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아멜리아! 정신을 잃으면 안 된다, 내 아가! 어서 해독 물약을 가져오너라! 제국의 모든 의사를 당장 이 방으로 압송해 오란 말이다!”

카이든 공작의 절규가 웅장한 복도를 찌르듯 울려 퍼졌어요. 피와 전장만을 알던 철혈의 공작은 지금 이 순간,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유리인형을 품에 안은 것처럼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었답니다.

그의 넓고 단단한 품에 안긴 채, 아멜리아는 가만히 눈꺼풀을 깜빡였어요. 조금 전, 숲속에서 다친 마수들을 돌보느라 드레스에 묻은 피를 ‘딸기 시럽’이라고 얼버무리며 가벼운 기침 소동을 피웠을 뿐인데 가문 전체가 뒤집어지고 만 것이지요.

파르르 떨리는 아빠의 턱끝을 바라보며 속으로 미안함을 삼키던 바로 그 순간이었어요.

띠링!

아멜리아의 맑은 눈동자 위로, 오직 그녀에게만 보이는 반투명한 푸른빛 창이 선명하게 떠올랐답니다.

[경보: 환자 ‘뽀뽀’(펜릴)의 심박 수가 급격히 하락하고 있습니다!] [기생 마기의 2차 변이율 95% 돌파. 즉시 치료하지 않으면 자아를 잃고 대폭주 단계에 진입합니다!]

‘……뭐라고?’

아멜리아의 가슴이 쿵 내려앉았어요.

검은안개 숲속, 가시덤불로 꽁꽁 숨겨둔 비밀 요람에 홀로 누워 있을 은빛 늑대 뽀뽀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쳤지요. 기생 마기의 변이라니, 수의사였던 전생의 기억을 통틀어봐도 마수의 기생체 변이는 골든타임이 단 몇 시간에 불과한 초응급 상황이었어요.

지금 당장 숲으로 달려가 치료해야만 했답니다. 하지만 그녀를 안고 달리는 아빠의 팔뚝은 강철처럼 단단해서 도무지 빠져나갈 틈이 보이지 않았어요.

“아빠, 저 정말 괜찮아요…….” “조용히 하거라, 아가!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네 연약한 폐에 무리가 가고 있단다!”

카이든은 바람보다 빠르게 달려 마침내 본관 깊은 곳에 마련된 특별실의 문을 발로 차서 열었어요.

그곳은 아멜리아의 가벼운 기침 한 번에 놀란 공작가가 사흘 밤낮을 새워 급조한 특수 멸균실이었답니다. 먼지와 세균을 완벽히 차단하는 마법 장막이 이중삼중으로 처진 방이었지요.

방 한가운데에는 구름처럼 포근하고, 은은한 라벤더 향이 피어오르는 새하얀 실크 침대가 놓여 있었어요. 어찌나 정성을 들였는지 이불 깃 하나하나마다 최고급 양모로 짠 푹신하고 부드러운 레이스가 촘촘히 박혀 있었답니다.

카이든은 마치 세상에서 가장 깨지기 쉬운 보석을 다루듯, 아멜리아를 침대 위에 살포시 내려놓았어요.

문이 열리며 숨을 헐떡이는 오빠 렌이 헐레벌떡 뛰어들어 왔지요. 평소의 냉철한 얼굴은 간데없고, 앞머리가 땀에 젖어 엉망으로 헝클어진 모습이었어요.

“아멜리아! 괜찮은 거냐? 가문이 쇠락하여 네게 이런 누추하고 차가운 방을 쓰게 만들다니…… 모두 내 불찰이다. 당장 대륙 최고의 신관들을 납치해서라도 데려오마!” “오빠, 여긴 충분히 따뜻하고 화려해요. 그리고 전 아프지 않아요.”

아멜리아가 억울한 듯 동그란 눈을 깜빡이며 말했지만, 두 남자의 귀에는 그저 가냘픈 막내딸의 눈물겨운 배려로만 들릴 뿐이었어요. 아빠와 오빠의 눈가에 순식간에 뜨거운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고였답니다.

[가족들의 극단적인 걱정과 불안이 감지되었습니다!] [‘걱정 마력’이 폭발적으로 충전됩니다.] [충전 마력: +20,000점 (누적 마력: 24,500점)]

그와 동시에 귓가를 때리는 맑은 시스템 알림음. 아멜리아는 속으로 침을 꿀컥 삼켰어요.

‘이만 점……!’

가족들의 숨 막히는 집착과 과보호는 아멜리아에게 엄청난 스트레스였지만, 동시에 그녀가 가진 ‘영수 육성 장부’의 마력을 채워주는 유일하고도 거대한 원천이었지요. 이 정도의 마력이라면 뽀뽀를 구할 방법을 당장 연성해 낼 수 있었답니다.

아멜리아는 이불을 턱 밑까지 끌어올리며 짐짓 피곤한 척 눈을 지그시 감았어요.

“조금 졸려요…… 아빠, 오빠. 저 잠들 때까지만 문을 닫고 조용히 해 주시면 안 될까요?” “오, 물론이지! 네가 편히 쉴 수 있도록 방 밖의 복도 전체에 양탄자를 세 겹으로 깔고 기사들의 통행을 전면 금지하겠다!”

카이든은 감격 어린 얼굴로 가슴을 부여잡으며 렌과 함께 살금살금 방을 빠져나갔어요. 문이 부드럽게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아멜리아는 번개처럼 눈을 번쩍 뜨고 상체를 일으켰답니다.

“시스템, 장부 열어줘.”

허공에 나타난 투명한 가죽 장부의 책장이 파르르 넘어가며 뽀뽀의 상태창을 띄웠어요.

[환자: 펜릴 (이름: 뽀뽀)] [상태: 기생 마기 2차 변이로 인한 급성 중심 열성 혼수 상태.] [권장 처방: 고성능 마기 흡착 숯가루 70g + 반쪽짜리 달빛풀의 즙 5ml + 영양 사료 배합 투약.] [※ 주의: 마기 흡착 숯가루는 고도의 정제 마력이 필요합니다. 연성 비용: 15,000 마력.]

아멜리아는 망설임 없이 화면의 연성 버튼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톡 눌렀어요.

슈우우우.

그녀의 손바닥 위로 눈부신 푸른빛이 모여들더니, 이내 정교하게 가공된 유리병 하나가 툭 떨어졌답니다. 병 안에는 은빛 모래알처럼 반짝이는 미세한 검은 숯가루가 가득 차 있었어요. 일반적인 신성력으로는 마수를 정화하려다 마수 자체를 태워 죽이기 일쑤였지만, 이 흡착 숯가루는 마수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고 오직 오염된 마기만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특수 물질이었지요.

“좋아, 약은 준비됐어.”

아멜리아는 하늘거리고 보드라운 실크 잠옷 위에 단단한 모포를 덧입고, 창문을 소리 없이 열었답니다.

차가운 밤바람이 뺨을 스쳤지만 망설일 시간은 없었어요. 그녀는 가냘픈 몸을 날렵하게 움직여 창틀을 딛고, 지붕의 음영을 따라 고양이처럼 조심스럽게 내려앉았어요. 전생의 기억과 장부의 보조 능력이 더해진 덕분에 공작가의 촘촘한 경계망을 피해 검은안개 숲으로 향하는 비밀 통로로 빠져나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답니다.

* * *

스산한 밤안개가 가득한 검은안개 숲의 심장부.

가시덤불 장벽으로 꽁꽁 싸여 있는 아기자기한 요람 안으로 아멜리아가 숨을 몰아쉬며 뛰어 들어왔어요.

“뽀뽀야!”

요람의 구석, 푹신한 마른풀 침대에 누워 있는 은빛 늑대 뽀뽀의 상태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어요.

커다란 몸체 위로 검붉은 마기가 기분 나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었고, 이마의 은빛 털 사이로 굵은 핏줄이 검게 튀어나와 흉측하게 꿈틀거렸답니다. 이성을 잃은 듯 으르렁거리는 뽀뽀의 붉은 눈동자에는 오직 파괴 본능만이 남아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크으으으……!”

“나야, 뽀뽀야. 누나 왔어. 아프게 안 할 테니까 조금만 참아.”

아멜리아는 침착하게 인벤토리에서 절구와 싱싱한 연어 사료, 그리고 지난번에 구해둔 반쪽짜리 달빛풀을 꺼냈답니다.

달빛풀은 강력한 정화 향을 지녔지만, 다량 섭취하면 일시적인 가사 상태에 빠지게 만드는 무서운 독초이기도 했어요. 하지만 지금처럼 폭주 직전의 마수를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이 달빛풀의 마취 성분이 반드시 필요했지요.

아멜리아는 아주 미세한 양만을 조심스럽게 계량하여 절구에 빻았어요. 푸르스름한 약즙이 흘러나오자, 그 위에 은빛 숯가루와 영양 가득한 분홍빛 연어 사료를 넣고 골고루 버무렸답니다.

달콤하면서도 고소한 특제 사료의 향기가 동굴 안에 은은하게 퍼지기 시작했어요.

아멜리아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뽀뽀의 코끝에 그릇을 밀어 넣어 주었어요.

“자, 이거 먹고 얼른 낫자.”

마기에 잠식되어 흉포하게 으르렁거리던 뽀뽀가, 코끝을 찡긋하더니 킁킁 냄새를 맡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본능적으로 그릇에 코를 박고 허겁지겁 사료를 핥아 먹기 시작했답니다. 맛있는 연어의 풍미와 달빛풀의 달콤함, 그리고 숯가루의 시원함이 입안 가득 퍼지자 녀석의 꼬리가 미세하게 흔들렸어요.

사료가 온전히 위장으로 넘어가자마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답니다.

스으으으으…….

뽀뽀의 몸을 휘감고 있던 탁하고 검붉은 기생 마기들이, 녀석의 피부 속에서부터 뿜어져 나와 아멜리아가 연성한 숯가루의 입자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지요. 은빛으로 반짝이던 숯가루들이 검은 독기를 머금으며 새까맣게 변해갔어요.

[환자의 체내 기생 마기 흡착 성공!] [시스템 보관함으로 오염물질을 안전하게 추출합니다.]

띠링!

아멜리아가 장부의 정화 버튼을 누르자, 뽀뽀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검은 연기들이 허공에서 둥글게 뭉쳐지더니 순식간에 투명하고 차가운 푸른색 보석으로 압축되었답니다.

[축출된 마기를 정화하여 최고급 ‘정화된 마력 결정’ 1개를 획득하였습니다!] [상점에 판매하거나 추후 영수들의 영양제 강화 재료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와아…….”

아멜리아는 손바닥 위에 떨어진, 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영롱하게 빛나는 마력 결정을 바라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어요.

제국의 신성청은 마수를 그저 ‘죽여서 정화해야 할 악마’로 규정하며 마수를 죽여 나오는 부산물로 폭리를 취해왔지요. 하지만 아멜리아는 단 한 마리의 마수도 해치지 않고, 오히려 녀석들을 완치시키면서 그 어떤 정화석보다 순도가 높은 마력 결정을 얻어낸 것이랍니다.

이것이야말로 그녀가 꿈꾸는 ‘비밀 요람’의 자립을 위한 가장 완벽한 자원이자 확실한 사이다였어요.

“끼잉…….”

어느새 검푸른 불꽃이 완전히 가라앉은 뽀뽀가, 한결 맑아진 금빛 눈동자로 아멜리아를 바라보았어요. 녀석은 커다란 머리를 아멜리아의 작은 무릎에 비비며 부드럽게 꼬리를 세차게 흔들었답니다. 온몸의 통증이 가시고 시원한 해방감이 찾아온 덕분이었지요.

“착하지, 우리 뽀뽀. 이제 정말 다 나았네.”

아멜리아는 녀석의 턱밑과 엉덩이를 기분 좋게 긁어주었어요. 뽀뽀는 기분이 좋은지 다리를 바르르 떨며 낮게 르릉거렸답니다.

가장 큰 고비를 넘겼다는 안도감에 아멜리아의 얼굴에도 몽글몽글한 미소가 피어올랐어요. 그녀는 뽀뽀의 침대를 다시 한번 푹신하게 정돈해 준 뒤, 날이 밝기 전에 서둘러 공작저로 돌아가기 위해 요람을 나섰답니다.

* * *

늦은 밤의 공작저는 기묘할 정도로 정적에 잠겨 있었어요.

아멜리아는 들키지 않도록 본관 서고와 연결된 비밀 회랑을 통해 안으로 은밀히 숨어들었답니다. 이곳은 평소 기사들의 순찰 노선에서 벗어난 곳이라 가장 안전한 복귀 경로였지요.

사락, 사락.

가벼운 발걸음으로 어두운 서고를 가로지르던 아멜리아는, 문득 책장 사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작은 물체를 발견하고 걸음을 멈추었어요.

‘이게 뭐지?’

그녀는 허리를 숙여 그것을 집어 올렸답니다.

그것은 아주 정교하게 정돈되어 있어야 할 역사서 책장 틈새에 끼어 있던, 찢어진 편지 봉투의 잔해였어요.

어두운 서고의 창문 틈새로 새어 들어오는 얇은 달빛 아래, 봉투에 찍힌 붉은 밀랍 왁스의 문양이 선명하게 드러났어요.

왕관을 둘러싼 세 개의 십자가. 그것은 제국 신성청의 최고 권력자이자, 마수를 학살해 부를 축적하는 악랄한 이단 추기경, ‘멜키오르’의 개인 인장이었답니다.

게다가 코끝을 스치는 이 지독할 정도로 인위적이고 화려한 꽃 향기.

공작저 깊은 곳에 있는 서고에, 신성청 고위 끄나풀들만이 은밀히 사용한다는 ‘리일리향’의 냄새가 묻은 밀서가 떨어져 있다니.

아멜리아의 등줄기를 타고 오싹한 소름이 돋아났어요. 가문 내부에 신성청의 첩자가 깊숙이 침투해 있다는 명백한 증거였지요.

바스락.

그때, 서고의 굳게 닫힌 문 너머에서 아주 미세한 발소리가 들려왔어요.

아멜리아는 본능적으로 숨을 죽이고 가장 가까운 거대한 책장 뒤의 음영 속으로 몸을 숨겼답니다.

조금 전 서고의 문틈으로 새어 들어온 발자국 소리를 들은 것일까요.

서고 문이 소리 없이 아주 조금 열리더니, 그 틈새로 촛불 하나 없는 어둠 속에서 붉은 밀서 잔해를 응시하는 서늘한 눈동자가 드러났어요. 다름 아닌, 낮 동안 아멜리아에게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따뜻한 수프를 먹여주던 공작가의 하녀장이었답니다.

하녀장의 손끝이 품속으로 서서히 들어가더니, 붉은 밀서 조각 뒤로 차가운 은빛 칼날을 서서히 빼어 드는 그림자가 아멜리아가 숨은 책장 앞까지 길게 드리워지기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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