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무슨 일이 있어요? 화가 나 보여요.”
아멜리아는 본능적으로 가슴팍에 비단 주머니를 숨기며 눈을 깜빡였어요. 매끄럽고 서늘한 핏빛 다이아몬드 펜던트가 얇은 옷자락 너머로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냈지요.
렌은 손에 쥐고 있던 구겨진 보고서를 침대 옆 테이블에 쾅 소리가 나도록 내려놓았답니다. 그의 손끝이 분노로 가늘게 떨리고 있었어요. 은빛으로 빛나는 그의 머리칼이 격앙된 마력의 흐름을 따라 미세하게 흔들렸지요.
“감히…… 신성청의 멜키오르 늙은이가 더러운 수작을 부렸더구나. 제국 영양초 상인 연합 놈들과 공모하여, 우리 에스카르디아 공작령으로 들어오는 모든 무역로와 교역로를 전면 폐쇄했다.”
“네……? 교역로를요?”
아멜리아의 얼굴이 굳어졌어요.
영양초는 마수들의 폭주를 억제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영양 사료의 핵심 원료이자, 공작령 내의 수많은 가축과 마수들을 먹여 살리는 필수적인 약초였지요. 그것을 유통하는 상인 연합이 교역을 전면 차단했다는 것은, 에스카르디아 가문의 숨통을 조이고 공작령 내의 모든 마수들을 굶겨 죽여 폭주를 유도하겠다는 악랄한 선전포고와 다름없었답니다.
“뿐만 아니라, 공작령 내부로 향하는 모든 약초 수급로까지 신성청의 ‘이단 오염 방지’라는 명목하에 군사적으로 봉쇄당했다. 네 요양을 위해 준비하려던 약초들마저 전부 국경에 묶여버렸어.”
렌의 붉은 눈동자에서 잔혹한 살기가 일렁였어요. 방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는 것처럼 싸늘해졌지요.
“내일 아침 당장 기사단을 이끌고 영지 국경을 막아선 교단 놈들의 목을 전부 베어버릴 것이다. 감히 내 동생의 약초를 가로막아?”
아멜리아는 렌의 살기등등한 선언을 들으며, 속으로 바쁘게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했어요.
‘신성청이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구나. 약초 공급을 끊어서 우리 가문의 마수들을 폭주시키고, 나아가 나를 이단으로 몰아세우려는 속셈이지?’
하지만 아멜리아의 손끝에는 방금 연성해 낸, 그 어떤 영양초보다도 강력한 정화 능력을 지닌 ‘신비한 소독용 밀짚 종자’가 쥐어져 있었답니다. 위기는 곧 기회였어요. 신성청이 자원을 봉쇄한다면, 가문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자원을 생산하고 격상하여 저들을 역으로 말려 죽이면 그만이었으니까요.
아멜리아는 살포시 주먹을 쥐며, 렌의 소맷자락을 조심스럽게 붙잡았어요.
“오빠…… 피를 흘리는 건 싫어요. 저에게 좋은 생각이 있어요.”
동생의 가냘픈 손길에 렌의 살기가 눈 녹듯 흩어지는 순간, 공작저의 창밖으로 숲속에서 들려오는 기이하고도 거대한 마수의 울음소리가 밤하늘을 갈랐답니다.
그 구슬프고도 거친 울음소리는 숲의 심장부에서부터 메아리쳐 와 아멜리아의 귓가를 따갑게 자극했어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지요.
바로 그때, 아멜리아의 맑은 눈동자 앞으로 번쩍이며 투명한 에메랄드빛 홀로그램 창이 떠올랐어요. 오직 아멜리아의 눈에만 보이는 영적 시스템, ‘영수 육성 장부’의 경고창이었답니다.
[비상! 요람 내 소독초 잔량: 2회분!] [경고: 영양제 및 조제 약재 재고 고갈 임박!] [검은안개 숲 비밀 요람에 수용된 마수 수십 마리의 상처 감염도가 재상승하고 있습니다!] [현재 평균 감염도: 42% (상승 중 📈)] [※ 해결하지 못할 경우, 3일 이내에 요람 내 마수들의 집단 폭주 및 은폐 방벽 붕괴 확률이 98%에 도달합니다.]
붉게 깜빡이는 경고등이 아멜리아의 시야를 어지럽혔어요.
‘소독초 잔량이 겨우 이틀 치밖에 안 남았다고? 게다가 감염도까지 올라가다니……!’
전생의 유능한 수의사였던 아멜리아는 직감적으로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어요. 상처 입은 마수들에게 소독과 영양 공급은 생명줄과도 같았지요. 신성청의 교역로 봉쇄는 겉으로는 에스카르디아 공작가를 향한 압박이었지만, 실상은 아멜리아의 비밀 요람을 송두리째 말려 죽이려는 치명적인 독수였던 것이에요.
아멜리아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어요. 하얗고 고운 뺨에 초조함이 깃드는 것을 본 렌은 즉시 안절부절못하며 자리를 좁혀 앉았답니다.
“아멜리아, 어디가 아픈 것이냐? 가슴이 답답해? 숨이 가쁘니? 왜 얼굴빛이 이리도 파리해지는 거야!”
렌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유리인형을 다루듯 아멜리아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감싸 안았어요. 그의 손길은 깃털처럼 가벼웠지만, 그 손끝에서 느껴지는 걱정의 깊이는 태산보다도 무거웠지요.
[시스템 메시지: 가족의 극단적인 걱정과 안절부절못하는 에너지가 감지되었습니다!] [걱정 마력 충전 완료! +1,200 MP] [현재 보유 마력: 13,700 MP]
머릿속에서 맑은 차임벨 소리와 함께 마력이 충전되는 알림이 울렸지만, 지금은 마냥 기뻐할 때가 아니었어요. 당장 마수들의 상처를 치료할 약초를 대량으로 확보하지 못하면 요람의 아이들은 물론이고, 자신의 비밀 이중생활마저 들통날 위기였으니까요.
아멜리아는 머리를 빠르게 굴렸어요.
‘교역로가 막혔다면 영지 내에서 자급자족을 해야 해. 분명 우리 가문에도 예전에는 영영초를 재배하던 농장이 있었을 텐데…….’
아멜리아는 기억을 더듬었어요. 에스카르디아 공작령 북쪽 경계에는 한때 제국 최대 규모를 자랑하던 영영초 농장이 있었지요.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원인 모를 역병으로 약초들이 전부 시들어 죽어버려, 지금은 잡초조차 자라지 않는 황무지로 버려진 곳이었어요.
아멜리아는 살며시 눈을 내리깔며, 렌의 가슴팍에 이마를 기대고 한없이 가냘픈 목소리로 속삭였답니다.
“오빠…… 실은 요즘 방 안에만 누워 있었더니 가슴이 너무 답답해요. 가슴속에서 차가운 바람이 휑하니 부는 것만 같아서…….”
“머, 먼지라도 들이마신 게냐? 의원을 불러라! 아니, 황궁의 수석 신관을 머리채라도 잡아서 끌고 오겠다!”
렌의 붉은 눈동자가 사시나무 떨듯 흔들렸어요. 아멜리아는 그의 소맷자락을 꼬물거리는 손가락으로 꼭 쥐며 고개를 저었지요.
“아니에요, 오빠. 의사 선생님의 쓴 약은 싫어요. 그저…… 따사로운 햇볕을 쬐며 산책을 하고 싶을 뿐이에요. 예전에 가문 서적에서 보았던 북쪽의 영영초 농장이 생각났어요. 그곳에 피어 있는 가여운 보라꽃들이 보고 싶어요. 죽어가는 꽃들을 보면 왠지 제 마음이 차분해질 것 같아서요…….”
사실 죽어가는 꽃을 보며 마음을 정돈한다는 것은 무시무시한 괴수 가문의 영애다운 독특한 감성이었지만, 렌의 필터링을 거치자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애절하고 아름다운 요정의 소망으로 둔갑해 버렸답니다.
“보라꽃……! 그래, 네가 원한다면 그 삭막한 황무지라도 정원으로 만들어 주마. 당장 준비하거라!”
렌은 즉시 시종들을 향해 사자처럼 포효하듯 명령을 내렸어요. 아멜리아가 산책을 나간다는 소식에 공작저는 순식간에 발칵 뒤집혔지요.
아멜리아는 산책 준비를 하는 시종들의 호들갑을 지켜보며, 렌이 들고 있던 구겨진 보고서에 시선을 던졌어요.
그 보고서의 귀퉁이에는 낯익은 향기가 미세하게 묻어나고 있었답니다. 아주 미미하지만 은은하게 풍기는, 달콤하면서도 톡 쏘는 듯한 ‘리일리향’. 그리고 보고서 옆에 놓인 수사 단서 목록에는 ‘신성청 마크가 찍힌 붉은 밀랍 왁싱 편지 봉투’가 짓눌린 채 그려져 있었지요.
“오빠, 그 보고서에 있는 붉은 봉투는 무엇인가요? 은은한 꽃향기가 나는 것 같아요.”
아멜리아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묻자, 렌은 황급히 보고서를 뒤로 숨기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어요. 무서운 이야기는 동생의 맑은 귀에 담기게 하고 싶지 않다는 배려였지요.
“아무것도 아니란다, 아멜리아. 그저 며칠 전 지하 감옥으로 끌고 간 그 더러운 끄나풀 년이 소지하고 있던 물건들이란다. 그년의 배후를 캐내기 위해 고문을 가하고 있지만, 아주 지독하게 훈련된 신성청의 사냥개더구나. 입을 굳게 다물고 있어.”
렌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어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그년이 은밀히 반출하려던 우리 가문의 영지 지도는 이미 가짜로 바꿔치기해 두었으니까. 그들이 그 거짓 지도에 낚여 매복 작전을 펼치는 순간, 우리 기사단이 역으로 그들의 숨통을 끊어 놓을 것이다.”
‘역시 에스카르디아 가문다워. 이미 손을 써 두었구나.’
아멜리아는 속으로 감탄하며 안도했어요. 첩자 하녀장이 가지고 있던 리일리향과 붉은 밀랍 봉투는 신성청과 영양초 상인 연합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공작가를 안팎으로 파멸시키기 위해 촘촘한 그물을 짜고 있었다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였지요.
그렇다면 이번 농장 조사는 단순한 산책이 아니었어요. 가문의 숨통을 틔울 자급자족의 시작이자, 신성청의 촘촘한 그물을 찢어발길 첫 번째 반격의 열쇠였답니다.
* * *
다음 날 아침, 아멜리아의 ‘산책’은 그야말로 제국 역사에 남을 법한 장엄한 행렬로 이루어졌어요.
북쪽의 버려진 농장으로 가는 길은 험하고 거칠었기에, 카이든 공작과 렌은 아멜리아의 연약한 몸이 조금의 진동이라도 느낄까 봐 극도의 정성을 들이고 말았답니다.
아멜리아가 탑승한 마차는 마차라기보다는 차라리 움직이는 호화로운 침실에 가까웠어요.
바닥에는 보드랍고 따스한 분홍빛 양털 카펫이 무려 다섯 겹이나 깔려 있었고, 등받이에는 거위 솜털을 아낌없이 채워 넣은 폭신한 쿠션들이 둥글게 성벽처럼 아멜리아를 감싸고 있었지요. 아멜리아의 어깨에는 향긋하고 쌉싸름한 야생 라벤더 향이 감도는 연분홍빛 실크 스웨터가 걸쳐져 있었고, 무릎 위에는 양의 솜털로 짠 매끄러운 담요가 덮여 있었답니다.
“아멜리아, 조금이라도 춥거나 흔들리면 바로 말하거라. 당장 마차를 세우고 길을 닦는 기사들을 채찍질할 테니.”
마차 창밖으로 말을 타고 나란히 달리는 렌이 걱정 가득한 얼굴로 창문을 살포시 두드렸어요. 그의 등 뒤로는 공작가의 정예 흑철 기사단 백여 명이 삼엄한 호위를 펼치고 있었지요.
“괜찮아요, 오빠. 마차가 너무 포근해서 마치 구름 위에 둥둥 떠 있는 것만 같아요.”
아멜리아는 요정처럼 활짝 웃으며 렌을 안심시켰어요. 겉으로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연약한 막내딸의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머릿속으로는 끊임없이 장부의 수치들을 점검하고 있었지요.
‘좋아, 마력은 충분해. 이제 황무지에 도착하면 장부의 정밀 진단 기능을 가동해서 원인을 밝혀내야 해.’
몇 시간의 호화로운 이동 끝에, 마침내 북쪽의 버려진 영영초 농장에 도착했어요.
마차의 문이 열리자, 아멜리아의 시야에 들어온 풍경은 그야말로 처참했답니다. 한때 온통 보랏빛 물결로 가득해 제국의 보석이라 불렸던 농장은, 이제 시커멓게 타버린 듯한 흙먼지만이 흩날리는 황량한 대지로 변해 있었어요.
듬성듬성 자라난 영영초들은 잎사귀가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려 있었고, 줄기는 검붉은 반점이 가득한 채 꺾여 있었지요.
“세상에…… 정말 가여워라.”
아멜리아는 마차에서 내리며 여리게 한숨을 내쉬었어요.
렌은 아멜리아의 발끝에 흙먼지 한 톨이라도 묻을세라, 마차 발판에서부터 농장 입구까지 최고급 실크 카펫을 붉은 융단처럼 길게 깔아 주었답니다. 기사들은 주변의 바람막이가 되어 먼지를 차단하기 위해 망토를 넓게 펼쳐 들고 도열했지요.
이 지극정성인 과보호 행렬을 농장 한 구석에서 냉소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무리가 있었어요.
그들은 신성청에서 파견된 ‘이단 오염 감시관’들과 영양초 상인 연합의 대리인들이었답니다. 붉은 십자가가 수놓아진 하얀 사제복을 입은 감시관들은, 공작가의 위세에 잔뜩 쫄아 있으면서도 교단의 권위를 등에 지고 짐짓 오만한 태도를 유지하려 애쓰고 있었지요.
“에스카르디아의 후계자 전하를 뵈옵니다.”
감시관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비쩍 마른 사제가 렌을 향해 허리를 숙였어요. 하지만 그의 시선은 렌의 뒤에 서 있는 아멜리아를 향해 끈적하게 달라붙었지요.
“이곳은 이미 여신의 저주를 받아 더러운 마력에 오염된 죽은 땅입니다. 신성청의 성스러운 판정에 따르면, 이 땅의 역병은 오직 교단이 독점하는 ‘신성 정화석’을 대량으로 매설하고 정화 의식을 치러야만 극적으로 살아날 수 있지요. 그렇지 않으면 그 어떤 약초도 자랄 수 없을 것입니다.”
그의 말은 겉으로는 조언이었지만, 실상은 막대한 정화 비용을 요구하는 협박이자, 공작가의 자금줄을 털어내려는 뻔뻔한 장사 수작에 불과했답니다.
렌의 눈썹이 험악하게 꿈틀거렸어요. 그의 손이 즉시 허리춤의 검자루로 향했지요.
“네놈들이 감히 내 동생이 산책하는 신성한 곳에서 푼돈을 구걸하는구나. 그 더러운 주둥이를 찢어 발겨 주랴?”
“힉……! 아니, 저희는 그저 교단의 신성한 진실을 전할 뿐입니다!”
사제들이 하얗게 질려 뒷걸음질 쳤어요.
그 격앙된 분위기 속에서, 아멜리아는 살포시 고개를 숙여 발밑에 깔린 카펫 너머의 흙을 바라보았답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무릎을 굽혀, 최고급 카펫의 틈새로 비집고 나온 검은 흙 한 줌을 작은 손으로 살며시 쥐었어요.
‘장부, 활성화. 정밀 토양 진단 시작해 줘.’
아멜리아가 속으로 나직하게 외치자, 눈앞에 아주 정밀하고 투명한 현미경 형태의 분석창이 팝업처럼 떠올랐답니다.
[정밀 토양 진단 완료 🔍] - 대상 토양: 에스카르디아 북부 영영초 농지 - 신성 마력 결핍율: 0.00% (완전 허구!) - 오염 원인: 특정 지표성 곰팡이(Fusarium oxysporum 변종) 감염에 의한 약초 도관 폐쇄 및 뿌리 부패병. - 분석 결과: 신성청의 ‘신성 정화석’은 이 곰팡이에 아무런 항균 효과가 없으며, 오히려 토양의 산성도를 높여 영영초를 완전히 말라 죽이게 만듦. - 해결 처방전: ① 유기산 및 황 정제액(황무지 유황 온천수 활용 가능) 살포. ② 아멜리아의 ‘신비한 소독용 밀짚 종자’ 파종 시 곰팡이 포자 100% 사멸. ③ 예상 치료 기간: 단 3일!
‘그럼 그렇지! 무슨 놈의 여신의 저주고 마력 오염이야!’
아멜리아는 속으로 차갑게 비웃었어요.
신성청 놈들은 그저 평범한 농작물 곰팡이 감염증을 ‘이단 오염’과 ‘여신의 벌’로 포장하여, 자신들의 비싼 정화석을 팔아먹고 대귀족 가문을 통제하려는 사기를 치고 있었던 것이에요. 심지어 그들이 처방한다는 정화석은 영영초를 완전히 죽여버리는 극약이었으니, 그들의 정화를 받으면 받을수록 농지는 영원히 살아날 수 없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는 구조였지요.
아멜리아는 손에 쥔 흙을 털어내며, 가늘게 콜록이는 시늉을 했어요.
“콜록, 콜록…….”
그 작은 기침 소리에 주변의 모든 기사와 렌의 움직임이 일시에 정지했답니다.
“아멜리아! 흙을 만진 게냐? 손에 불결한 세균이 묻었잖아! 당장 소독약을 가져와라! 물을 끓여라!”
렌은 거의 비명을 지르며 아멜리아의 손을 손수건으로 싹싹 닦아주기 시작했어요. 기사들은 사제들을 향해 즉시 무기를 뽑아 들며 포효했지요.
“감히 이 불결한 땅으로 공녀 전하를 인도해?! 네놈들의 목을 베어 대지에 거름으로 주리라!”
“살려 주십시오! 저희는 그저 진실을……!”
사제들이 흙바닥에 무릎을 꿇고 사시나무 떨듯 떨며 애원했어요.
그 아수라장 속에서 아멜리아는 렌의 옷자락을 살포시 잡고, 세상에서 가장 맑고 청초한 눈동자로 사제들을 바라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답니다.
“오빠, 저 사람들이 틀렸어요. 이 가여운 풀들은 신의 벌을 받은 게 아니에요. 단지…… 조금 아플 뿐인걸요.”
“아멜리아……?”
렌이 멍하니 동생을 바라보았어요.
아멜리아는 가냘픈 손가락으로 시들어 빠진 영영초의 줄기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마치 천사처럼 자애로운 미소를 지었지요.
“이 풀들은 흙 속에서 작은 벌레들과 싸우느라 지쳐 있어요. 제가…… 이 가여운 아이들을 치료해 주고 싶어요. 단 3일이면, 이 넓은 황무지가 다시 아름다운 보랏빛으로 가득 차게 될 거예요.”
그 선언에 사제들의 얼굴이 단번에 일그러졌어요. 그들은 자신들의 밥그릇이자 교단의 권위인 ‘이단 판정’을 고작 어린 공녀가 부정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지요.
“공, 공녀 전하! 아무리 공작가의 영애라 하실지라도 교단의 신성한 판정을 모독하셔서는 안 됩니다! 이 땅은 이미 죽은 땅입니다! 고작 사흘 만에 이 황무지를 되살리겠다니, 이는 여신의 권능을 참칭하는 불경한 오만입니다!”
사제들의 우두머리가 악에 바쳐 소리쳤어요.
하지만 아멜리아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완벽한 자급자족 및 격상 반격 계획이 수립되어 있었답니다.
‘어디 한번 두고 봐. 너희의 사치스럽고 무능한 신성력이 이 비천한 흙 속의 곰팡이 하나 잡지 못하는 쓰레기라는 걸, 내 손으로 아주 처참하게 증명해 줄 테니까.’
아멜리아는 속으로 뻔뻔하게 미소 지으며, 장부의 ‘약재 정비 기능’을 가동하기 위해 마력을 집중시켰어요. 13,700 MP라는 든든한 마력이 그녀의 손끝에서 은밀하게 요동치기 시작했지요.
바로 그 순간이었어요.
저 멀리 농장 언덕 너머에서 요란한 말발굽 소리와 함께, 흙먼지를 자욱하게 일으키며 붉은 십자가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진 갑옷을 입은 무리가 쇄도해 들어왔답니다.
그들의 선두에는 차갑고 오만한 눈빛을 한, 신성청 파견 감시 고문단이 서 있었어요. 그들은 손에 영지의 경작지를 강제로 폐쇄하고 몰수할 수 있는 ‘이단 경작지 공식 폐쇄 선언서’ 양피지를 높이 치켜들고 있었지요.
“에스카르디아 공작가는 들으라! 이 농지는 완전히 이단 오염되어 제국의 안전을 위협하므로, 교단의 권능으로 즉시 영구 봉쇄 및 몰수를 선언한다!”
고문단의 추상같은 외침이 황무지의 하늘을 찢어발겼답니다. 아멜리아의 눈이 가늘어지며, 장부의 붉은 경고등이 역대 최고 속도로 깜빡이기 시작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