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은하야! 서은하!"

철제 테이블 위로 엎질러진 서늘한 공기 속에서 내 목소리가 사방 벽면에 부딪혀 부서졌다. 방음재로 덮인 제3취조실의 폐쇄적인 공간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거친 마찰음과 비명을 비정상적일 정도로 또렷하게 증폭시켰다.

수화기에서는 쇠붙이가 바닥을 긁는 듯한 날카로운 소음과 함께, 누군가의 묵직한 군화 굽이 마룻바닥을 짓밟는 진동이 흘러나왔다.

임철주 형사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방금 전까지 강민우 검사의 위조 증거를 폭로하며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한 순간, 판은 다시 한번 진흙탕 속으로 처박히고 있었다.

"이게…… 무슨 소리야? 너 지금 어디랑 연결해 둔 거야?"

임철주가 내 멱살을 잡으려 손을 뻗었으나, 나는 그의 손길을 가볍게 쳐내며 수화기 손잡이를 더욱 강하게 움켜쥐었다.

머릿속에서 이미 붉은색 경고등이 점멸하기 시작했다. 과잉기억 증후군이 내 기억의 저장고를 강제로 개방했다. 내 자택의 도면, 은하가 서 있을 안방의 위치, 거실 중문에서 안방 침대까지의 거리인 정확히 7.4미터.

침입자가 문을 깨고 들어온 지 정확히 4초가 지났다. 일반적인 전술 침투 속도를 고려할 때, 그들이 은하의 목덜미를 움켜쥐기까지 남은 시간은 단 12초에 불과했다.

"은하야, 내 목소리 들려? 대답하지 말고, 송수신 버튼을 세 번 짧게 눌러."

대답 대신 수화기 너머에서 툭, 툭, 툭 하는 미세한 기계음이 세 번 울렸다. 아직 의식을 잃지 않았다. 살아 있다. 붙잡히기 직전의 대치 상태.

"지금부터 내 말대로 움직여. 네 오른쪽 삼각지대에 놓인 결혼사진 액자는 이미 찢었겠지. 장부를 품에 넣고, 왼쪽으로 세 걸음 이동해."

"하태신, 미쳤어? 지금 서울 한복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말해!"

임철주가 내 어깨를 움켜쥐고 흔들었지만, 내 시선은 오직 취조실 천장의 모서리, 소리 없이 돌아가는 폐쇄회로 카메라의 렌즈에 고정되어 있었다.

내 전두엽 내부에서 '기억 장부(Memory Ledger)'가 무서운 속도로 연산 회로를 돌리기 시작했다. 뇌세포가 타들어 가는 특유의 금속성 탄내가 코끝을 스치는 것과 동시에, 내 시야는 현실의 취조실을 벗어나 내 자택 주변의 반경 500미터 공간 정보로 채워졌다.

서부경찰서 제3취조실의 극단적인 정적은 역설적이게도 내 인지 능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사방이 차단된 밀실의 기하학 속에서, 나는 내 집 주변 도로망과 CCTV의 위치를 완벽한 3차원 입체 그래픽으로 재구성했다.

- 연지동 42-1번지 도로 CCTV: 렌즈 외곡각 35도. 녹화 사각지대 존재. - 아파트 지하 주차장 3번 출구: 센서 오작동으로 인한 15초간의 녹화 지연 발생 가능. - 백야 재단 추격팀의 예상 진입 경로: 아파트 정문 및 북쪽 비상계단 동시 차단. 잔여 탈출로는 오직 서쪽 주방 보일러실과 연결된 완강기 창문뿐.

"은하야, 안방 욕실로 들어가서 문을 잠가. 그 안쪽에 있는 환풍구 덮개를 뜯어내면 이중 패널이 나온다. 거긴 안방에서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야. 덮개를 뜯고 장부를 그 안에 밀어 넣어."

귓가에 은하의 다급한 숨소리와 함께 쓸림음이 들렸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지시를 따르고 있었다.

"그리고 보일러실로 뛰어. 세탁기 뒤쪽에 내가 지난달에 풀어둔 가스 배관 밸브가 있어. 그걸 왼쪽으로 반 바퀴만 돌려."

"가, 가스……? 아저씨, 미쳤어요? 폭발이라도 시키겠다는 거예요?"

수화기 너머에서 마침내 은하의 억눌린 비명이 터져 나왔다.

"폭발이 아니야. 가압실의 압력을 일시적으로 높여 경보기를 울리게 하려는 거다. 경보가 울리면 아파트 전체의 중앙 방화벽이 차단돼. 추격팀의 무전 신호가 차단되는 유일한 구역이지. 소방 벨이 울리는 순간, 3분 동안 아파트 전체가 암전 상태에 빠진다. 그 3분 동안 너는 지하 기계실을 통해 탈출해야 해."

취조실 한구석에 서 있던 강민우 검사가 그 모습을 보며 차가운 헛웃음을 흘렸다. 그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가며 가학적인 만족감을 드러냈다.

"하태신, 취조실에 갇힌 살인 용의자가 원격으로 탈출 극이라도 지휘하겠다는 건가? 가당치도 않은 광대극이군. 네가 아무리 잔머리를 굴려봐야 백야의 사냥개들은 한 번 문 사냥감을 놓치지 않아. 그 기집애는 오늘 밤 시체로 발견될 거다."

강민우가 조롱하듯 손을 흔들며 담배를 꺼내 물려 했다. 라이터를 켜기 위해 그의 셔츠 소매가 위로 가볍게 밀려 올라간 순간이었다.

그의 오른쪽 손목 안쪽, 하얗고 얇은 피부 위로 기이한 흉터가 내 시야에 걸려들었다.

격자무늬.

정교하게 긁힌, 마치 날카로운 메스나 특수 나이프에 의해 새겨진 듯한 가로세로의 미세한 격자형 자상 흉터였다.

순간 머릿속 장부의 한 페이지가 요동치며 넘겨졌다. 지난번 임철주가 보여주었던, 아내 한연희의 살해 현장 바닥에 남겨져 있던 특이한 격자형 긁힘 자국. 그리고 아내가 숨을 거두기 직전 필사적으로 움켜쥐었던 인슐린 병 표면의 미세한 스크래치.

그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다. 강민우의 손목에 새겨진 저 흉터는 단순한 상처가 아니었다.

특정한 암살용 흉기나 백야 재단 내부의 핵심 행동대원들이 사용하는 특수 장비에 의해 발생하는 고유한 마찰 흔적.

'강민우…… 네 놈이 직접 그 자리에 있었군.'

심장이 차갑게 식어 내리는 동시에, 내 뇌는 더욱 잔인하고 정교한 연산을 시작했다. 강민우의 호흡수 분당 18회, 동공의 이완 정도 0.2밀리미터 하락. 그는 지금 자신의 흉터가 노출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지만, 내 시선이 그의 손목에 머무는 순간 미세하게 손가락 끝을 떨었다. 무의식적인 방어 기제였다.

나는 그 사실을 마음속 장부 깊숙한 곳에 못 박아 두었다. 지금 당장 저 자의 덜미를 잡는 것보다 더 시급한 것은 은하의 생존이었다.

"은하야, 가스 밸브를 돌려. 지금 당장."

수화기 너머에서 쉭 하는 쇠소리와 함께 가스 누출 경보음이 아파트 단지 전체를 찢어발기듯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취조실 모니터에 연결된 내 자택 주변의 무선 트래픽 신호가 급격히 요동쳤다. 은하가 지시를 정확히 수행한 것이다.

"임 형사, 지금 당장 연지동 아파트 단지 관리사무소로 무전을 쳐라. 소방 경보가 오작동이 아니며, 가스 누출로 인한 대피령을 대형 스피커로 방송하라고 지시해."

"내가 왜 네 말을 들어야 하지?"

임철주가 이빨을 갈았다.

"당신이 그렇게 좋아하는 진짜 범인을 잡고 싶다면 내 말을 들어야 할 겁니다. 지금 내 집에 침입한 자들은 강민우 검사가 보낸 백야 재단의 해결사들이니까. 그들을 현행범으로 체포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야."

내 목소리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임철주는 내 서늘한 눈빛과, 자신을 향해 뻗쳐오는 기묘한 압박감에 압도당한 듯 멈칫했다. 그는 이미 강민우가 증거를 조작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상태였다. 더는 강민우의 아군이 될 수 없었다.

임철주는 침을 크게 한 번 삼키더니, 주머니에서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

"지원팀, 지금 연지동 하태신 자택으로 강력팀 전원 이동해! 관리사무소 연락해서 대피 방송 즉시 실시하라고 해! 당장!"

그의 호령이 취조실의 적막을 깨트렸다.

수화기 너머에서 마침내 아파트 주민들의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비상 대피 방송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300세대가 넘는 대단지 아파트의 주민들이 일시에 계단으로 쏟아져 나오는 혼란의 도가니.

이것이 내가 설계한 탈출 경로의 핵심이었다. 아무리 완벽하게 무장한 백야 재단의 추격팀이라 할지라도, 수백 명의 민간인이 어둠 속에서 비명을 지르며 쏟아져 나오는 통로를 거슬러 표적을 추적할 수는 없다. 군중이라는 거대한 방패가 은하를 감싸 안은 것이다.

"은하야, 지금이야. 기계실 우측 배수구를 통해 단지 외곽의 상가 지하 주차장으로 나와. 거기 공중전화부스 뒤쪽에 배달용 오토바이가 한 대 세워져 있을 거다. 키는 오른쪽 뒷바퀴 흙받이 안쪽에 붙어 있어."

—하아, 하아…… 아저씨, 성공했어요! 밖으로 나왔어요! 가죽 장부도 무사히 품에 넣었어요!

은하의 다급하지만 울음 섞인 안도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흘러나왔다.

"뒤돌아보지 말고 즉시 그 자리를 벗어나. 안전가옥으로 이동해."

—고마워요, 아저씨. 진짜 죽는 줄 알았네…… 꼭 살아서 봐요.

툭.

통신이 완전히 끊겼다.

동료가 무사히 탈출했다는 안도감이 밀려오는 순간, 내 머릿속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아악……!"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오려는 비명을 삼키며 입술을 깨물었다. 이빨 사이로 비릿한 피 맛이 배어 나왔다.

뇌세포가 문자 그대로 재가 되어 타들어 가는 극심한 뇌압이 내 전두엽을 강타했다. '기억 장부'를 가동해 은하의 탈출 경로를 실시간으로 계산해 낸 대가였다.

눈앞이 하얗게 점멸했다. 차가운 얼음 송곳이 관자놀이를 관통해 뇌를 휘젓는 듯한 고통 속에서, 내 기억의 은하계 중 한 구석이 차갑게 식어 내리며 어둠 속으로 지워져 갔다.

이번에는 무엇이 사라지는가.

머릿속에서 연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신 씨, 이번 주말에는 교외로 드라이브 가요. 내가 아주 예쁜 카페를 알아뒀거든요.'

그녀가 내 손을 잡으며 지어 보였던 눈부신 미소. 우리 둘만의 첫 기념일에 함께 떠났던 춘천의 푸른 강물과, 바람에 흔들리던 그녀의 머리카락 향기. 그 정취와 온도, 공기의 냄새가 마치 모래성처럼 힘없이 바스러져 흘러내렸다.

아무리 붙잡으려 손을 뻗어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고운 모래처럼, 연희와 함께했던 소중한 일상의 한 조각이 내 뇌리에서 영구히 삭제되었다.

내 심장 한구석이 텅 비어 버린 듯한 가혹한 상실감이 나를 덮쳤다.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살을 파고들어 피가 흘렀지만, 그 육체적 고통조차 뇌가 타들어 가는 상실의 고통을 덮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겉으로 단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내 표정은 여전히 얼음처럼 차갑고 서늘했다. 이것이 내가 선택한 길이었고, 진범을 지옥으로 보내기 위해 치러야 할 등가교환의 법칙이었다.

나는 고통스러운 숨을 몰아쉬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취조실 안의 명도가 급격히 낮아진 듯, 사방이 어둠에 잠겨 있었다. 오직 형광등의 창백한 불빛만이 내 얼굴을 차갑게 비추고 있었다.

임철주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취조실에 앉아 손끝 하나 대지 않고, 무선 통신 하나만으로 백야 재단의 완전 무장한 추격팀을 유령처럼 따돌리고 조력자를 구해낸 나의 컴퓨터 같은 지휘 능력에 완전히 압도당한 것이다.

"너…… 도대체 정체가 뭐야? 어떻게 그 상황에서 그런 계산을……"

임철주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제 그는 나를 단순한 살인 용의자가 아닌, 경외와 공포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취조실의 지배권은 완전히 내 손으로 넘어왔다.

나는 강민우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의 안색은 흙빛으로 변해 있었다. 자신이 설계했던 완벽한 사법 기소의 덫이 도리어 자신의 목을 조르는 올가미가 되어 돌아왔으니 그럴 만도 했다.

"강 검사, 이제 당신이 대답할 차례입니다."

나는 쇠사슬이 채워진 두 손을 가볍게 들어 테이블 위에 올렸다. 쇠사슬이 부딪치며 내는 청아한 금속음이 취조실의 무거운 정적을 깨트렸다.

"당신 손목에 있는 그 격자형 흉터. 그리고 국과수 감정서에서 누락시켰던 메스의 섬유 흔적. 이 모든 것이 가리키는 방향은 단 하나입니다. 당신은 단순한 기소 설계자가 아니야. 내 아내 한연희의 살해 현장에 직접 관여한 백야 재단의 공범이지."

내 목소리는 낮고 가라앉아 있었지만, 그 안에 담긴 살기는 취조실 안의 온도를 영하로 떨어뜨리기에 충분했다.

강민우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그의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임철주 역시 총구의 방향을 완전히 강민우에게로 돌린 채, 그의 움직임을 날카롭게 감시하고 있었다.

"하, 하태신…… 네 놈이 아무리 발악해 봐야 소용없어. 네 놈은 정신병자일 뿐이야. 과잉기억 증후군이라는 허울 좋은 핑계로 기억상실을 연기하는 살인마!"

강민우가 표독스럽게 소리쳤지만, 그것은 막다른 골목에 몰린 쥐의 단명한 비명에 불과했다.

"임 형사님, 이제 이 자를 체포하십시오. 증거 인멸 및 범죄 묵인, 그리고 살인 방조 혐의입니다."

내가 나지막이 명령했다. 피의자가 형사에게 명령하는 기이한 광경이었지만, 이미 내 페이스에 완전히 말려든 임철주는 자연스럽게 수갑으로 손을 가져갔다.

"강 검사, 미안하게 됐네.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일단 서에서 신변을 확보해야겠어."

임철주가 차가운 철제 수갑을 꺼내 들고 강민우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강민우의 얼굴에 절망과 분노가 교차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취조실의 무거운 철문이 거칠게 열리며, 한 남자가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단정하게 빗어 넘긴 백발, 값비싼 맞춤 정장 위에 걸친 짙은 감색 코트. 그의 가슴팍에 빛나는 대한민국 법무부의 금빛 배지가 취조실의 창백한 조명 아래서 번뜩였다.

그의 등장에 임철주의 움직임이 뚝 멈췄다. 강민우의 얼굴에는 순식간에 구원의 빛이 서렸다.

남자는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품 안에서 붉은색 관인이 선명하게 찍힌 서류 한 장을 꺼내 테이블 위에 툭 던졌다.

"거기까지 하시지, 임 형사."

서늘한 저음이 취조실을 가득 채웠다.

테이블 위에 떨어진 서류의 맨 위에는 굵은 고딕체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피의자 하태신에 대한 즉각 기소 및 이송 명령서]

그리고 그 옆에는 법무부 차장의 친필 서명과 함께, 어떠한 사법적 이의 제기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완전 기소 승인'의 붉은 직인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법무부 차장님의 특별 지시다. 하태신은 이 시간부로 검찰청 본청으로 이송된다. 사건은 강민우 검사가 독점 기소하며, 경찰의 모든 수사 권한은 박탈한다."

남자가 나를 내려다보며 잔인하게 미소 지었다.

강민우가 천천히 허리를 펴며, 내 면전에 대고 비웃음을 날렸다.

"말했지, 하태신. 네가 아무리 날뛰어봐야 이 법정은 백야가 지배하는 곳이라고. 기소장에 도장이 찍히는 순간, 네 목적지는 취조실이 아니라 사형대 위다."

뒤집혔던 판이 단 한 장의 서류로 다시 한번 통째로 뒤흔들리는 순간이었다. 나는 내 손목을 조여오는 수갑의 차가운 감촉을 느끼며, 새로 나타난 백야의 거대한 그림자를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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