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오빠, 아멜리아는 오빠 품이 세상에서 제일 따뜻하고 좋은 것 같아요.”

아멜리아는 렌의 단단한 가슴팍에 고개를 폭 묻으며 속삭였어요. 방금 전까지 보랏빛 꽃밭을 가득 채우던 가신들과 농민들의 환호 소리가 아득하게 멀어지는 것만 같았지요. 렌은 제 품에 안긴 동생이 마치 부서지기 쉬운 설탕 인형이라도 되는 양, 숨결마저 조심스럽게 고르며 아멜리아를 꼭 안아 주었답니다.

“내 사랑스러운 아기 천사, 네가 이 오빠를 위해 힘을 너무 많이 쓴 건 아닌지 걱정스럽구나. 몸이 조금이라도 차갑거나 무겁지는 않으니?”

렌의 은빛 눈동자가 쉴 새 없이 흔들리며 아멜리아의 뺨과 손끝을 살폈어요. 그의 머릿속은 이미 ‘동생이 흙먼지를 마셨을지도 모른다’, ‘꽃가루 알레르기가 생기면 어쩌지’ 같은 무시무시한 걱정들로 가득 차 있는 게 분명했지요.

그 순간, 아멜리아의 시야 한구석에 반짝이는 황금빛 반투명 창이 떠올랐어요.

[띠링! 가족들의 걱정 수치가 급상승합니다!] [렌 에스카르디아의 과보호 지수: 120% (위험 수준)] [충전 마력: +1,500 MP! (현재 보유 마력: 14,000 MP)]

‘앗싸, 마력 충전 완료!’

아멜리아는 속으로 살며시 미소를 지었어요. 하지만 품 안에서 은밀하게 진동하는 붉은 나침반의 감촉은 여전히 그녀의 신경을 날카롭게 찌르고 있었답니다. 지하 감옥에 갇혀 있던 신성청 첩자, 하녀장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지요. 더구나 외부의 신성청 기사단까지 기어들어 오고 있다니, 가만히 있을 때가 아니었어요.

“오빠, 아멜리아 방에 가서 조금 누워 있고 싶어요. 푹신하고 부드러운 하얀 침대에서 오빠가 선물해 준 따뜻한 우유를 마시면 금방 괜찮아질 것 같아요.”

아멜리아가 일부러 눈꺼풀을 파르르 떨며 나른한 목소리로 말하자, 렌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어요.

“침대! 그래, 당장 방으로 가야겠구나. 얘들아, 당장 소공녀의 방에 보일러를 가장 따스하게 올리고, 먼지 한 톨도 남김없이 청소해 두어라! 조금이라도 공기가 차가우면 너희 모두의 목을 가만두지 않겠다!”

렌의 벼락같은 고함에 시종들이 사시나무 떨듯 떨며 사방으로 흩어졌답니다. 아멜리아는 렌의 품에 안겨 저택으로 향하는 내내,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기를 두드렸어요.

전생의 배신이라는 깊은 상처를 안고 환호 속에 태어난 가냘픈 생명. 아멜리아는 이 가문의 맹목적인 과보호를 순수한 애정으로 믿지 않았어요.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오직 자신이 ‘연약하고 사랑스러운 막내딸’이라는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해야만 유지되는 생존 거래라고 생각했으니까요.

‘내가 쓸모없어 지거나, 이 연약한 인형 연기가 들통나면 다 끝이야. 내 소중한 비밀 요람과 다친 마수들을 지키려면, 이 골치 아픈 첩자부터 완벽하게 처리해야 해.’

아멜리아는 입술을 꾹 다물며 결의를 다졌답니다.

***

방문이 닫히고 렌이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물러가자마자, 아멜리아는 침대 위에서 잽싸게 몸을 일으켰어요. 그녀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붉은 다이아몬드 펜던트를 만지작거리며 비밀스럽게 장부 창을 호출했답니다.

“장부야, 트래킹 레이더 센서 시스템을 가동해 줘.”

[띠링! 시스템 가동. 보유 마력 2,000 MP를 소모합니다.] [공작저 지하 지도 및 실시간 트래킹 모드가 활성화됩니다.]

아멜리아의 맑은 눈동자 위로, 공작저 지하의 복잡한 하수구 통로가 3D 홀로그램처럼 선명하게 펼쳐졌어요. 그리고 그 어두컴컴한 미로 속에서, 두 개의 붉은 점이 은밀하게 움직이는 것이 보였지요.

하나는 지하 투옥소를 탈출해 도망치고 있는 전 하녀장의 위치였고, 다른 하나는 그녀가 소지하고 있는 ‘가짜 비밀 편지’의 위치였답니다.

‘역시 내 예상대로 서고에서 훔친 붉은 밀랍 왁싱 편지 봉투를 챙겨서 달아나고 있네.’

그 편지 봉투는 아멜리아가 5화에서 서고를 탐색하던 중 미리 발견해 둔 신성청의 밀서였어요. 신성청의 독특한 십자가 문양이 찍힌 붉은 밀랍으로 봉인되어 있었고, 그 주변에는 은은하게 ‘리일리향’이 감돌고 있었지요. 리일리향은 오직 신성청의 고위 첩자들만이 신호용으로 사용하는 아주 귀하고 독특한 향수였답니다.

[시스템 안내: 대상 ‘하녀장’의 신성 주파수 감지.] [리일리 향수의 미세 입자가 지하 하수구 통로 서쪽 구역으로 확산 중입니다.]

화면 속에서 향수 입자의 푸른 궤적이 바람을 타고 하수구 외각으로 퍼져나가는 모습이 보였어요. 신성청 기사단은 그 향기를 이정표 삼아 공작가의 심장부로 기어들어 오고 있었던 것이지요.

“감히 우리 앞마당을 더러운 발로 밟으려고 해? 뽀뽀가 가만두지 않을걸.”

아멜리아는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창문을 열었어요. 검은안개 숲속의 비밀 요람과 연결된 마력의 통로를 향해, 아멜리아는 마음속으로 속삭였답니다.

“뽀뽀야, 지금 맛있는 연어 닭가슴살 사료를 아주 가득 준비해 뒀어. 그러니까 얼른 와서 저 못된 침입자들을 혼내줄래?”

[영수 ‘뽀뽀’에게 실시간 타격 소환 명령을 전송합니다.] [소환 마력 3,000 MP가 소모됩니다.]

그 순간, 아멜리아의 방 안에 은은한 보랏빛 마법진이 그려지더니, 웅장하고 거대한 그림자가 튀어 나왔어요. 열병을 완벽하게 치료받고 한층 더 눈부신 은빛 털을 뽐내는 거대한 늑대 영수, 뽀뽀였답니다.

“우우웅-!”

뽀뽀는 아멜리아를 보자마자 꼬리를 세차게 흔들며 그녀의 뺨을 커다란 혀로 핥아 내렸어요. 아멜리아는 뽀뽀의 부드럽고 풍성한 목덜미 털에 얼굴을 파묻으며 웃었지요.

“착하지, 뽀뽀야. 저 아래 어둡고 냄새나는 길에 나쁜 사람들이 들어왔어. 가서 콱 밟아주고 와!”

뽀뽀는 아멜리아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바닥을 향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낮게 으르렁거렸어요. 녀석의 눈동자에 붉은 빛이 감돌며 야수의 본능이 깨어나는 듯했답니다.

***

한편, 공작저 지하의 어둡고 습한 하수구 통로.

“헉, 헉…… 거의 다 왔어. 이 더러운 괴물 가문에서 마침내 탈출하는 거야.”

하녀장은 뼈가 으스러진 몸을 간신히 이끌며 어둠 속을 기어갔어요. 그녀의 손에는 서고에서 훔쳐낸 붉은 밀랍 봉투가 꽉 쥐어져 있었지요. 비록 공작가의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신성청의 구원 기사단이 하수구 입구까지 도달했다는 신호를 받았기에 그녀의 얼굴에는 광기 어린 미소가 번져 있었답니다.

“하녀장님! 이쪽입니다!”

어둠 속에서 하얗고 깨끗한 신성 제복을 입은 기사 세 명이 횃불을 들고 나타났어요. 그들의 몸에서는 투명하고 맑은 신성력이 흘러나오고 있었지요.

“오, 여신이시여…… 살았습니다! 어서 나를 데리고 이곳을 탈출하십시오! 공작가의 그 미친 괴물들이 쫓아오기 전에……!”

하녀장이 기사들의 품으로 쓰러지듯 안기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바로 그 순간이었어요.

쿠구구구궁-!

지하 통로 전체가 거세게 흔들리며, 천장에서 흙먼지가 우수수 떨어졌답니다. 기사들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검을 뽑아 들었어요.

“무, 무슨 소리지? 지진인가?”

“아니야…… 이건 마력의 파동이야! 그것도 엄청나게 거대한……!”

어둠 속에서 두 개의 거대한 푸른 눈동자가 번뜩였어요.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나타난 것은, 신성청의 기록에만 존재하던 전설의 야수, 펜릴이었답니다. 뽀뽀는 거대한 몸집을 이끌고 하수구 통로를 벽째로 부수며 강림했어요.

“크르르르르……!”

“펜, 펜릴?! 왜 이런 곳에 마수가……!”

기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신성 검기를 날렸지만, 뽀뽀의 단단하고 빛나는 은빛 털 가죽 앞에서는 고작 먼지를 터는 수준에 불과했지요. 뽀뽀는 귀찮다는 듯 커다란 앞발을 가볍게 내리쳤어요.

콰아아앙-!

“끄아아악!”

단 한 번의 타격이었답니다. 바닥이 움푹 패며 신성청 기사들은 허무하게 벽에 처박혀 기절해 버렸고, 도망치던 하녀장은 뽀뽀의 거대한 발바닥 아래 짓눌려 옴짝달싹도 하지 못하게 되었지요.

“사, 살려줘…… 살려주세요……!”

하녀장이 공포에 질려 눈물을 흘리며 애원할 때, 뽀뽀의 등 뒤에서 보드랍고 살구색 실크 리본이 달린 참신하고 귀여운 원피스를 입은 아멜리아가 쏙 얼굴을 내밀었답니다.

“어머, 도망치는 쥐새끼치고는 제법 얌전하게 잡혔네요?”

아멜리아는 뽀뽀의 머리를 토닥여 주며, 하녀장의 손에서 붉은 밀랍 편지 봉투를 쏙 빼앗아 들었어요.

***

그때, 하수구 멀리서 수십 개의 횃불 불빛과 함께 무시무시한 기운이 몰려왔어요.

“소공녀 전하! 어디 계십니까!”

“쥐새끼들을 쫓아라! 먼지 하나 남기지 말고 다 찢어 죽여라!”

공작가의 비밀 수색 대장들과 포악하기로 소문난 정예 기사단이 무기를 치켜들고 나타났답니다. 그들은 하수구 통로가 완전히 박살 나 있고, 신성청의 침입자들이 단 한 걸음 만에 처참하게 제압되어 묶여 있는 광경을 보고 우뚝 멈춰 섰어요.

그리고 그 파괴의 중심에서, 세상에서 가장 가냘프고 연약해 보이는 아홉 살짜리 공녀님이 거대한 야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서 있는 모습을 보았지요.

“수색 대장님, 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

아멜리아가 맑고 깨끗한 목소리로 방긋 웃으며 인사하자, 수색 대장들은 온몸에 소름이 쫙 돋는 것을 느꼈답니다.

“소, 소공녀 전하…… 이 상황은 대체……?”

“이 못된 침입자들은 신성청에서 보낸 첩자들이에요. 제 방에서 기도를 드리다가 우연히 향수 냄새가 나는 것을 느끼고, 장부…… 아니, 제 감각을 따라 뽀뽀와 함께 먼저 마중을 나왔답니다.”

아멜리아는 조곤조곤한 어조로, 신성청이 사용한 침투 경로와 리일리 향수의 메커니즘, 그리고 하녀장의 탈출 동선을 완벽하게 짚어내며 설명해 주었어요.

“그들은 하수구 서쪽의 좁은 지류를 통해 공성 병기나 마법진을 우회하려 했어요. 하지만 좁은 통로일수록 뽀뽀 같은 거대한 영수의 타격에는 쥐약이 되지요. 대장님, 앞으로는 이쪽 하수구 구역의 마력 장막을 3중으로 겹치고, 리일리 향을 탐지하는 경보 장치를 설치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수색 대장들과 기사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어요. 그들의 눈에는 이제 아멜리아가 그저 과보호 받아야 할 연약한 요정으로만 보이지 않았답니다.

‘이 무슨 천재적인 전술안이란 말인가……!’ ‘고작 아홉 살의 나이에, 신성청의 정예 기사단을 단 한 수 만에 가두고 멸하다니……!’

포악하고 냉혈한 성정으로 유명했던 수색 대장은 무릎을 꿇으며 아멜리아에게 깊은 군사적 경외감을 담아 고개를 숙였어요.

“소공녀 전하의 영리하고 위대한 작계 지휘에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전하의 지시대로 지하 방어망을 즉시 재편하겠습니다!”

[띠링! 가문 가신들의 경외감이 폭발합니다!] [평판 지수: ‘가문의 숨겨진 군사 천재’ 칭호 획득!] [보상: 가문 내부 안전 점수 +300점 격상!]

아멜리아는 속으로 뿌듯한 미소를 지었어요. 이로써 가문 내에서 자신의 입지와 안전이 더욱 단단해졌으니까요.

***

아멜리아는 잡혀 온 하녀장의 품에 있던 붉은 밀서 봉투를 뜯어내었어요. 그리고 품 안에서 깃털 펜을 꺼내 들었답니다.

‘자, 이제 신성청의 그 탐욕스러운 추기경을 낚을 미끼를 던져볼까?’

아멜리아는 전생의 서류 조작 능력을 십분 발휘하여, 하녀장의 필체를 완벽하게 모방해 편지 내용을 위조하기 시작했어요.

편지의 내용은 이러했답니다.

[추기경 각하, 계획대로 공작저 깊은 곳에 붉은 마수 폭주석을 심는 데 성공했습니다. 현재 검은안개 숲속의 마수들이 통제력을 잃고 대폭주할 조짐을 보이고 있으며, 에스카르디아 공작가는 이 갑작스러운 재앙에 대처하지 못해 심각한 내부분열과 궤멸의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지금 즉시 정예 심문단을 이끌고 오셔서 이단 판정을 내리신다면, 공작가를 완전히 폐광시키고 마수 요람을 말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멜리아는 편지를 다 쓴 후, 붉은 밀랍으로 봉인하고 리일리 향수를 칙칙 뿌렸어요. 완벽한 신성청의 비밀 보고서가 탄생한 것이지요.

“뽀뽀야, 이 편지를 신성청의 연락용 마력 비둘기 다리에 묶어서 날려 보내 줘.”

뽀뽀는 꼬리를 흔들며 편지를 물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답니다.

그때, 아멜리아의 소매 틈새로 작고 귀여운 하얀 솜털 뭉치 하나가 쏙 튀어나왔어요. 숲속 구렁텅이에서 구해준 외뿔 달린 어린 새 마수, ‘냥냥’이었지요.

“뀩-! 뀨우-”

냥냥이는 아멜리아의 작은 손가락을 부드러운 부리로 콕콕 쪼며, 마치 자기도 돕겠다는 듯 날개를 파닥거렸어요. 냥냥이의 작은 날개깃 사이에 새겨진 기묘한 고대 정령 무늬가 은은한 보랏빛으로 반짝이는 것을 보며, 아멜리아는 다정하게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답니다.

“응, 고마워 냥냥아. 조금만 기다려. 저 나쁜 사람들이 우리 요람을 건드리지 못하게 누나가 완벽하게 처리해 줄 테니까.”

아멜리아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어두운 지하 통로를 올려다보았어요.

이제 미끼는 던져졌고, 탐욕스러운 물고기가 낚싯바늘을 물 차례였지요.

***

같은 시각, 제국 수도의 웅장하고 차가운 대성당 깊은 곳.

붉은 예복을 입은 멜키오르 추기경은 마력 비둘기가 전해온 가짜 승전 속보 편지를 읽어 내려갔어요. 편지 봉투에 찍힌 선명한 붉은 밀랍과 코를 찌르는 리일리 향수를 확인한 그의 입꼬리가 귀에 걸릴 듯 비열하게 찢어졌답니다.

“흐흐흐…… 드디어 때가 왔구나! 오만한 에스카르디아 놈들이 마수들의 대폭주로 스스로 무너지고 있다니!”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곁에 대기하고 있던 검은 갑옷의 기사들에게 매서운 눈빛으로 호령했어요.

“여신의 이름으로 명하노라! 즉시 제국 법정으로부터 공작저 수색 및 이단 처분을 위한 최고 영장을 발부받아라! 제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최고 이단 심문단’ 전원을 소집한다!”

멜키오르의 눈에 광기 어린 탐욕이 소용돌이쳤어요.

“이번에야말로 그 건방진 공작가를 완전히 폐광시키고, 그들의 영지를 신성청의 손아귀에 넣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가냘픈 공녀년의 목을 잘라 마수들과 함께 화형대에 올리겠다!”

공작가를 향해 진격을 시작하는 신성청의 최정예 무력 집단과, 그들의 거대한 칼날이 에스카르디아 공작저를 향해 무섭게 좁혀오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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