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
날카로운 파열음이 서부경찰서 제3취조실의 무거운 공기를 갈랐다. 임철주가 품 안에서 꺼낸 현장 피팅 자국 사진 세 장이 철제 테이블 위로 거칠게 내던져졌다. 코팅된 인화지 모서리가 테이블 상판의 닳아빠진 페인트를 긁으며 미끄러지다 하태신의 손끝 바로 앞에서 멈춰 섰다.
"이래도 본인이 아니라고 우기시겠습니까?"
강민우 검사의 매끄러운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얇은 태블릿 화면 속에서는 가짜 CCTV 영상이 기괴하게 재생되고 있었고, 임철주가 내던진 사진 속에는 피비린내 나는 안방 바닥에 선명하게 찍힌 격자형 구두 굽 자국이 찍혀 있었다.
태신은 눈을 가볍게 내리깔았다. 테이블 상판에서 올라오는 서늘한 쇠 냄새가 콧속을 파고들었다. 조도가 낮은 형광등 불빛 아래, 확대 인화된 사진 속 격자 문양이 왜곡되어 보였다.
그는 손가락 끝으로 사진의 가장자리를 가만히 눌렀다. 감촉은 차가웠고, 지나치게 빳빳했다.
'현장 피팅 자국.'
아내가 쓰러져 있던 침대 오른쪽 바닥, 그곳에 남겨진 구두의 압흔이다. 태신은 평생의 기억을 단 1초의 오차도 없이 보존하는 과잉기억 증후군 환자였다. 비록 아내가 죽던 날 밤의 4시간은 안개처럼 지워졌을지언정, 수사 기록과 현장 감식 사진의 모든 기하학적 수치는 이미 머릿속에 완벽한 벡터값으로 저장되어 있었다.
태신의 동공이 미세하게 수축했다.
사진 속 격자형 긁힘의 깊이는 약 1.2밀리미터. 힘의 작용 방향은 좌측 상단에서 우측 하단으로 향하는 비대칭적 곡선이었다. 임철주는 이 자국이 태신이 평소 신던 맞춤 수제화의 굽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가짜였다.
인간의 보행 메커니즘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태신 자신의 몸무게는 74킬로그램, 척추 정렬 상태는 완벽히 대칭적이다. 만약 태신이 그 자리에서 아내를 내려다보며 서 있었다면, 구두 굽에 실리는 하중은 양측 뒤꿈치 중앙 수직선상에 분산되어야 했다.
그러나 사진 속 압흔은 명백히 오른쪽 뒤꿈치 외측에만 80퍼센트 이상의 하중이 집중되어 있었다. 마치 오른쪽 다리를 심하게 절뚝이는 거구의 남자가 체중을 지탱하기 위해 바닥을 짓누른 것처럼.
"수법이 조작되었군."
태신이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목소리에는 어떠한 감정의 동요도 없었다. 마치 남의 집 안방에 묻은 먼지를 논하듯 건조하고 냉정했다.
"조작이라니? 네놈 구두 굽이랑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은 무늬인데 무슨 개소리야!"
임철주가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상체를 앞으로 들이밀었다. 그의 목덜미에 굵은 핏대가 벌겋게 솟아올랐다. 가쁜 숨결을 뱉어낼 때마다 매캐한 담배 냄새가 태신의 얼굴로 쏟아졌다.
태신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뇌리 깊은 곳, 보이지 않는 전두엽의 회로가 격렬하게 돌아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머릿속 장부의 책장이 거친 바람에 흩날리듯 빠르게 넘어가며 최적의 반격 경로를 계산해 냈다.
자료 수집 완료. 상대의 호흡 변동률 분석 개시. 하지만 그 대가는 즉각적으로 찾아왔다.
그것은 머리뼈 안쪽을 달군 쇠송곳으로 사정없이 쑤셔 파는 듯한 극심한 두통이었다. 관자놀이 부근의 미세혈관들이 터져 나갈 것처럼 팽창했다.
'아.'
태신은 이를 악물었다. 신음조차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턱관절에 잔뜩 힘을 주었다. 이 통증의 의미를 그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뇌세포가 타들어 가는 소리. 진실에 다가서는 연산의 대가로 결제되는 소중한 기억의 연소 비용이었다.
눈앞이 하얗게 바래 가기 시작했다.
머릿속에서 어떠한 풍경이 강제로 인출되어 불길 속으로 던져졌다. 붉은 노을이 내려앉던 어느 가을날의 에버랜드. 코를 찌르던 달콤한 츄러스 냄새와 소란스러운 아이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그의 옆에서 환하게 웃고 있던 아내 연희의 모습.
"태신 씨, 저거 봐요. 회전목마 불 켜지니까 진짜 예쁘다."
연희가 그의 소매를 잡아끌며 환하게 웃었다. 가을바람에 흩날리던 그녀의 단발머리, 그의 손을 잡았던 연희의 손끝에서 느껴지던 기분 좋은 서늘함. 그녀의 입술 모양, 목소리의 주파수, 그날 그녀가 입었던 베이지색 트렌치코트의 감촉까지.
그 모든 것이 하얀 재가 되어 바람에 날아가 버렸다.
순식간이었다. 에버랜드의 붉은 노을은 시커먼 어둠 속으로 지워졌고, 연희의 목소리는 지직거리는 노이즈로 변해 소멸했다. 이제 그 기억이 존재했다는 사실만 어렴풋이 알 뿐, 연희의 표정도, 목소리도, 그날의 온도도 다시는 떠올릴 수 없게 되었다.
심장의 한구석이 도려내 진 것처럼 허전하고 시렸지만, 태신은 감정을 억눌렀다. 지금 슬퍼할 시간조차 사치였다. 뇌세포를 태워 얻어낸 진실의 조각이 장부의 빈칸을 채웠다.
'조작된 흔적의 범인은 임철주가 아니다. 그는 그저 던져진 뼈다귀를 물고 흔드는 사냥개에 불과해. 진짜 판을 짠 놈은 따로 있다.'
태신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강민우 검사에게로 향했다. 강민우는 지팡이에 몸을 기댄 채, 흥미롭다는 듯 태신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의 얇은 입술 끝이 비열하게 올라가 있었다.
태신은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들이쉬고, 내쉬고. 심박수 분당 62회. 지극히 안정적인 수치였다.
그는 입을 닫았다. 그리고 그대로 임철주의 두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1초. 2초. 3초.
취조실 안의 모든 소음이 일시에 소거된 것처럼 정적이 흘렀다. 오직 천장에 매달린 형광등의 미세한 웅웅거림만이 이 공간이 멈추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태신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눈발 하나 흔들리지 않는 깊은 빙하처럼, 오직 서늘한 안광만을 형사에게 쏘아 보낼 뿐이었다.
임철주는 처음에는 기세등등하게 태신의 시선을 받아쳤다.
"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냐? 꼼짝없이 걸려드니까 뇌가 정지했어?"
하지만 태신의 침묵이 30초를 넘어가자, 임철주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태신의 시선에는 분노도, 억울함도, 두려움도 없었다. 그것은 인간을 바라보는 눈빛이 아니었다. 마치 해부대 위에 놓인 시체의 단면을 무감각하게 관찰하는 병리학자의 눈빛에 가까웠다.
1분 경과.
임철주의 호흡 주기가 빨라졌다. [기억 장부 연산: 임철주의 호흡 주파수 0.8Hz에서 1.2Hz로 상승. 목덜미의 땀샘 확장. 자율신경계의 가벼운 공황 상태 돌입.]
태신은 여전히 단 한 마디도 내뱉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아주 깊숙이 임철주의 내면을 파헤치듯 바라보았다.
침묵은 때로 그 어떤 폭언보다 잔혹한 무기가 된다. 스스로 지은 죄가 있는 자, 혹은 자신이 쥔 패가 가짜라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인지하고 있는 자에게 침묵은 거대한 심연의 거울과 같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피의자는 그 거울 속에서 자신의 파멸을 스스로 상상해 내고 만다.
1분 30초 경과.
임철주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형광등 불빛을 받아 번들거리는 땀방울이 그의 깊은 주름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는 침을 크게 삼켰다. 울대를 타고 내려가는 침 소리가 취조실 안에 유난히 크게 울렸다.
"이 새끼가... 왜 사람을 그렇게 쳐다봐?"
임철주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애써 거친 사투리를 섞어가며 위악을 떨었지만, 이미 주도권은 태신의 손아귀로 넘어간 뒤였다.
옆에 서 있던 강민우 검사의 미소도 서서히 굳어갔다. 지팡이를 짚고 있던 그의 손가락 끝이 하얗게 질려가는 것이 태신의 시야에 들어왔다.
2분 경과.
"말을 해, 하태신! 이 사진 속 구두 굽, 네 거 맞지? 네가 그날 밤 연희 씨를..."
임철주가 스스로의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고 먼저 질문을 던졌다. 유도 질문도 아니었고, 기세등등한 취조도 아니었다. 그것은 제발 그렇다고 대답해 달라며 애걸하는 듯한, 나약한 자의 비명에 가까웠다.
태신은 드디어 입술을 열었다.
"형사님."
낮고 가라앉은 목소리가 밀실을 지배했다.
"이 사진을 감식반에서 넘겨받았을 때,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하셨습니까?"
"뭐, 뭐가 이상해! 감식반 공식 보고서에 첨부된 사진이야!"
"사진의 메타데이터를 확인해 보셨어야죠."
태신이 상체를 서서히 앞으로 숙였다. 그의 그림자가 테이블 위에 드리워지며 임철주를 완전히 덮었다.
"이 사진이 촬영된 시간은 아내의 시신이 발견되기 정확히 2시간 전입니다. 그리고 렌즈의 왜곡률을 분석해 보면, 현장에서 촬영된 것이 아니라 스튜디오에서 모형 바닥을 두고 인위적으로 연출된 사진이라는 것이 증명되죠. 오른쪽 다리를 저는 거구의 남자가, 제 구두와 동일한 아웃솔을 장착하고 체중을 실어 누른 흔적입니다."
임철주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격렬하게 요동쳤다.
"그, 그게 무슨..."
"형사님은 지금 이 취조실 너머에서 누군가가 던져주는 가짜 뼈다귀를 물고 짖는 사냥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계신 겁니다. 그것도 아주 멍청하게 말입니다."
"이 개새끼가!"
임철주가 마침내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의자가 뒤로 밀려나며 바닥을 긁는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그는 태신의 멱살을 잡으려 손을 뻗었으나, 태신의 서늘한 눈빛과 마주하는 순간 허공에서 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태신의 눈동자는 흔들림이 없었다. 마치 폭풍의 눈 한가운데 서 있는 것처럼, 기괴할 정도로 고요했다.
임철주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려 셔츠를 축축하게 적셨다. 베테랑 강력계 형사로서 수많은 살인범을 상대해 왔지만, 이런 종류의 압박감은 처음이었다. 피의자가 자신을 취조하고 있었다. 피의자가 자신의 영혼을 발가벗겨 현미경 아래 올려놓고 관찰하는 듯한 굴욕감과 공포가 그를 잠식했다.
"자, 장난치지 마... 감식반 보고서가 조작됐을 리가 없어. 검사님이 직접..."
임철주가 떨리는 눈으로 강민우를 돌아보았다.
강민우는 더 이상 웃고 있지 않았다. 그의 차가운 눈동자가 태신을 매섭게 쏘아보고 있었다.
"하 프로파일러, 제법 훌륭한 소설이군요."
강민우가 천천히 걸어와 테이블을 두 손으로 짚었다.
"하지만 법정은 그런 심리적 가설 따위는 취급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객관적인 물증이 있고, 방금 보여드린 CCTV 영상 역시 완벽한 감정을 거친 진짜입니다. 당신이 아무리 혓바닥을 굴려봐야, 기소장을 막을 수는 없단 말입니다."
"진짜 물증이라..."
태신이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였다. 그의 시선은 강민우의 얼굴이 아닌, 철제 테이블 너머의 일방향 거울을 향해 있었다.
취조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거울.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만 안에서는 자신의 모습만 비쳐 보이는 특수 유리였다.
태신은 거울 표면에 맺힌 형광등 불빛의 미세한 굴절을 응시했다.
그의 입가에 아주 희미한 가시 돋친 미소가 걸렸다.
'서은하.'
그녀가 드디어 움직였다.
거울 표면의 아주 미세한 틈새, 일반인의 눈으로는 절대 포착할 수 없는 유리 입자의 진동 사이로 푸른빛의 아주 작은 디지털 신호가 투사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취조실 내부에 불법으로 설치된 도청 제어 장치의 신호를 역추적해 들어온 은하의 해킹 코드였다.
일방향 유리의 매끄러운 표면 위로, 마치 먼지처럼 미세하게 얽힌 문자 열들이 반사되어 흘러내렸다.
[위변조 교차 검증 코드: 0x8F993A - 가짜 CCTV 프레임 조작 감지 완료.] [원본 비디오 스트림 복구율 98.7%.]
태신은 거울에 반사되는 그 수치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머릿속 장부에 기록해 나갔다.
강민우가 설계한 완벽한 사법 함정의 균열이, 마침내 이 어두운 밀실 안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