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네놈과 벽란도의 은아랑이 남방의 한족 반란군 세력인 '명나라'와 결탁하여 대원제국을 전복하고, 고려의 왕실을 갈아치우려 밀지를 주고받았다는 결정적 물증이 여기 있다. 이 상소가 주상 전하의 보좌에 오르는 순간, 네놈들은 사법의 보호를 받는 사대부가 아니라, 사지가 찢겨 죽을 대역죄인이 될 것이다!"

최영조의 목소리가 사신관의 높은 대들보를 때리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붉은 비단 주머니를 치켜든 그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으나, 눈빛만큼은 독사에 물린 자의 그것처럼 집요했다. 한 걸음만 뒤로 물러서도 낭떠러지라는 것을 직감한 노회한 권문세족의 마지막 발악이었다.

유신우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싸늘한 아침 공기가 뺨을 스쳤다. 왼손 끝에서부터 시작된 둔중한 마비감이 이제 팔꿈치를 넘어 어깨관절 부근까지 젖은 가죽처럼 무겁게 조여들고 있었다. 뇌리를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극통이 밀려왔지만, 신우는 단지 입꼬리를 미세하게 올렸을 뿐이다.

"황실의 안위라 하셨습니까."

신우의 목소리는 낮고 평온했다. 폭풍의 중심부처럼 기이할 정도로 고요한 음색이었다.

"좋습니다. 대감의 그 충정 어린 상소, 내 기꺼이 주상 전하의 면전에서 직접 확인해 드리지요."

***

두 시진 뒤, 고려 개경의 중심이자 권력의 심장부인 편전(便殿).

공민왕은 보좌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안광을 번뜩이며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발치 아래에는 최영조가 올린 붉은 비단 주머니 속 상소문이 풀려 헤쳐져 있었다.

도평의사사의 고위 관료들과 신진사대부들이 편전 양옆으로 늘어서서 숨을 죽였다. 공기 자체가 얼어붙은 듯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판결청 서자 유신우, 그리고 장강 상회의 은아랑이 한족 반란군과 내통했다는 밀지라……."

왕의 목소리가 낮게 읊조려졌다. 왕은 상소문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최 대감.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단순한 사법의 문제를 넘어 사직의 안위를 흔드는 대역죄다. 증좌는 확실한가?"

최영조가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가며 홀을 쥐어짜듯 움켜잡았다.

"전하! 벽란도의 장강 상회는 본래 강남 땅의 약재와 비단을 들여오는 명목으로 조정의 허가를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남방의 반란 괴수 주원장 세력에게 고려의 군량과 구리를 밀수출하는 도적 떼에 불과합니다! 여기 유신우가 그 배후에서 사법적 방패막이가 되어주고, 은아랑이 자금을 대어 명나라의 조공 약조를 미리 받아내려 한 정황이 이 서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사옵니다!"

최영조의 기세는 거침이 없었다.

그의 뒤편에 서 있던 유씨 가문의 적자, 유인선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득달같이 말을 얹었다.

"전하! 유신우는 가문의 법도를 어기고 사사로이 가산을 탈취한 자이옵니다. 이제는 그 탐욕이 하늘을 찔러 나라를 팔아먹으려 하니, 즉시 의금부로 압송하여 가신들과 함께 국문하셔야 하옵니다!"

유인선의 입가에 비열한 승리감이 번졌다. 법정에서 유신우에게 당했던 굴욕을 단번에 씻어내겠다는 적의가 노골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조정의 관리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명나라와의 밀통은 현재 원나라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고려 조정으로서는 역린 중의 역린이었다. 아무리 유신우가 법리에 밝다 한들, 이 거대한 외교적 덫 앞에서는 살아남기 어려워 보였다.

그러나 유신우는 그 모든 소란을 응시하며 조용히 품 안에서 누렇게 바랜 종이뭉치와 가죽으로 장정된 서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전하."

신우가 조용히 상소했다.

"최 대감의 상소는 일견 충성스러워 보이나, 실상은 자신의 범죄를 감추기 위한 비루한 연극에 불과하옵니다."

"뭐라? 이놈이 감히 어전에서 망발을 하는구나!"

최영조가 호통을 쳤으나, 신우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말을 이어 나갔다.

"여기 제가 들고 있는 것은, 지난 지정(至正) 연간 원나라에 공녀를 파견할 당시 최영조 대감의 가문이 작성한 군량 수급 비밀 장부와, 당시 원나라 사신단의 한족 통역관이었던 사내가 작성한 사문 서책이옵니다. 은아랑 행수가 목숨을 걸고 원나라 서안의 상가에서 회수한 실증이옵니다."

'지정 연간의 공녀 파견 장부'라는 말이 나오자, 최영조의 얼굴에서 순간적으로 핏기가 가셨다.

신우는 담담하게 서책을 펼쳐 들었다.

"당시 고려는 원나라의 강요로 수만 섬의 군량을 조공으로 바쳤습니다. 그러나 이 장부에 적힌 수치를 보십시오. 원나라 표기법상 요양행성으로 송출되어야 할 군량 삼만 섬 중, 실제로 대도(大都)에 도달한 것은 일만 섬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사라진 이만 섬은 어디로 갔겠습니까?"

신우는 시선을 최영조에게로 고정했다.

"그 이만 섬의 군량은 요동의 밀무역 거상을 거쳐, 당시 강남에서 세력을 키우던 한족의 장강 군웅들에게 역조공 형태로 흘러갔습니다. 최 대감 가문은 원나라의 권세를 빌려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 조공을 바치는 척하면서, 뒤로는 명나라의 전신인 한족 반란군 세력에게 군량을 팔아 막대한 사적 이익을 취해왔던 것입니다."

"이, 무슨 터무니없는 모함인가! 전하, 저 서자는 지금 위조된 장부로 조정을 기만하고 있사옵니다!"

최영조의 목소리가 뒤집어졌다.

그러나 신우의 공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외교부 비밀 아카이브'가 요란한 경고음과 함께 회전하기 시작했다.

[역사 왜곡 동기화율: 41.2%... 43.5%... 45.0% 돌파.] [인과율 보정에 따른 신경계 과부하 발생. 말초 신경 마비 및 흉부 압박 진행.]

폐부 깊은 곳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치밀어 올랐다. 신우는 이가 부러질 정도로 어금니를 악물며 비단 손수건으로 입가를 훔쳤다. 손수건에 붉은 핏자국이 선명하게 배어났지만, 그는 손을 소매 속으로 밀어 넣으며 미소를 잃지 않았다.

고통이 극에 달할수록 그의 두뇌는 더욱 냉철하고 정밀하게 작동했다.

"위조라 하셨습니까? 대감."

신우가 차갑게 읊조렸다.

"이 장부에 찍힌 인장은 원나라 중서성 공문서 검인장과 일치할 뿐만 아니라, 주사의 성분 역시 대도에서만 생산되는 특제 광물 주사입니다. 또한, 여기 적힌 수송 날짜와 대동세 배당 수치들은 고려 전리사(典理司)의 세무 대장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물립니다. 기 판관님, 전리사의 기록을 확인해 주시겠습니까?"

뒤에 서 있던 판관 기철민이 무거운 걸음을 앞으로 옮겼다.

그의 손에는 두꺼운 관청 장부가 들려 있었다. 기철민은 유신우의 비정하리만큼 철저한 공작에 경악하면서도, 자신이 평생을 바쳐온 법도를 바로잡기 위해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유인선이 발악하듯 기철민의 앞을 가로막았다.

"비키시오, 기 판관! 그 장부는 조작된 것이 틀림없소! 사법을 집행하는 자가 어찌 저 서자 놈의 사술에 놀아난단 말이오!"

유인선은 기철민의 손에 들린 법조 수첩과 장부를 억지로 빼앗으려 손을 뻗었다. 편전 한복판에서 기득권의 오만함이 극에 달한 추태였다.

"무례하도다!"

기철민이 서릿발 같은 호통과 함께 유인선의 손을 거칠게 쳐냈다. 유인선은 중심을 잃고 바닥으로 사정없이 나동그라졌다.

"어전이옵니다! 유 도령,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사법의 장부를 강탈하려 드는가!"

기철민은 바닥에 엎어진 유인선을 차갑게 내려다본 뒤, 국왕을 향해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장부를 펼쳐 낭독하기 시작했다.

"전하, 전리사 조세 행정 장부에 기록된 최씨 가문의 사설 금고 내역과 대동세 배당 액수를 대조해 본 결과가 여기 있사옵니다. 최영조 대감은 가문의 차명 토지들을 사패지(賜牌地)로 위장하여 세금을 포탈해 왔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축재한 은자 이만 냥을 매년 벽란도의 밀무역선을 통해 남방으로 송출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조공 누락이 아니라, 고려의 국부를 유출하여 사적인 군사 세력을 키우려 한 명백한 대역 무도한 행위이옵니다!"

기철민의 낭독이 이어질수록 편전 안은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최영조가 숨겨둔 사설 금고의 비밀 번호와 같은 정밀한 액수, 대동세 배당의 구체적인 흘러간 경로가 백일하에 드러나자, 대신들은 더 이상 최영조를 옹호할 명분을 찾지 못했다.

"이…… 이럴 수가……."

최영조의 손에서 붉은 비단 주머니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가 평생을 걸쳐 쌓아 올린 가문의 영광과 법도의 장막이, 유신우가 던진 정교한 법리적 덫과 은아랑이 가져온 비밀 장부 앞에 단 한 장의 종이 조각처럼 찢겨 나간 것이다. 자신들이 저지른 조공 누락과 밀무역의 죄상이 그대로 자신들의 목을 옥죄는 칼날이 되어 돌아왔다.

"최영조."

공민왕의 목소리가 편전의 천장을 흔들었다. 국왕의 얼굴은 분노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네놈이 대원제국의 권세를 빌려 과인을 겁박하고, 뒤로는 사사로이 재물을 탐하여 사직을 위태롭게 하였구나. 그것도 모자라 죄 없는 사대부와 상인을 무고하여 조정을 분열시키려 해?"

"전하! 이 모든 것은 오해이옵니다! 저 서자 놈이 제 가문을 몰락시키기 위해……!"

"닥쳐라!"

왕이 용상을 내리쳤다. 쿵 하는 굉음과 함께 최영조는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당장 저 역적 놈의 관직을 삭탈하고, 최씨 가문의 가산과 개경 내 수하 가신단을 즉시 가압류하라! 전리사와 의금부는 한 놈도 빠짐없이 압송하여 철저히 국문하라!"

"전하! 전하어어!"

최영조는 비명을 지르며 의금부 포졸들에게 끌려 나갔고, 유인선 역시 사색이 된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그 뒤를 따라 주저앉았다.

완벽한 승리였다.

법도와 선례를 역이용한 합법적 고사. 권문세족의 거두는 그렇게 자신들이 파놓은 구덩이에 스스로 빠져 자멸했다.

신우는 소매 속에서 피로 물든 손수건을 꽉 쥐었다.

폐부의 통증은 여전했고, 왼손은 마치 유리가 되어 깨질 것처럼 서늘하게 마비되어 있었지만, 그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도 타오르고 있었다. 이제 고려의 조정은 그의 손아귀 안으로 한 걸음 더 들어왔다.

그러나 그 승리의 여운을 음미할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편전의 무거운 청동 문이 거칠게 열리며, 흙먼지를 뒤집어쓴 전령이 비틀거리며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보, 보고드립니다!"

전령은 바닥에 슬라이딩하듯 엎어지며 숨을 헐떡였다. 그의 얼굴은 검은 그을음과 공포로 찌들어 있었다.

"이가온 장인의 제련소에서…… 이가온 장인의 제련소에서 정체불명의 괴한들이 습격을 감행했습니다! 지금 제련소 고로에서 노란 광이 폭발하듯 솟구치며 불길이 도성 북쪽을 덮치고 있사옵니다!"

신우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크게 흔들렸다.

서경 세력이 훔쳐 간 도면과 원석, 그리고 아직 완성되지 않은 고온 제련 설비.

또 다른 거대한 음모의 불꽃이, 이미 개경의 밤하늘을 노랗게 물들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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