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컥, 하는 기계음이 취조실의 두꺼운 철문을 타고 무겁게 울렸다.
외부에서 잠금장치가 리셋되는 소리. 방음재로 사방이 막힌 제3취조실 안으로 붉은색 비상등의 경고광이 번뜩이며 들어왔다. 그 붉은 빛줄기는 임철주의 굳어버린 얼굴을 기괴하게 물들였다. 그의 손에 들린 스마트폰 액정 위에는 여전히 서부경찰서장의 살인 교사 문자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5초. 서은하가 경고한 시간이 모래시계의 모래알처럼 빠르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임 형사."
태신의 서늘한 목소리가 정적을 찢었다. 그의 시선은 임철주의 흔들리는 눈동자, 그리고 가쁘게 차오르는 호흡의 간격에 고정되어 있었다.
[대상: 임철주. 맥박수 분당 132회. 동공 수축률 42%. 호흡 불규칙. 극도의 배신감과 혼란으로 인한 공황 상태 진입율 87%.]
머릿속의 연산 장치가 임철주의 무너진 내면을 수치화하여 실시간으로 보고했다. 태신은 쇠사슬에 묶인 양손을 가볍게 흔들며 철제 테이블을 짚었다.
"선택해야 할 겁니다. 저 문이 열리는 순간, 당신은 백야 재단의 살인 청부업자 이강석과 함께 동반 자살한 '순직자'로 포장될 테니까."
"닥쳐……!"
임철주가 이를 갈았지만, 목소리에는 뼈가 빠져 있었다. 평생을 목숨 바쳐 충성해 온 경찰 조직, 그리고 형제처럼 따랐던 서장이 자신을 쓰레기처럼 버렸다는 사실을 뇌가 거부하고 있었다.
"이강석이 실패할 경우를 대비한 가이드라인이 작동한 겁니다. 강민우 검사 역시 마찬가지죠. 꼬리가 밟힌 사냥개는 주인에게 가장 먼저 목이 비틀리는 법이니까요."
태신의 시선이 구석에서 사시나무 떨듯 떠는 강민우에게 닿았다. 강민우는 이미 검사로서의 품위 따위는 내팽개친 채, 취조실 구석 철제 의자 뒤로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그의 완벽주의적 오만함은 죽음이라는 날것의 공포 앞에서 허무하게 바스러져 있었다.
"임 형사! 저 새끼 말을 믿지 마! 서장님이 그럴 리가 없잖아! 이건 음모야, 저 하태신 저 씨발놈이 꾸며낸 가짜라고!"
강민우가 찢어지는 목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의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식은땀이 그 역시 진실을 직감하고 있음을 증명했다.
"3초."
태신이 건조하게 중얼거렸다.
"임 형사. 당신의 그 낡은 전투화가 바닥을 디디는 무게 중심이 뒤로 쏠려 있군. 도망치고 싶겠지. 하지만 이 밀실에서 나갈 방법은 단 하나뿐이야. 서장의 목줄을 쥐는 것."
"……어떻게."
임철주의 목구멍에서 피 냄새 나는 음성이 새어 나왔다. 분노가 슬픔을 집어삼키는 순간이었다. 그의 눈빛이 복잡한 혼란을 지우고 잔혹한 맹수의 그것으로 돌아왔다. 사냥개가 사냥꾼을 물기로 결심한 눈빛이었다.
"문이 열리는 순간, 이강석의 총을 확보해라. 그리고 나를 볼모로 잡아라."
"뭐?"
"서장 직속 타격대라고 해도, 언론의 눈이 쏠려 있는 이 경찰서 한복판에서 대놓고 인질극을 벌이는 상황까지 무력으로 진압할 수는 없다. 특히 내가 죽으면 백야 재단이 원하는 '완벽한 기소'는 영원히 불가능해지니까. 강민우를 저들의 방패로 세워라. 저 비겁한 검사 놈의 목숨줄이 저들의 유일한 제어장치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무거운 철문이 거칠게 열렸다.
쾅!
문틈 사이로 방탄 헬멧과 검은색 전술 조끼를 착용한 세 명의 무장 대원이 총구를 들이밀었다. 그들의 총구 끝에는 소음기가 장착되어 있었다. 소리 소문 없이 취조실 안의 모든 생명체를 지워버리겠다는 명백한 의도였다.
"움직이지 마!"
선두에 선 대원이 외치는 순간, 임철주의 몸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25년 동안 현장을 뒹군 육체적 직관은 태신의 지시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수행했다. 임철주는 바닥에 쓰러져 있던 이강석의 품에서 권총을 낚아채며, 그대로 구석에 있던 강민우의 덜미를 움켜쥐었다.
탕!
임철주가 허공을 향해 경고 사격을 가했다. 좁은 취조실 내부에 귀를 찢는 굉음이 소용돌이쳤다. 화약 냄새가 차가운 공기 속으로 날카롭게 퍼져나갔다.
"가까이 오면 이 새끼 대가리부터 날려버린다! 서장한테 전해! 사냥개 목줄을 끊으려면 자기 목숨도 걸어야 할 거라고!"
강민우의 관자놀이에 차가운 총구가 밀착되었다. 강민우는 비명을 지르며 바지에 오줌을 지릴 듯한 표정으로 손을 내저었다.
"쏘, 쏘지 마! 들어오지 마, 이 미친 새끼들아! 서장한테 연락해! 내가 죽으면 백야 재단의 비자금 세탁 경로가 전부 대검찰청에 자동으로 전송되게 해놨단 말이다!"
강민우의 비열한 본능이 자아낸 거짓말이었지만, 진입하려던 무장 대원들을 멈추기에는 충분했다. 대원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주춤거렸다. 임철주가 확보한 고지, 그리고 강민우라는 거물 검사의 인질극 구도는 그들의 진입 매뉴얼을 완전히 뒤흔들어 놓았다.
태신은 철제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은 채 그 광경을 유심히 관찰했다. 제3취조실이라는 거대한 밀실 기하학은 이제 그의 손아귀 안에서 완벽하게 재구성되고 있었다. 경찰을 아군의 무기로 부려 백야 재단의 목을 죄는 판도의 급반전.
"임 형사, 무전기를 켜라. 서장에게 직접 목소리를 들려줘."
태신이 나지막이 지시했다.
임철주는 떨리는 손으로 이강석의 무전기 송신 버튼을 눌렀다. 그의 목소리는 분노로 돋아난 가시 같았다.
"서장님. 저 임철주입니다. 지금 제3취조실의 상황은 제 개인 클라우드와 외부 조력자의 망에 실시간으로 음성 녹음이 백업되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저 무장 똘마니들을 물리치지 않으면, 서장님이 백야 재단의 지시를 받고 저와 피의자를 살해하려 했다는 녹취록이 대한민국 모든 언론사 사회부 기자들의 메일함으로 전송될 겁니다. 선택하십시오."
고요한 무전기 너머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길고 차가운 한숨 소리와 함께 서장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임철주 형사. 자네가 이런 식으로 조직을 배신할 줄은 몰랐네.
"배신은 누가 먼저 했는지 잘 아실 텐데요, 서장님."
—철수해라.
서장의 명령이 떨어지자, 무장 대원들은 총구를 거두고 서서히 뒤로 물러섰다. 철문이 다시 닫히고, 취조실 안에는 거친 호흡 소리만이 남았다.
임철주는 총을 쥔 손을 내리지 않은 채 태신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경외감과 함께 극도의 경계심이 서려 있었다. 스스로 취조실에 갇혀 이 모든 판을 설계하고, 자신을 지배하던 경찰 조직을 단숨에 하수인으로 전락시킨 남자. 하태신은 진정한 취조실의 지배자였다.
"이제 어쩔 셈이지? 서장의 발을 묶어두는 것도 오래가지 못해. 그 인간은 백야 재단이 움직이는 거대한 톱니바퀴의 일부일 뿐이니까."
임철주가 물었다.
"본체를 쳐야지."
태신이 차갑게 답했다.
"본체?"
"백야 재단 지휘부의 숨통을 한 번에 끊어놓을 수 있는 명장부. 연희가 목숨과 바꾸어 지켜낸 진짜 비자금 및 범죄 기록 장부 말입니다."
그 단어가 나오자 강민우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흔들렸다.
"그, 그 장부가 어디 있는지 네가 어떻게 알아? 한연희는 그걸 숨겨두고 죽었어! 우리도, 재단에서도 온 집안과 병원을 샅샅이 뒤졌지만 나오지 않았다고!"
태신의 눈이 멀어졌다. 그의 머릿속에서 거대한 나사가 조여드는 느낌이 들었다.
[기억 장부 (Memory Ledger) 강제 개방 모드 돌입.] [경고: 전두엽의 시냅스 연소가 감지됩니다. 연접부의 정보 밀도가 임계치를 초과했습니다. 진실의 대가로 소중한 기억 장부의 일부가 무작위로 융해됩니다.]
머릿속에서 붉은색 경고등이 요란하게 깜빡였다. 시야가 흐려지며 극심한 두통이 관자놀이를 짓눌렀다. 뇌세포가 하나씩 타들어 가며 재가 되는 감각. 차가운 얼음 송곳으로 전두엽을 사정없이 쑤셔대는 듯한 고통이 몰려왔다.
태신은 어금니를 악물었다. 신음조차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 입술을 깨물자 비릿한 피 맛이 혀끝을 적셨다.
'기억해내야 한다. 연희가 나에게 남긴 마지막 메시지. 그녀가 살해당하던 날 밤, 나에게 남겨두었던 그 흔적들을.'
기억의 필름들이 빠르게 역재생되기 시작했다. 과잉기억 증후군으로 인해 뇌리에 각인된 수만 가지의 정밀한 정지 화면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5화에서 보았던, 아내가 마지막으로 남겨두었던 그 인슐린 병. 보통의 인슐린 병과는 다른 미세한 무게감. 성분 분석표에서 검출되었던 특수한 화학 성분인 '메틸페니데이트 계열의 변형 화합물'. 그것은 단순한 약물이 아니었다. 백야 재단의 고위층들이 불법적으로 제조하고 유통하려던 신종 마약성 물질의 핵심 포뮬러였다.
그리고 연희는 그 병을 항상 특정 장소 옆에 두었다.
태신의 뇌리 속 스크린에 안방의 정경이 떠올랐다. 침대 옆 협탁. 그 위에는 연희와 태신의 결혼사진이 담긴 투박한 원목 액자가 놓여 있었다. 연희는 습관적으로 그 액자의 모서리를 부드럽게 쓸어내리곤 했다.
'태신 씨, 만약 내가 세상에서 갑자기 사라지더라도…… 이 사진 속의 우리는 영원히 함께 웃고 있을 거야. 그러니까 슬퍼하지 마. 이 사진 뒤에는 항상 당신을 지켜줄 따뜻한 진실이 숨어 있으니까.'
연희의 다정한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그녀의 온기가, 그녀의 미소가, 그녀의 손길이 느껴졌다.
[진실 획득 성공: 백야 재단 지휘부의 비자금 명장부 위치 확정 — 하태신 자택 안방, 부부 결혼사진 원목 액자 후면 이중 패널 내부.]
그 순간, 뇌 속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하얀 빛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며, 태신의 영혼 한 귀퉁이가 사정없이 뜯겨 나가는 감각이 몰려왔다.
아내와의 소중한 기억 하나가 통째로 연소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연희가 차려주었던 마지막 생일 아침 식사의 기억이었다. 어스름한 새벽빛이 들어오던 작은 주방. 서툴게 끓여낸 미역국에서 나던 고소한 참기름 냄새. 밥그릇을 내려놓으며 "생일 축하해, 나의 차가운 프로파일러 님" 하고 장난스럽게 웃던 연희의 얼굴.
그녀의 목소리가 점차 왜곡되더니, 라디오 주파수가 어긋나듯 노이즈 속으로 사라져갔다. 따뜻했던 미역국의 온기가 식어버리고, 아내의 얼굴이 하얗게 지워졌다. 그 기억이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는 머리에 남아 있었지만, 이제 그날 아침의 구체적인 감각과 소리, 아내의 표정은 영원히 되살릴 수 없는 무(無)의 공간으로 사라져 버렸다.
가슴 한구석이 텅 비어버린 듯한 지독한 상실감. 감정이 배제된 채 살아온 태신의 눈에서, 차가운 눈물 한 방울이 소리 없이 흘러내려 턱끝을 타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태신……? 너 우는 거냐?"
임철주가 의아한 듯 물었지만, 태신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지도 않은 채, 취조실 벽면에 설치된 스피커를 향해 갈라진 목소리로 속삭였다.
"은하야. 지금 들리나."
—……아저씨? 목소리가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스피커 너머로 서은하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내 아파트로 가라. 안방 침대 옆 협탁 위에 결혼사진 액자가 있다. 원목 프레임의 후면 이중 패널을 뜯어내면, 그 안에 백야 재단의 비자금 명장부가 들어 있다. 당장 확보해."
—알았어요! 지금 바로 갈게요! 오토바이 시동 걸었어요. 10분이면 도착해요!
통신이 끊겼다.
태신은 눈을 감고 소실된 기억의 잔해를 애써 무시하려 했다. 아내의 얼굴을 잃어버리는 대가를 치르고 얻어낸 진실이었다. 절대로 실패해서는 안 되었다.
태신은 고개를 들어 강민우를 서늘하게 쏘아보았다.
"강민우 검사. 당신이 준비한 가짜 기소 합의는 이제 완전히 백지화되었습니다. 당신은 이제 백야 재단의 사냥개가 아니라, 교도소 방 한 칸을 차지할 피의자일 뿐입니다."
"하태신……! 네가 감히 나를……!"
"임 형사, 이 인간의 주머니를 뒤져서 휴대폰을 확보해라. 그리고 백야 재단과의 통화 내역, 그리고 조작된 메스의 지문 분석 보고서 원본을 송부받은 메일 계정을 열어라. 이제부터 우리가 강 검사를 취조한다."
임철주는 망설임 없이 강민우를 바닥에 패개치고 그의 주머니에서 최신형 스마트폰을 빼앗았다. 강민우는 비명을 지르며 저항하려 했지만, 25년 차 베테랑 형사의 억센 손아귀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이리 내! 이건 불법 수사야! 법정에서 증거 능력이 상실된다고!"
강민우가 악을 썼다.
"법정?"
태신이 잔인하게 미소 지었다.
"당신이 서게 될 법정은 백야 재단이 매수한 판사들이 앉아 있는 곳이 아닐 겁니다. 내가 설계한 법정이지. 임 형사, 메일함을 열어라. 거기에 당신이 누락시켰던 방진 장갑 섬유 흔적에 대한 감정서 원본이 있을 거다."
임철주가 빠르게 화면을 터치했다. 잠시 후, 그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있군. 국과수 분석관이 보낸 메일이야. 메스 손잡이 부분에서 방진 장갑의 필라멘트 섬유가 검출되었다는 내용이 정확히 적혀 있어. 이 개자식이 이걸 고의로 누락시키고 하태신의 지장만 찍힌 리포트를 임의로 작성한 거야!"
"그게 바로 백야 재단이 사건을 조작한 방식입니다."
태신이 철제 테이블을 가볍게 두드렸다.
"이제 주도권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외부 권력이 아무리 거대하다 한들, 이 취조실 안에서는 오직 진실과 거짓의 법칙만이 존재하니까요. 강 검사, 이제 당신의 배후를 자백할 시간입니다."
판세는 완전히 뒤집혔다.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구걸하던 피의자는 이제 취조실의 준엄한 심판관이 되어 있었고, 기기묘묘한 사법 기소를 지휘하던 엘리트 검사는 비참한 피의자의 신세로 전락해 있었다.
하지만 그 통쾌한 역전의 순간도 잠시, 취조실 외벽 스피커에서 다시 한번 지지직거리는 노이즈와 함께 서은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저씨! 찾았어요! 결혼사진 뒤쪽 패널을 칼로 찢으니까 진짜로 가죽 장부가 나왔어요! 이 안에 백야 재단 이사장 이름이랑 고위 법조인들 뇌물 장부가 가득해요! 진짜 대박이에요!
서은하의 흥분한 목소리에 태신은 엷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안도는 찰나에 불과했다.
—……어? 잠깐만요. 이게 무슨 소리지?
서은하의 목소리가 순간적으로 차갑게 굳어졌다.
—아저씨, 이상해요. 도어락 작동음이 안 들렸는데…… 거실 중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요. 누군가 들어왔……
서은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수화기 너머로 둔탁한 마찰음과 함께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앗! 누구야! 이거 놔……!
"은하야! 서은하!"
태신이 급하게 소리쳤지만, 돌아오는 것은 거친 숨소리와 기계적인 마찰음뿐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가느다란 붉은색 레이저 포인터가 어두운 아파트 창문을 뚫고 서은하의 가슴팍에 정확히 조준되는 붉은 점의 잔상이, 태신의 머릿속 '기억 장부'에 경고등처럼 깜빡이기 시작했다. 백야 재단이 보낸 위조 저격 조직원들이 이미 은하의 숨통을 조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