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 위로 흐르는 이진수 데이터의 행렬이 마침내 암호화를 풀고 본래의 형태를 드러냅니다. 세진병원 EMR(전자의무기록) 서버의 훼손되지 않은 진짜 데이터베이스 백업본. 가증스럽게 위조되어 재판부에 제출되었던 파란색 차트 아래 숨겨진, 날것 그대로의 살인적 수치들이 붉은 빛깔의 텍스트가 되어 당신의 망막에 박힙니다.
'14:22:15, SpO2(산소포화도) 64%. 환자 분무식 산소 투여 중 청색증 발생.' '14:27:03, 에피네프린 1mg 앰풀 3회 정맥 투여. 서맥 지속.'
피고 측이 법정에 냈던 ‘수술 중 생체 징후 안정’이라는 거짓 보고서의 껍질을 단번에 찢어발길 수 있는 치명적인 탄환입니다. 이 기록은 조작된 수술의 봉합 부위에서 급성 미세 누출이 발생했고, 오직 외과의의 치명적인 술기 실수로 환자가 저산소증으로 사망했음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메스보다 날카로운 진실의 무기가 마침내 당신의 USB 메모리 안에 온전히 담겼습니다.
하지만 법정이 돌아가는 공기는 차갑다 못해 기괴할 정도로 왜곡되어 있습니다.
"원고 대리인 백강현 변호사. 기일 연장 및 추가 증거 신청은 기각합니다. 본 재판부는 이미 충분한 변론이 이루어졌다고 판단하며, 오늘로 변론을 종결하고 선고 기일을 잡겠습니다."
법대 위를 내려다보는 부장판사 임태성의 음성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습니다. 그것은 법과 원칙에 따른 단호함이 아닙니다. 거대 의료 카르텔의 검은 배후가 작동하여, 판사의 눈과 귀를 거액의 뇌물과 차기 대법관 추천서라는 미끼로 가려버린 결과입니다. 법이라는 신성한 수술대 위에 마취제도 없이 칼을 대려는 야합입니다.
피고 측 대리인석에 앉은 세진병원의 수석 변호사가 입꼬리를 기묘하게 올리며 당신을 흘겨봅니다. 그의 시선은 마치 '네가 아무리 발버둥 쳐봐야 이 거대한 성벽을 넘을 수 없다'고 비웃는 듯합니다. 법정 내부의 멸균 상태는 이미 깨졌습니다. 감염된 상처 주위로 고름이 차오르듯, 법의 심장부가 썩어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때, 주머니 속 스마트폰이 짧게 진동합니다. 법원 내부 직원을 통해 극비리에 포섭해 둔 정보원으로부터 온 다급한 메시지입니다. [임 판사, 다음 휴정 시간 직후 세진병원 원장과 법원 서쪽 지하 밀실에서 독대 예정. 밀약 성사 직전.]
손끝에 닿는 USB의 금속성 감촉이 차갑습니다. 이 탄환을 어디로 날려야 판을 뒤엎고 썩은 고름을 완전히 짜낼 수 있을 것인가. 법정이 침묵 속에서 당신의 다음 행동을 주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