갈라져 나왔다.
"민아... 야..."
- 오빠! 정신 차려! 지금 김도진이 거실 지하 통로 비상 해치로 진입했어! 서재 우측 옷걸이 행거 뒤쪽에 수동 개폐 레버가 있어. 거기로 마취 스프레이 장비를 들고 직접 들어갈 거야. 지금 그 가스는... 흡입기를 쓰지 않으면 3분도 못 버텨! 바닥에 엎드려! 가스는 위에서부터 차오르니까 바닥에 납작 엎드려야 해!
동생의 날카로운 경고가 고막을 찔렀다.
자기 의심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이성이 번뜩 제자리를 찾았다. 현실이었다. 이 지독한 가스 냄새도, 살을 태울 듯한 열기도, 그리고 나를 사냥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기꾼 의사 놈의 존재도 모두 움직일 수 없는 객관적 실체였다.
나는 숨을 허읍, 하고 들이마신 뒤 허파 깊숙이 공기를 가두었다. 그리고 무전기를 주머니에 밀어 넣은 채, 서재 구석에 서 있던 옷걸이 행거 장벽 뒤로 몸을 던졌다.
바닥은 차가웠다. 위쪽의 더운 공기와 달리 바닥면에 깔린 얇은 공기층은 아직 산소를 머금고 있었다.
행거에 걸린 두꺼운 겨울 코트들이 커튼처럼 나를 가려주었다. 나는 코트 자락 사이로 서재 우측 벽면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민아의 말대로, 그곳에는 평소 가구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미세한 수직 이음새가 존재하고 있었다.
손이 덜덜 떨렸지만, 나는 서재 구석에 놓여 있던 단단한 참나무 야구 배트를 움켜쥐었다. 은혜가 내가 미쳐 날뛸 때를 대비해 소파 깊숙한 곳에 숨겨두었던 마취 침 대신, 내가 내 손으로 쟁취한 가장 원시적이고 확실한 물리적 타격 도구였다. 나무 손잡이의 차갑고 단단한 감각이 가죽 그립을 통해 손바닥 전체로 스며들었다.
스르륵... 툭.
벽면의 일부가 안쪽으로 밀려나며 기괴한 틈새가 벌어졌다.
방독면을 정면으로 착용한 거대한 실루엣이 좁은 통로를 통해 서재 안으로 발을 디뎠다. 김도진이었다. 그의 한 손에는 소형 압축 가스 실린더가 연결된 분무 노즐이 들려 있었고, 다른 한 손에는 스마트폰 크기의 마스터 태블릿이 쥐여져 있었다.
도진은 방독면의 강화유리 너머로 뿌연 서재 내부를 두리번거렸다. 사방에 차오른 가스 때문에 시야가 흐려진 듯, 그의 고개가 좌우로 삐딱하게 움직였다. 그는 내가 이미 바닥에 쓰러져 의식을 잃었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의 오만한 발걸음이 행거 앞을 지나치는 바로 그 순간.
나는 포복해 있던 몸을 용수철처럼 튀겨 올렸다.
"허억...!"
내 입에서 터져 나온 짧은 단말마와 동시에, 참나무 배트가 공기를 가르며 맹렬한 궤적을 그렸다. 대기를 찢는 날카로운 풍음이 서재의 정적을 박살 냈다.
깡-!
둔탁하고 묵직한 충격음이 서재를 울렸다. 배트의 끝부분이 도진이 쓰고 있던 방독면의 측면 필터와 턱관절 부위를 정확하게 강타했다.
"끄아악-!"
괴성과 함께 도진의 몸이 옆으로 크게 고꾸라졌다. 방독면의 강화플라스틱 유리에 거미줄 같은 균열이 가며 내부에서 붉은 선혈이 튀어 올랐다. 타격의 반동이 내 손목과 어깨를 타고 짜릿하게 역류했다. 이빨이 맞부딪히며 고통스러운 전율이 일었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여기서 멈추면 죽는다. 저 자가 나를 다시 그 가상의 낙원이라는 생지옥에 가둘 것이다.
"이... 미친... 윽!"
도진이 바닥을 뒹굴며 품 안에서 호신용 가스 건을 꺼내려 손을 뻗었다.
나는 주저 없이 배트를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그리고 그의 안면을 향해 수직으로 내리찍었다.
퍽! 콰직!
"아아악! 내 눈! 내 코가...!"
방독면이 완전히 일그러지며 도진의 코뼈가 주저앉는 기괴한 마찰음이 밀폐된 공간을 가득 채웠다. 도진의 손에 들려 있던 가스 실린더가 바닥으로 떨어져 요란한 소리를 내며 구르다 책상 밑으로 처박혔다.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쥔 채 바닥을 뒹굴며 처절하게 비명을 질렀다. 가죽 구두를 신은 그의 두 발이 서재 바닥을 신경질적으로 긁어댔다.
피와 침, 그리고 방독면 내부의 결로가 뒤섞인 오물이 그의 옷가지를 더럽혔다. 가스라이팅과 정교한 행동 규칙이라는 미명 하에 나를 지적으로 통제하고 유린하던 천재 의사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오직 살기 위해 버둥거리는 가련한 짐승 한 마리만이 내 발밑에 뒹굴고 있을 뿐이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해방감이 용솟음쳤다. 아내가 세우고 도진이 유지하려 했던 그 정교한 규칙의 요새가, 단 두 번의 물리적인 타격 앞에 이토록 무참하게 깨어져 나가는 꼴이라니.
나는 헐떡이는 숨을 몰아쉬며 도진의 가슴팍을 무릎으로 짓눌렀다.
"도진... 씨. 이제 주치의 노릇은... 끝난 것 같은데."
내 목소리는 스스로가 느낄 정도로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도진은 으스러진 턱을 떨며 신음했다. 방독면 틈새로 흘러나오는 피가 그의 목덜미를 적셨다. 나는 그의 떨리는 손아귀에서 마스터 태블릿을 강제로 빼앗아 들었다.
화면을 켜자, 붉은색 경고 표시와 함께 '사용자 인증 필요'라는 문구가 점멸했다.
나는 도진의 머리채를 움켜쥐었다. 피와 땀으로 범벅이 된 그의 얼굴을 강제로 들어 올려 태블릿의 전면 카메라 앞에 들이밀었다. 도진은 본능적으로 눈을 감으려 버둥거렸다.
"눈 떠."
나는 배트 끝으로 그의 으스러진 정강이 뼈를 지긋이 내리눌렀다.
"아아악! 떴어! 떴다고! 이 미친 새끼야!"
도진이 비명을 지르며 눈을 부릅떴다.
징-.
미세한 진동음과 함께 태블릿의 잠금이 해제되었다. 화면 가득 복잡한 그래픽 인터페이스와 실시간 데이터 로그가 현출되었다.
[마인드 아키텍처 가상 제어 엔진 - '포레스트 허브' 접속 완료]
그 순간, 내 머릿속 깊은 곳에서 번쩍이는 과전류가 흘렀다.
'잔혹한 원고'의 기록 법칙이 내 뇌신경을 사정없이 난타하는 통증이었다. 진실을 인지할 때마다 가장 소중한 기억 중 하나가 영구히 지워지는 자아 소멸의 리스크.
우뇌 뒤편이 바늘로 쑤시는 것처럼 찔러왔다. 흐릿해지는 시야 너머로,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가던 푸른 바다의 풍경이 마치 물에 젖은 수채화처럼 번지며 지워져 가는 것이 느껴졌다.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 상실감에 눈물이 핑 돌았지만, 나는 이를 악물고 태블릿 화면을 노려보았다. 지금 물러서면 내 존재 자체가 완전히 소멸한다.
나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포레스트 허브의 중앙 시스템 통제 코드를 역추적했다.
이 집 안의 모든 스마트홈 제어권, CCTV 감시망, 공조 장치의 미세 밸브 제어, 심지어 내 방 침대 밑에 심겨진 미세 진동 장치까지 전부 이 하나의 마스터 태블릿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나는 도진의 안면 인식 세션을 영구 동기화 상태로 고정하고, 시스템의 마스터 권한을 내 개인 단말기로 강제 이송하는 스크립트를 실행했다. 다운로드 게이지가 빠르게 올라갔다.
10%... 50%... 100%.
[마스터 권한 이송 완료. 신규 관리자: 정우현]
해냈다. 이제 아내가 나를 통제하기 위해 사용하던 그 정교한 유리 감옥의 열쇠는 완전히 내 손으로 넘어왔다.
나는 바닥에 쓰러져 신음하는 도진의 주머니를 뒤져 그의 개인 스마트폰을 꺼냈다. 화면을 켜자 아내 한은혜의 이름으로 온 메시지가 와 있었다.
[은혜: 도진 씨, 안에서 물리적 충돌 소음이 감지되었어요. 보안 요원들을 서재로 진입시킬까요?]
아내는 서재 밖에서 상황을 실시간으로 감시하며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만약 여기서 보안 요원들이 들이닥친다면 내게는 승산이 없었다.
나는 도진의 스마트폰을 들고, 그의 말투를 흉내 내어 타자를 치기 시작했다. 주치의 김도진이 평소 나를 부르던 극도로 건조하고 사무적인 어조를 떠올렸다.
[도진: 상황 종료. 실험체가 일시적인 발작을 일으켜 제압하는 과정에서 소음이 발생했음. 현재 마취제 투여 완료하여 지하실 구속대에 구금 중. 보안 요원 진입은 불필요함. 은혜 씨는 거실에서 대기하며 시스템 리셋을 준비할 것.]
전송 버튼을 눌렀다.
체증이 내려가듯 기분 좋은 소름이 돋았다. 나를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다고 믿는 아내의 그 오만함에, 도진의 이름이라는 가면을 씌워 보기 좋게 균열을 내뿜는 순간이었다.
지직.
잠시 후 은혜로부터 답장이 왔다.
[은혜: 알겠어요. 수고하셨어요, 도진 씨. 지하실로 내려갈게요.]
"내려... 오라고 해..."
도진이 피를 토해내며 이빨 사이로 저주를 퍼부었다.
나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도진의 멱살을 잡고 서재 구석의 벽면 통로로 끌고 갔다. 민아가 알려준 그 비상 해치 통로였다. 통로는 어둡고 좁았으며, 아래쪽 지하실 깊은 곳으로 이어지는 철제 계단이 연결되어 있었다.
나는 도진을 계단 아래로 사정없이 밀쳐버렸다.
"구르르릉, 쿵!"
도진의 무거운 몸이 철제 계단을 타고 굴러 내려가 지하실 차가운 시멘트 바닥 위로 처박혔다. 그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꺽꺽대며 숨을 몰아쉬었다.
나는 계단을 따라 내려가 지하실 구석에 있는 튼튼한 철제 배관 기둥에 도진을 끌어다 앉혔다. 그리고 서재에서 가져온 공업용 실리콘 테이프와 케이블 타이를 이용해 그의 사지를 기둥에 단단히 결박했다.
도진의 입을 테이프로 거칠게 틀어막기 직전, 나는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당신이 내게 가르쳐준 규칙들이 아주 유용하더군. 이제 당신이 이 지하실의 규칙을 배울 차례야. 첫째, 내가 허락하기 전까지는 숨소리조차 크게 내지 말 것."
읍! 읍...!
도진의 눈에 말할 수 없는 공포가 서렸다. 평생 남을 가두고 실험하던 설계자가, 자신이 만든 낙원의 가장 어두운 지하실에 갇혀 사육당하는 신세가 된 순간이었다.
나는 그의 입을 테이프로 단단히 밀봉한 뒤, 지하실의 조명을 꺼버렸다. 완벽한 암흑이 도진을 집어삼켰다.
지하실 계단을 다시 올라와 서재의 마스터 태블릿을 집어 들었다.
이제 은혜가 지하실로 내려오면 그녀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했다. 하지만 그 전에, 내 손에 쥐어진 태블릿의 화면에 기괴한 백업 파일 하나가 자동으로 실행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정우현_개인_이력_백업_2021'
내 심장이 불길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골든핑거의 영향으로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지만, 나는 홀린 듯이 손가락을 움직여 그 파일을 열었다.
태블릿의 푸르스름한 액정 광채가 내 얼굴을 비추었다.
화면에 나타난 것은 수많은 법원 공문과 재판 기록들이었다. 그리고 가장 상단에 위치한 한 장의 사진.
푸른색 수감복을 입고 머리를 빡빡 깎은, 생기 잃은 눈동자의 사내.
그것은... 나였다. 가슴팍에는 '수인번호 402번'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그리고 그 사진 옆에는 3년 전 화재 사건의 1심 판결문이 첨부되어 있었다. 피고인 이름 단 세 글자가 내 시야를 가득 채웠다.
[피고인: 정우현] [죄명: 존속살해 및 방화치사]
사진 속에서, 푸른 수감복을 입은 내 뒤편으로 은혜가 서럽게 면회실 유리창 너머에서 오열하고 있는 모습이 아주 작게 찍혀 있었다.
머릿속에서 퓨즈가 끊어지는 듯한 강렬한 스파크가 일었다.
내가... 부모님을 죽인 방화범이었다고?
아내가 나를 통제하려 했던 이유가, 내가 피해자가 아니라 끔찍한 가해자였기 때문이란 말인가?
그때, 지하실로 통하는 철문 너머에서 부드러운 발걸음 소리가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