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도련님! 도련님! 정신을 차리십시오!"

마차 벽을 두드리는 마부의 다급한 비명이 가죽 커튼을 넘어와 고막을 찔렀다.

신우는 마차 바닥의 차가운 널판지에 뺨을 댄 채 숨을 들이켰다. 목구멍을 타고 역류하는 끈적한 혈액이 기도를 막았다. 붉은 타액이 턱을 타고 흘러내려 옷깃을 적셨다.

왼손은 이미 팔꿈치 위쪽까지 대리석처럼 딱딱하게 굳어 감각이 소실되어 있었고, 마비의 촉수는 척추를 타고 내려가 오른쪽 허벅지까지 얼려 붙이고 있었다.

[경고: 역사 왜곡 동기화율 29.5%.] [인과율 보정 작용이 중추신경계의 전기 신호를 강제 제어합니다. 무리한 아카이브 정보 인출을 중단하지 않을 시, 영구적 운동 기능 상실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머릿속에서 점멸하는 붉은색 경고등을 신우는 강제로 꺼버렸다.

그는 어둠 속에서 오직 이성 하나만을 등불 삼아 호흡을 통제했다. 현대 외교부 전술관 시절, 극한의 협상 테이블에서 심박수를 낮추기 위해 훈련했던 심층 호흡법이었다.

밀어내야 한다. 이 육체적 고통은 실재하는 물리적 타격이 아니라, 역사의 인과가 뇌에 주입하는 가상의 과부하일 뿐이다.

"흐읍……."

가슴을 쥐어짜듯 숨을 내쉬자, 마침내 얼어붙었던 폐포가 서서히 열렸다. 마비의 장벽이 밀려나며 오른쪽 다리에 미미한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신우는 소매깃으로 입가에 묻은 피를 거칠게 닦아냈다. 비틀거리며 마차 벽을 짚고 몸을 일으키자, 문이 열리며 마부의 사색이 된 얼굴이 나타났다.

"도련님! 몸에 피가……!"

"상처가 터진 것뿐이다. 호들갑 떨지 마라."

목소리는 차갑고 단호했다. 마부는 그 서슬 퍼런 기색에 압도되어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신우는 흔들리는 손으로 의복을 정돈했다.

아직 쓰러질 수 없다. 도평의사사의 세법 개혁안이 통과되고 벽란도의 빗장이 풀렸으나, 그것은 친원파 수장 최영조의 목줄을 죄기 위한 첫걸음에 불과했다. 사냥감이 덫에 걸렸을 때 가장 거세게 발버둥 치는 법이다. 그리고 그 발버둥은 바로 다음 날 아침, 개경 사신관에서 시작되었다.

***

이튿날 아침, 개경 사신관(使臣館)의 공기는 숨이 막힐 정도로 무거웠다.

중앙의 상석에는 원나라에서 파견된 전권 사신, 보얀(伯顔)이 거만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그의 뒤편에는 몽골식 철갑을 두른 호위 무사 십여 명이 칼자루를 쥔 채 도열해 있었고, 그 좌측에는 고려의 권문세족을 대변하는 최영조가 입가에 얇은 미소를 띤 채 앉아 있었다.

"고려의 조정이 감히 대원제국의 은혜를 망각하고 사리사욕을 채우려 하는구나."

보얀이 탁자 위에 황색 비단으로 감싼 서책을 쾅 소리가 나도록 내려놓았다. 황제의 칙서(勅書)였다.

"벽란도의 제련소는 본래 제국의 군수품을 조달하기 위해 임시로 허가된 곳이다. 그런데 일개 서자 놈과 천한 상단이 결탁하여 사사로이 고탄소강 무기를 주조하고, 조정의 정식 허가도 없이 사패지의 철광석을 반출해? 이는 명백한 제국에 대한 반역이다!"

보얀의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대청마루를 흔들었다.

최영조가 유려하게 수염을 쓸어내리며 말을 받았다.

"사신 각하의 말씀이 지당하십니다. 조정의 품계를 받지도 못한 자가 영토의 철강 통제권을 흔드는 것은 국법으로도 묵과할 수 없는 일. 도평의사사의 이름으로 즉시 벽란도 제련소를 몰수하여, 대원제국의 직할령으로 영구 귀속함이 마땅합니다."

최영조의 눈빛이 신우를 향해 독사처럼 빛났다. 세제 개혁으로 가문의 숨통을 조여 오던 신우를, 원나라라는 거대한 외세를 이용해 단숨에 밟아버리겠다는 노골적인 의도였다.

신우는 사신관 한가운데에 꼿꼿이 서 있었다.

어젯밤의 여파로 그의 오른뺨 끝이 미세하게 경련하고 있었다. 그는 탁자 밑으로 보이지 않게 오른손을 강하게 움켜쥐며 감각을 유지하려 애썼다. 뇌 속에서는 이미 비밀 아카이브의 연산 장치가 비정상적인 속도로 회전하며 신경계를 갉아먹고 있었다.

'원나라의 직할령이라.'

신우는 속으로 냉소를 흘렸다.

지금 원나라는 남방에서 일어난 주원장의 명나라 군세에 밀려 대도가 위태로운 처지였다. 고려에 군사적 압박을 가할 여력 따위는 실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저 보얀이라는 사신 역시, 파산 직전인 원나라 조정의 재정을 메우기 위해 최영조에게 뇌물을 받고 사적으로 움직이는 사냥개에 불과했다.

"사신 각하."

신우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의 목소리는 물 흐르듯 잔잔했으나, 넓은 방 안의 모든 소음을 단숨에 제압했다.

"대원제국의 칙서라 하심은, 곧 칸(Khaan)의 신성한 명을 뜻하는 바입니다. 허나 제국의 대법전인 '대원전장(大元典章)' 제삼십육 권, 조공 및 속국 관리에 관한 조항에 따르면, 속국의 영토 내에서 생산되는 광물과 제련 시설의 처분권은 오직 '정동행성(征東行省)'의 정식 인장을 거친 공문서에 의해서만 발의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보얀의 눈썹이 꿈틀했다. 일개 고려의 서자 입에서 제국의 법전 이름이 튀어나올 줄은 예상치 못한 기색이었다.

신우는 멈추지 않았다.

"또한, 여기 제 손에 있는 문서를 보아 주십시오."

신우가 품 안에서 누런 한지를 꺼내 보였다. 그것은 은아랑이 장강 상회의 비선망을 통해 서경에서 긴급히 수송해 온 '서경 광업 특혜 문헌'이자, 일찍이 유인선에게서 강탈했던 서경 채굴권의 정식 법적 사본이었다.

"고려 태조 이래로 서경의 가마터와 철광 지대는 국가와 사가(私家)의 공동 소유로 법적 보호를 받아왔습니다. 원나라가 고려와 맺은 '세조구제(世祖舊例)'에 따르면, 제국은 고려의 고유한 관습법과 영토 내 사유 재산권을 침해하지 않기로 서약한 바 있습니다. 사신 각하께서 들고 계신 그 칙서가 과연 이 모든 조약을 무시하고 발의될 만한 합법적인 절차를 거친 것인지 의문이 드는군요."

"이 건방진 놈이!"

보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의 얼굴이 분노로 붉게 물들었다.

"감히 대국 사신의 면전에서 하찮은 고려의 구례와 법전을 논하며 황제의 권위를 능멸하려 드느냐! 이 칙서에 찍힌 옥새가 보이지 않는단 말이냐!"

그가 황색 비단 속의 칙서를 펼쳐 보였다. 붉은색 대형 인장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최영조 역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쐐기를 박으려 들었다.

"유신우, 네놈이 사법의 껍데기를 쓰고 역모를 꾀하는구나! 제국의 칙서는 곧 천자의 뜻이다. 법리 따위로 천자의 칼을 막을 수 있을 줄 알았더냐? 당장 검을 거두고 무릎을 꿇어라!"

조정의 호위병들이 신우의 주변을 에워싸며 분위기가 극도로 험악해졌다. 일촉즉발의 상황.

그러나 신우의 안색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뇌 속의 아카이브가 최종 연산을 끝마치고 해답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연산 완료: 1362년(지정 22년) 원나라 중서성 인장 규격 변경 법령 분석.] [제시 정보: 현재 제시된 칙서의 인장 규격은 가로세로 4.2인치. 이는 1360년에 폐기된 군사 전용 인장(추밀원인)의 규격이며, 현재 대도에서 발행되는 정식 황제 칙서의 규격(4.8인치)과 상이함. 또한 인장에 사용된 주사의 성분 중 '서안산 광물 납'의 비율이 비정상적으로 높음. 이는 원나라 북부 가마에서 임의로 제조된 위조 인장의 특징임.]

신우는 침착하게 한 걸음 더 앞으로 걸어 나갔다. 호위 무사들의 칼끝이 그의 목을 겨누었으나, 그의 시선은 오직 보얀이 든 칙서만을 향해 있었다.

"사신 각하. 제국의 법도를 그토록 중시하시는 분께서, 어찌하여 이미 유효기간이 지나 폐기된 '역적의 인장'을 들고 오셨습니까?"

방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보얀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격렬하게 흔들렸다.

"무…… 무슨 망발이냐!"

"지정(至正) 20년, 대도에서 반란을 일으켰던 볼라드 테무르(孛羅帖木兒)의 군세가 중서성을 장악했을 당시, 그들이 사사로이 위조하여 사용하던 추밀원의 옛 인장 규격은 가로세로 사촌 이분(4.2인치)이었습니다. 정식 황제의 인장은 사촌 팔분(4.8인치)이지요."

신우는 손가락으로 칙서 하단의 인장을 가리켰다.

"또한, 그 인장에 사용된 주사는 대도의 황실 관요에서 제작된 것이 아니라, 서안(西安)의 지방 군벌들이 급조한 조악한 납 주사입니다. 은아랑 행수가 서안 상가에서 입수한 비밀 장부에 따르면, 최영조 대감의 가문이 최근 서안의 군벌 세력에게 거액의 군량을 밀수출하고 그 대가로 이 '위조 칙서'의 발급을 청탁한 정황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더군요."

"이, 이럴 수가……!"

최영조의 얼굴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신우는 품 안에서 또 하나의 서책을 꺼내 탁자 위에 내던졌다. 그것은 과거 5화에서 은아랑이 목숨을 걸고 회수했던, 최영조 가문의 군량 횡령 및 원나라 기 황후 세력과의 밀통 증거가 담긴 비밀 서책이었다.

"사신 각하께서 들고 오신 칙서는 황제의 명이 아닌, 제국을 배반하고 군사를 일으키려던 군벌 세력의 사사로운 위조품입니다. 고려 조정의 법도에 따르면, 위조된 외교 문서를 사용해 국경 내 사유 재산을 찬탈하려 한 행위는 즉각적인 사법 사절 법령에 의거, 사형에 처할 수 있는 중죄입니다."

신우의 목소리가 벼락처럼 사신관 내부에 내리쳤다.

"각하. 제국의 사신이라는 신분을 잃고, 한낱 위조범이자 밀수꾼의 공범으로 고려의 형틀에 오르고 싶으십니까?"

보얀은 이마에서 비오듯 땀을 흘렸다. 그의 손바닥에 쥐어진 황색 비단이 부르르 떨렸다.

신우의 말은 단순한 협박이 아니었다. 원나라 내부의 권력 구도와 인장의 규격, 심지어 주사의 성분까지 완벽하게 꿰뚫고 있는 이 괴물 같은 사내 앞에서, 자신들이 준비한 조잡한 연극은 완전히 파탄 나 있었다.

"이…… 이건 오해다! 내 어찌 황제의 인장이 위조된 것임을 알았겠는가! 중서성의 하급 관리들이 나를 기만함이 틀림없다!"

보얀은 다급히 칙서를 품에 쑤셔 넣으며 뒤로 물러섰다.

"내 즉시 대도로 복귀하여 이 일을 철저히 규명할 터이니, 오늘의 일은 없었던 것으로 하겠다!"

"각하! 어찌하여 회군하려 하십니까!"

최영조가 다급하게 소리쳤으나, 보얀은 이미 자신의 호위 무사들을 이끌고 사신관 밖으로 도망치듯 빠져나가고 있었다. 원나라의 무력을 빌려 신우를 압살하려던 최영조의 거대한 음모가, 신우의 철저한 법리 분석과 외교적 정보력 앞에 단번에 찢겨 나간 것이다.

사신관 넓은 방 안에는 이제 최영조와 신우, 그리고 몇몇 고려 관리들만이 남았다.

신우는 싸늘한 아침 햇살을 받으며 최영조를 내려다보았다.

오른뺨의 경련은 멈추지 않았고, 왼손은 여전히 납덩이처럼 무거웠지만, 그의 눈빛만큼은 승리자의 그것이었다. 완전히 고립된 최영조의 이마에서 굵은 땀방울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최 대감."

신우가 낮게 읊조렸다.

"법도 뒤에 숨어 외세를 끌어들이는 짓은 이제 통하지 않습니다. 다음은 대감 가문의 차명 토지 상속권을 도려낼 차례입니다."

최영조는 이가 부러질 정도로 악물었다. 그의 눈에 살기가 가득 찼다. 이대로 물러선다면 가문의 모든 이권이 이 서자 놈의 손에 합법적으로 고사당할 터였다.

최영조는 품 안에서 미리 준비해 두었던 붉은색 비단 주머니를 꺼내 들었다. 그의 입가에 광기 어린 미소가 걸렸다.

"유신우…… 네놈이 법을 잘 안다 자만하는구나. 허나 이 고려의 하늘 아래, 황실의 안위보다 더 높은 법은 없다."

그가 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고려 국왕에게 직접 올리는 정식 상소문이었다.

"네놈과 벽란도의 은아랑이 남방의 한족 반란군 세력인 '명나라'와 결탁하여 대원제국을 전복하고, 고려의 왕실을 갈아치우려 밀지를 주고받았다는 결정적 물증이 여기 있다. 이 상소가 주상 전하의 보좌에 오르는 순간, 네놈들은 사법의 보호를 받는 사대부가 아니라, 사지가 찢겨 죽을 대역죄인이 될 것이다!"

최영조의 목소리가 공허한 사신관 내부를 울렸다.

다시 한번 불어오는 폭풍의 전조 속에서, 신우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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