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이이이이—
중환자실의 정적을 깨뜨리는 경고음이 이명처럼 당신의 고막을 뚫고 들어옵니다. 모니터에 찍힌 평균 동맥압(MAP)은 48mmHg. 파동을 그리던 심전도가 급격히 완만해지며 분당 맥박수가 140회 위로 치솟습니다. 비정상적인 빈맥, 그리고 급격한 혈압 저하.
임상시험 부작용으로 인한 비장동맥 가성동맥류(Splenic artery pseudoaneurysm) 파열. 당신의 머릿속 임상 데이터베이스가 단 0.1초 만에 내린 진단입니다. 이 환자는 병원장 김태수의 추악한 불법 임상시험을 증언해 줄 유일한 열쇠이자, 동시에 지금 이 순간 차갑게 식어가고 있는 한 인간입니다.
"선생님, 바이탈이 안 잡힙니다! 어떡하죠?"
김태수의 사주를 받은 담당 전공의는 당황한 기색을 가장한 채 주저하고 있습니다. 방조를 통한 인위적 폐기. 병원 수뇌부가 원하는 그림이 바로 이것입니다. 증인이 스스로 숨을 거두어 자연스럽게 증거가 인멸되는 것.
당신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습니다. 변호사라는 법적 자문 신분은 이 순간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환자의 동공이 풀리기 직전, 당신은 몸을 돌려 수술실 세척대(Scrub station)로 달립니다.
"백강현 변호사님! 거긴 제한 구역입니다! 면허도 없는 분이 무슨 행동을……!"
등 뒤에서 병원 보안요원들의 고함이 터져 나오지만, 당신의 귀에는 오직 환자의 사투를 알리는 비명이 들릴 뿐입니다. 수도페달을 밟자 쏟아지는 차가운 물. 클로르헥시딘 소독액을 짜내어 손가락 사이, 손톱밑, 그리고 팔꿈치까지 거칠고 정교하게 문지릅니다. 이것은 법전보다 익숙한 의사의 숨결이자 의식입니다.
수술실의 슬라이딩 도어가 열립니다. 만류하는 간호사들을 매서운 눈빛 하나로 제압하며, 당신은 초록색 소독포 너머로 손을 뻗습니다.
"메스."
"네? 하지만 면허가 취소되신……."
"메스 11번, 그리고 헤파린 포화 식사 준비해. 환자 죽일 텐가?"
나직하지만 거절할 수 없는 압도적인 지휘력에 스크럽 간호사의 손이 먼저 반응합니다. 손바닥에 묵직하게 안기는 메스의 촉감. 순간, 당신의 손끝에서 미세한 떨림이 사라집니다. '신의 손'이라 불리던 외과 천재의 감각이 혈관을 타고 되살아납니다.
망설임 없는 백색 절개. 복막을 열자마자 검붉은 동맥혈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옵니다. 복강 내 대량 출혈(Hemoperitoneum). 시야 확보가 전혀 불가능한 아수라장 속에서, 당신은 오직 손가락 끝의 감각만으로 대동맥 인근의 체강 동맥(Celiac trunk)을 찾아 들어갑니다.
"석션 세게 걸고! 압박 대고, 켈리(Kelly clamp) 대기!"
핏물 속을 헤집는 당신의 손놀림은 정교한 메트로놈처럼 흔들림이 없습니다. 마침내 손끝에 느껴지는 미세한 동맥의 균열. 가성동맥류의 파혈 부위를 촉지하고 정확히 카테터 진입로를 차단합니다.
딱.
켈리가 혈관을 건드림과 동시에, 요란하게 울리던 모니터의 경고음이 거짓말처럼 잦아듭니다. 바이탈이 서서히 상승곡선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당신의 손끝에서 꺼져가던 생명이 다시 숨을 들이쉽니다.
하지만 감탄도 잠시, 수술실 인터폰을 통해 병원 기획조정실의 서늘한 목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그리고 복도 저편에서 수십 명의 발자국 소리가 무겁게 수술실을 포위하듯 조여오기 시작합니다.무면허 의료 행위라는 치명적인 덫이 당신의 목을 겨누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