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쿠르릉, 하고 땅을 뒤흔드는 초동의 굉음은 고대하던 승전고가 아니었다. 그것은 당신이 온 영혼을 갈아 넣으며 삼남 땅에 구축해 온 조선 최초의 증기 동력 단지, 기예원 심장부에서 터져 나온 파멸의 비명이다.

성급한 도약에는 반드시 물리적 대가가 따르는 법이다. 왜군의 전면 침공에 맞서 무기와 전력을 단기간에 대량 생산하겠다는 압박감이 화근이었다. 야금학적 한계를 무시한 채, 보일러의 내부 압력을 무리하게 15기압 이상으로 끌어올린 고압 증기 도관이 마침내 임계점을 넘어선 것이다. 탄소 함유량이 균일하지 않은 16세기 조판 연철은 누적된 열피로를 견디지 못하고 찢어졌으며, 안전변의 황동 압착 스프링마저 과열로 고착된 결과였다. 가압수가 일시에 기화하며 발생한 초고압 증기 폭발(BLEVE)은 기예원의 정교한 기진기들과 직조기들을 단숨에 집어삼켰고, 거대한 플라이휠은 하늘 높이 솟구쳤다가 연구동 천장을 뚫고 주저앉는다.

"이것 보시오! 대군이 서양의 사술을 들여와 하늘의 노여움을 샀소이다!"

불길이 채 잡히기도 전에, 한양의 조정은 기민하고 잔인하게 움직인다. 영지의 급격한 성장을 경계하던 동인과 서인의 영수들은 기예원의 참사를 가문과 붕당의 생존을 위한 천재일우의 기회로 포착한다. 좌의정을 필두로 한 사대부들은 일제히 불꽃 같은 상소를 올리며 당신을 탄핵한다. 막대한 전세와 인력을 낭비하여 무익한 척사를 만들었고, '기기묘묘한 비기'를 핑계 삼아 역모의 군사를 길렀다는 참소다. 전란의 공포 속에서 왕권을 위협받던 선조의 눈빛은 차가운 확신으로 화하고, 영지는 순식간에 대역죄인을 잡으려는 의금부 금군들에 의해 봉쇄당한다.

시커먼 연기와 석탄 가루가 자욱한 잿더미 속에 당신은 덩그러니 앉아 있다.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기술자들의 비명과 쇠사슬 소리 너머로, 차가운 빗방울이 뺨을 때린다. 차근차근 다졌어야 할 산업적 기반을 건너뛰고 미래의 기술을 강치하려 했던 대가는 참혹하기 그지없다. 도면 위에서 화려하게 춤추던 열역학 법칙들은 현세의 일천한 야금술과 정쟁의 구렁텅이 앞에서 그저 차가운 쇳덩이로 화했을 뿐이다.

당신은 손가락 끝이 찢겨 피가 흐르는 줄도 모른 채, 뻘겿게 녹슬어 뒤틀린 피스톤대를 비틀거리며 붙잡는다. 손바닥을 적시는 것은 보일러가 뿜어내던 고온의 응축수인가, 혹은 되돌릴 수 없는 역사적 패배 앞에서 흐르는 피눈물인가. 조선의 대국적 도약을 꿈꾸던 위대한 대군의 야망은, 그렇게 기계 문명의 무덤이 되어버린 폐허 속에서 처참하게 부서져 내린다.

이전화목차마지막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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