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연기가 한양이 바라보이는 서해 관문, 도동포의 푸른 하늘을 가릅니다.
바람 한 점 없는 고요한 수평선 너머로, 돛을 올리지 않은 거대한 괴수들이 파도를 가르며 진입합니다. 쇠가죽 대신 두꺼운 연철판을 리벳으로 촘촘히 덧댄 철갑 증기선, '진무위(振武衛)' 장갑함대입니다. 선체 내부 깊숙한 곳에서 석탄을 연소시키는 고압 보일러가 웅장한 증기음을 포효하듯 내뿜고, 삼단 팽창식 증기기관이 전달하는 육중한 회전력이 거대한 스크루를 돌려 물살을 헤쳐 나갑니다. 일찍이 임진년의 전란을 예견하고 조총의 제법을 바꾸며 시작되었던 당신의 집념이, 마침내 전 세계의 바다를 지배하는 강철의 괴수를 탄생시킨 것입니다.
포구의 석조 부두에는 정밀한 크레인들이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선박의 복부에 가득 찬 화물을 끌어올립니다. 명나라의 은괴와 비단, 왜 열도에서 채굴된 고순도의 구리와 유황, 그리고 남양 군도에서 올라온 향료와 목재가 끝없이 쏟아져 나옵니다. 과거 명나라의 조공 체제 하에서 겨우 숨통을 유지하던 은둔의 나라는 이제 존재하지 않습니다. 한양의 국고는 매일 밤 세계 전역에서 유입되는 화폐로 비명을 지르고, 경강상인들은 당신이 설립한 왕실 무역 공사의 휘하에서 대양의 상권을 쥐고 흔드는 대해상 세력으로 거듭났습니다.
조정의 풍경 역시 개벽했습니다. 사서오경의 문구만을 탐닉하며 당파 싸움에 골몰하던 대신들의 도포 자락 대신, 이제는 도면과 측정기를 손에 든 신흥 기술 관료들이 조정 입구인 청라 장랑을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당신의 공학원에서 수리(數理)와 제철, 유체역학을 배운 인재들이 국가의 중추를 맡아 한반도 전역에 철도를 가설하고 대규모 기계화 광산을 설계하는 중입니다. 고루한 예학 대신 실용과 물리적 인과관계가 국시(國始)가 된 이 거대한 전환은 모두 당신의 손끝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바닷바람이 당신의 붉은 곤룡포 깃을 거칠게 흔들고 지나갑니다. 저 멀리 포구를 지나 대동강과 한강을 잇는 운하의 갑문이 열리고, 석탄을 가득 실은 바지선들이 증기 예인선에 이끌려 내륙으로 향합니다. 한때 왜적의 침략에 풍전등화와 같았던 이 나라는 이제 스스로의 힘으로 증기의 불꽃을 피워 올렸고, 동아시아의 천하를 넘어 서구 열강이 감히 넘보지 못할 철강의 제국으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영종도 요새의 전망대에 서서, 검붉은 석양이 연기를 뿜어내며 출항하는 함선들의 등허리를 붉게 물들이는 광경을 내려다봅니다. 이제 조선의 대함대는 해가 지지 않는 천하의 바다를 향해 길을 나설 준비를 마쳤습니다. 기계를 향한 당신의 열망과 미래를 향한 설계가 마침내 이 땅에 영원히 지지 않는 증기 제국의 여명을 완성해 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