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푸른빛의 디지털 신호가 일방향 유리 표면에 맺힌 물방울처럼 잘게 흩어졌다.

[위변조 교차 검증 코드: 0x8F993A - 가짜 CCTV 프레임 조작 감지 완료.] [원본 비디오 스트림 복구율 98.7%.]

강민우 검사가 짐짓 여유로운 표정으로 턱을 치켜올렸으나, 하태신의 시선은 이미 그의 머리칼 한 올 너머에 있는 거울 벽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가느다란 녹색 문자열이 태신의 비정상적으로 확장된 동공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박혔다.

두뇌 내부의 연산 장치, ‘기억 장부’가 요란한 마찰음을 내며 구동하기 시작했다.

태신은 가만히 코로 숨을 들이쉬었다. 취조실 내부의 공기는 탁하고 건조했다. 1초에 약 세 번꼴로 미세하게 흔들리는 천장의 환기구 날개. 그 틈새로 불어오는 바람의 세기는 초속 0.15미터에 불과했다. 일반적인 공조 장치의 작동 흐름이 아니었다. 외부에서 인위적으로 가압한 공기의 흐름, 그리고 그 공기 속에 실려 오는 극초단파(UHF)의 미세한 공진음이 귓가를 간지럽혔다.

‘서부경찰서 지하 배관을 타고 들어오는 무선 패킷.’

서은하가 보낸 신호의 경로가 머릿속 입체 격자망 위에 실시간으로 그려졌다. 그녀는 경찰서 내부의 전파 차단망을 우회하기 위해 환기구 내부의 금속 배관을 거대한 도파관(Waveguide)으로 활용하는 무모한 도박을 감행한 것이 틀림없었다.

태신은 눈을 깜빡이지 않은 채 거울 표면의 문자열을 뇌의 전두엽에 직접 새겨 넣기 시작했다. 0과 1로 이루어진 거대한 이진수의 파도가 가상 장부의 빈칸을 빼곡히 채워 나갔다.

동시에 뇌저부를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편두통이 엄습했다. 관자놀이 부근의 미세혈관들이 터질 듯 팽창하며 안구 뒷근육을 강하게 잡아당겼다. 기억 장부의 가동 대가. 뇌세포가 연소하는 지독한 타는 냄새가 후각을 자극했다.

머릿속 어두운 방, 그 한구석에 액자처럼 걸려 있던 기억 한 조각이 모서리부터 검게 그을리며 바스러지기 시작했다.

‘태신 씨, 이번 주말에는 교외로 나가요. 바람이 아주 좋을 것 같아.’

노란색 카디건을 입고 환하게 웃던 한연희의 얼굴. 그녀가 건네던 따뜻한 보리차 잔의 온기.

그 사소하고도 소중했던 기억의 질감이 순식간에 회색 재로 변해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다. 태신은 이를 악물었다. 입 안에서 비린 피맛이 감돌았으나 눈빛만큼은 더 서늘하게 빛났다. 아내의 미소를 잃어버린 대가로, 그는 진실에 도달할 수 있는 열쇠를 쥐었다.

은하가 송신한 암호화 데이터베이스의 복호화 작업이 뇌리에서 완료되었다.

가장 먼저 튀어나온 것은 백야 재단이 은밀히 관리하는 기밀 시설의 GPS 좌표였다.

북위 37도 34분, 경도 126도 58분.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위치한 백야 재단 산하 미래의학연구소 지하 3층.

태신의 입꼬리가 기괴할 정도로 고요하게 올라갔다. 연희가 생전에 남겨둔 결정적인 ‘심리 치료 장부’가 숨겨진 비밀 금고의 위치가, 정확히 백야 재단 내부 연구소 영역과 정밀하게 일치하고 있었다. 가장 안전하면서도 가장 위험한 곳. 백야 재단의 심장부에 아내는 자신의 목숨과 바꾼 증거를 묻어둔 것이었다.

"하 프로파일러. 내 말이 장난처럼 들립니까?"

강민우가 테이블을 짚은 손가락 끝에 힘을 주며 목소리를 낮췄다.

"당신이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야 이 방을 나갈 방법은 없습니다. CCTV에 찍힌 당신의 실루엣, 그리고 현장에서 발견된 흉기까지. 모든 것이 당신을 가리키고 있어요. 순순히 자백하고 감형을 유도하는 게 그 똑똑한 머리로 내릴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일 텐데?"

임철주 형사 역시 거친 숨을 내쉬며 태신을 압박했다.

"이 자식 이거, 완전히 미친놈이라니까. 검사님, 더 들을 것도 없습니다. 당장 기소장 작성하시죠. 내가 이 새끼 입에서 자백받아 내는 건 시간문제니까요."

태신은 천천히 시선을 돌려 임철주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에는 분노도, 두려움도 없었다. 오직 대상을 해부하려는 메스처럼 차가운 이성만이 번뜩였다.

"임 형사님."

태신의 목소리가 건조하게 내려앉았다.

"경찰서 내부의 보안망이 완벽하다고 믿습니까?"

"뭐? 이 새끼가 이제 와서 헛소리를……."

"이 방, 제3취조실의 환기구 직경은 250밀리미터입니다. 배관의 굴절 각도는 정확히 90도씩 세 번 꺾여 지하 보일러실로 연결되죠. 그리고 그 보일러실의 외부 환풍구는 서부경찰서 뒤편 골목의 사각지대와 맞닿아 있습니다."

태신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깊숙이 묻으며 두 손을 모아 깍지를 꼈다.

"방금 전, 그 사각지대에서 발송된 2.4기가헤르츠 대역의 와이파이 다이렉트 신호가 이 방의 환기구를 통해 들어왔습니다. 당신들이 그토록 자랑하는 전파 차단 장비는 오직 벽면과 문을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어서, 환기구 내부의 도파관 효과를 전혀 감쇄시키지 못하더군요."

강민우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가 들고 있던 만년필을 쥔 손가락끝이 하얗게 질려갔다.

"그게 무슨……."

"강 검사님께서 가져오신 그 '완벽한' CCTV 영상 말입니다."

태신이 가볍게 턱짓으로 일방향 유리를 가리켰다.

"프레임 레이트 29.97fps로 인코딩된 파일이더군요. 하지만 원본 소스의 타임코드와 대조해 본 결과, 23분 14초 지점에서 정확히 0.03초의 프레임 드롭이 발생했습니다. 인간의 눈으로는 인지할 수 없는 찰나의 순간이죠. 하지만 디지털 검증 코드 '0x8F993A'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내 실루엣을 억지로 끼워 넣기 위해 백그라운드 레이어를 합성한 흔적입니다."

"이, 이 자식이 지금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임철주가 주먹으로 테이블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쿵 하는 굉음과 함께 철제 테이블이 크게 흔들렸다. 하지만 태신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시선은 테이블 아래, 임철주의 무릎이 닿는 안쪽 모서리로 향했다.

"더 재미있는 걸 알려드릴까요?"

태신의 목소리에 짙은 조소가 묻어났다.

"이 취조실 테이블 아래에 붙어 있는 도청용 송신기의 일련번호를 알고 계십니까?"

강민우의 얼굴에서 핏기가 완전히 가셨다.

"하태신, 선을 넘지 마."

"일련번호 'ST-9941X'. 경찰청 공식 보급 장비가 아니더군요. 사설 보안업체에서 주로 사용하는 불법 감청 장비입니다. 이 방에서 오가는 모든 대화는 실시간으로 감시망을 벗어나 외부의 누군가에게 전송되고 있습니다. 강 검사님, 혹은 그 뒤에 계신 백야 재단의 고위 관계자분들께 말입니다."

태신은 상체를 천천히 앞으로 숙였다. 그의 얼굴이 강민우의 코앞까지 다가갔다.

"경찰서 내부에서 벌어지는 불법 도청, 그리고 검찰이 주도한 증거 조작. 이 두 가지만으로도 이번 기소는 법정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기각될 겁니다. 아니, 기각 수준이 아니겠군요. 언론에 이 일련번호와 위조 검증 코드가 흘러 들어간다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취조실 내부의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임철주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한 채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강민우와 태신을 번갈아 바라보았고, 강민우는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아낼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굳어 있었다.

완벽하게 통제된 밀실이라고 믿었던 곳이, 순식간에 자신들의 목을 죄는 단두대로 변해 있었다. 태신은 기소의 주도권을 쥔 검사와 베테랑 형사를 제 발밑에 두고, 보이지 않는 채찍을 휘두르고 있었다.

"너…… 아주 작정을 했구나."

강민우가 이빨 사이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중얼거렸다. 그의 눈빛에 가학적인 살기가 서서히 차올랐다.

"하지만 하태신, 네가 간과한 게 있어. 증거 조작이니 불법 도청이니 하는 건 결국 법정에서의 싸움이야. 그 전에 우리는 너를 영장 실질심사 단계에서 구속 수감시킬 수 있어. 구치소 독방에 처박힌 채로 네 그 똑똑한 주둥이를 얼마나 오래 놀릴 수 있는지 두고 볼까?"

임철주가 기다렸다는 듯 품에서 기소 소견서와 긴급체포 영장 신청서를 꺼내 들었다.

"검사님 말씀이 맞아. 여기서 아무리 떠들어봐야 넌 살인 피의자야. 이 영장에 도장만 찍히면 넌 오늘 밤으로 바로 유치장행이야. 거기서 무슨 수로 언론에 제보를 하고 해킹을 하겠다는 거지?"

임철주가 거친 손가락으로 볼펜을 딸깍거리며 서류 위에 서명하려 했다. 그의 눈에는 독기가 가득 차 있었다. 오직 태신을 파멸시키겠다는 일념 하나로 이성을 잃어버린 야수의 눈빛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쾅!*

태신이 오른손으로 철제 테이블을 강하게 내리쳤다. 날카롭고 묵직한 마찰음이 취조실 사방의 방음벽을 뚫고 지나갈 듯 울려 퍼졌다.

임철주의 손이 멈칫했다.

태신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키는 크지 않았으나,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위압감이 취조실 천장을 내리누르는 듯했다. 그의 눈동자는 칠흑 같은 심연처럼 어두웠고, 목소리는 얼음송곳보다 더 예리하게 날이 서 있었다.

"임철주 형사."

태신이 일방향 유리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선언했다.

"그리고 거울 뒤에서 숨죽이고 듣고 있는 서장님."

그의 시선이 정확히 유리의 특정 시야각을 뚫고 들어갔다. 거울 너머 관찰실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서부경찰서장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을 것이다.

"지금 즉시 담당 취조관을 교체해 주십시오."

"뭐, 뭐라고?!"

임철주가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이 미친 새끼가 누구 마음대로 교체를 요구해!"

"형사소송법 제200조의4, 그리고 피의자의 방어권 남용 및 가혹 수사 방지 규정에 의거합니다."

태신은 흔들림 없는 태도로 임철주의 서류를 가리켰다.

"증거 조작 혐의가 다분한 검사와 사설 도청 장비를 묵인한 담당 형사 밑에서는 더 이상 심문에 응하지 않겠습니다. 교체하지 않는다면, 방금 제 머릿속에 동기화된 백야 재단 내부 연구소의 기밀 데이터와 경찰 내부의 불법 도청 실태 보고서를 이 방이 열리는 즉시 외부 클라우드로 자동 유포하도록 시스템을 설정해 두었습니다."

태신이 주머니에서 가만히 손을 꺼내며 미소를 지었다.

"10분 드리죠. 취조관을 교체하든가, 아니면 나와 함께 이 경찰서 전체가 불타 없어지는 걸 구경하든가. 선택은 당신들의 몫입니다."

취조실의 붉은 경고등이 마치 카운트다운을 하듯 기괴하게 점멸하기 시작했다.

치지직,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벽면에 매립된 인터폰 스피커가 울렸다.

스피커 너머로 들려오는 것은 서부경찰서장의 거친 기침 소리였다. 유리창 너머 관찰실의 공기가 얼마나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지, 마이크를 타고 흐르는 불규칙한 소음들이 증명하고 있었다.

[……임 팀장. 일단 손 떼.]

"서장님! 이 새끼 말은 다 허풍입니다! 겁박에 놀아나시면 안 됩니다!"

임철주가 인터폰을 향해 머리를 치켜들며 사자후를 토했다. 목줄기에 굵은 핏대가 터질 듯이 솟아올랐다. 그의 거친 호흡이 좁은 방 안의 산소를 빠르게 잠식해 나갔다.

[손 떼라고 했어! 강 검사님도…… 일단 뒤로 물러나 주십시오. 이건 우리 서 내부의 문제입니다.]

수화기 너머 서장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태신이 던진 카드, 즉 '불법 도청'과 '증거 조작의 외부 유출'은 단순한 위협이 아니었다. 그것은 경찰 조직 전체의 목을 날려버릴 수 있는 정밀 타격 프로그램이었다.

강민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넥타이 매듭을 느슨하게 풀었다. 그의 이마에 흘러내린 땀방울이 형광등 불빛을 받아 차갑게 반짝였다. 미소를 잃어버린 그의 얼굴은 가혹한 현실을 마주한 패잔병의 그것과 닮아 가고 있었다.

태신은 그들의 붕괴를 관조하듯 바라보며 가만히 오른손 검지손가락을 움직였다.

*톡. 톡. 톡. 톡.*

그가 철제 테이블의 특정 지점을 가볍게, 네 번 두드렸다. 규칙적인 타격음이 테이블 철판의 분자 구조를 타고 아래로 흘러내렸다. 그 진동은 정확히 아래쪽에 부착되어 있던 불법 도청 제어 장치 'ST-9941X'의 마이크로 센서에 전달되었다.

특정 주파수의 물리적 타격. 그것은 서은하가 미리 심어둔 역공용 트리거(Trigger)였다.

삐- 하는 미세한 이음이 테이블 아래에서 발생했다.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강민우의 귀에는 사형 선고의 종소리처럼 들렸을 것이다.

"방금 송신기의 신호 채널을 역방향으로 개방했습니다."

태신의 목소리가 고요하게 방 안을 채웠다.

"이제 이 방에서 나오는 모든 대화는 서부경찰서 내부망이 아니라, 제가 지정한 외부의 다중 보안 서버로 실시간 스트리밍됩니다. 임 형사님이 서명을 강행하는 순간, 영장 작성 과정에서의 강압 수사 정황이 그대로 기록되어 송출될 겁니다."

"이, 개새끼가……!"

임철주가 이성을 잃고 태신의 멱살을 잡기 위해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그의 거구에서 나오는 묵직한 체중이 테이블을 압박했다.

하지만 태신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의 눈동자는 임철주의 어깨 근육의 수축 정도와 무게 중심의 이동 방향을 이미 계산하고 있었다. 태신이 고개를 아주 약간 왼쪽으로 비낀 순간, 임철주의 손끝은 허공을 가르며 테이블 모서리를 쓸었을 뿐이었다.

동시에, 태신의 관자놀이에 다시 한번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극통이 찾아왔다.

'기억 장부'의 추가 연산.

임철주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도청 장치의 역송출을 제어하기 위해 뇌세포가 또다시 가혹하게 연소했다.

머릿속 어둠 속에서, 또 하나의 서랍이 통째로 불타올랐다.

비가 내리던 어느 날 저녁, 아내 연희와 함께 우산을 쓰고 걷던 초여름의 밤거리. 그녀가 어깨가 젖어가는 자신을 보며 지어 보였던 특유의 걱정 어린 눈빛.

그 눈빛의 색채가 순식간에 탈색되어 백색의 무(無)로 돌아갔다.

아내의 얼굴을 구성하는 선들이 조금씩 흐려질 때마다, 태신의 가슴 속에서는 얼어붙은 분노가 칼날처럼 날카롭게 벼려졌다. 잃어버린 기억의 부피만큼, 진범을 향한 증오는 더 무겁고 치명적으로 변해 갔다. 감정을 잃어버린 그의 얼굴 위로, 오직 맹독 같은 안광만이 뿜어져 나왔다.

"남은 시간은 7분입니다."

태신이 냉정하게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임 형사님. 당신의 그 지독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경찰서 전체를 나락으로 떨어뜨릴 생각입니까? 아니면 서장님의 지시대로 얌전히 물러나겠습니까?"

강민우 검사가 이빨을 악물며 태신을 쏘아보았다.

"하태신. 네가 지금 이 밀실 안에서 승기를 잡았다고 착각하는 모양인데…… 법은 그렇게 단순하게 작동하지 않아. 네가 여기서 나가는 순간, 백야 재단이 너를 어떻게 찢어발길지 상상이나 가나?"

"그건 내가 이 방을 나간 뒤의 일입니다, 강 검사님."

태신이 나직하게 읊조렸다.

"그리고 적어도, 당신들이 설계한 이 조잡한 연극 무대 위에서 퇴장당할 일은 없을 겁니다."

취조실 문 손잡이가 철컥거리며 아래로 내려갔다.

무거운 철제 문이 천천히 열리며, 사방을 메우고 있던 긴장감 속으로 복도의 차가운 공기가 밀려 들어왔다. 대치하던 세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문틈으로 쏠렸다.

서부경찰서장이 직접 들어올 것이라는 예상과 달랐다.

문틈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구두 굽 소리는 가볍고 날카로웠다. 젖은 가죽 냄새와 함께, 검은색 레인코트를 입은 한 남자가 취조실 안으로 유유히 걸어 들어왔다. 그의 오른다리는 걸을 때마다 미세하게 절뚝거리고 있었다.

남자의 얼굴무늬를 확인하는 순간, 임철주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당신이 왜 여기에?"

새로 나타난 인물은 태신의 '기억 장부'에 기록되어 있던 인물이 아니었다. 남자는 코트 깃을 세운 채, 주머니에서 천천히 기소 취소 합의서와 새로운 신원 보증서를 꺼내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남자가 태신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을 때, 취조실 내부의 모든 기류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하 프로파일러님. 그날 밤의 잃어버린 4시간에 대한 진짜 기록을…… 저희가 찾았습니다."

남자의 목소리는 얼음물처럼 차가웠고, 그의 손가락 끝에는 아주 미세한 격자형 흉터가 새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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