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군사들에게 이미 명령을 내려두었다! 지금 이 순간, 신성청의 정예 흑마술 군사들이 저 불길한 검은안개 숲을 모조리 불태우고 짓밟기 위해 진격하고 있다! 저 숲속의 더러운 괴물 놈들과 함께 네놈들의 음모도 모조리 재더미로 만들어 주마!”
알현실을 가득 채운 멜키오르 추기경의 악에 받친 음성은 샹들리에의 유리 장식들을 잘게 흔들 만큼 탁하고 거칠었어요. 뚝뚝 떨어지는 땀방울이 그의 수염을 적시고, 광기로 번들거리는 눈동자는 이미 이성을 잃은 짐승의 것과 다름없었지요.
아멜리아는 목가에 걸린 차갑고 투명한 붉은 핏빛 다이아몬드 펜던트를 가만히 움켜잡았답니다. 보석의 매끄러운 단면에서 전해지는 서늘함이 요동치던 심장을 조금 가라앉혀 주는 것 같았어요. 겉으로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파르르 떨리는 어깨를 연출하면서도, 아멜리아의 머릿속은 차갑게 굳어 가고 있었지요.
‘정예 군사들이 진격하고 있다고? 요람에는 아직 다리가 부러진 아기 사슴이랑 붕대를 채 감지 못한 여우들이 가득한데…….’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꿀렁이는 분노가 치밀었지만, 아멜리아는 오히려 눈가를 촉촉하게 적시며 아빠 카이든의 소맷자락을 꼭 쥐었어요.
“아빠…… 숲이, 가여운 숲속의 요정들이 불타고 있어요. 저 매캐한 냄새가 여기까지 나는 것만 같아요…….”
“아멜리아!”
카이든 공작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답니다.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에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제국의 전신이, 고작 여덟 살짜리 딸아이의 떨리는 목소리 한 번에 심장이 멎은 듯한 표정을 지은 것이지요. 그는 거친 가죽 장갑을 벗어 던지고 아멜리아의 작은 뺨을 조심스레 감싸 안았어요.
“숨을 쉬거라, 아가. 어서! 의무관은 어디 있느냐! 당장 내 딸에게 온실의 기운을 불어넣을 마도구를 가져와라!”
“아멜리아, 눈을 감으렴. 더러운 것은 보지 않아도 된단다.”
렌 역시 차가운 검자루를 꽉 쥔 채, 멜키오르를 향해 짓던 살기 어린 미소를 걷어내고 아멜리아의 앞을 가로막았어요. 그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은 동생의 가녀린 숨결이 흐트러질까 두려운 탓이었지요.
[가족의 극단적 안절부절 에너지 감지!] [걱정 마력 변환 완료: +2,500 MP] [현재 보유 마력: 18,500 MP]
눈앞에 번쩍이는 반투명한 푸른 장부의 알림창을 보며 아멜리아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답니다.
‘좋아, 마력은 충분해. 이제 이 정신 나간 추기경의 목줄을 완전히 죄어버릴 차례야.’
아멜리아는 살포시 고개를 숙이며, 사흘 전 공작저 지하 감옥에 갇혔던 가짜 하녀장의 얼굴을 떠올렸어요. 그녀의 품에서 나왔던 붉은 밀랍 왁싱 편지 봉투와, 코를 찌르던 은은하고 달콤하면서도 기분 나쁜 리일리향 향수. 그것은 신성청의 고위 밀사들만이 사용하는 특제 연락망의 증거였지요.
“오빠…… 혹시 사흘 전에 그 못된 하녀장 품에서 나왔던 그 붉은 편지 봉투에 적힌 지도가…… 진짜가 맞나요?”
아멜리아가 아주 조심스럽고 순진무구한 목소리로 묻자, 렌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잔인하게 올라갔답니다. 그는 아멜리아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나긋나긋하게 속삭였어요.
“그럼, 우리 영리한 아가야. 네가 서고에서 찾아내 준 그 향수 냄새 나는 편지 덕분에, 신성청의 쥐새끼들이 어떤 길로 움직일지 진즉에 알고 있었단다. 그들이 훔쳐 간 지도는 렌 오빠가 아주 정성스럽게 그린 ‘가짜 지도’거든.”
그 말이 알현실에 울려 퍼지는 순간, 멜키오르의 얼굴이 잿빛으로 굳어버렸어요.
“무, 무슨…… 가짜 지도라니? 그 지도는 분명 공작가의 비밀 통로가 그려진……!”
“멍청하긴.”
카이든이 낮게 으르렁거렸답니다. 그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이 알현실 바닥의 대리석을 쩍쩍 갈라놓았지요.
“네놈들이 신성청의 정예랍시고 보낸 흑마술 군사들은 지금쯤 비밀 요람이 아니라, 가시덤불과 독늪이 가득한 검은안개 숲의 최악의 사지로 기어들어 가고 있을 것이다. 내 기사단이 이미 그 길목에 덫을 놓아두었으니.”
“아, 아아……!”
멜키오르는 무릎을 꿇으며 바닥을 짚었어요. 자신이 완벽하게 짠 덫에 걸려든 줄 알았는데, 오히려 공작가의 거대한 아가리 속으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간 꼴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아멜리아는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답니다. 가짜 지도로 적들의 주력을 분산시켰다고는 하나, 멜키오르가 보낸 것은 단순한 기사단이 아니라 ‘마수 박해 처분법’에 따라 무자비한 살상을 저지르는 광신도 군대였어요. 게다가 그들이 무차별적으로 던져댄 신성 화염 폭탄의 불길은 이미 검은안개 숲의 외곽을 타고 요람 근처까지 번지고 있는 게 분명했지요.
‘안 돼. 요람에 있는 아이들은 아직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어. 내가 직접 가야 해!’
아멜리아는 가슴께가 답답해지는 것을 느끼며, 일부러 밭은기침을 토해냈어요.
“콜록! 콜록……! 아빠, 가슴이…… 가슴이 너무 답답해요. 숲이 불타면서 나오는 연기가 제 폐를 찌르는 것 같아요…….”
실제로는 멀쩡했지만, 아멜리아의 연기는 가히 대배우 급이었지요. 그녀의 눈가에 맺힌 맑은 눈물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내리자, 공작저 전체가 대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발칵 뒤집혔답니다.
“아멜리아! 의원! 당장 황실 수석 의원을 목을 꺾어서라도 데려와라!”
카이든이 광포하게 소리쳤고, 렌은 이미 아멜리아를 안아 들기 위해 몸을 숙이고 있었어요.
“아빠, 오빠…… 저를 검은안개 숲의 온실로 보내주세요. 그곳에 있는 맑은 정화의 정령석 기운을 마셔야만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멜리아가 가냘픈 손가락으로 창밖의 숲을 가리키자, 두 남자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답니다.
“그래, 네가 원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자. 기사단 전원, 검은안개 숲으로 진격한다! 감히 내 딸의 숨통을 조이려 숲에 불을 지른 교단 놈들을 단 한 놈도 남김없이 쓸어버려라!”
카이든의 엄포와 함께, 에스카르디아 공작가의 정예 기사들이 알현실을 박차고 나갔어요. 렌은 아멜리아를 부드럽고 푹신한 실크 담요로 꽁꽁 싸매어 품에 안았고, 카이든이 그 앞을 호위하며 바람처럼 질주하기 시작했지요.
***
검은안개 숲의 깊은 곳, 아기자기하고 평화롭던 비밀 요람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해 있었답니다.
콰아아앙!
귀를 찢는 폭음과 함께 백색의 차가운 화염이 숲의 방벽을 사정없이 때렸어요. 신성청의 기습 군대가 던진 신성 화염 폭탄이었지요. 이 불꽃은 일반적인 불과 달랐어요. 생명력을 좀먹고 정령의 기운을 말려 죽이는, 구역질 나는 이단 심문용 백색 안개 불꽃이었답니다.
“꺄아아악!”
“끼이이이-!”
요람 내부의 요양 침대에 누워 있던 아기 사슴들이 가느다란 다리를 떨며 바닥으로 굴러떨어졌어요. 붕대를 칭칭 감고 있던 붉은 여우 마수들도 매캐한 백색 연기에 콜록이며 구석으로 기어들어 갔지요.
“치, 침착해야 해……!”
아멜리아는 렌의 품에서 내려서자마자, 가문의 기사들이 주위를 경계하는 틈을 타 요람 안쪽으로 달렸답니다. 겉으로는 가녀린 걸음걸이로 비틀거렸지만, 그녀의 눈동자는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어요.
[독 진단: 신성 오염도 45% 돌파] [경고: 요람 내부 마수들의 스트레스 지수 급상승!]
장부의 붉은 경고등이 사정없이 깜빡였지요. 아멜리아는 흙먼지와 불길이 치솟는 요람 안으로 주저 없이 뛰어들었어요.
“아멜리아! 위험하다! 안으로 들어가면 안 돼!”
뒤에서 카이든과 렌이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지르며 쫓아왔지만, 아멜리아는 이미 요양 침대를 직접 밀고 있었답니다.
영수 육성 장부의 지시에 따라, 아멜리아는 다친 마수들이 누워 있는 침대를 가장 안전한 천연 동굴 대피소로 이동시키기 시작했어요. 가냘프고 하얀 손가락에 흙때가 묻고, 연한 살구색의 하늘하늘하고 부드러운 레이스 드레스 자락이 가시덤불에 찢겨 나갔지요.
“아멜리아! 제발 멈추거라! 네 손이 상한다!”
렌이 눈물겨운 호통을 치며 다가와 침대를 대신 번쩍 들어 올렸어요. 카이든 역시 주변의 무너지는 돌덩이들을 온몸으로 막아서며 울부짖었지요.
“내 딸이 흙을 만지다니! 기사들은 무엇을 하느냐! 당장 이 무거운 것들을 안쪽으로 옮겨라! 먼지 한 톨도 내 딸의 뺨에 닿지 않게 하란 말이다!”
공작가가 자랑하는 초인적인 기사들이 졸지에 마수들의 요양 침대를 정성스럽게 나르는 이색적인 풍경이 연출되었답니다.
그 순간에도 아멜리아의 머릿속 장부에는 마력이 폭발적으로 충전되고 있었어요.
[가족의 극단적 안절부절 에너지 감지!] [걱정 마력 변환 완료: +3,500 MP] [현재 보유 마력: 22,000 MP]
‘좋아, 이 정도 마력이면 충분히 요람의 방어 시스템을 가동할 수 있어!’
하지만 적들의 공세는 생각보다 훨씬 거칠었답니다. 가짜 지도에 속아 길을 헤매던 신성청의 고위 기사단 중 일부가, 요람에서 흘러나오는 마수들의 기운을 감지하고 마침내 입구까지 들이닥친 것이지요.
“이단이다! 더러운 마수 놈들이 이곳에 둥지를 틀고 있었다!”
은색 갑옷을 입고 백색의 성스러운 검을 치켜든 고위 기사들이 요람의 입구를 부수고 진입하려 했어요. 그들의 검끝이 아멜리아가 서 있는 방향을 향해 무자비하게 내질러지는 순간이었지요.
쿠우우우웅-!
대지를 흔드는 웅장하고 거대한 포효가 요람 전체를 뒤흔들었답니다.
요람의 가장 깊은 곳에서, 은빛 털을 찬란하게 빛내며 펜릴 ‘뽀뽀’가 모습을 드러냈어요. 평소 아멜리아 앞에서는 꼬리를 살랑거리며 연어 닭가슴살 사료를 달라고 조르던 귀여운 모습은 간데없었지요. 수천 년을 살아온 전설의 야수로서의 자태가 불길 속에서 위용을 떨쳤답니다.
“크르르르……!”
뽀뽀의 푸른 눈동자에 서린 살기가 신성청 기사들을 압도했어요. 뽀뽀가 거대한 앞발로 대지를 내리치자, 강력한 바람의 마력이 휘몰아치며 돌진하던 고위 기사들을 1차적으로 강하게 분쇄하듯 날려버렸답니다. 갑옷이 찌그러지는 날카로운 쇠소리와 함께 기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지요.
“괴, 괴물 놈이……!”
기사들이 주춤하는 사이, 요람 구석에 숨어 있던 작은 동물들이 하나둘씩 기어 나오기 시작했어요.
다리에 붕대를 감은 아기 사슴 ‘밤비’가 가느다란 다리로 버티고 서서 머리의 작은 뿔을 곧추세웠답니다. 솜사탕처럼 부풀어 오른 꼬리를 바르르 떨던 아기 여우들도 이빨을 드러내며 가르릉거렸지요.
그리고 아멜리아의 어깨 위로, 외뿔 달린 어린 새 마수 ‘냥냥’이 날아와 앉았어요. 냥냥의 이마에 새겨진 특이한 고대 정령 무늬 각인이 은은한 푸른빛을 내뿜기 시작했지요.
그들은 평소라면 인간의 그림자만 봐도 도망치기 바쁜 작고 약한 마수들이었답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자신들을 따뜻하게 보살펴 주고 맛있는 식단을 짜주었던 아멜리아를 지키기 위해 이빨을 갈고 있었어요.
작은 아기 여우가 입에서 조그만 불꽃을 뿜어 기사의 발목을 맞추었고, 아기 사슴은 뿔로 기사의 방패를 들이받았지요. 냥냥은 날개를 세차게 저으며 기사들의 눈 앞을 가로막아 시야를 흐트러뜨렸답니다.
그것은 비록 작지만, 서로를 신뢰하는 영수들의 숭고한 집단 무력이자 눈물겨운 전선이었어요.
‘평소엔 그렇게 겁쟁이들이던 녀석들이…… 나를 지키려고…….’
아멜리아의 가슴 속에서 몽글몽글하고 따뜻한 감정이 피어올랐답니다. 그녀는 굳은 결심을 하며 허공에 장부를 넓게 펼쳤어요.
“모두, 조금만 버텨줘!”
아멜리아는 보유한 마력 중 15,000 MP를 단숨에 소모하며 장부의 숨겨진 기능을 활성화했답니다.
[대규모 보호 진단 진형 가동!] [정화수 방벽 라인 결속 완료!]
징-! 하는 청아한 공명음과 함께, 요람 바닥에 거대한 푸른빛의 마법진이 그려졌어요. 요동치던 숲의 마력 지표가 순식간에 복원되며, 맑고 깨끗한 정화의 물장벽이 요람 전체를 감싸 안았지요.
치이이익-!
구역질 나는 백색의 신성 화염들이 정화의 물장벽에 닿자마자 무력하게 꺼져내렸답니다. 상처받은 마수들의 상처를 치료해 주던 따뜻한 정화의 기운이 숲 전체를 포근하게 감싸 안았어요.
“이, 이럴 수가……! 신성한 화염이 한낱 마수의 정화수 따위에 꺼지다니!”
신성청 기사들이 경악하며 뒤로 물러섰지요.
하지만 승리의 예감도 잠시, 적들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고위 사제가 품속에서 불길한 기운을 내뿜는 검은 물건을 꺼내 들었답니다. 그것은 멜키오르 추기경이 직접 하사한, 영수를 포획하고 정화하기 위한 금단의 무기였어요.
“더러운 괴수 놈들의 요람을 여기서 끝장내겠다! 여신의 이름으로 처단하라!”
그가 허공으로 던진 것은 거대하고 끈적이는 검은 정화 그물이었답니다.
그물은 공중에서 수십 배로 늘어나며, 정화수 방벽을 뚫고 들어와 전방에 서 있던 뽀뽀와 어린 새 냥냥을 향해 덮쳐내렸어요.
“끼이이익-!”
“크르릉……!”
그물에 닿자마자 뽀뽀의 은빛 털이 검게 타들어 가기 시작했고, 냥냥 역시 날개가 묶인 채 바닥으로 추락했답니다. 그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압적인 흑마법의 기운이 요람 전체를 집어삼키며 파괴하기 직전의 일촉즉발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지요.
“뽀뽀! 냥냥!”
아멜리아의 비명 섞인 목소리가 숲속에 울려 퍼졌고, 백색의 기사들이 다시금 검을 치켜들며 아멜리아를 향해 좁혀오기 시작했답니다. 완벽해 보였던 전선에 거대한 균열이 가기 시작한, 그야말로 사면초가의 위기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