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둥-! 둥-! 둥-!

귀를 찢는 구군격(九軍擊)의 징소리가 동문관의 높은 천장을 흔들었다. 연회장의 화려한 촛불들이 진동에 맞춰 파르르 떨렸다. 바닥에 엎어진 전령의 등 가죽에 눌러붙은 핏자국에서 시큼한 혈향이 풍겼다. 원나라 사단이 압록강을 건넜다는 비보. 방금 전까지 이가온이 벼려낸 신형 탄소강 검을 보며 침을 삼키던 도평의사사의 대신들과 장수들의 얼굴에서 핏기가 일시에 가셨다.

"원나라의 철기라니…… 정녕 북원(北元)의 대군이 남하한단 말인가!"

"이 무슨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냐!"

좌중이 비명 같은 웅성거림으로 가득 찼다. 최영조는 꽉 쥐고 있던 주먹을 서서히 풀며, 입가를 기괴하게 일그러뜨렸다. 신우를 매섭게 노려보던 그의 눈빛에 한 줄기 비열한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국가의 위기는 권문세족에게 언제나 가장 훌륭한 신분적 방패막이이자, 사리사욕을 채울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최영조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화사한 관복 소맷자락이 허공을 갈랐다.

"모두 진정들 하시오! 나라의 사직이 누란의 위기에 처했거늘, 어찌 이까짓 쇠붙이 장난감에 한눈을 팔고 있을 여유가 있겠소. 당장 도평의사사 특별 회의를 소집해야 하오!"

그의 시선이 신우가 들고 있는 탄소강 검을 스치듯 지나쳐, 판결청 판관 기철민에게 머물렀다.

"기 판관, 그리고 거기 서 있는 서자 놈도 마찬가지다. 사직의 안위보다 가문의 이권을 앞세우던 자들이 이 전란 앞에서 어떤 표정을 지을지 내 똑똑히 지켜보겠다."

최영조가 거만한 걸음걸이로 연회장을 빠져나갔다. 대신들이 그 뒤를 허겁지겁 따랐다. 신우는 검을 조심스럽게 검집에 밀어 넣었다. 서늘한 쇠붙이가 맞물리는 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유랑(유신우)."

기철민이 다가와 신우의 어깨를 짚었다. 그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건 단순한 국경 충돌이 아닐세. 원나라가 정식 사단을 움직였다면, 개경까지 밀고 내려오는 것은 시간문제야. 조정의 법도고 뭐고, 군홧발 아래서는 모두 무용지물이 되네."

"그렇지 않습니다, 판관 나리."

신우가 차갑게 대꾸했다. 그의 왼손 끝이 딱딱하게 굳어 들어갔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운 열기가 치밀어 올랐다. 아카이브를 활성화하려는 뇌의 신호가 육체를 갉아먹기 시작한 증거였다.

*역사 왜곡 동기화율 28.5%*

시야 한구석에 붉은 경고등이 명멸했다. 왼팔의 감각이 팔꿈치를 넘어 어깨 부근까지 서늘하게 마비되어 갔다. 입안에서 비릿한 철분 냄새가 맴돌았으나, 신우는 침을 삼키듯 핏물을 삼켰다. 지금 물러서면 최영조가 쳐놓은 사법 계엄의 그물망에 갇혀 제련소도, 벽란도의 자금줄도 모두 압수당한다.

"판관 나리께서는 저를 배후 참모로 동행해 주십시오. 도평의사사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자네가 거길 들어오겠다고? 서자의 신분으로 도평의사사의 특별 회의에 참관하는 것은 국법 위반이네!"

"전리사(典理司)의 세무 실무를 담당하는 서리(書吏)의 자격이라면 가능합니다. 기 판관 나리의 직무 권한 내에서 임시 임명하실 수 있는 자리이지요. 법도 뒤에 숨어 나라를 팔아먹으려는 자들의 목줄을 죄려면, 그 현장에 제가 있어야 합니다."

기철민은 신우의 흔들림 없는 눈동자를 응시했다. 그 눈빛은 전란의 공포에 질린 자의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사냥감을 몰아넣는 사냥꾼의 집요함이 깃들어 있었다. 기철민은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

도평의사사의 정청(政廳)은 무거운 침묵과 긴장감으로 터질 듯했다. 촛불마저 가쁘게 숨을 쉬는 넓은 대청마루 위에 삼사(三司)의 고위 관료들과 권문세족의 영수들이 빼곡히 들어앉았다.

최영조가 상좌에 앉아 탁자를 내리쳤다.

"서경 수비대의 장계에 따르면, 원나라의 선봉대는 무려 2만 명에 달하오. 이들을 막아내고 사직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당장 서경 이북의 방어선을 구축하고 군량미를 조달해야 하오. 이에 본인은 도평의사사의 이름으로 특별 안건을 상정하는 바요!"

그가 두꺼운 서책 한 권을 들어 올렸다. 겉면에 '임시 군비 조달 및 사패지 세제 면제 구례(舊例)'라고 적혀 있었다.

"원나라의 대군을 막기 위해 각 가문이 사적으로 거느린 사병들을 전방으로 출정시켜야 하오. 그 대가로, 출정하는 공신 가문들의 사패지(사유지)에 부과되는 모든 조세를 영구히 면제하고, 대신 일반 백성들에게 '군량수선세'를 추가로 징수하여 군비를 충당해야 마땅하오!"

좌중에 앉아 있던 친원파 대신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가문의 사병을 내놓는데, 세금까지 내라 하는 것은 도리에 어긋납니다!"

기철민이 벌떡 일어나려 했으나, 그의 뒤에 서리 복색을 하고 서 있던 신우가 그의 옷자락을 가볍게 잡아당겼다. 기철민이 의아한 눈빛으로 뒤를 돌아보자, 신우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감정에 호소하지 마십시오. 저들이 내세운 '구례'의 법리적 맹점을 찔러야 합니다."

신우는 소매 안에서 아카이브에서 인출한 '고려 전리사 세법 조례(1362년 판본)'와 '태조 개태 연간 사패지 하사 원칙'을 머릿속으로 대조했다. 뇌리를 스치는 방대한 데이터가 그의 신경망을 자극하자, 왼손 끝이 다시 한번 경련했다. 하지만 그의 입술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움직였다.

"판관 나리, 태조 대왕께서 세우신 개태 연간의 법률 제7조를 발언하십시오. '국가에 전란이 발생했을 시, 사패지를 하사받은 공신 가문은 그 토지 면적 10결당 1명의 갑사(갑옷을 입은 군사)와 군량 5석을 무상으로 조정에 납부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면제가 아니라, 오히려 의무 부과입니다."

기철민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는 신우가 읊어준 구절을 그대로 조정의 대청 위에 사자후처럼 토해냈다.

"최 대감! 그것이 무슨 터무니없는 소리요! 태조 대왕의 개태 연간 법률 제7조에 따르면, 전란 시 사패지는 세금 면제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10결당 갑사 1명과 군량 5석을 의무적으로 납입해야 하는 법적 의무가 있소! 도대체 어떤 구례를 근거로 영구 면제를 주장하는 것이오!"

조정 안이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최영조의 눈썹이 꿈틀했다.

"기 판관, 지금 나라가 망하게 생겼는데 고리타분한 태조 시절의 법전을 들이대는가? 현실을 보라! 가문들이 협조하지 않으면 당장 서경이 무너진다!"

이때, 기철민의 등 뒤에 서 있던 서리 복장의 신우가 한 걸음 앞으로 걸어 나왔. 대신들의 시선이 하급 서리에게 쏠렸다. 감히 도평의사사의 정청에서 서리 따위가 발언하려 하자, 최영조의 가신 중 하나가 호통을 쳤.

"무엄하다! 어느 안전이라고 서리 놈이 끼어드는가!"

"경들의 무능함이 조정을 뒤덮고 있기에, 실무를 담당하는 서리로서 법을 증명하고자 할 뿐입니다."

신우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으나, 넓은 정청 전체를 압도하는 무게감이 있었다. 그는 소매에서 은아랑을 통해 확보했던 최영조 가문의 비밀 장부 사본을 꺼내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최 대감께서는 원나라의 철기 2만이 압록강을 건넜다고 하셨습니까? 그리고 그들을 막기 위해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야 한다고 하셨습니까?"

신우는 아카이브에서 인출한 당시 요동 정세의 비밀 보고서를 머릿속으로 복기했다.

[명나라 태조 주원장의 장수 서달(徐達)이 이끄는 25만 대군이 화북을 평정하고 요동으로 북상 중. 기황후 계열의 북원 군대는 명군과의 결전을 피하기 위해 후방의 보급로를 확보하고자 고려 국경을 위협하는 척 공갈을 치고 있음. 실제 압록강을 건넌 군세는 정규 사단이 아닌, 보급이 끊겨 도망친 3천여 명의 패잔병과 약탈 목적의 번병(蕃兵)들에 불과함.]

이 정량적이고 정밀한 외교적 정보는 현재 고려 조정의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미래와 외교의 영역이었다.

"거짓 상달로 조정을 기만하지 마십시오."

신우가 차가운 눈빛으로 최영조를 응시했다.

"원나라는 지금 남쪽에서 밀고 올라오는 대명(大明)의 25만 대군에 밀려 요동에서 패퇴하는 중입니다. 압록강을 건넌 자들은 정규 사단이 아니라, 보급을 약탈하러 온 패잔병 3천여 명에 불과합니다. 이 사실을 숨기고 '원나라 대군 침공'이라는 거짓 보고를 올려 사법 계엄을 선포하려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무, 무슨 근거로 그런 망발을 하는 것이냐! 원나라의 전권 사신이 직접 전해온 공문이 있거늘!"

최영조가 당황하여 소리쳤다. 그의 이마에 미세한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 공문 자체가 위조된 과잉 수기이기 때문입니다."

신우는 지체 없이 최영조 가문이 원나라 기황후 세력과 밀통하며 군량을 빼돌린 비밀 서책의 페이지를 펼쳐 대신들에게 보여주었다.

"여기 최 대감의 가문에서 작년 가을에 원나라 서안 상가로 보낸 군량 수급 조서가 있습니다. 원나라 사신이 요구한 조공 액수보다 무려 3만 석이 과잉 계상되어 있습니다. 이 차액은 어디로 갔습니까? 바로 최 대감의 사유지로 흘러 들어갔고, 그 토지는 지금 세금 한 푼 내지 않는 사패지로 위장되어 있습니다. 전란을 핑계로 사패지의 조세를 영구 면제하려 한 것은, 이 횡령금과 차명 토지를 합법적으로 은닉하기 위함이 아닙니까!"

정청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대신들은 신우가 제시한 장부의 치밀한 숫자들과 관인들을 보며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관세와 조세의 계산법이 너무나 철저하여, 단 1동의 쌀알조차 어긋나지 않게 맞춰져 있었다.

기철민은 신우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등등한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이 자는 단순한 모사가 아니다. 도평의사사 전체의 이권 역학과 세법의 허점을 완전히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놀리고 있어. 아군마저도 도구로 삼을 법한 이 비정함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신우는 기철민의 시선을 무시한 채, 법전을 들어 올렸다.

"고려 전리사 법 제12조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국가 비상사태를 틈타 군량을 허위 보고하거나, 사패지의 조세를 포탈하려 한 자는 그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관직을 박달하며, 가산의 3분의 2를 몰수하여 군비로 충당한다.' 또한 이를 방조한 도평의사사의 관할 시랑들 역시 직무유기죄로 유배형에 처해질 것입니다."

신우의 시선이 친원파 대신들을 차례로 훑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실질적인 사법적 칼날이 실려 있었다.

"대신 여러분, 최 대감의 거짓 안건에 동조하여 가산이 몰수되고 귀양길에 오르시겠습니까? 아니면 법도에 따라 최 대감 가문의 차명 토지 상속권을 박탈하고 군비를 환수하시겠습니까?"

"이, 이럴 수가……"

"최 대감, 정녕 방금의 안건이 사실과 다른 것이오?"

담합하여 법전을 주무르려던 노회한 권문세족들이 식은땀을 흘리며 동요하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목숨과 가산이 걸린 사법적 형벌 조항 앞에서 그들의 결속력은 모래성처럼 허물어졌다.

"표결을…… 취소하겠소! 군비 조달 안건은 다시 논의하는 것이 맞겠소!"

"나 역시 표결에 반대하오!"

대신들이 줄줄이 말을 번복하며 최영조로부터 등을 돌렸다. 단 몇 분 만에 도평의사사를 장악하고 있던 최영조의 외교적, 정치적 발판이 송두리째 뽑혀 나간 순간이었다.

최영조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들부들 떨며 신우를 매섭게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은 분노로 검붉게 죽어 있었다. 법리적 공방에서 완패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더 이상 조정에 남아 있지 않았다.

"유신우…… 네놈이 오늘 내 가문의 명예와 사직의 대계를 망쳤다. 내 결코 이 수모를 잊지 않을 것이다!"

최영조는 소매를 휘날리며 정청을 빠져나갔다. 그의 뒷모습은 패배자의 그것이었으나, 그의 눈빛 속에 담긴 살기는 그 어느 때보다 짙었다.

신우는 차갑게 식어버린 왼손을 가만히 움켜잡았다. 승리의 대가로 가슴 통증이 밀려왔지만, 그의 표정은 여전히 동요가 없었다.

정청의 무거운 문이 닫히고, 음침한 복도로 나온 최영조는 기다리고 있던 그의 가신을 은밀히 불러 세웠다. 그의 목소리는 뱀의 숨소리처럼 낮고 살벌했다.

"지금 당장 벽란도로 가라."

"예, 대감. 무슨 명을 내리시겠습니까?"

"유신우 그 서자 놈의 돈줄과 철강 원석이 모두 벽란도의 장강 상회와 얽혀 있다. 내 사병들을 움직여 벽란도 항만을 군사력으로 원천 폐쇄하라. 단 한 척의 배도, 단 한 근의 철강도 벽란도를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라. 숨통을 끊어놓을 것이다."

어둠 속에서 최영조의 일그러진 미소가 번뜩였다. 고려의 조정을 뒤흔든 세제 개혁의 승리 뒤편으로, 벽란도를 향한 거대한 무력의 폭풍이 태동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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