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피익, 삐이이이…….”

숲의 가장 깊은 품속, 날카롭고 컴컴한 보랏빛 가시넝쿨 아래에서 아주 작고 가냘픈 울음소리가 번져 나왔어요. 갓 피어난 민들레 홀씨처럼 보송보송하고 노란 솜털을 가진 아기 새 한 마리가 툭, 이끼 낀 바닥으로 떨어졌답니다.

왼쪽 날개가 툭 부러져서 이상한 각도로 꺾여 있었고, 뽀얀 솜털 사이로는 붉은 핏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지요.

“어머나, 세상에…….”

아멜리아는 깜짝 놀라 얼른 몸을 숙였어요.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다가가 두 손으로 아기 새를 소중하게 감싸 안았답니다. 너무 작고 가벼워서, 마치 한 줌의 따뜻한 온기만을 만지는 것 같았어요.

아멜리아는 아기 새를 품에 꼭 안은 채, 은신 장막으로 꽁꽁 숨겨둔 비밀 요람의 통나무 오두막 안으로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어요.

타닥타닥, 따스한 불꽃이 춤추는 돌 아궁이 뒤편에 자리를 잡은 아멜리아는 아기 새를 부드러운 양모 담요 위에 살포시 내려놓았답니다. 그때, 아멜리아의 촉촉한 눈가 앞으로 반짝이는 에메랄드빛 글자들이 떠올랐어요.

[★ 돌발 상황! 희귀 영수 발견! ★] - 개체명: 냥냥 (미각성 고대 황조) - 상태: 좌측 날개 골절(심각), 극심한 공포로 인한 스트레스 수치 92% - 처방 제안: 뼈를 맞춘 뒤 지지대 고정, 안정을 위한 특제 영양 사료 급여 필요. ※ 특이사항: 날개깃 안쪽에 고대의 정령 표식이 숨겨져 있습니다.

“정령 표식……?”

아멜리아는 동그란 눈을 깜빡이며 아기 새의 젖은 날개깃을 조심스레 들추어 보았어요.

놀랍게도 노란 털 아래의 투명하고 얇은 피부 위로, 은빛으로 은은하게 빛나는 기묘한 기하학적 문양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가문에서 전해 내려오는 고서에서도 본 적 없는, 아주 오래되고 신비로운 문양이었답니다.

아기 새는 낯선 온기에 몸을 부르르 떨며, 아멜리아의 작은 손가락가에 이마를 꾹 문질렀어요. 이마 끝에 돋아난 아주 작은 외뿔이 아멜리아의 살결에 닿아 간지러운 느낌을 자아냈지요.

바로 그 순간이었어요.

쿵! 쿵! 쿵!

요람의 튼튼한 가시덤불 장벽 너머로, 대지를 거칠게 짓밟는 무거운 철갑구두 소리가 사방을 뒤흔들었답니다.

“이 근처다! 더러운 마수의 비린내가 이 근처에서 뚝 끊겼어!” “샅샅이 뒤져라! 한 뼘의 풀숲도 놓치지 마라!”

신성청의 정예 기사단이 뿜어내는 살기등등한 사자후가 오두막 안까지 웅웅 울렸어요. 그들의 손에 들린 차가운 은검들이 수풀을 무자비하게 베어내는 서슬 퍼런 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지요.

아기 새는 공포에 질려 아멜리아의 품속으로 머리를 더 깊숙이 디밀며 웅크렸답니다.

‘벌써 여기까지 쫓아온 거야? 안 돼, 이 아이를 저 무자비한 자들에게 넘겨줄 수는 없어.’

아멜리아는 가만히 입술을 깨물었어요. 신성청은 상처 입은 마수를 무조건 ‘정화’라는 이름 아래 학살하고 부산물을 챙기니까요.

그녀는 아기 새를 위해 정성스레 개어두었던 달콤하고 고소한, 노르스름한 수수 밀반죽 사료 봉투를 얼른 아궁이 깊숙한 틈새로 밀어 넣어 숨겼답니다. 그리고 은신 장막을 살짝 걷어내며 오두막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어요.

사락, 사락.

은은한 살구색의, 포근하고 부드러운 실크 드레스 자락이 거친 흙바닥 위를 스쳤답니다.

“누구…… 시온데, 제 정원을 이토록 시끄럽게 만드시는 건가요?”

맑고 가녀린, 마치 은쟁반에 옥구슬이 구르는 듯한 목소리가 안개 낀 숲속에 울려 퍼졌어요.

덤불을 사납게 헤치던 신성청의 기사들이 흠칫 놀라며 동작을 멈추었답니다. 그들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연약하고 아름다운 소녀가 서 있었어요. 하얗다 못해 투명한 뺨은 차가운 숲바람에 살짝 상기되어 있었고, 긴 속눈썹은 두려움에 젖은 듯 파르르 떨리고 있었지요.

“이, 이 아이는……?” “에스카르디아 공작가의…… 막내 영애?”

기사들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어요. 세상에 모르는 이가 없는, 피도 눈물도 없는 괴수 가문의 유일무이한 요정, 아멜리아 에스카르디아였으니까요.

아멜리아는 미약하게 기침을 토해내는 척하며, 가냘픈 손으로 이마를 짚었어요. 그리고 힘이 풀린 듯 펄럭이는 드레스 자락을 드리우며 바닥으로 소리 없이 주저앉았답니다.

“앗…… 흑…….” “공녀님!”

기사단장이 소스라치게 놀라 검을 바닥으로 내렸어요. 아멜리아는 눈가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 채,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가시덤불 너머를 부들부들 가리켰지요.

“무서운 철갑 냄새와…… 살기 때문에 숨을 쉬기가 너무 힘들어요……. 제발, 제 정원에서 나가 주세요…….”

그 가녀린 몸짓과 애처로운 목소리에 기사들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답니다. 만약 공작가의 막내딸이 자신들의 살기 때문에 쓰러지기라도 한다면, 당장 내일 아침 제국 지도에서 자신들의 가문이 통째로 지워질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었지요.

게다가 기사들의 등 뒤에는 이미 집어삼킬 듯한 기세로 다가오는 거대한 그림자, 아빠 카이든 공작의 무시무시한 마기가 대지를 얼려버릴 듯 뿜어져 나오고 있었어요.

“감히…… 내 딸의 정원에서 무슨 짓거리를 하는 것이냐, 이 신성청의 개새끼들이.”

낮고 가라앉은, 그러나 뼈를 으스러뜨릴 듯한 카이든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기사단장의 안색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답니다.

“공, 공작 전하! 오해이십니다! 저희는 단지 도망친 마수를……” “내 눈에는 네놈들의 더러운 쇠붙이가 내 딸의 고운 살결을 위협하는 것으로만 보이는군.”

카이든이 한 걸음 내딛자, 대지가 쿠르릉 울리며 갈라졌어요.

아멜리아는 속으로 ‘나이스, 아빠의 과보호 마력 충전 완료!’를 외쳤답니다. 실제로 머릿속 장부에서 [가족의 걱정 및 집착 수치 폭발! 마력 4,000MP 추가 충전!]이라는 유쾌한 알림이 울렸지요.

“히익! 조, 죄송합니다! 당장 물러가겠습니다!”

기사들은 공작의 단 한 걸음에 오줌을 지릴 듯한 공포를 느끼고는, 자신들이 쫓던 마수의 핏자국조차 잊은 채 혼비백산하여 은신처 바깥으로 도망치듯 뛰어갔답니다.

아멜리아는 소매로 살짝 입가를 가리며, 속으로 통쾌한 웃음을 지었어요. 공작가의 권세라는 것은 참으로 편리하고 달콤한 방패였지요.

기사들이 완전히 물러간 것을 확인한 아멜리아는 서둘러 오두막 안으로 다시 들어왔어요.

하지만 기쁨도 잠시, 오두막 안쪽 침대 위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폭주 마력이 사방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답니다. 거대한 은빛 늑대, 뽀뽀(펜릴)가 3중 돌발 열병으로 인해 마력 폭주 수치 96%를 넘어서며 고통스럽게 신음하고 있었어요.

“크으으으……!”

이성을 잃어가는 뽀뽀의 거대한 발톱이 바닥을 긁으며 찢어발겼고,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마력의 파동이 오두막 전체를 뒤흔들었지요. 남은 시간은 단 5분도 채 되지 않아 보였어요.

아멜리아는 침착하게 머릿속 장부를 띄웠답니다.

“지금이야. 아빠와 오빠가 밖에서 안절부절못하며 나를 걱정하는 이 엄청난 마력을 쏟아부어야 해!”

[보유 마력 16,500MP 소모하여 긴급 처방 레시피 ‘반쪽짜리 달빛풀 환약’을 연성합니다.]

그녀의 손끝에서 눈이 시리도록 푸른빛을 띠는 약초가 스르륵 나타났어요. 밤하늘의 은하수를 그대로 녹여 만든 듯 찬란하고 예쁜 약초에서는, 머리를 맑게 깨우는 향긋하고 시원한 박하 향취가 번져 나왔답니다.

이 ‘반쪽짜리 달빛풀’은 마수의 폭주를 단숨에 정화하는 강력한 치유력을 지녔지만, 한 가지 무서운 부작용이 있었지요. 바로 다량 섭취 시, 생명체를 일시적인 ‘가사 상태’에 빠뜨린다는 점이었어요.

하지만 지금의 뽀뽀에게는 이 가사 상태야말로 터지기 일보 직전인 심장 박동을 강제로 멈추고 안정을 찾게 할 유일한 구원책이었답니다.

“뽀뽀야, 착하지? 이거 먹고 조금만 자고 일어나자.”

아멜리아는 두려움도 잊은 채 뽀뽀의 거대한 주둥이 앞으로 다가갔어요. 그리고 달콤한 수수 사료 향을 묻힌 환약을 달래듯 입안으로 쏙 밀어 넣었답니다.

꿀꺽.

환약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자마자, 폭풍처럼 날뛰던 붉은 마력이 거짓말처럼 잦아들기 시작했어요.

뽀뽀의 핏빛으로 충혈되었던 눈동자가 서서히 맑은 금빛을 되찾았고, 이내 무거운 눈꺼풀이 스르륵 내려앉았답니다.

쿵.

거대한 머리가 아멜리아의 무릎 위로 툭 떨어지며, 깊고 평온한 잠에 빠져들었어요. 규칙적이고 부드러운 숨소리가 오두막 안을 가득 채웠지요. 심장 박동이 아주 느려졌지만, 이는 가사 상태를 이용해 폭주하는 맥박을 안전하게 억제하는 데 성공했다는 증거였답니다.

[★ 돌발 미션 성공! ★] - 펜릴(뽀뽀)의 폭주 수치가 10%로 급감했습니다. - 안정을 취하는 중이며, 24시간 후 안전하게 깨어날 예정입니다. - 보상: 요람 안전도 점수 +200점, 희귀 영양식 레시피 해금!

아멜리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뽀뽀의 부드러운 은빛 털을 정성스레 쓸어내려 주었어요.

이제 남은 것은 아궁이 뒤편에서 덜덜 떨고 있는 아기 새, 냥냥이였답니다.

아멜리아는 노란 아기 새를 다시 따스한 등불 아래로 데려왔어요. 그리고 약초 상자에서 얇고 매끄러운 나무 막대와 깨끗한 백색 붕대를 꺼냈지요.

“조금 아파도 참아야 해, 아가야.”

아멜리아의 가늘고 섬세한 손길이 바쁘게 움직였어요. 전생의 노련한 수의사 지식을 살려, 부러진 날개 뼈를 아주 정밀하게 맞추고 단단한 부목을 대어 고정했답니다. 그리고 붕대를 리본 모양으로 예쁘게 묶어 마무리했지요.

상처가 단단히 고정되자, 극심한 통증과 공포에 질려 있던 아기 새의 눈망울이 이내 평온함을 찾았어요.

“삐약, 삐이…….”

냥냥이는 기분이 풀렸는지, 아멜리아의 품속으로 작은 머리를 꾹꾹 밀어 넣으며 연신 부리를 비벼댔답니다. 복슬복슬한 꼬리깃을 살랑살랑 흔드는 모습이 마치 달콤한 설탕 과자처럼 사랑스러웠어요.

아멜리아는 세상을 다 가진 듯한 미소를 지으며 아기 새의 부드러운 뺨을 어루만져 주었지요.

***

그날 밤 늦은 시각, 에스카르디아 공작저의 아멜리아의 침실.

방 안은 온통 푹신푹신한 분홍빛 실크 베개와 달콤한 바닐라 향이 감도는 따스한 온기로 가득 차 있었답니다.

아멜리아는 하얗고 레이스가 풍성한 드레스를 입고 침대 머리맡에 기대어 앉아 있었어요.

사락, 문이 열리며 아빠 카이든이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들어왔어요. 전장에서는 대지를 피로 물들이는 전신(戰神)이었지만, 막내딸 앞에서는 혹여 발소리가 시끄러울까 봐 까치발을 들고 걷는 영락없는 바보 아빠였지요.

카이든의 손에는 투명하고 시린 핏빛의, 찬란한 붉은 다이아몬드가 박힌 펜던트가 들려 있었답니다.

“내 사랑하는 나비야…… 오늘 숲에서 그 무지하고 천박한 신성청 벌레들이 네 산책을 망쳐놓았다고 들었다.”

카이든이 침대 머리맡에 부릎을 꿇고 앉아, 아멜리아의 작은 손을 소중하게 맞잡았어요. 그의 붉은 눈동자에는 딸을 향한 안타까움과 넘치는 애정이 몽글몽글하게 고여 있었지요.

“이 아빠가 당장 신성청 청사를 통째로 날려버리고 싶었으나…… 네가 놀랄까 봐 참았단다.” “아빠, 저는 괜찮아요…….” “아니다. 그 간사한 멜키오르 추기경 놈이 제국 전역의 마수를 핑계로 우리 영지까지 넘보고 있어. 네 가냘픈 몸에 먼지 한 톨이라도 앉는 것을 이 아빠는 용납할 수 없다.”

카이든은 진지한 표정으로 붉은 다이아몬드 펜던트를 아멜리아의 가느다란 목에 걸어주었어요.

“이것은 가문의 고대 가보란다. 그 어떤 사악한 탐지 마법이나 신성청의 억압적인 빛도 완벽하게 차단해 주는 절대적인 장막을 형성해 주지. 네가 안전하게 요양할 수 있도록 지켜줄 것이다.”

찬란한 붉은 보석이 아멜리아의 하얀 쇄골 위에서 아름답게 반짝였어요.

하지만 그 보석이 아멜리아의 살결에 닿는 순간, 그녀의 맑은 눈동자 앞으로 붉은색 경고 마법 글자가 거칠게 점멸하기 시작했답니다.

[★ 경고! 가문의 가보 ‘핏빛 다이아몬드’ 내부에서 비정상적인 마력 공명이 감지되었습니다! ★] [이 공명은 멜키오르 추기경이 영지 내에 심어둔 ‘비밀 첩자’의 신호와 강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48시간 이내에 가문 전체를 위협할 거대한 함정이 작동될 예정입니다!]

아멜리아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어요.

사랑하는 가족들이 건네준 가장 안전한 가보가, 사실은 신성청의 가장 위험한 음모와 맞물려 돌아가는 시한폭탄이었다니요?

아멜리아는 애써 떨리는 입술을 숨기며, 반짝이는 보석을 움켜쥐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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