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아아앙!
어스름한 달빛이 부서져 내리는 요람 한가운데에서, 집채만 한 은빛 야수가 흉포하게 아가리를 벌렸답니다.
이성을 완전히 잃은 펜릴, 우리 귀여운 뽀뽀의 붉은 눈동자에는 오직 파괴적인 본능만이 이글거리고 있었지요. 수천 년 동안 검은안개 숲을 지켜온 고대 영수의 무시무시한 살기가 사방으로 뻗어 나가며, 단단하게 얽혀 있던 가시덤불 장벽마저 힘없이 바스러뜨렸어요.
보랏빛으로 타오르는 마나 파편들이 사나운 불꽃송이가 되어 은빛 정수리 위로 흩뿌려지는 광경은, 그야말로 종말의 한 페이지를 보는 것처럼 오싹했답니다.
하지만 아멜리아는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어요. 오히려 동그랗고 맑은 보라색 눈동자를 깜빡이며, 허공에 띄워진 투명한 시스템 장부의 수치들을 아주 냉정하게 훑어내렸지요.
[경고! 영수 ‘뽀뽀’의 심장 박동 수치 분당 312회 돌파!] [체온: 42.8℃ | 뇌압 위험 수치 도달!] [조치 대기 시간: 120초. 이대로 시간이 경과하면 마력 폭주로 인한 뇌출혈 및 자폭이 발생합니다!]
두근, 두근, 두근!
터질 듯이 요동치는 뽀뽀의 심장 소리가 대기를 타고 아멜리아의 발끝까지 고스란히 전해졌어요. 겉으로는 세상에서 가장 연약하고 가냘픈 공작가의 막내딸이었지만, 그녀의 속알맹이는 전생에 온갖 사나운 동물들을 다루어 온 베테랑 수의사였답니다.
이 정도 위기상황쯤이야, 눈 하나 깜짝할 일도 아니었지요. 오히려 머릿속의 계산기가 탁탁 소리를 내며 가장 효율적인 치료법을 찾아내기 시작했어요.
‘심장 박동이 분당 300회를 넘었어. 이대로 억지로 힘으로 누르거나 어설픈 정화 마법을 썼다간, 그 반동으로 혈관이 먼저 터져서 죽고 말 거야. 지금 필요한 건 완전한 억제가 아니라…… 일시적인 기능 정지야.’
현대 수의학으로 치면, 심각한 발작을 일으키는 대형견에게 인위적 혼수 상태(Induced Coma)를 유도해 뇌와 심장을 보호하는 긴급 처방과도 같았지요.
아멜리아의 시선이 품속에서 꺼낸 가죽 주머니로 향했어요. 그 안에는 지난번 공작저 서고 깊숙한 곳에서 몰래 챙겨두었던 귀한 약재가 들어 있었답니다.
‘반쪽짜리 달빛풀.’
서늘하고 푸른빛이 도는 얄따란 잎사귀는 만질 때마다 손끝이 시릴 정도로 차가웠고, 은은하게 풍기는 박하 향은 코끝을 알싸하게 자극했어요. 이 풀은 본래 강력한 정화 향을 지니고 있어 마수의 마력을 가라앉히는 데 탁월하지만, 치명적인 부작용이 존재했지요.
다량 섭취하거나 잘못 다루면 영구적인 가사 상태, 즉 영원히 깨어나지 못하는 죽음과도 같은 잠에 빠뜨리는 양날의 검이었답니다. 게다가 지금 아멜리아가 가진 것은 완벽한 한 뿌리가 아닌, 약효가 극도로 불안정한 ‘반쪽짜리’에 불과했어요.
보통 사람이라면 겁을 먹고 뒤로 자빠졌겠지만, 아멜리아의 입꼬리는 오히려 기분 좋게 말려 올라갔답니다.
‘달빛풀의 가사 상태 유도 성질을 역이용하면 돼. 정화 효소와 완벽한 비율로 배합해서, 딱 30분 동안만 심장 박동을 최저치로 떨어뜨리는 긴급 안정 환약을 만드는 거야!’
아멜리아는 허리춤에 매달아 둔 은빛 약사발을 꺼내 들었어요. 그리고 요람의 비밀 서랍에서 아카시아 꽃잎처럼 노랗고 달콤한 향기가 나는 특제 정화 효소 가루를 한 움큼 끼얹었답니다.
사각, 사각, 사그럭.
새하얀 대리석 절구 공이가 사발 바닥을 두드릴 때마다, 톡 쏘는 솔향과 달콤한 아카시아 향, 그리고 서늘한 박하 향이 오묘하게 뒤섞이며 몽글몽글한 보랏빛 증기를 피워 올렸어요.
“크르르릉……! 캬아아악!”
그 순간, 뽀뽀가 아멜리아를 향해 거대한 앞발을 치켜들었답니다. 단숨에 바위도 가루로 만들 수 있는 무시무시한 힘이었지요. 뽀뽀의 발톱 끝에 서린 붉은 마기가 예리한 칼날처럼 허공을 갈랐어요.
일촉즉발의 위기였지만, 아멜리아는 태연하게 속으로 외쳤답니다.
‘장부야! 가족 걱정 마력 소스 5,000MP 소모! [가족의 안절부절 보호막] 1단계 전개!’
웅-!
그녀의 속삭임과 동시에, 아멜리아의 가녀린 체구 주변으로 몽환적인 핑크빛과 찬란한 황금빛이 섞인 둥근 마력 장막이 겹겹이 펼쳐졌어요.
이것은 가문의 두 괴수, 아빠 카이든과 오빠 렌이 아멜리아를 향해 품고 있는 집착과 호들갑이 실체화된 아주 특별하고도 단단한 보호막이었답니다. ‘우리 아멜리아가 바람에 날아가면 어쩌지!’, ‘먼지 한 톨이라도 내 동생의 뺨목을 스치면 제국을 멸망시키겠다!’는 광기 어린 걱정이 모여 만든 방패였으니, 그 방어력은 제국 결계 못지않게 단단했지요.
쿠우우웅!
뽀뽀의 거대한 앞발이 보호막에 부딪히며 엄청난 충격파가 요람 전체를 뒤흔들었어요. 거센 바람이 아멜리아의 부드러운 머리칼을 거칠게 휘날렸고, 사방으로 튕겨 나간 마력 조각들이 밤하늘의 불꽃놀이처럼 아름답게 바스러졌답니다.
하지만 보호막 안쪽의 아멜리아는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어요. 오히려 그 찰나의 순간, 장부의 배합률 수치가 마침내 깜빡이며 완성 신호를 보냈지요.
[배합률 100% 도달! ‘특제 가사 정화 환약’ 조제 완료!]
아멜리아의 손바닥 위에 소담스럽게 얹힌 것은, 은빛이 도는 오묘한 보랏빛의 동글동글한 알약이었어요. 달콤한 꿀 향과 화한 허브 향이 어우러진 맛있는 냄새가 물씬 풍겼답니다.
“뽀뽀야, 잠깐만 아- 하자. 착하지?”
아멜리아는 가녀린 몸을 번개처럼 움직여 뽀뽀의 거대한 머리맡으로 다가갔어요. 보호막이 충격을 흡수하는 틈을 타, 뽀뽀의 턱밑을 부드럽고 가볍게 긁어주었지요.
아무리 폭주한 마수라 해도, 아멜리아의 손끝이 닿는 순간 본능적인 편안함에 움찔할 수밖에 없었답니다.
“르릉……?”
뽀뽀가 붉은 눈을 깜빡이며 잠시 멈칫한 순간, 아멜리아는 거침없이 뽀뽀의 커다란 입안 쪽으로 조막만 한 손을 밀어 넣었어요. 날카로운 송곳니 사이로 뜨거운 콧김과 침이 번들거렸지만, 전생의 베테랑 수의사에게 이 정도는 얌전한 대형견 약 먹이기에 불과했지요.
쑥.
아멜리아는 뽀뽀의 혀뿌리 뒤편 깊숙한 곳에 정확하게 보랏빛 알약을 안착시켰답니다. 그리고 재빨리 입을 다물게 한 뒤, 부드러운 목덜미를 위에서 아래로 쓸어내렸어요.
꿀꺽.
목구멍이 크게 움직이며 약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지요.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답니다.
“……!”
폭풍처럼 사방을 짓누르던 뽀뽀의 거대한 안개가 거짓말처럼 멈추었어요. 붉게 핏빛으로 물들어 있던 눈동자가 서서히 풀리더니, 온몸을 꼿꼿하게 세우고 있던 날카로운 은빛 털들이 부드러운 솜털처럼 가라앉기 시작했지요.
스르르륵.
마치 봄눈이 녹아내리듯, 뽀뽀의 전신을 뒤덮고 있던 기분 나쁜 보랏빛 폭주 마기가 연기처럼 흩어져 사라졌답니다.
쿵!
집채만 한 은빛 야수가 아멜리아의 발치에 천천히 쓰러졌어요. 하지만 그것은 죽음이 아닌, 아주 깊고 평온한 수면이었지요.
“쌔근…… 쌔근…….”
뽀뽀의 젖은 코끝에서 하얀 김이 규칙적으로 뿜어져 나왔어요. 아주 곤히 단잠에 빠진 강아지처럼, 녀석의 커다란 꼬리가 바닥을 가볍게 툭 치고는 이내 얌전히 멈추었답니다.
아멜리아가 얼른 시스템 장부를 확인하자, 경고창이 눈부신 초록빛으로 바뀌며 기분 좋은 효과음이 울려 퍼졌어요.
띠링!
[안정! 영수 ‘뽀뽀’의 심장 박동 수치 분당 65회로 정상화.] [뇌압 및 체온 완전 안정. 폭주 상태가 완벽하게 억제되었습니다.] [영수 내부의 잔류 오염도가 ‘0.2%’로 감소하여 정화가 해제됩니다!]
이어서 눈앞에 찬란한 황금빛 폭죽이 터지듯, 엄청난 보상 메시지들이 연달아 떠올랐답니다.
[축하합니다! 죽음의 위기에서 영수를 구출하는 데 성공하셨습니다!] [영수와의 유대감이 극대화되었습니다! ‘영수 충성도: 열광적 동반자’ 등급으로 도약합니다!] [보상: 요람 영수 전용 소독약 레시피가 영구 활성화됩니다.] [보상: 뽀뽀의 전용 가구 및 장비 관리 권한이 해금됩니다. 요람의 안전도가 크게 상승합니다!]
“후우…….”
아멜리아는 참았던 숨을 길게 내쉬며,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이마를 소맷자락으로 슥 훔쳤어요.
어스름한 달빛 아래, 쌔근쌔근 잠든 뽀뽀의 뽀얗고 부드러운 이마를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지요. 보드랍고 따뜻한 털의 감촉이 손바닥을 타고 기분 좋게 전해졌답니다.
힘으로 찍어 누르는 잔인한 제압이 아니었어요. 영수 육성 장부의 정밀한 진단과, 전생의 수의학 지식이 만들어낸 완벽하고도 지능적인 승리였지요.
‘이걸로 뽀뽀의 상처 치료는 완벽한 궤도에 올랐어. 신성청 놈들이 아무리 방해하려고 해도, 우리 뽀뽀는 이제 안전해.’
아멜리아는 뿌듯한 마음에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주변에 흐트러진 약초 재고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답니다. 가죽 가방에 남은 달빛풀 잔해를 챙겨 넣고, 뽀뽀의 푹신한 침대를 새로 정돈해 주려던 바로 그때였어요.
스르릉, 사락.
요람의 외곽을 둘러싸고 있는, 날카롭고 거대한 가시넝쿨 장벽 너머에서 아주 미세한 소리가 머리칼을 스쳤답니다.
바람 소리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가냘프고, 젖은 흙을 긁는 듯한 다급한 소리였지요.
“……?”
아멜리아의 맑은 보라색 눈동자가 가시넝쿨 아래의 어두운 그늘을 향했어요.
“삐익…… 삐이이…….”
애처롭기 그지없는 가녀린 울음소리와 함께, 가시넝쿨 틈새에서 조그맣고 꼬죄죄한 솜털 뭉치 하나가 힘없이 툭 떨어졌답니다.
그것은 머리 위에 아주 작은 주먹만 한 외뿔이 돋아나 있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귀여운 아기 새 마수였어요.
하지만 아기 새의 상태는 처참하기 그지없었답니다. 한쪽 날개가 완전히 꺾여 뼈가 허옇게 드러나 있었고, 부드러운 노란 솜털은 붉은 피와 검은 흙먼지로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지요.
바들바들 떨고 있는 아기 새의 젖은 눈망울이 아멜리아를 향해 도움을 청하듯 애처롭게 흔들렸어요.
그런데 그 가냘픈 날개깃 사이로, 기묘하고 신비로운 은빛 무늬가 은은하게 반짝이는 것이 보였답니다. 그것은 평범한 마수에게서는 결코 볼 수 없는, 고대의 전령 무늬였지요.
동시에, 저 멀리 검은안개 숲 너머에서 무거운 쇠구두 소리와 함께 차갑고 불길한 신성력의 기운이 요람을 향해 서서히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어요.
아멜리아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답니다.
‘이 아이는 대체 어디서 도망쳐 온 거지……?’
“피, 삐아아…….”
조그만 아기 새는 제 몸뚱이만 한 거대한 가시덤불 벽에 부딪혀 바르르 떨고 있었답니다.
아멜리아는 서둘러 무릎을 꿇고 앉아, 가엾은 생명을 조심스레 두 손으로 감싸 안았어요. 솜털처럼 가볍고 따스한 온기가 차가워진 그녀의 손가락 끝으로 고스란히 전해졌지요.
가까이서 보니 아기 새의 상처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답니다. 앙상하게 부러진 날개뼈 사이로 은빛 피가 툭툭 떨어지고 있었고, 그 주변은 신성청 특유의 독한 정화 마법 부식액으로 인해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어요.
그녀의 눈앞에 투명한 시스템 장부가 다급하게 푸른빛을 발하며 새로운 정보를 띄웠답니다.
[새로운 영수 발견! 상태 진단을 시작합니다.] [종류: 외뿔 아기 정령조 (임시명: 냥냥) / 등급: 희귀 고대종] [상태: 오른쪽 날개 복합 골절, 신성 오염 마법 촉에 의한 부식 및 중독] [스트레스 지수: 99% (쇼크 위험!) | 생존율: 15% - 긴급 처치가 필요합니다!]
‘신성 오염 마법이라니…… 그 악독한 놈들이 이렇게 어린 아가한테까지 몹쓸 짓을 한 거구나.’
아멜리아의 여린 미간이 가볍게 찌푸려졌답니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전생의 수의사로서 느끼는 팽팽한 분노가 끓어올랐지요. 하지만 지금은 화를 낼 때가 아니었어요. 당장 이 가엾은 아이의 고통을 덜어주는 게 먼저였답니다.
그녀는 서둘러 품속의 비밀 약주머니를 열어 새로 해금된 ‘요람 전용 소독약’과 약초들을 꺼냈어요.
“아프지 않을 거야, 착하지? 조금만 참으렴.”
아멜리아는 맑고 고운 목소리로 속삭이며 소독약을 아기 새의 상처 부위에 톡톡 떨어뜨렸답니다.
치이익 소리와 함께 까만 연기가 피어오르며 신성 오염 물질이 씻겨 나가기 시작했어요. 아기 새가 아픈 듯 날개를 퍼덕이자, 아멜리아는 재빨리 준비해 둔 특제 연고를 꺼내 들었지요.
그 연고는 눈이 부시도록 촉촉한 에메랄드빛을 띠고 있었는데, 은은하게 풍기는 달콤한 페퍼민트 향이 코끝을 다정하게 감싸 안았답니다. 손끝으로 만져보면 실크처럼 부드럽고 끈적임 없는 실크 같은 감촉이 느껴지는 최고급 상처 치료제였지요.
사락, 사락.
아멜리아의 섬세한 손길이 닿을 때마다, 사납게 벌어져 있던 붉은 상처가 사르르 아물며 뽀얀 새살이 돋아났어요. 고통으로 잔뜩 굳어 있던 냥냥이의 작은 몸이 눈에 띄게 말랑말랑하게 풀려갔답니다.
[알림! 영수 ‘냥냥’의 정화 및 응급처치 성공!] [스트레스 지수: 99% → 45%로 급감! 생존율이 90%로 상승합니다.] [영수가 당신의 손길에서 깊은 유대감과 안도감을 느낍니다.]
“삐이…… 뺘아.”
고통이 가라앉자 아기 새는 안심했다는 듯, 아멜리아의 따뜻한 손바닥에 둥근 머리를 부비며 하품을 작게 해 보였어요. 레몬빛 솜털이 날릴 때마다 머리 위의 외뿔에서 은은한 은빛 정령 무늬가 반짝이는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아멜리아의 가슴이 몽글몽글하게 부풀어 올랐지요.
하지만 평화로운 치유의 기쁨도 아주 잠시뿐이었답니다.
바스락, 서걱!
가시넝쿨 장벽 바로 바깥쪽에서, 마른 나뭇가지가 무참히 짓밟히는 거친 소리가 사방의 고요를 깨뜨렸어요.
코를 찌르는 매캐하고 건조한 유황 향과 함께, 하얗게 번뜩이는 차가운 은색 갑옷을 입은 무리가 숲을 헤치며 다가오는 실루엣이 가시덤불 사이로 비쳤답니다.
“이 근처다! 놈의 마력 반응이 갑자기 끊겼어. 분명 가시넝쿨 뒤편에 숨어든 게 틀림없다!”
“샅샅이 뒤져라! 이단 혐의가 있는 마수를 숨겨주는 자가 있다면 누구든 현장에서 즉각 처분한다!”
신성청의 추적대였어요! 그들의 손에 들린 거대한 강철 검과 신성 석궁이 달빛을 받아 어둡게 번뜩였답니다.
아멜리아의 등줄기에 서늘한 소름이 돋았어요. 지금 요람 안에는 방금 폭주를 가라앉히고 가사 상태로 깊이 잠든 뽀뽀와, 이제 막 치료를 마친 아기 새 냥냥이가 있었지요. 이대로 신성청의 기사들이 방벽을 뚫고 들어온다면, 요람은 순식간에 피바다로 변할 터였답니다.
‘은신 방벽을 최대로 강화해야 해. 하지만……!’
아멜리아가 다급히 장부를 확인했지만, 화면에는 붉은 경고등이 켜져 있었어요.
[경고! 대규모 신성력 탐지를 차단하기 위한 ‘초광역 차단 은신 방벽’ 전개 필요.] [필요 마력: 10,000 MP | 현재 보유 마력: 7,500 MP] [마력이 2,500 MP 부족합니다! 방벽 전개 불가!]
부족한 마력은 오직 가문의 과보호와 집착, 그리고 안절부절못하는 걱정 에너지로만 채울 수 있었지요. 하지만 지금 아빠와 오빠는 멀리 공작저에 있었답니다.
아멜리아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어요. 전생의 배신으로 인해 타인의 호의를 온전히 믿지 못하는 그녀였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가문의 그 지독한 집착을 완벽한 ‘생존 거래’의 도구로 삼아야만 했지요.
‘미안해요, 아빠, 오빠. 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어요!’
아멜리아는 품속에서 아빠 카이든이 안절부절못하며 쥐여주었던 붉은 보석이 박힌 가문 전용 통신석을 꺼내 들었답니다. 그리고 목소리를 가냘프게 떨며, 세상에서 가장 연약하고 아픈 목소리로 통신석에 대고 속삭였어요.
“아…… 윽! 아빠…… 오빠…… 나, 머리가 너무 어지럽고…… 콜록! 숨이…… 잘 안 쉬어지어…… 요…….”
뚝.
완벽한 타이밍에 통신을 끊어버린 아멜리아는 속으로 숫자를 세었답니다. 하나, 둘, 셋.
그리고 그 순간, 머릿속에서 경쾌하다 못해 폭발적인 시스템 알림음이 사정없이 울려 퍼졌어요!
따르릉! 띠리링! 쾅!
[긴급 상황! 가주 ‘카이든 에스카르디아’의 심장 박동수가 한계치를 돌파합니다! 극단적 패닉 상태 돌입!] [긴급 상황! 소공작 ‘렌 에스카르디아’의 이성이 완벽히 붕괴되었습니다! 가문 기사단 전원에게 비상 총동원령 선포!] [“우리 아멜리아가 아프다! 감히 어떤 처 죽일 놈들이 내 딸을 건드린 것이냐!”] [걱정 마력 폭발적 충전! +25,000 MP 획득!] [현재 보유 마력: 32,500 MP!]
‘마력 충전 완료!’
아멜리아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뻔뻔하게 미소 지었답니다. 그녀는 지체 없이 넘쳐나는 마력을 기적의 장부에 들이부었어요.
[30,000 MP 소소! ‘초광역 신성 차단 은신 방벽’을 전개합니다!]
웅-!
순간, 보랏빛의 아름다운 마력 장막이 검은안개 숲 전체를 부드럽게 감싸 안으며 요람의 흔적을 공간 너머로 완벽하게 감추어 버렸답니다.
가시넝쿨을 거칠게 베어내며 안쪽으로 들이닥친 신성청의 기사단장은 텅 빈 공간만을 마주해야 했지요.
“이상하군…… 분명 이 위치였는데? 흔적이 완전히 사라졌다!”
기사단장이 투구를 벗으며 땀을 닦아냈어요. 바로 코앞에 아멜리아가 냥냥이를 품에 안은 채 숨죽이고 서 있었지만, 은신 방벽 덕분에 그들의 눈에는 오직 황량한 이끼 낀 파편들만 보일 뿐이었지요.
“단장님! 이 근처에서 기이한 마력의 흔적이 느껴집니다. 아직 멀리 가지 못했을 겁니다!”
“쳇, 샅샅이 뒤져라! 흙바닥 한 칸도 놓치지 말고 검으로 찔러보란 말이다!”
기사들이 살기등등한 기세로 철검을 치켜들고 아멜리아가 서 있는 방향으로 한 걸음씩 좁혀오기 시작했어요. 은신 방벽이 물리적인 충격까지 완벽히 막아내는 것은 아니었기에, 검끝이 스치기라도 한다면 은신이 깨질 위기였지요.
서걱, 서걱.
차가운 쇠구두 소리가 아멜리아의 코앞까지 다가왔을 때였답니다.
그때, 은신 장막 너머의 하늘이 갑자기 시커먼 먹구름이 낀 것처럼 어두워지기 시작했어요. 숲 전체의 공기가 순식간에 영하로 떨어진 듯, 나뭇잎마다 하얀 서리가 내려앉았지요.
그리고 기사들의 등 뒤에 드리워진 거대한 그림자 속에서, 대지를 통째로 쪼개버릴 듯한 무시무시한 살기와 함께 낮고 가라앉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답니다.
“감히…….”
그것은 제국 최강이자 최악의 괴수, 아빠 카이든의 목소리였어요.
어스름한 달빛조차 집어삼킨 검은 마기를 온몸에 두른 채, 피도 눈물도 없는 공작가의 가주가 기사들의 등 뒤에 소리 소문도 없이 서 있었답니다. 그의 붉은 눈동자는 이미 이성을 잃고 광증으로 번뜩이고 있었지요.
“감히 네놈들이…… 내 딸의 정원에 발을 들이고, 내 딸을 아프게 한 벌레들이냐?”
공작의 손에 들린 거검이 스르릉 소리를 내며 대지를 짓눌렀어요.
상상을 초월하는 초토화의 기운에 신성청의 기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뒤를 돌아보았을 때, 아멜리아는 품 안의 아기 새가 갑자기 제 손가락을 콕콕 쪼아대는 것을 느꼈답니다.
동시에, 아기 새의 이마에 새겨진 은빛 외뿔에서 가문의 상징인 붉은 마력과 정반대되는, 눈이 멀 것 같은 찬란한 백색의 고대 정령 광채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오기 시작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아멜리아의 맑은 눈동자가 경악으로 거대하게 커졌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