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철과 증기의 포효가 조선의 낡은 도성을 뒤흔듭니다. 한양 땅 한복판, 과거 사대부들의 가마가 오가던 육조거리에는 이제 거대한 증기관을 장착한 철마공정천(鐵馬工程處)의 전차가 석탄 연기를 뿜으며 매끄럽게 질주합니다. 당신이 기예원에서 길러낸 천민 야장과 서얼 학도들은 이제 조정의 당상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경복궁 근정전 뒤편에 새로이 웅장하게 솟아오른 '공업중추의사당'의 대리석 계단을 오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기술의 진보가 아닙니다. 신분이 기계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기계를 다루는 능력이 신분을 결정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가마솥의 압력을 계산하고, 실린더의 마찰력을 제어하며, 정밀한 화력 체계를 통제하는 이 신세대 공학도들이 국가의 실질적인 부를 창출해 내자, 성리학적 도덕론만을 읊조리던 구질서의 목소리는 자연히 힘을 잃어갔습니다. 세금을 내고 기술을 바치는 자들이 나라의 주인임을 자처하는 거대한 가치관의 전도가 일어난 것입니다.

당신은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사대부들의 반발과 왕실의 불안을 달래기 위해, 철도와 방적기에서 나오는 막대한 산업 자본의 일부를 국가 연금과 토지 보상금으로 환원하는 치밀한 행정적 완충지대를 마련했습니다. 상업적 농업과 광업의 현대화는 신분 해방을 가속했고, 이제 사대부 계급조차 스스로 노비를 해방하고 주식회사 조선 야금 철강의 주주가 되기를 갈망하게 되었습니다. 이 영리한 타협 끝에, 절대 왕권을 수호하려던 조정 역시 저항의 명분을 잃고 무장해제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 당신은 역사상 그 어떤 정복자도 감히 걷지 않았던 길을 걷습니다. 경복궁 앞 광장에 모인 수십만의 인파가 당신을 우러러보고 있습니다. 당신은 왕의 뒤에 숨은 섭정이나, 스스로 옥좌에 오르는 찬탈자의 길을 거부합니다. 당신이 단상 위에서 천천히 펼쳐 든 것은 두꺼운 양장 가죽으로 제본된 『대조선 민주 천하 헌장』입니다.

"권력은 군주 한 사람의 핏줄이 아닌, 법과 이성, 그리고 노동하는 만민의 합의로부터 나온다."

당신의 음성이 전기식 증폭기를 타고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순간, 광장은 찬탄과 전율로 가득 찹니다. 만민 평등과 소유권 보장, 그리고 과학 기술의 교육 의무를 명시한 이 헌법은 군주를 상징적 존재로 격하시키고, 신분제를 영구히 폐지하며, 백성이 선출한 의회가 국정을 이끄는 '민주 기술 연방 공화국 조선'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입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쇳물을 긷던 야장과, 가장 높은 곳에 머물던 왕족이 모두 법 아래 동등한 시민이 되었습니다. 당신이 설계한 이 거대한 해방의 헌장 위에서, 조선은 스스로 구시대의 사슬을 끊어내고 철과 이성의 날개를 달았습니다.

웅장한 증기 고동 소리가 대지를 흔들며 새 시대의 서곡을 연주합니다. 대군의 지위를 내려놓고 한 명의 자유로운 공화국 시민이자 최고 기술 총리로서 연단에 선 당신의 눈앞에, 만민이 주인이 되어 세계의 바다와 하늘을 향해 뻗어 나갈 공화 조선의 찬란한 대항해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역사는 이제 당신을 일개 왕족이 아닌, 영원히 멸하지 않을 위대한 공화국의 설계자로 기록할 것입니다.

다음 화 계속 보기 →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