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고로에서 뿜어져 나오는 노랗고 붉은 열기가 가마터의 어둑한 천장을 가득 채웠다. 개량된 수평 송풍구에서 뿜어 나오는 일정한 바람 소리가 사위의 침묵을 찢었지만, 그 맹렬한 불길 속에서도 차가운 쇳소리는 가려지지 않았다.
스릉.
지붕의 깨진 기와 틈새로 떨어진 먼지가 붉은 화염에 타들어 갔다. 유신우는 눈을 가늘게 뜨며 어둠이 짙게 깔린 가마터 입구와 거대한 나무 기둥 뒤편을 응시했다. 검은 그림자 일곱이 일제히 무기를 뽑아 들고 모습을 드러냈다. 날 선 장도가 불빛에 반사되어 번뜩였다.
"거기까지다, 가문의 수치스러운 서자 놈."
앞장선 사내의 목소리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유인선이 사주하여 보낸 사가(私家)의 자객들이 분명했다. 그들의 가슴팍에는 유씨 가문의 음각이 새겨진 가죽 보호대가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사내의 손에 들린 도검은 잘 벼려진 군용 환도였다.
사내들이 한 걸음씩 좁혀오자, 제련소 구석에서 석탄을 나르던 이가온이 쇠망치를 치켜들며 소리쳤다.
"이 빌어먹을 놈들이 어디라고 함부로 발을 들이밀어! 여기가 어느 안전이라고 칼부림이냐!"
"시끄럽다, 늙은 장인 놈. 우리는 조정의 밀무역 금령 위반 현장을 수색하러 온 가문의 정당한 감시자들이다. 이 서자 놈이 벽란도의 천한 상인과 결탁하여 가문의 철강 원석을 빼돌리고 야장(冶匠)을 사사로이 부린다는 고발이 접수되었다. 모두 무릎을 꿇어라!"
우두머리 사내의 목소리가 텅 빈 가마터에 웅웅 울려 퍼졌다. 유인선이 그들에게 씌워준 '밀무역 단속'이라는 가당치도 않은 명분이었다. 가문의 권위를 빌려 사사로이 폭력을 행사하려는 얕은 수작에 불과했다.
은아랑은 조용히 신우의 뒤로 물러서며 소매 안쪽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녀의 손끝이 벽란도 도방의 신호용 호각을 만지작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경계심과 함께 상황을 관망하는 영민함이 서려 있었다.
신우는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고로의 열기를 등진 채, 사내들을 향해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를 뱉었다.
"조정의 밀무역 금령이라. 유인선이 네놈들에게 법률을 가르치던가? 아니면 그 알량한 가문의 문양이 새겨진 가죽 쪼가리가 너희에게 사법권을 부여한다고 믿는 건가?"
"닥쳐라! 서자 주제에 가문의 대소사에 입을 놀리다니. 여기서 네놈의 사지를 잘라 가문으로 압송해도 법도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
우두머리가 장도를 비스듬히 겨누며 돌진하려던 찰나였다.
휘이이익!
은아랑의 입술 사이에서 짧고 날카로운 파공음이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가마터의 무너진 벽면과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쇠사슬과 쇠뇌를 든 사내들이 귀신처럼 쏟아져 나왔다. 은아랑이 이끄는 벽란도 사천가 상단의 정예 호위 무사 열두 명이었다. 그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유인선의 사병 일곱 명을 순식간에 포위했다.
철컥,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장전된 쇠뇌의 화살촉이 자객들의 목덜미를 겨누었다. 순식간에 공수의 위치가 뒤바뀐 형국이었다.
"이, 이게 무슨 짓이냐! 감히 벽란도의 장사꾼 무리가 사대부 가문의 사병들에게 무기를 겨누는가!"
우두머리 사내가 당황하여 목청을 높였다. 칼을 잡은 그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수적 열세는 물론이거니와, 상대가 쥐고 있는 쇠뇌의 파괴력을 잘 아는 눈치였다.
신우는 천천히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의 걸음걸이에는 미동조차 없었다.
"벽란도의 상인은 사대부 가문의 사병을 겨눌 수 없다고 배웠나 보군. 하지만 고려의 국법은 다르게 말하고 있다."
신우가 품에서 판결청의 직인이 찍힌 정식 주거권 및 제련소 독자 관리권 문서를 꺼내 들어 보였다. 붉은 인장이 가마터의 불빛을 받아 기괴하게 빛났다.
"고려 국법 권무제(權務制) 제삼십이 조, 그리고 공민왕 즉위년 사가 병력 수색 금지령에 따르면, 도평의사사의 공식 수색첩이나 판결청의 영장 없이 사가의 사병이 무장을 한 채 타인의 사유지에 난입하는 행위는 그 즉시 '반역'에 준하는 사병 모반죄로 다스려진다. 또한, 이곳은 판결청의 판결에 의해 유인선이나 유씨 가문의 관할에서 완전히 배제된 나의 사유지다. 너희가 쥔 무기는 법의 칼날이 아니라, 너희 가문 전체의 목을 죌 올가미다."
"헛소리 마라! 우리는 가문의 명을 수행할 뿐이다!"
"가문의 명? 가문의 가법(家法)이 고려 조정의 국법 위에 존재한단 말이냐?"
신우의 목소리가 채찍처럼 사내의 고막을 때렸다.
"너희가 지금 행하는 짓은 정당한 수색이 아니라, 사법권을 참칭한 무단 가택 침입이자 살인 미수다. 도평의사사의 판례 중 우왕 치세 초기에 발생한 '이씨 가문 사병 참수 사건'을 기억하는가? 도평의사사의 허가 없이 사가 무장 병력을 움직여 사유지를 수색한 가신 전원이 개경 저잣거리에서 목이 잘렸다. 그 배후에 있던 가주 역시 유배형을 면치 못했지."
우두머리 사내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신우가 읊조리는 법률적 선례들은 단순한 위협이 아니었다. 고려의 엄격한 가문 서열법과 품계별 직무 권한을 역이용한, 완벽한 사법적 그물망이었다.
"선택해라."
신우가 사내를 내려다보며 건조하게 말했다.
"무기를 내려놓고 포박당해 판결청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여기서 반역죄로 즉결 처형당해 개천에 버려질 것인가. 은 행수, 저들이 무기를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그 즉시 시신으로 만들어라. 사유지 방어권에 따른 정당방위는 이미 판결청의 구례로 확립되어 있으니 걱정할 것 없다."
"예, 도련님. 시신을 치우는 것은 벽란도 상인들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은아랑이 생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녀의 미소 뒤에 서린 냉혹함에 자객들은 완전히 기가 질려 버렸다.
틱, 타당!
결국 우두머리 사내가 쥐고 있던 장도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쇳소리가 가마터 바닥에 요란하게 울려 퍼지자, 나머지 사병들도 차례로 무기를 버렸다. 은아랑의 호위 무사들이 신속하게 다가가 그들의 팔을 뒤로 꺾고 밧줄로 포박하기 시작했다.
상황은 단 몇 분 만에 종료되었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오직 법리적 위압감과 준비된 병력만으로 유인선의 자객들을 완벽하게 무력화한 것이다.
"이 무슨... 무법천지란 말이냐!"
이가온이 바닥에 쓰러진 자객들을 보며 쇠망치를 바닥에 내던졌다. 그의 거친 얼굴이 분노와 두려움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유 도령! 내 평생 쇠를 다루며 온갖 꼴을 다 보았다만, 내 신성한 대장간에 이토록 비열한 관료들의 칼싸움과 야비한 수작이 판치는 것은 참을 수가 없다! 네놈은 이 신성한 불꽃을 그저 네 권력 투쟁의 불쏘시개로 쓰려는 것이냐? 내 기술을 이런 더러운 싸움에 팔아넘길 수는 없다!"
노장의 장인은 숨을 씩씩거리며 신우를 쏘아보았다. 장인으로서의 자부심과, 자신을 사지로 몰아넣은 법적 암투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이었다.
신우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이가온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는 고로의 불길을 담고 있으면서도, 얼음처럼 차가웠다.
"이가온 장인."
신우의 목소리는 낮고 무거웠다.
"장인의 손끝에서 나오는 강철이 고려를 구할 명검이 되기 전에, 장인의 목숨이 먼저 유씨 가문의 칼날에 사라졌을 것입니다. 생각하십시오. 장인이 아무리 위대한 검을 만든들, 권문세족이 군대를 이끌고 와 장인의 목을 베고 제련소를 빼앗아 간다면 그 검이 장인을 지켜줄 수 있습니까?"
"그, 그것은..."
"중세의 장인을 지켜주는 것은 검의 날카로움이 아닙니다. 장인을 둘러싼 법률적 외피, 즉 조정이 인정하는 독점적 권리와 가문이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제도적 장벽뿐입니다. 내가 장인을 이곳 사천가 깊숙한 곳에 두고 법의 이름으로 이 공간을 묶어둔 것은, 장인의 안전과 기술을 온전히 보장하기 위함입니다. 장인이 오직 쇠만 두드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 그것이 내가 하고자 하는 법의 역할입니다."
이가온은 입을 다물었다. 신우의 말에는 반박할 수 없는 철저한 현실적 논리가 담겨 있었다. 법이 없으면 기술도 존재할 수 없다는 비정한 진실. 노장은 신우의 눈에 서린 기괴한 확신과 철혈의 의지에 압도당한 듯, 내던진 쇠망치를 주저하며 다시 쥐었다.
"그러니 불을 지키십시오."
신우가 고로를 가리켰다.
"법은 내가 지킬 테니."
이가온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그의 손이 다시 고로의 온도를 조절하는 송풍구 손잡이로 향했다. 비록 신우의 비정함에 상처를 입었을지언정, 그의 통찰력이 지닌 절대적인 현실성에는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신우는 포박당한 채 바닥에 신음하는 자객 우두머리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품 안으로 거침없이 손을 밀어 넣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품속에서 두꺼운 종이 뭉치와 단단한 목패 하나가 딸려 나왔다.
목패에는 유씨 가문의 인장과 함께 '유인선'이라는 세 글자가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유인선이 사사로이 부리는 가신들에게 내리는 직수 표식이었다. 그리고 종이 뭉치는 그들이 밀무역 단속을 빙자해 이가온의 제련소를 습격하고 기술 도면을 강탈하려 했던 정황이 담긴 '가문 내부의 사문(私文)'이었다.
'어리석은 놈.'
신우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렸다. 유인선은 확실히 열등감에 눈이 멀어 있었다. 서자인 신우가 판결청에서 자신에게 굴욕을 안겨주자,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가문의 사병을 움직이는 악수를 둔 것이다.
그 순간, 신우의 머릿속이 깨질 듯이 아려왔다.
‘으윽…….’
신우는 신음을 삼키며 관자놀이를 짚었다. 시야가 붉게 물들며 뇌리 속에서 거대한 정신적 데이터베이스가 강제로 구동되기 시작했다.
[외교부 비밀 아카이브 활성화] [고려 말기 사병 제한령 및 가문 사법권 침해 판례 검색 중...] [역사 왜곡 동기화율: 14.5% -> 15.8% 상승] [경고: 동기화율 상승에 따른 신체 환원 작용이 시작됩니다.]
머릿속에서 수천 장의 문서가 고속으로 회전하는 느낌과 함께, 왼손 끝이 급격히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딱딱하게 굳어 들어가며 감각이 마비되는 통증이 밀려왔다. 목구멍 깊은 곳에서 비릿한 피 냄새가 치솟았다.
신우는 옷소매를 입가로 가져가 가볍게 기침을 하는 척하며 입가에 묻어나는 선혈을 닦아냈다. 원래의 역사에서 고려가 멸망하며 흘렸던 피의 대가가 그의 육체를 갉아먹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고통 속에서도 더욱 날카롭게 벼려졌다.
아카이브가 연산해 낸 법리적 결과물들이 그의 뇌리에 정밀하게 각인되었다.
'공민왕 23년, 도평의사사에서 통과된 사병 금압령(私兵 禁壓令). 가문의 사적인 무력 행사를 엄벌하고, 특히 개경 도성 내에서의 무단 무장 행동은 그 배후의 주모자까지 연좌하여 관직을 삭탈하고 가산을 몰수한다.'
이것이었다. 유인선이 제 발로 걸어 들어온 완벽한 파멸의 늪.
"유 도련님, 괜찮으십니까? 안색이 몹시 창백하십니다."
은아랑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다가와 신우의 소매를 살짝 잡았다. 그녀의 손길에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지만, 신우는 냉정하게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 거리를 두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은 행수."
신우의 목소리는 여전히 기계처럼 차가웠다.
"이 자들과 이 목패, 그리고 이 문서를 사천가 지하 밀실에 철저히 감금해 두십시오. 단 한 명도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됩니다. 유인선이 그들의 행방을 찾으려 헤맬 때까지 시간을 벌어야 합니다."
"그리하겠습니다. 하지만 이 문서로 유인선을 완전히 무너뜨릴 수 있겠습니까? 그의 뒤에는 친원파의 거두인 최영조 대감이 버티고 있습니다. 도평의사사 내에서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은아랑의 실리적인 지적이었다. 유인선 한 명을 치는 것은 쉽지만, 그 뒤에 도사린 거대한 권문세족의 장막을 걷어내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신우는 피 묻은 습격 문서를 손에 든 채, 붉게 타오르는 고로의 화염을 바라보았다. 그의 입가에 얇은 미소가 번졌다. 그것은 승리를 확신하는 외교관의 미소이자, 먹잇감을 덫으로 몰아넣은 사냥꾼의 조소였다.
"최영조 역시 법의 테두리를 벗어날 순 없습니다. 오히려 잘 되었습니다. 유인선이 흘린 이 피 묻은 미끼를 물면, 최영조 가문 역시 도평의사사 내에서 사병 불법 징집 및 사법 참칭죄의 공범으로 엮이게 될 테니까요."
신우는 멀어져 가는 두통을 억누르며, 굳어진 왼손을 천천히 쥐었다 폈다. 감각은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지만, 그 손에 쥔 종이의 질감만큼은 선명했다.
"이제 내일 아침, 유씨 가문의 본궁을 향해 합법의 탈을 쓴 영장을 디밀 시간입니다."
자조 섞인 웃음소리가 타오르는 불꽃 소리 뒤로 스러졌다. 고려의 구체제를 밑바닥에서부터 뒤흔들 거대한 법리적 폭풍이, 사천가의 차가운 밤공기 속에서 서서히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