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차가운 메탈 소재의 대리석 데스크 위로, 태블릿 화면이 푸르스름한 인공의 빛을 토해내고 있습니다. 화면 안에는 당신이 세진병원 기획조정실의 보안망을 뚫고 확보한 신약 'SJ-103'의 비공개 중간 임상 데이터가 선명하게 떠 있습니다.

"임상 3상 프로토콜 무단 변경. 투약군에서 발생한 급성 전격성 간부전(Fulminant hepatic failure) 사례 의도적 누락. 그리고 사망자 3명의 최종 사인 미세혈관 혈전증(Microvascular thrombosis)을 단순 병사로 위조."

당신의 건조하고 정밀한 목소리가 기조실장실의 이중창 너머로 흐르는 침묵을 가릅니다.

김태수 부원장은 창밖의 검붉은 노을을 등진 채 서 있습니다. 그의 구두 뒤꿈치가 카펫 바닥을 규칙적으로 두드리는 소리가, 마치 어라리드미아(Arrhythmia, 부정맥) 환자의 불규칙한 심장 박동처럼 방 안을 무겁게 짓누릅니다. 언론의 레이더망은 이미 그의 목덜미 턱밑까지 추격해 온 상황. 그러나 벼랑 끝에 몰린 외과 의사 출신의 정치꾼은 쉽게 목을 내어주지 않습니다.

김태수가 주머니에서 낡은 USB 하나를 꺼내 데스크 위에 툭 던집니다. 금속 마찰음이 차갑게 울립니다.

"백강현 변호사. 아니, 백강현 선생." 그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조소하듯 말을 잇습니다. "복지부의 의사 면허 재교부 심의위원회가 이번 주 금요일이야. 네가 가진 그 자료를 검찰에 던지는 순간, 네 동료들과 병원은 파멸하겠지. 하지만 그전에 네 면허는 영원히 박탈될 거다. 내 라인을 동원해서라도."

그가 USB 쪽으로 손가락을 뻗치며 은밀한 미소를 지어 보입니다. "이 안에는 3년 전 네 수술방의 미삭제 원본 영상이 들어 있어. 마취과 과장이 조작하기 전, 어시스트가 동맥 결찰을 실수해 대량 출혈(Massive bleeding)을 유발했던 진짜 증거 말이야. 이걸 보건복지부와 법원에 제출해 주지. 그리고 세진병원 간담췌외과 과장 자리를 약속하마. 메스를 원하잖아, 안 그래?"

그의 제안은 마치 썩어가는 환부 위에 덮어씌우는 깨끗한 멸균 거즈와 같습니다. 당장의 통증은 가려지겠지만, 속에서는 패혈증(Sepsis)이 진행되어 결국 생명을 파먹을 치명적인 독약.

당신의 시선이 김태수의 미세하게 떨리는 손끝에 머뭅니다. 수술용 칼을 잡던 손가락이 이제는 추악한 거래의 끈을 쥐고 흔들고 있습니다. 그 역시 세진병원이라는 거대한 기득권의 먹이사슬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괴물이 된 서글픈 칼잡이에 불과합니다.

이 부패한 암세포를 완전히 적출하기 위해서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교한 절개 라인을 잡아야 합니다. 김태수를 밟고 올라서서 이 거대 병원의 진짜 지배자이자 기득권인 이사장을 직접 상대할 것인가. 아니면 법과 제도의 칼날을 극대화하기 위해 신뢰할 수 있는 사법부의 내통자와 공조를 시작할 것인가.

당신은 흐트러진 호흡을 가다듬으며 데스크 위의 USB를 내려다봅니다. 수술실의 무영등 아래 선 것처럼, 당신의 손끝에 팽팽한 촉각이 살아납니다.

다음 화 계속 보기 →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