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카르디아 공작가는 들으라! 이 농지는 완전히 이단 오염되어 제국의 안전을 위협하므로, 교단의 권능으로 즉시 영구 봉쇄 및 몰수를 선언한다!”
귓가를 찢는 고압적인 목소리가 황무지의 차가운 바람을 타고 가차 없이 내리꽂혔어요. 붉은 십자가가 선명하게 새겨진 갑옷을 입은 신성청 파견 감시 고문단이 흙먼지를 자욱하게 일으키며 말을 몰아붙였지요. 말들의 거친 숨소리와 말발굽 아래로 부서지는 마른 흙더미가 아멜리아의 귀끝을 날카롭게 자극했어요.
아멜리아는 양볼을 감싸는 살구색 실크 드레스의 레이스를 꼭 쥔 채, 몽글몽글하고 가벼운 모헤어 숄 속으로 몸을 한껏 웅크렸답니다. 달콤하고 따스한 바닐라 향이 감도는 숄은 오빠 렌이 바람 한 점 들지 않게 감싸준 것이었지만, 들이닥친 불청객들의 기세는 그 따스함마저 얼려버릴 듯이 매서웠어요.
“지금 감히 누구의 땅에 발을 들이밀고 입을 놀리는 거지?”
렌의 목소리가 한겨울의 서리처럼 차갑게 가라앉았어요. 그의 은빛 눈동자가 위험하게 일렁이며 검자루를 쥔 손가락 끝에 핏기가 가실 정도로 강한 힘이 들어갔지요. 당장이라도 저 오만한 사제들의 목을 베어 넘길 듯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어요.
하지만 신성청의 수석 고문관은 코방귀바람을 뀌며 품에서 붉은 인장이 찍힌 양피지를 펼쳐 들었답니다.
“공작자제분, 감정에 치우쳐 법을 어기려 하지 마십시오. 이 땅의 영영초는 이미 검게 타들어 가고 있습니다. 이는 명백한 이단의 저주이자 역병의 징조입니다. 교단의 정화 위원회가 승인한 공식 폐쇄령입니다. 영지를 지키고 싶다면 지금 당장 이 불경한 농지를 우리에게 양도하고 조사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사제들은 아멜리아를 힐끗 바라보며 비열한 미소를 지었어요. 그들은 공작가의 막내딸이 유독 몸이 약하고 가냘프다는 소문을 익히 알고 있었지요. 겁에 질려 파르르 떠는 아멜리아의 유려하고 가녀린 어깨를 보며, 그들은 자신들의 승리를 확신한 듯 어깨를 으쓱였답니다.
‘어머나, 저 불쌍한 아저씨들이 제 무덤을 스스로 파고 계시네.’
아멜리아는 속으로 혀를 낼름 찼어요. 하지만 겉으로는 세상에서 가장 무해하고 겁먹은 요정처럼 보이고 싶었기에, 커다란 눈망울에 눈물을 그렁그렁 머금은 채 렌의 소매깃을 조심스럽게 잡아당겼지요.
“오, 오빠…… 저 무서운 아저씨들이 아멜리아의 예쁜 풀꽃들을 다 빼앗아가려는 거예요? 이 가여운 풀들은…… 단지 조금 아플 뿐인데…….”
아멜리아가 목소리를 가늘게 떨며 눈물방울을 툭 떨어뜨리는 순간이었어요.
[띠링! 대상 ‘렌 에스카르디아’의 걱정 및 집착 수치가 폭발적으로 상승합니다!] [마력 소스가 급속 충전됩니다: +3,000 MP!] [현재 보유 마력: 16,700 MP]
머릿속에서 경쾌하게 울리는 장부의 알람 소리에 아멜리아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느라 짐짓 입술을 꼭 깨물었어요. 렌은 동생의 눈물에 이성을 완전히 상실한 듯, 눈에 핏발을 세우며 기사들에게 검을 뽑으라 소리쳤지요.
“이 비천한 신성청의 사냥개들이 감히 내 동생을 울려? 당장 저들의 목을 치고—”
“기다려 주세요, 오빠!”
아멜리아가 다급하게 렌의 단단한 팔을 꼬옥 붙잡았어요.
“아멜리아가…… 아멜리아가 이 가여운 아이들을 고칠 수 있어요. 사흘만 주시면, 이 땅이 이단에 오염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할게요. 제발…… 검을 거두어 주세요. 피를 흘리는 건 슬퍼요.”
아멜리아의 애처로운 호소에 렌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어요. 동생이 고작 풀때기 구하겠다고 이 험악한 자들 앞에 나서는 모습이 너무나 가녀리고 애틋해 보였던 것이지요. 렌은 붉어지는 눈시울을 억누르며 아멜리아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내렸어요.
“아멜리아, 네가 무얼 증명하겠다는 것이냐. 저자들은 사기꾼들이란다. 하지만…… 네가 원한다면 무엇이든 하려무나. 이 오빠가 뒤를 지키마.”
수석 고문관은 가소롭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어요.
“공녀 전하, 아무리 공작가의 영애라 할지라도 신성한 판정을 모독하셔서는 안 됩니다! 고작 사흘 만에 이 죽어가는 황무지를 되살리겠다니, 이는 여신의 권능을 참칭하는 불경한 오만입니다!”
“그럼 내기를 해요.”
아멜리아가 맑고 청초한 눈동자를 반짝이며 조용히 대꾸했어요.
“만약 사흘 안에 이 땅의 영영초들이 다시 보랏빛으로 가득 차게 된다면, 신성청은 이 농지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다시는 공작령의 영영초 유통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세요. 하지만 실패한다면…… 이 땅을 순순히 넘겨드릴게요.”
고문관의 눈이 탐욕으로 번득였어요. 어차피 이 땅은 신성청이 비밀리에 퍼뜨린 토양 괴사성 독소로 인해 완전히 죽어가고 있었기에, 고작 어린아이의 떼쓰기로 되살아날 리가 만무했지요. 공작령의 핵심 약초 농지를 공짜로 먹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어요.
“좋습니다. 교단의 이름을 걸고 그 제안을 수락하지요. 사흘 뒤에 뵙겠습니다, 공녀 전하.”
고문관들이 비웃음을 흘리며 말머리를 돌려 멀어져 갔어요.
그들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마자, 아멜리아는 쪼그리고 앉아 흙더미를 가냘픈 손가락으로 가볍게 헤집기 시작했답니다. 렌과 기사들은 공녀의 섬세한 손가락에 흙이 묻는 것을 보며 사시나무 떨듯 안절부절못했지요.
“아멜리아! 손이 더러워지잖니! 기사들아, 당장 부드러운 새 가죽 장갑과 최고급 비단 손수건을 가져와라!”
렌의 호들갑에 아멜리아는 속으로 ‘나이스 충전!’을 외쳤어요.
사실 아멜리아가 흙을 파헤친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답니다. 장부의 ‘약재 정비 기능’을 활성화하자, 아멜리아의 시야에만 보이는 반짝이는 녹색 홀로그램 창이 허공에 둥실 떠올랐어요.
[진단: 영양초 농지의 토양 괴사 증상] - 원인: 신성청이 살포한 인위적 산성 오염 물질 (습도 12%, 산도 pH 3.2) - 처방: 영양 사료용 정화 종자 120립 이식 및 산성 사료 중화수 살포 필요. - 필요 마력: 8,500 MP
아멜리아는 드레스 주머니 속에서 미리 준비해 둔 요람 영수 전용 ‘정화 종자’를 은밀히 꺼냈어요. 뽀뽀의 사료를 만들 때 섞어 쓰던 특제 종자인데, 이 종자는 토양의 독소를 빨아들여 영양분으로 치환하는 놀라운 정화 능력을 갖추고 있었지요.
아멜리아는 조심스럽게 종자를 흙 깊숙이 파묻으며, 장부 시스템을 가동했어요.
‘장부야, 마력 8,500을 투입해서 고성능 산성 사료 중화수를 살포해 줘.’
[주문이 접수되었습니다.] [8,500 MP가 차감됩니다. (남은 마력: 8,200 MP)] [고성능 산성 사료 중화수 분사를 시작합니다. 은폐 마법이 자동으로 전개됩니다.]
휘이잉—!
갑작스럽게 황무지에 은은하고 향긋한 이슬비 같은 바람이 불어닥쳤어요. 렌을 비롯한 공작가의 기사들은 그저 기분 좋은 봄바람이 부는 줄 알았지만, 아멜리아의 눈에는 맑고 푸른 마력의 물방울들이 미세한 안개가 되어 넓은 황무지 구석구석으로 스며드는 것이 똑똑히 보였답니다.
스으으으……!
독소로 인해 시커멓게 타들어가던 흙들이 중화수를 머금자마자, 마치 살아 숨 쉬는 생명체처럼 부드럽고 촉촉한 갈색 토양으로 변하기 시작했어요. 흙 속 깊숙이 박혀 있던 정화 종자들이 정화 마력을 가득 빨아들이며 싹을 틔울 준비를 마쳤지요.
사흘이라는 시간조차 필요하지 않았어요.
아멜리아가 손을 떼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땅속에서부터 은은한 은빛 광채가 흘러나왔답니다.
“어……? 저, 저것 좀 보십시오!”
지켜보던 농민 하나가 떨리는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켰어요.
갈라지고 메말라 있던 대지 위로, 기적처럼 파릇파릇한 새싹들이 퐁, 퐁, 퐁 소리를 내며 솟아오르기 시작했어요. 시커멓게 죽어 있던 줄기 끝에서 맑고 청초한 보랏빛 꽃망울들이 탐스럽게 고개를 내밀었지요.
파도처럼 밀려드는 보랏빛 군락이 순식간에 황량하던 농지 전체를 뒤덮었어요. 달콤하고 상쾌한 약초의 향기가 사방으로 은은하게 퍼져 나갔답니다.
“이, 이럴 수가……! 영영초가…… 영영초들이 다시 살아났어!”
“기적이다! 아멜리아 공녀 전하께서 대지에 축복을 내리셨다!”
지켜보던 농민들과 공작가의 가신들이 제 자리에 털썩 무릎을 꿇으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어요. 그들에게 이 농지는 생계이자 가문의 자존심이었기에, 죽어가던 대지가 고작 공녀 전하의 따스한 손길 한 번에 눈부신 보랏빛 낙원으로 변한 모습은 그야말로 신의 강림과도 같았지요.
“공녀 전하! 저희를 살려주셨습니다!”
“오, 여신이시여! 공녀 전하는 진정 가문의 천사이십니다!”
농민들이 감격에 겨워 울부짖으며 아멜리아를 향해 고개를 숙였어요. 렌 역시 멍하니 그 비현실적인 광경을 바라보다가, 이내 가슴이 벅차오르는 듯 아멜리아를 와락 껴안았답니다.
“아멜리아…… 내 동생이 이런 엄청난 일을 해내다니……! 가문이 쇠락하여 네게 낡은 붕대를 만지게 한 이 못난 오빠를 용서하거라. 네 손끝에서 피어난 이 꽃들이 정녕 리카르디아의 미래로구나!”
렌의 뺨을 타고 흐르는 뜨거운 눈물이 아멜리아의 어깨를 적셨어요. 아멜리아는 속으로 살짝 민망했지만, 오빠의 극단적인 과보호 덕분에 마력이 다시금 몽글몽글하게 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싱긋 웃었지요.
바로 그때, 농지가 되살아났다는 급보를 듣고 달려온 신성청의 고문단이 허겁지겁 말에서 내렸어요. 그들의 얼굴은 흙빛으로 질려 있었지요.
“이, 이게 무슨……! 말도 안 돼! 어떻게 사흘은커녕 단 몇 분 만에 이 괴사성 독소가…… 아니, 이 오염이 정화된단 말인가!”
수석 고문관이 경악하며 웅얼거리다가 스스로 실언을 했다는 것을 깨닫고 황급히 입을 막았어요. 하지만 이미 늦었지요. 렌의 차가운 시선이 그의 심장을 꿰뚫을 듯이 꽂혔답니다.
“괴사성 독소라고 했나? 신성청의 고문관께서 어찌 이 땅에 퍼진 오염의 정체를 그리 잘 아시는지 의문이군.”
“그, 그것은……!”
“내기는 우리가 이겼다. 계약대로 너희는 이 농지에서 손을 떼고, 앞으로 공작령의 영영초 유통에 그 더러운 주둥이를 들이밀지 말라. 만약 한 번만 더 이 근처에서 얼씬거린다면, 그땐 신성청이고 뭐고 내 손으로 너희 교단을 쓸어버릴 테니까.”
렌의 서슬 퍼런 경고에 고문관들은 사시나무 떨듯 떨며 자리에 주저앉았어요. 그들은 자신들의 간악한 음모가 고작 아홉 살짜리 꼬마 공녀의 손끝에서 일어난 기적에 의해 처참하게 짓밟혔다는 사실에 절망하며, 기어가는 목소리로 항복을 선언했답니다.
“약, 약속을 지키겠습니다…… 수색령을 철회하고 즉시 물러가겠습니다!”
그들이 허겁지겁 도망치는 모습을 보며 아멜리아는 장부창을 띄웠어요.
[퀘스트 완료: 영양초 농지 정화 성공!] [수확 지표 달성: 통제 재고: 영지 수확 약초 10톤 보유 완료!] [보상: 신성청 상인들의 유통 조임 버프 영구 면역, 요람 영수 전용 영양 사료 제조법 2단계 해금!]
‘완벽해!’
아멜리아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어요. 이제 신성청이 아무리 유통망을 쥐고 흔들어도, 공작가는 자체적으로 거대한 약초 수급처를 확보했으니 아무런 타격도 받지 않게 된 것이지요. 게다가 요람의 마수들에게 먹일 영양 사료의 재료까지 넘쳐나게 되었으니 일석이조였답니다.
“에헤헤, 오빠! 아멜리아가 정말 해냈어요!”
아멜리아가 베시시 웃으며 렌의 가슴에 얼굴을 부비자, 렌은 세상을 다 가진 듯한 미소를 지으며 동생을 소중하게 안아 들었어요. 가신들과 농민들의 환호성이 보랏빛 꽃밭 전체를 가득 메웠지요.
승리의 기쁨이 가득한 축제 분위기 속에서, 아멜리아는 품 안에서 은밀하게 진동하는 붉은 나침반을 느꼈답니다.
‘……어라?’
그것은 정원 깊숙한 곳, 지하 감옥에 갇혀 있던 신성청 첩자이자 전 하녀장을 감시하기 위해 심어둔 마력 신호기였어요.
평화롭던 나침반의 바늘이 미친 듯이 회전하며, 붉은빛을 번뜩이고 있었지요.
[경고: 정원 내밀 투옥소의 경계 장막 훼손 감지!] [첩자 ‘하녀장’이 공작저 지하의 비밀 하수구 통로를 통해 외부의 신성청 기사단을 무단 유인하는 신호가 포착되었습니다!]
아멜리아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차갑게 굳어버렸어요.
신성청의 추악한 발악이, 드디어 공작가의 심장부인 저택 안마당으로 칼끝을 들이밀기 시작한 것이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