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구축한 격물원(格物院)의 열기는 혹독한 겨울 공기마저 무색하게 만든다. 거대한 도가니에서 쏟아지는 백열(白熱)의 쇳물과 고압 증기가 파이프 이음새를 뚫고 나오는 날카로운 비명이 강당을 가득 채운다. 그 열기 속에 서서, 당신은 칠판에 적힌 고온 고압식 증기실린더의 열역학 방정식을 매서운 눈으로 응시하는 수백 명의 젊은 눈동자들을 바라본다.
여기에 사서삼경을 외우는 유생은 없다. 대신 그들의 손에는 자(尺)와 극도로 연마된 분회기가 들려 있다. 양반가의 서자, 몰락한 아전의 자식, 서소문 밖의 대장장이, 심지어 노비 출신의 영민한 아이들까지 한자리에 모여 오직 격물과 산학론을 논한다. 당신이 도입한 계열별 연구소와 성과급 제도는 신분제의 고루한 장벽을 내부에서부터 무너뜨리고 있다. 실력에 따라 봉급과 직급이 주어지는 정밀 가공의 세계에서, 오직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1푼 이하의 오차를 잡아내는 냉철한 이성과 자를 쥔 손끝의 감각뿐이다.
"대군 대감, 실린더 헤드의 패킹을 우지(牛脂)가 아닌 건조한 삼과 연납 합금선으로 밀폐하여 압력 손실을 사분의 일로 줄였습니다. 이로써 고압 보일러의 실용화가 가능해졌습니다."
장영실의 후예를 자처하는 열아홉 살의 공합도, 이윤성이 경외심을 담아 올린 구동 보고서는 공학적으로 완벽에 가깝다. 이들은 단순한 장인이 아니다. 당신의 가르침을 받아 물리학의 기초를 이해하고, 탄소 함량에 따른 강철의 문성(紋性)과 연성을 공식으로 도출해내는 선구적 과학 엘리트 집단이다. 한양의 사대부들이 주리론과 주기론의 사상적 이치에 매몰되어 있을 때, 당신의 아이들은 석탄의 연소 열량과 압력의 물리적 상관관계를 계산하며 세상을 재구성하는 법을 배웠다.
조정에서는 이미 이들을 가리켜 '대군의 사병(私兵)이자 괴력난신을 숭상하는 무리'라 부르며 경계심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구질서에 안주하던 훈구와 사림 세력은 이 거대한 기계의 톱니바퀴 아래에서 자신들의 권위가 으스러질 위기에 처했음을 깨닫고 조직적인 반발을 준비 중이다. 하나 이 젊은 인재들의 눈빛에는 조정의 탄압에 대한 두려움 대신, 자신들에게 인간의 존엄과 기술의 권능을 부여해 준 당신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심이 이글거리고 있다.
이제 축적된 자본과 연마된 지혜는 폭발하기 직전의 증기압처럼 임계점에 도달했다. 이 강력한 인적 자원의 에너지를 어디로 발산시킬 것인가. 당신의 책상 위에는 조선의 행로를 결정할 두 장의 거대한 국가 개조 설계도가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