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하얗고 보드라운 레이스가 층층이 겹쳐진 침대 위에 앉아, 아멜리아는 제 목덜미를 가만히 짚었어요.

방금 전 아빠 카이든이 조심스럽게 걸어준 핏빛 다이아몬드 펜던트는 아기 고양이의 코끝처럼 차갑고도 매끄러운 촉감을 흘려보내고 있었지요. 찬란하게 부서지는 붉은 광채는 얼핏 보기엔 세상에 둘도 없이 아름다운 보석이었지만, 아멜리아의 동그란 눈동자 앞에 떠오른 반투명한 시스템 창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속삭이고 있었답니다.

[★ 경고! 가문의 가보 ‘핏빛 다이아몬드’ 내부에서 비정상적인 마력 공명이 감지되었습니다! ★] [이 공명은 멜키오르 추기경이 영지 내에 심어둔 ‘비밀 첩자’의 신호와 강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48시간 이내에 가문 전체를 위협할 거대한 함정이 작동될 예정입니다!]

‘이게 무슨 소리야?’

아멜리아의 조그만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어요.

아빠는 그저 신성청의 음흉한 짓거리로부터 소중한 막내딸을 지키기 위해 가문의 위대한 가보를 꺼내온 것뿐이었어요. 하지만 교활하기 짝이 없는 멜키오르 추기경 일파는 이미 가문 내부 깊숙이 첩자의 손길을 뻗쳐 둔 상태였고, 심지어 가보에까지 정교한 신성 주술의 덫을 심어놓았던 것이지요.

아멜리아가 붉은 보석을 쥔 채로 가늘게 손가락을 떨자, 침대맡에 한쪽 무릎을 꿇고 있던 카이든의 안색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려버렸답니다.

“아, 아멜리아! 어디가 아픈 것이냐? 목걸이가 너무 무거웠던 게냐? 아니면 보석의 모서리가 네 가냘픈 살결을 긁기라도 한 것이냐!”

전장에서는 수만 대군의 목을 자비 없이 베어 넘기던 전신이, 지금은 마치 물에 젖은 솜인형처럼 안절부절못하며 떨고 있었어요. 카이든의 커다란 손이 아멜리아의 뺨가바람을 가만히 보듬었지요.

“아빠, 아니에요. 목걸이는 정말 예쁘고…… 가벼워요.”

아멜리아는 가만히 눈꼬리를 내리며 싱긋 웃어 보였어요. 전생의 기억을 가진 수의사이자, 이 무시무시한 괴수 가문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막내딸로서 갈고닦은 ‘유리인형 연기’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지요.

하지만 아멜리아가 애써 미소를 지으면 지을수록, 카이든의 붉은 눈동자에는 더 깊은 절망과 죄책감이 몽글몽글하게 차올랐답니다.

“거짓말하지 말거라, 내 사랑스러운 나비야. 네 안색이 방금 전보다 한 톤은 더 어두워졌지 않느냐. 뺨의 온기도 마치 겨울날의 달빛처럼 차갑구나. 이 아빠가 무지하여 네가 감당하기 힘든 무거운 물건을 억지로 채운 것이 틀림없다!”

카이든은 벌떡 일어나 침실 문을 향해 사나운 사자처럼 포효하듯 외쳤어요.

“집사장! 당장 제국 최고의 보석 상인을 지하 감옥에서 꺼내…… 아니, 정중히 모셔오도록 해라! 제국의 모든 보석을 다 털어서라도 내 딸의 목에 단 0.1그램의 부담도 주지 않는 깃털보다 가벼운 수호석을 대령하란 말이다!”

“아빠, 정말 괜찮다니까요……!”

“안 된다! 신성청의 불결한 기운이 이 방 안까지 스며들어 네 가냘픈 영혼을 갉아먹고 있는 게 분명해!”

카이든의 광기 어린 집착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답니다. 그는 씩씩거리며 방 안의 벽면들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훑어보았어요.

“이 방의 공기가 문제다. 정화가 부족해! 당장 저택 전체의 벽면을 깎아내고, 공기 정화와 마력 안정에 탁월하다는 최고급 은빛 장미 수정을 빈틈없이 박아 넣도록 지시하겠다. 아멜리아가 숨을 쉴 때마다 가장 달콤하고 맑은 마력만 들이마실 수 있도록 해야 해!”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에스카르디아 공작가의 시종들과 기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한밤중에 날벼락을 맞은 보석 상인들이 헐레벌떡 공작저로 불려왔고, 은은하고 따스한 살구빛 광채를 뿜어내는 최고급 수정 원석들이 수레 가득 실려 복도를 메웠지요.

시끄러운 망치질 소리 대신, 마법사들이 소음을 완벽히 차단하는 장막을 치고 침실 외벽에 보석을 정교하게 이식하는 기상천외한 대공사가 실시간으로 이루어졌답니다.

그 엉뚱하고도 거대한 호들갑을 지켜보는 아멜리아의 귓가에, 반가운 기계음이 연달아 울려 퍼졌어요.

띠링! 띠링!

[가족들의 극단적인 걱정과 안절부절못하는 집착이 임계치에 도달했습니다!] [걱정 마력이 폭발적으로 환원됩니다!] [획득 마력: +3,500MP] [획득 마력: +4,200MP] [현재 보유 마력: 20,200MP 돌파!]

‘우와, 마력이 엄청나게 차올랐어!’

아멜리아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답니다. 아빠와 오빠들의 유별난 과보호는 언제나 훌륭한 마력 공급원이었지만, 이번에는 저택 전체를 보석으로 도배하는 우주급 호들갑 덕분에 마력 통장이 풍족하다 못해 넘쳐흐를 지경이었지요.

아멜리아는 목에 걸린 핏빛 다이아몬드 펜던트를 하얗고 조그만 손가락뚱바리로 꾹 움켜쥐었어요. 이 보석 안에 숨겨진 신성청의 음모를 지금 당장 해결해야만 했으니까요.

‘장부, 작동해 줘.’

머릿속으로 명령을 내리자, 맑은 안개처럼 부드러운 푸른빛의 ‘영수 육성 장부’가 아멜리아의 시야 가득 펼쳐졌답니다.

[보유 마력 15,000MP를 소모하여 가보 ‘핏빛 다이아몬드’의 잠재력을 해금하고 내부의 악의적인 정찰 주술을 정화 및 보정합니까?]

‘당연히 예스지!’

아멜리아가 마음속으로 외치자, 그녀의 작은 손끝에서 눈부신 정화의 마력이 뿜어져 나와 붉은 보석 안으로 스며들었어요. 아주 미세한 지직 소리와 함께, 보석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신성청의 끈적하고 불쾌한 마력 회로가 산산이 부서져 내렸답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아멜리아의 맑고 순수한 마력과 공작가의 가보가 지닌 본래의 위대한 힘이 가득 채우기 시작했어요.

띠링!

[정화 성공! 핏빛 다이아몬드의 본래 성능이 완벽하게 해방되었습니다!] [신성 저항 매개체 소유 확인: 정화 보정치 300% 적용!] [특수 효과 ‘기만적 장막’이 활성화됩니다. 신성청의 탐지 시도가 있을 경우, 대상자에게 완전히 정화된 깨끗한 가짜 상태만을 피드백으로 전송합니다.] [가문 안도 에너지 지수: 극대화!]

“와아…….”

아멜리아는 저도 모르게 작은 탄성을 내뱉었어요.

이것은 단순한 방어구가 아니었어요. 가문의 가보가 지닌 무시무시한 결계 능력에 장부의 보정치가 곱절로 얹어지면서, 신성청의 그 어떤 악랄한 탐지 마법이나 이단 심문용 오염 주술도 완벽하게 튕겨내는 무적의 방패가 완성된 것이지요. 심지어 적들의 탐지 망에 ‘아무 이상 없음’이라는 가짜 신호를 보내 안심시키기까지 하니, 이보다 더 완벽한 기만책은 없었답니다.

멜키오르 추기경이 심어둔 첩자가 아무리 신호를 보내려 한들, 이제 이 펜던트는 오직 아멜리아를 지키는 든든한 요새로만 작동할 터였어요.

카이든은 딸의 목덜미에서 흘러나오는 은은하고 고결한 붉은 광채를 보며,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어요.

“보아라, 내 나비야. 가문의 수호 결계가 완벽하게 네 몸을 감싸 안았구나. 이제 그 어떤 비열한 빛의 세력도 네 털 끝 하나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 혹여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이 아빠가 대륙 끝까지 쫓아가서 전부 짓밟아 주마.”

“고마워요, 아빠. 정말 따뜻해요.”

아멜리아는 카이든의 커다란 손에 제 뺨을 살포시 비벼대며 싱긋 웃었어요. 카이든의 얼굴이 순식간에 사르르 녹아내리며 세상에서 가장 무해한 바보 아빠의 표정으로 변하는 것을 보며, 아멜리아는 속으로 가만히 가슴을 쓸어내렸답니다.

‘성공이야. 이제 신성청의 추적 걱정 없이 비밀 요람을 더 안전하게 돌볼 수 있겠어.’

게다가 보상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지요.

차고 넘치도록 충전된 걱정 마력과 방금 전의 정화 보정으로 인해, 장부의 하단에 반짝이는 황금빛 아이콘이 새로이 불을 밝혔답니다.

[축하합니다! 대량의 안도 에너지 환원을 통해 신규 대규모 마수 케어 레시피가 해금되었습니다!] [레시피 명: 신비한 소독용 밀짚 종자] - 제작 비용: 5,000MP - 효과: 검은안개 숲 요람 전체에 심을 수 있는 특수 밀짚 종자. 자라나면서 공기 중의 독기와 전염병 인자를 완전히 흡수 및 소독하고, 마수들의 피부병을 예방하며, 푹신하고 위생적인 잠자리를 무한히 제공합니다.

‘이거야!’

아멜리아의 맑은 눈동자가 보석처럼 반짝였어요.

비밀 요람에서 치료받고 있는 마수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청결하고 안전한 환경이었지요. 뽀뽀의 폭주는 겨우 정화해 냈지만, 숲속의 눅눅하고 독한 기운 때문에 마수들의 상처가 덧나거나 피부병이 도지는 일이 잦았거든요. 이 ‘소독용 밀짚’만 대량으로 재배할 수 있다면, 요람 전체를 최첨단 무균실처럼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을 터였답니다.

아멜리아는 아빠가 침실 벽면에 수정을 바르는 공사를 지휘하느라 잠시 바깥으로 나간 틈을 타, 재빨리 침대 시트 아래에 손을 집어넣었어요.

“장부, ‘신비한 소독용 밀짚 종자’를 연성해 줘.”

[5,000MP가 소모됩니다. 연성을 시작합니다…….]

파스스, 손바닥 가득 따스하고 향긋한 풀 냄새가 번지더니, 이내 연한 초록빛 광채를 머금은 보슬보슬한 씨앗들이 한 움큼 나타났어요. 갓 구운 식빵처럼 고소하고도 숲속의 맑은 이슬을 머금은 듯 싱그러운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혔지요.

이 종자를 요람의 흙에 뿌리기만 하면, 며칠 만에 부드럽고 따뜻한 황금빛 밀짚이 가득 자라나 마수들의 요람을 완벽하게 소독해 줄 것이 분명했어요.

아멜리아는 기쁨에 가득 차 씨앗들을 비단 주머니에 소중히 나누어 담았답니다.

바로 그때였어요.

쿵, 쿵, 쿵!

침실 문이 거칠게 열리며, 카이든 공작만큼이나 험악한 기세를 풍기는 큰오빠 렌이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어요. 평소의 냉정하고 흐트러짐 없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그의 이마에는 굵은 힘줄이 핏대를 세우며 돋아나 있었지요. 그 뒤를 따르는 시종들의 얼굴은 흙빛이 되어 부르르 떨고 있었답니다.

“아멜리아.”

렌이 낮게 가라앉은, 마치 얼음 톱날로 유리를 켜는 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어요.

“오빠……? 무슨 일이 있어요? 화가 나 보여요.”

아멜리아는 본능적으로 가슴팍에 비단 주머니를 숨기며 눈을 깜빡였어요.

렌은 손에 쥐고 있던 구겨진 보고서를 침대 옆 테이블에 쾅 소리가 나도록 내려놓았답니다. 그의 손끝이 분노로 가늘게 떨리고 있었어요.

“감히…… 신성청의 멜키오르 늙은이가 더러운 수작을 부렸더구나. 제국 영양초 상인 연합 놈들과 공모하여, 우리 에스카르디아 공작령으로 들어오는 모든 무역로와 교역로를 전면 폐쇄했다.”

“네……? 교역로를요?”

아멜리아의 얼굴이 굳어졌어요.

영양초는 마수들의 폭주를 억제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영양 사료의 핵심 원료이자, 공작령 내의 수많은 가축과 마수들을 먹여 살리는 필수적인 약초였지요. 그것을 유통하는 상인 연합이 교역을 전면 차단했다는 것은, 에스카르디아 가문의 숨통을 조이고 공작령 내의 모든 마수들을 굶겨 죽여 폭주를 유도하겠다는 악랄한 선전포고와 다름없었답니다.

“뿐만 아니라, 공작령 내부로 향하는 모든 약초 수급로까지 신성청의 ‘이단 오염 방지’라는 명목하에 군사적으로 봉쇄당했다. 네 요양을 위해 준비하려던 약초들마저 전부 국경에 묶여버렸어.”

렌의 붉은 눈동자에서 잔혹한 살기가 일렁였어요.

“내일 아침 당장 기사단을 이끌고 영지 국경을 막아선 교단 놈들의 목을 전부 베어버릴 것이다. 감히 내 동생의 약초를 가로막아?”

아멜리아는 렌의 살기등등한 선언을 들으며, 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했어요.

‘신성청이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구나. 약초 공급을 끊어서 우리 가문의 마수들을 폭주시키고, 나아가 나를 이단으로 몰아세우려는 속셈이지?’

하지만 아멜리아의 손끝에는 방금 연성해 낸, 그 어떤 영양초보다도 강력한 정화 능력을 지닌 ‘신비한 소독용 밀짚 종자’가 쥐어져 있었답니다.

위기는 곧 기회였어요. 신성청이 자원을 봉쇄한다면, 가문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자원을 생산하고 격상하여 저들을 역으로 말려 죽이면 그만이었으니까요.

아멜리아는 살포시 주먹을 쥐며, 렌의 소맷자락을 조심스럽게 붙잡았어요.

“오빠…… 피를 흘리는 건 싫어요. 저에게 좋은 생각이 있어요.”

동생의 가냘픈 손길에 렌의 살기가 눈 녹듯 흩어지는 순간, 공작저의 창밖으로 숲속에서 들려오는 기이하고도 거대한 마수의 울음소리가 밤하늘을 갈랐답니다.

과연 아멜리아는 이 수입 차단의 압박 속에서 가문의 자원을 회복하고 신성청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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