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벌려진 턱 사이로 흘러나오는 숨결은 지독하게 뜨겁고 비릿했다.

날카로운 송곳니가 달빛을 받아 서슬 퍼렇게 빛났고, 거대한 그림자가 아멜리아의 머리 위를 완전히 뒤덮었다. 찰나의 순간, 소름 끼치도록 차가운 죽음의 감각이 뺨을 스쳤다. 보통의 일곱 살 어린아이였다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기절했을 테다.

하지만 아멜리아는 전생에 사나운 맹수들의 이빨 앞에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베테랑 수의사였다.

‘지금 도망쳐 봤자 내 짧은 다리로는 세 걸음도 못 가 잡혀.’

심장이 쿵쾅쿵쾅 갈비뼈를 두드렸지만, 머릿속은 얼음물처럼 차갑게 식어 내렸다. 아멜리아는 도망치는 대신, 바람에 나풀거리는 부드러운 연분홍빛 실크 드레스 자락을 움켜쥐고 제자리에 꼿꼿이 섰다. 은은한 바닐라 향이 감도는 가녀린 드레스 소맷단 끝에는 아기자기한 딸기 무늬 자수가 수놓아져 있어, 덮쳐오는 야수의 흉포함과 기묘한 대비를 이루었다.

아멜리아는 눈을 부릅뜨고 마음속으로 외쳤다.

‘장부, 열려라!’

키잉하는 맑은 이음과 함께, 아멜리아의 시야 가득 반투명한 에메랄드빛 홀로그램 장부가 펼쳐졌다.

[치료 모드를 즉시 발동합니다!] [환수(患獸) 정보 분석 중…….] - 개체명: 고대 영수 ‘펜릴’ (임시 등록 상태) - 오염 부패도: 85% (매우 위험!) - 주요 증상: 신성청이 가공한 불법 마기 억제용 쇠사슬에 의한 외상, 교상 부위의 심각한 괴사, 초고열을 동반한 광증. - 현재 마력 잔액: 450 MP (가족들의 집착 마력 충전분)

“크아아아아!”

늑대의 턱이 아멜리아의 가녀린 목덜미를 물어뜯기 직전, 그녀는 품속에서 오늘 낮에 연성해 둔 차갑고 무거운 유리병을 꺼내 들었다. 은빛으로 투명하게 일렁이는 액체가 담긴 병이었다.

[성스러운 알코올 (등급: 일반)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소모 MP: 100]

“사용해!”

아멜리아의 외침과 함께 유리병이 파스스 깨어지며 투명한 액체가 공중으로 흩뿌려졌다. 그것은 단순한 소독약이 아니었다. 가족들이 아멜리아에게 품은 지독하고 끈적한 과보호의 에너지를 여과하여 만들어진, 세상에서 가장 순수하고 강력한 마력 정화수였다.

촤아아아악!

흩뿌려진 알코올 방울들이 늑대의 썩어가는 상처 부위에 정확히 내리앉았다.

“끼에에에엑—!”

거대 늑대가 고막을 찢을 듯한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허공에서 뒤틀렸다. 녀석의 거구는 아멜리아를 덮치는 대신 그녀의 발치 바로 옆으로 둔중하게 추락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주변의 가시덤불이 사방으로 꺾여 나갔다.

치이이익!

늑대의 옆구리와 목덜미에 엉겨 붙어 있던 검붉은 마기가 시커먼 연기를 뿜어내며 타올랐다. 살을 파고들며 썩어 들어가던 교상 부위에서 노란 고름과 함께 오염된 피가 흘러내렸다.

엄청난 통증에 늑대는 바닥을 구르며 네 발을 허우적거렸다. 불타는 석탄처럼 뜨거운 열기가 녀석의 거구에서 뿜어져 나와 아멜리아의 뺨을 발갛게 달구었다.

“쉿, 괜찮아. 나쁜 벌레들을 태우는 중이야. 조금만 참아, 멍멍아.”

아멜리아는 겁도 없이 바닥을 뒹구는 거대한 야수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보통 사람이라면 늑대의 발길질 한 번에 뼈가 가루가 될 거라며 비명을 질렀겠지만, 아멜리아의 눈에는 그저 몹시 아파서 떼를 쓰는 커다란 강아지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허리를 숙여 늑대의 커다란 머리맡에 무릎을 꿇었다.

“크으으…… 르릉…….”

늑대는 여전히 붉게 충혈된 눈으로 아멜리아를 노려보며 이빨을 드러냈다. 하지만 아멜리아는 녀석의 콧등 위에 자신의 작고 하얀 손을 얹었다.

“아프지? 알아. 뼈가 시릴 정도로 아플 거야. 하지만 이걸 참아야 살 수 있어.”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한 목소리가 숲의 고요함을 깨뜨렸다. 신기하게도, 아멜리아의 온기 서린 손길이 닿자마자 늑대의 으르렁거림이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했다.

장부의 화면 속에서 붉게 타오르던 경고 문구들이 서서히 연두색으로 변해갔다.

[오염 부패도 감소 중: 85% -> 60% -> 45%] [대상의 적대치 급감: 95% -> 30%] [시스템 안내: 상처 부위의 1차 소독이 완료되었습니다. 마기의 확산이 저지되었습니다.]

“후우…….”

아멜리아는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냈다. 긴장이 풀리자 가느다란 다리가 가볍게 떨려왔다.

그때였다. 뜨겁고 축축한 무언가가 아멜리아의 뺨을 커다랗게 쓸고 지나갔다.

“앗, 축축해!”

바닥에 쓰러져 헐떡이던 거대 늑대가 커다랗고 유연한 혀를 내밀어 아멜리아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핥은 것이었다. 까칠까칠하면서도 따뜻한 감촉이 전해지자 아멜리아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늑대는 몸의 고열이 어느 정도 가라앉자, 방금 전까지 날뛰던 야수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얌전해져 있었다. 제국을 공포에 떨게 만든다는 고대 영수 펜릴이, 일곱 살 꼬마의 손가락을 다치지 않게 조심스레 입에 물고 낑낑거리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있었다.

[축하합니다! 고대 영수 ‘펜릴’과의 임시 계약이 성립되었습니다!] [정식 등록을 위해 영수의 이름을 지정해 주세요.]

아멜리아는 손가락을 간지럽히는 늑대의 콧등을 가볍게 톡 쳤다.

“넌 나한테 뽀뽀를 엄청 많이 해댔으니까, 오늘부터 이름은 ‘뽀뽀’야.”

[영수의 이름이 ‘뽀뽀’로 등록되었습니다.] - 종족: 고대 펜릴 (정화 단계: 1단계) - 호감도: 80 (충성) - 상태: 급격한 탈수 및 영양실조, 마기 오염의 후유증으로 인한 기력 저하.

“깨갱…….”

뽀뽀는 자신의 이름이 마음에 드는지, 아니면 그저 아멜리아의 손길이 좋은지 커다란 머리를 그녀의 무릎바닥에 비벼댔다. 집채만 한 검은 야수가 일곱 살 어린아이 앞에서 온순한 양처럼 구는 모습은 실로 기묘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아멜리아는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수의사로서의 감각이 뽀뽀의 상태가 여전히 위험하다고 경고하고 있었다.

“지금 당장 2차 정밀 치료를 해야 하는데…… 붕대랑 약초 재고가 다 떨어졌어.”

장부를 확인해 보니 남은 MP는 고작 350이었고, 소독 키트 이외의 정밀 치료 약재는 등록되어 있지 않았다. 뽀뽀의 깊은 상처를 아물게 하고 마기를 완전히 뿌리 뽑으려면 특수 영양식과 정화 약초가 반드시 필요했다.

‘어떡하지? 가문의 눈을 피해 여기에 약재를 가져다 놓아야 하는데.’

그때, 장부의 하단에 새로운 알림창이 반짝였다.

[돌발 퀘스트: 영수의 요람 기틀 다지기] - 임무: 주변 온실에서 자생하는 ‘반쪽짜리 달빛풀’을 채집하여 장부 급식 약장에 등록하세요. - 보상: 뽀뽀의 특수 정양 식단 레시피 해금, 소독용 붕대 재고 +10롤. - 주의: ‘반쪽짜리 달빛풀’은 강력한 정화 향을 지녔으나, 다량 섭취 시 생물이 일시적인 가사 상태에 빠질 수 있으므로 정밀한 계량이 필요합니다.

아멜리아의 눈이 반짝였다.

‘반쪽짜리 달빛풀이라고? 내 전용 온실 뒤편 화단에 널려 있는 게 바로 그거잖아!’

아멜리아는 에스카르디아 공작가의 늦둥이 막내딸로서 저택 내에 거대한 개인 온실을 가지고 있었다. 가족들은 그녀가 꽃과 식물을 좋아하는 가냘픈 아이인 줄 알고 온갖 희귀한 식물들을 온실에 가득 채워 주었지만, 사실 아멜리아는 그것들을 마수 치료용 약재로 쓰기 위해 남몰래 키우고 있었다.

“뽀뽀야,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내가 먹을 거랑 예쁜 붕대를 가져다줄게. 절대 숲 밖으로 나오면 안 돼, 알았지?”

“우우웅…….”

뽀뽀는 아쉬운 듯 아멜리아의 옷자락을 살짝 물었다가 이내 얌전히 놓아주었다. 그리고는 가시덤불 깊숙한 곳으로 몸을 숨겼다.

아멜리아는 서둘러 비밀 요람을 빠져나와 숲의 경계를 넘었다. 다행히도 한밤중의 공작저 정원은 고요함만이 감돌고 있었다. 그녀는 발걸음을 재촉해 자신의 전용 온실로 향했다.

유리로 만들어진 온실 내부로 들어서자, 달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는 이국적인 꽃들이 아기자기한 자태를 뽐내며 향기를 풍겼다. 시큼하면서도 달콤한 과일 향과 싱그러운 풀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아멜리아는 온실 구석진 곳, 다른 화려한 꽃들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음지로 향했다.

그곳에는 밤하늘의 은하수를 닮은 푸르스름한 빛을 뿜어내는 작은 풀들이 자라나고 있었다. 잎사귀가 정확히 반쪽만 돋아나 있는 기묘한 형태의 식물, 바로 ‘반쪽짜리 달빛풀’이었다.

“찾았다.”

아멜리아는 소매를 걷어붙이고 조심스럽게 달빛풀의 뿌리가 상하지 않도록 흙을 파헤쳤다. 전생의 기억을 살린 능숙한 손놀림이었다.

[‘반쪽짜리 달빛풀’ 5송이를 획득했습니다.] [장부 급식 약장 재고 등록 완료!] [돌발 퀘스트 완료 보상으로 ‘소독용 붕대 10롤’이 인벤토리에 지급되었습니다.] [‘뽀뽀’를 위한 특수 정양 식단: ‘달빛풀을 곁들인 연어 영양식’ 레시피가 해금되었습니다!]

“좋아, 이걸로 뽀뽀의 상처를 진정시키고 심장 박동을 안정시킬 처방을 할 수 있겠어.”

아멜리아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닦았다. 비록 한 송이 한 송이 채집하느라 손끝이 흙으로 더러워졌지만, 다친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몽글몽글해지는 기분이었다.

독한 마기를 정화하는 데 이보다 좋은 약재는 없었다. 비록 다량 섭취 시 가사 상태를 야기한다는 위험한 부작용이 있었지만, 정밀한 계량만 거친다면 뽀뽀의 고통을 즉각적으로 멈춰줄 최고의 마취제이자 치료제가 될 터였다.

아멜리아는 채집한 달빛풀을 품에 안고 다시 비밀 요람으로 돌아가려 발걸음을 옮겼다.

바로 그때였다.

콰아아앙!

정적을 깨뜨리는 거대한 굉음과 함께 온실의 거대한 유리문이 통째로 뜯겨 나가듯 열렸다. 밤바람을 타고 차가운 철 냄새와 서슬 퍼런 살기가 온실 내부를 가득 채웠다.

“아멜리아 아가씨!”

귀를 찢을 듯한 외침과 함께, 육중한 판금 갑옷을 입은 공작가 직속 철갑 기사 수십 명이 온실 화단을 순식간에 포위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손에는 시퍼런 검과 횃불이 들려 있었고, 갑옷이 부딪치는 차가운 쇳소리가 온실의 고요한 공기를 사정없이 짓밟았다.

“사방을 수색해라! 아가씨의 털끝 하나라도 다친 흔적이 있다면 네놈들의 목을 전부 벨 것이다!”

기사들의 맨 앞줄에서 불꽃 같은 기세를 뿜어내며 걸어 나오는 사내의 거대한 그림자가 아멜리아의 시야를 가득 메웠다.

피도 눈물도 없는 전신이라 불리는 괴수 가문의 가주이자, 아멜리아의 아빠인 카이든 에스카르디아 공작이었다. 그의 붉은 눈동자는 미친 듯한 불안과 폭주 직전의 광기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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