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남해의 가파른 해류가 암초 사이를 사납게 휘감아 도는 전라수영의 외진 포구. 거친 파도 소리를 압도하는 정체불명의 굉음이 해안선을 거세게 흔듭니다.

"압력 실린더 확인하라! 송풍기 가동, 기압을 유지하라!"

당신의 매서운 명령에 비밀 영지에서 단련된 숙련공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입니다. 삼척과 석탄산에서 밀선으로 공수해 온 고열의 무연탄이 보일러 화덕 속에서 시뻘건 숨을 내뿜고, 연도를 거친 검붉은 연기가 용의 포효처럼 하늘로 치솟습니다. 이윽고 증기 제어용 복동식 피스톤이 육중한 행정을 시작하자, 선체 양현에 장착된 거대한 추진 철륜이 단단한 남해의 바닷물을 한 움큼씩 움켜쥐며 회전하기 시작합니다.

바람은 지독한 역풍. 전통적인 판옥선이나 왜곡된 형태의 안택선이라면 돛을 내리고 포구에 묶여 대자연의 자비를 바랐을 악조건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설계하고 상단 동맹의 자본으로 건조해 낸 최초의 증기 철갑함 ‘진남호(鎭南號)’는 달랐습니다. 목조 선체 위에 가혹한 압착 가공을 거친 단조 연철판을 장갑으로 두른 이 철갑 괴수는, 자연의 섭리를 비웃듯 사나운 조수가 몰아치는 해협을 정면으로 찢어발기며 나아갑니다.

웅장하고도 기괴한 강철의 고동 소리에, 해안 언덕 위에서 시험 운항을 지켜보던 노련한 전라좌수사 이순신과 장수들의 안색이 충격으로 깊게 물듭니다.

이것은 단순히 바람 없이 가는 배가 아닙니다. 영지의 수력 송풍식 고로에서 녹여낸 정밀한 구리 주철 기술과, 면방직 공장의 증기압 제어 기술이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결합한 근대 문명의 정수입니다. 현측에는 삼도수군의 천자총통을 야금술로 대대적으로 개량하여 가벼우면서도 포구 압력을 견디도록 설계된 신형 강선포들이 위압적인 포신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바람을 등지고 아군을 포위하려 드는 왜군의 함대라 할지라도, 이 증기선 앞에서는 사냥감에 불과합니다. 바람을 거슬러 전장의 최적의 요지를 선점하고, 저들의 유효사거리 밖에서 일방적인 포격을 퍼붓는 가공할 기동 전술이 현실로 다가온 것입니다.

“대군 대감, 인간의 손으로 만든 쇳덩이가 정녕 대자연의 풍랑을 이기고 바다를 지배한단 말입니까.”

굳건한 함대를 지휘하던 이순신의 목소리에 난생처음으로 전율과 경외감이 서립니다. 첩보에 따르면 대마도와 부산포 근해에 왜의 세키부네들이 조용히 집결하며 전란의 도화선에 불을 붙이려 하는 상황. 신식 증기 철갑함의 힘을 증명한 당신의 눈앞에 거대한 남해와 동아시아의 지도가 투영됩니다. 이제 이 압도적인 기술적 우위를 동력 삼아, 역사라는 도도한 흐름의 향방을 결정지을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다음 화 계속 보기 →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