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새로이 벼린 초강도 검이 조정 군사 수송 함선 옆으로 차곡차곡 쌓여갈 무렵, 유인선은 명나라의 전진 비밀 척후관들을 사가로 직접 영입해 고려 군대를 무력 침탈할 흉계를 꾸미고 있었다.

어스름한 달빛조차 닿지 않는 개경 남쪽 외곽의 은밀한 사택. 유씨 가문의 적자 유인선은 탁자 위에 놓인 양피지 문서를 내려다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그의 맞은편에 앉은 명나라 척후관 우두머리, 주태(朱泰)가 붉은 칠을 한 찻잔을 만지작거리며 낮게 가르랑거렸다.

"이 서책에 서명만 하시면 됩니다. 유신우 그자가 북원(北元)의 기황후 세력과 내통하여 벽란도의 철강 인프라를 넘기려 했다는 밀고장이지요. 명나라 조정의 직인이 찍힌 공식 서한과 연동된다면, 고려의 도평의사사라도 그자를 처단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것입니다."

"정녕…… 정녕 이것으로 그 건방진 서자 놈을 역적의 굴레에 가둘 수 있단 말이오?"

유인선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열등감에 절은 눈동자가 황색 등잔불 밑에서 기괴하게 일렁였다.

"물론입니다. 명나라의 대도(大刀)가 개경 외곽의 군사 수송선을 습격해 철혈검들을 확보하는 즉시, 조정은 발칵 뒤집힐 테지요. 그때 이 밀고장을 대간(臺諫)에 터뜨리면 끝나는 일입니다."

주태가 조소 섞인 미소를 지으며 붓을 밀어 보냈다. 유인선이 떨리는 손으로 붓을 쥐고 먹을 찍으려던 그 찰나였다.

쿵!

묵직한 사택의 참나무 문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안쪽으로 밀려났다. 부서지는 파편 천지 속에서 차가운 밤공기가 밀실의 밀폐된 열기를 단번에 쓸어내렸다.

"남의 가문 사가에서 외국의 세작들과 국정을 논하는 정경이 참으로 가관이구나, 형님."

어둠을 헤치고 걸어 나오는 인물은 유신우였다. 그의 등 뒤로 장인 이가온과 장강 상회의 대행수 은아랑, 그리고 판결청의 기철민이 거느린 도평의사사 소속의 갑사들이 물밀듯이 밀려들어와 사방을 포위했다.

"유, 유신우! 네놈이 어찌 여기에……!"

유인선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일어섰다. 허리춤의 대도에 손을 올리던 명나라 척후관들도 갑사들이 들이민 서슬 퍼런 장창 날끝에 행동을 멈췄다.

유신우는 한 걸음 더 다가섰다. 그의 얼굴은 석상처럼 굳어 있었고, 안광은 얼어붙은 한겨울의 강물 같았다.

"고려의 법도에 따르면, 도평의사사의 전리사(典理司) 허가 없이 외국 사절과 사사로이 군사 자산의 이양을 논하는 자는 즉시 참형에 처한다 명시되어 있지. 형님이 쥐고 있는 그 밀고장 역시 참으로 흥미로운 서류구나."

"이, 이건 네놈이 역모를 꾀했다는 증거다! 내가 도성 방비를 위해 명나라 사절단과……."

"도성 방비라?"

유신우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그는 품에서 붉은 관인이 찍힌 두꺼운 공문서 한 장을 꺼내 탁자 위에 던졌다.

"그렇다면 이 전리사 공인은 무엇인가? 형님이 유씨 가문의 세금을 면탈받기 위해 도평의사사의 국인(國印)을 도용해 위조한 사문서가 아니더냐. 가문의 사금고를 채우기 위해 조정의 법을 해킹한 대가가 무엇인지 아직 머리가 깨치지 못한 모양이군."

그 순간, 유신우의 뇌리 속에서 이명이 울렸다.

[경고: 역사 왜곡 동기화율이 32.4%로 상승합니다.] [반작용으로 인한 말초 신경 마비 및 혈류 장애가 시작됩니다.]

'하필 지금인가.'

유신우는 어금니를 악물었다. 왼쪽 어깨에서 시작된 극심한 한기가 순식간에 팔꿈치를 타고 내려갔다. 왼손 손가락들이 제멋대로 뒤틀리며 단단하게 굳어지기 시작했다. 뼈마디가 어긋나는 듯한 통증에 눈앞이 잠시 흐려졌다.

"신우 공!"

옆에 서 있던 은아랑이 그의 안색이 창백해지는 것을 눈치채고 재빨리 한 걸음 다가섰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유신우의 왼팔을 부축하는 척하며 자신의 소맷자락으로 그의 뒤틀린 왼손을 가려주었다.

이가온 역시 커다란 덩치로 유신우의 왼쪽 시야를 가로막으며 척후관들을 험악하게 쏘아보았다. 장인의 두터운 손이 유신우의 어깨를 든든하게 지탱했다.

"이 보잘것없는 도둑놈들아! 감히 누구 앞에서 수작을 부리느냐!"

이가온이 벼락치듯 소리를 질렀다.

"우리가 새로 벼린 '철혈'의 보검들은 이미 대장간의 뜨거운 숨결을 견디고 완벽하게 출고되었다! 너희 놈들이 탐내던 고온 제련 고로는 끄떡도 없어! 내가 서경에서 가져와 숨겨두었던 그 자색 내열 점토 도면 덕분에, 가마가 무너지기는커녕 천 도가 넘는 불길을 온전히 가두어 최고의 강철을 뽑아냈단 말이다! 감히 그 신검들을 탈취하려 들어?"

이가온의 우렁찬 외침은 단순한 기선 제압이 아니었다. 3화에서 그가 숨겼던 서경산 보라색 가마 내열 점토 도면이 실제로 구현되어 고온 고로의 붕괴를 막아냈음을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순간이었다. 완벽하게 제련된 철혈검의 존재법 앞에서 명나라 척후관들의 눈빛에 당혹감이 스쳤다.

유신우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고통을 억누르며 두뇌 속 '외교부 비밀 아카이브'를 강제로 구동했다. 뇌 속의 정신적 데이터베이스가 고려 조정의 내탕금(內帑金) 사용 내역과 명나라 요동 도사(遼東都司) 간의 비공식 무역 장부를 실시간으로 대조해 나갔다.

수초 만에 명확한 수치와 기록이 그의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유신우는 핏기가 가신 입술을 열어 차가운 폭로를 시작했다.

"유인선. 네놈이 도평의사사의 전리사 공문을 도용한 진짜 이유를 밝혀줄까?"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게냐!"

"너는 가문의 사금고가 비어가자, 명나라 도사 장수들에게 고려 조정이 관리하는 요동 관문의 사유 지분과 군량 통행권을 허위로 매각했다. 고려 조정의 내탕금 회계 장부 제14조와 명나라 서안 상가의 밀무역 기록을 대조하면, 네놈이 허구의 영토 경계선을 그려 명나라 상인들에게 받아 챙긴 은화가 무려 삼만 냥에 달하지."

유인선의 얼굴에서 핏기가 완전히 가셨다. 그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그…… 그걸 네가 어찌 안단 말이냐! 그 장부는 분명……."

"분명 최영조의 밀실에 고이 보관되어 있어야 했을 텐데, 그렇지?"

이번에는 은아랑이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나섰다. 그녀는 소매 안에서 묵은 먼지가 묻은 오래된 서책 한 권을 꺼내 탁자 위에 던졌다. 탁한 소리와 함께 먼지가 내려앉았다.

"원나라 공녀 파견 당시 최영조 대감이 몰래 빼돌렸던 군량 수급 서책과 한족 통역관의 원한 서린 친필 기록입니다. 유인선 공, 당신이 최 대감의 뒤를 봐주며 명나라와 원나라 양국 사이에서 가짜 관문 통행증을 발행해 폭리를 취한 내역이 이 서책과 장부에 고스란히 적혀 있더군요. 저희 장강 상회가 서해 물길을 통해 입수한 진짜 물증입니다."

5화에서 심어졌던 최영조 가문의 치명적인 비밀 장부와 군량 수급 서책이 마침내 이 자리에서 완전히 폭로되는 순간이었다. 유인선이 기획한 외세 유도 책동의 모든 자금줄과 사기 행각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명나라 척후관 주태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이…… 이 고려의 버러지 같은 놈이 감히 우리 대명 제국을 상대로 사기를 쳤단 말인가? 존재하지도 않는 요동의 관문을 우리에게 팔아넘겨 은화를 챙겨?"

"주태 관원."

유신우가 마비되어 굳어버린 왼손을 소매 속에 감춘 채, 오른손으로 탁자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대들이 고려의 군사 수송선을 습격하는 즉시, 나는 이 장부들을 명나라 조정의 병부(兵部)에 직접 송부할 것이오. 대명의 정식 군인들이 고작 고려의 부패한 가문 적자에게 속아 사기 거래에 동원되었다는 사실이 황제 폐하의 귀에 들어가면, 그대들의 목숨이 온전할 것 같소?"

주태는 이빨을 갈았다. 유신우의 말은 단순한 협박이 아니었다. 철저한 외교적 역학 관계와 명나라 내부의 관료제 생리를 꿰뚫고 있는 비정한 압박이었다.

"……철수한다."

주태가 나지막이 명령하자, 명나라 척후관들은 유인선을 쓰레기 보듯 쏘아보며 순식간에 사택의 창문을 넘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홀로 남겨진 유인선은 다리가 풀린 채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 안 된다! 주태 관원! 나를 두고 가면 어찌하오!"

기철민이 차가운 철제 착고(착고)를 들고 유인선에게 다가갔다.

"유인선. 감히 도평의사사의 국인을 도용하고, 허위 조칙 서류를 작성하여 국경의 관문을 사사로이 팔아넘긴 죄, 그리고 외세와 내통하여 사직을 위태롭게 한 죄로 너를 체포한다."

철컥, 하는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유인선의 두 손목에 무거운 형구가 채워졌다.

"이것 놓아라! 나는 유씨 가문의 정식 적자다! 감히 서자 놈의 농간에 놀아나 나를 가둘 셈이냐! 최영조 대감께서 가만히 있지 않으실 것이다!"

유인선은 광분하여 비명을 질렀지만, 도평의사사 갑사들의 힘센 악력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는 질질 끌려가며 도평의사사 최하급 지하 감옥으로 직행하는 신세가 되었다. 자신을 옭아매려던 법의 그물망에 스스로 목이 졸린 비참한 종말이었다.

싸움이 끝나고 밀실에 정적이 찾아오자, 유신우는 참았던 신음을 내뱉으며 탁자를 짚었다. 그의 입가에서 붉은 선혈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신우 공!"

"도련님!"

은아랑과 이가온이 동시에 그를 부축했다. 유신우는 오른손으로 입가의 피를 닦아내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동기화 부작용으로 인한 마비가 왼쪽 가슴팍까지 저릿하게 조여들고 있었다.

"……괜찮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았다."

유신우의 눈은 여전히 차가운 이성으로 빛나고 있었다. 사기꾼 유인선은 치웠으나, 진짜 거두는 아직 개경 도성에 버티고 있었다.

같은 시각, 유인선의 전격 체포 소식을 전해 들은 최영조의 사가.

"무엇이라? 유인선 그 멍청한 놈이 장부까지 빼앗기고 체포되었다고?"

최영조는 서안을 내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노회한 얼굴은 분노와 공포로 일그러져 있었다. 유인선이 무너졌다는 것은 자신이 구축해 놓은 친원파 세력의 자금줄과 외교적 발판이 완전히 끊겼음을 의미했다. 이제 유신우의 칼날이 자신의 목줄을 겨누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서자 놈이 감히 내 목숨을 조여 오는구나. 오냐, 네놈이 법대로 나를 고사시키려 한다면, 나는 법 너머의 힘으로 대답해 주마."

최영조의 눈에 살기가 가득 찼다. 그는 품 속에서 붉은 비단에 싸인 밀지를 꺼내 심복에게 건넸다. 요동 서쪽 경계에서 밀무역을 하던 여진 거상 아라카를 통해 미리 연락망을 구축해 두었던, 명나라의 극단적 호전파 장수들이 보낸 밀지였다.

"가문 사가 연합군을 즉시 소집하라. 그리고 개경 외곽에 대기 중인 명나라 특별 진공 무방군을 도성 안으로 인도하라. 오늘 밤, 고려의 조정을 피로 씻어내고 사직을 새로이 세울 것이다!"

어둠이 깊어가는 개경 도성 너머로, 수천 명의 사가 연합군과 외세의 군화 소리가 불길하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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