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색 경고 창이 망막을 찢을 듯이 번쩍였다.
[위험: 외부 유해 물질 주입 시도 감지] [예상 오염원: 낙산균(Clostridium butyricum) 및 대장균군 분사] [목표: 동동옥 주방 내 보관 식자재 및 조리 도구 전체] [페널티 가동률: 미각 마비 12%]
진석은 멀어지는 벤츠 S클래스의 후미등을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혀끝이 살짝 아린 느낌이 들었다. 시스템의 가이드를 사용할 때마다 찾아오는 미각 마비의 잔해였다. 그러나 지금은 혀의 감각을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진석아, 왜 그러냐? 표정이 안 좋다."
민동현이 진석의 어깨를 밀치듯 잡았다. 투박하고 단단한 손길이었다. 진석은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오랜 세월 주방 보조로 살며 몸에 밴 방어기제였다. 하지만 이내 눈앞의 숫자들을 보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배선우 상무가 다녀갔습니다."
진석의 말에 한연우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녀는 테이블 위에 올려둔 아버지가 남긴 누런 종이, '미완성 레시피 법률 자문서'를 가볍게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철거가 실패했으니 다음 카드를 쓰겠네요. 그 인간 패턴은 늘 똑같아요. 법적인 꼬투리를 잡거나, 아니면 만들거나."
"만들 생각인 것 같습니다."
진석은 주방 안쪽을 응시했다.
"오늘 밤 안으로 주방에 오염 물질을 투척할 겁니다. 낙산균과 대장균군입니다. 내일 아침 식약처와 검찰에 바로 찌르기 위해서겠죠."
민동현의 얼굴이 붉게 락스 칠을 한 것처럼 달아올랐다.
"이 상것들이 감히 주방에 장난질을 쳐? 당장 몽둥이라도 들고 밤을 새워야겠구나!"
"아닙니다, 어르신. 몸으로 막으면 저들은 폭행 혐의까지 씌울 겁니다. 법과 데이터로 막아야 합니다."
진석은 품 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특허 법률 사무소와 연계된 정밀 과학 장비 쇼핑몰 앱을 켰다.
"연우 씨, 지금 바로 법원에 제출할 수 있는 공인 위생 측정 장비가 필요합니다. 실시간으로 서버에 데이터가 로그 전송되는 방식으로요."
한연우는 진석의 의도를 단번에 파악했다. 그녀의 입꼬리가 미미하게 올라갔다.
"사물인터넷(IoT) 연동형 ATP(아데노신삼인산) 오염도 측정기 말씀이시군요. 식약처 지정 정밀 분석 장비와 동일한 기종으로 즉시 수배하겠습니다. 제 법률 대리인 자격으로 긴급 렌탈을 신청하면 세 시간 안에 퀵으로 받아볼 수 있어요."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주방 모든 구역에 24시간 녹화 및 클라우드 실시간 백업이 되는 열화상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겠습니다."
진석은 곧바로 행동에 나섰다.
세 시간 뒤, 자정을 넘긴 시각. 동동옥 주방에는 미세한 먼지조차 허용하지 않는 엄격한 방어선이 구축되었다.
진석은 시스템의 분자 스캔 기능을 활성화했다.
[시스템 분석 정보: 동동옥 주방 위생 상태] | 항목 | 현재 수치 | 식약처 기준치 | 판정 | | :--- | :--- | :--- | :--- | | 일반세균수 | 12 CFU/g 이하 | 100,000 CFU/g 이하 | 극도로 안전 | | 대장균군 | 음성 (Negative) | 음성 (Negative) | 적합 | | 황색포도상구균 | 음성 (Negative) | 음성 (Negative) | 적합 | | 공기 중 낙산균 | 0.00% | 0.05% 이하 | 완벽 |
"좋습니다. 준비는 끝났습니다."
진석은 주방 문을 굳게 잠그고, 한연우가 가져온 공인 측정기의 전원을 켰다. 측정기는 10분 간격으로 주방 내부의 세균 및 유기물 오염도를 측정해 법무법인과 식약처 공인 인증 서버로 전송하기 시작했다.
새벽 3시 15분.
주방 뒷문 틈새로 미세한 금속성 소음이 들렸다. 진석은 한연우, 민동현과 함께 홀의 어둠 속에서 숨을 죽였다.
스르륵.
뒷문의 환기구 틈새로 얇은 플라스틱 튜브가 밀려 들어왔다. 이어 분무기 가동음과 함께 미세한 액체 안개가 주방 바닥을 향해 분사되었다. 배선우가 보낸 용역의 소행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완벽하게 흔적을 지웠다고 생각하겠지만, 열화상 카메라는 그들의 침입 경로와 액체 분사 모습을 분 단위로 기록하고 있었다.
동시에 ATP 측정기의 수치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위잉. 위잉.
[실시간 경보: 특정 구역 유기물 수치 급증] [오염도: 4,500 RLU (식약처 기준치 400 RLU 초과)]
진석은 침착하게 스마트폰 화면을 캡처했다. 화면에는 오염 물질이 분사된 시각과, 그 즉시 법무법인 서버로 전송된 데이터 로그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증거 확보되었습니다."
진석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한연우는 이미 태블릿 PC를 켜고 공문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주거침입, 재물손괴, 그리고 식품위생법 위반 교사 혐의까지 묶어서 즉시 관할 경찰서와 식약처 행정조사과에 전자 접수하겠습니다. 오염 물질의 성분 분석 의뢰서도 같이 첨부하죠."
민동현이 혀를 내둘렀다.
"참나, 세상 참 무섭게 돌아가는구나. 도둑놈들이 들어와서 똥물을 뿌리는데, 우리는 손가락 하나 안 대고 컴퓨터로 다 잡아내다니."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진석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이제 우리가 칼을 쥘 차례입니다."
진석은 한연우가 가져온 아버지가 남긴 '미완성 레시피 법률 자문서'를 테이블 위에 펼쳤다. 누렇게 빛바랜 종이 위에는 손글씨로 적힌 화학식과 추출 공정 프로세스가 빼곡했다.
진석은 시스템의 스캔 기능을 자문서 위에 얹었다.
[시스템 기능 작동: 고분자 수식 배열 복원 및 대조] [대상: 한태수(한연우 셰프 부친)의 미완성 레시피 자문서] [분석 진행률: 100%]
[특허 대조 분석 결과] | 항목 | 대성 F&B 특허 제049281호 | 한태수 선행 기술 문서 | 일치율 | | :--- | :--- | :--- | :--- | | 미생물 균주 | Bacillus subtilis DS-9 | Bacillus subtilis HT-1 | 99.4% | | 단백질 분해 온도 | 55℃ ~ 60℃ | 54℃ ~ 58℃ | 98.9% | | 아미노산 유리율 | 42.1% | 42.3% | 99.8% | | 최종 결합 분자식 | C12H22O11 (유사 배합) | C12H22O11 (동일 배합) | 100.0% |
[판정: 대성 F&B의 특허 제049281호는 한태수의 선행 기술을 무단 도용하여 미세 수치만 조정한 '위장 특허'임이 확실함. 법적 선행 기술 불특허 사유에 해당.]
진석은 데이터 화면을 한연우에게 보여주었다.
"연우 씨, 아버님이 설계하신 이 분배 공정은 단순한 레시피가 아닙니다. 대성 F&B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모든 프리미엄 소스의 핵심 원천 기술입니다. 대성은 이 기술을 자신들이 독점 출원했다고 속이고 업계를 지배해 왔습니다."
한연우의 손끝이 떨렸다. 슬픔 때문이 아니었다. 억눌려 있던 분노와, 마침내 찾아낸 진실에 대한 전율 때문이었다.
"이 수식……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골방에서 계산기 두드리며 맞추던 그 배열이 맞아요. 대성이 이걸 훔쳐서 자기들 이름으로 등록해 놓은 거였군요."
"예. 그리고 제가 가스라이팅을 당하며 최도현의 대역으로 일할 때, 최도현이 사용하던 모든 베이스 소스 역시 이 수식을 기반으로 제조되었습니다. 즉, 대성 F&B의 지식재산권 자체가 거대한 사기극 위에 서 있는 겁니다."
진석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여기에 추가할 카드가 하나 더 있습니다. 1화에서 제가 최도현의 플래그십 매장을 나왔을 때, 그곳 주방의 위생 상태를 시스템으로 백업해 둔 데이터가 있습니다."
진석은 허공에 손을 뻗어 저장된 과거 스캔 데이터를 불러왔다.
[과거 스캔 데이터 출력: 최도현 플래그십 매장] - 관측 일시: DAY 3 - 오염원: 낙산균 오염도 78% (유통기한 임박 식재료 무단 사용) - 칼 및 도마 세균 수치: 8,400 RLU (기준치 20배 초과) - 증거 보존 상태: 식약처 전송용 암호화 해시값 매칭 완료 (위변조 불가능)
"그들은 우리에게 낙산균을 뿌려 위생 조작을 하려 했지만, 진짜 낙산균 오염 수치를 숨기고 있는 건 최도현의 플래그십 매장입니다. 이 데이터를 대성의 위생 조작 공작 증거와 함께 식약처에 실시간으로 제보하겠습니다."
한연우는 서류 가방에서 정식 변호사 직인이 찍힌 소송장을 꺼냈다. 그녀의 목소리는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더 망설일 이유가 없겠네요. 대성 F&B의 특허 제049281호에 대한 '특허 무효 심판 청구' 및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서'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기습 접수하겠습니다. 증거 자료로 아버님의 원본 자문서와 진석 씨가 복원한 이 분자 배열 대조표를 전면에 내세우겠어요."
그녀는 안경을 고쳐 쓰며 차갑게 덧붙였다.
"법적으로 특허 무효 심판이 청구되고 가처분이 인용되는 순간, 대성 F&B가 자랑하던 독점 소스를 사용한 모든 가맹점과 제품은 즉시 판매 중단 위기에 처합니다. 그들의 무형 자산 가치는 하루아침에 휴지조각이 될 거예요."
"부탁드립니다. 저는 주방을 완벽한 무균 상태로 복구하고 손님들을 맞이하겠습니다."
진석의 선언에 민동현이 호탕하게 웃으며 소매를 걷어붙였다.
"좋다! 아주 속이 다 시원하구나. 내 평생 대성 놈들이 법을 무기로 장사꾼들 피를 말리는 것만 봤는데, 이렇게 법으로 목덜미를 뜯기는 꼴을 보게 될 줄이야!"
날이 밝았다.
오전 9시 정각, 서울중앙지법 특허법원에 대성 F&B를 상대로 한 특허 무효 소송과 가처분 신청이 정식으로 접수되었다. 접수와 동시에 한연우는 식약처에 최도현 플래그십 매장의 위생 불량 증거 데이터와 어젯밤 동동옥에 침입한 용역의 오염 물질 분사 시도 영상을 전송했다.
사법적 역공은 즉각적인 효과를 발휘했다.
접수 세 시간 만에, 식약처 위생점검반이 서울 강남의 최도현 플래그십 레스토랑에 들이닥쳤다. 진석이 제공한 정밀 위치와 오염 수치 데이터는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식약처 조사관들은 주방 구석의 은밀한 식자재 창고에서 낙산균에 오염된 유통기한 경과 소스를 무더기로 적발해 냈다.
"이게 무슨 소리야! 당장 나가! 내가 누군지 알고 이래!"
최도현이 점검반원들에게 고함을 치며 발악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언론사 카메라에 포착되었다.
[속보: 대성 F&B 스타 셰프 최도현 매장, 유통기한 위반 및 심각한 낙산균 오염 적발... 영업정지 15일 처분]
인터넷 뉴스 포털은 순식간에 최도현의 위생 불량 기사로 도배되었다. 대성 F&B의 주가는 장 개시와 동시에 급락하기 시작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한연우가 제기한 특허 무효 가처분 신청 소식이 법조계와 주식 시장에 퍼지자, 대성의 무형 자산 가치에 의문을 품은 기관 투자자들이 일제히 매도 주문을 쏟아냈다.
"진석 씨, 가처분 신청이 정식으로 수리되었습니다."
동동옥 주방에서 전을 부치던 진석에게 한연우가 태블릿 화면을 보여주며 말했다. 화면에는 대성 F&B의 주가가 전일 대비 14.8% 폭락한 파란색 그래프가 그려져 있었다.
"법원에서 대성 F&B 측에 48시간 이내에 선행 기술 도용 혐의에 대한 소명 자료를 제출하라고 명령했습니다. 만약 제대로 소명하지 못하면 해당 특허 소스의 제조 및 판매 금지 가처분이 임시 인용됩니다."
진석은 뒤집개로 전을 정갈하게 뒤집었다.
"배선우 상무가 아주 바빠지겠군요."
"그 인간, 지금쯤 사무실에서 악을 쓰고 있을 겁니다. 자신들이 빼앗은 기술이 진짜 주인을 찾아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말이죠."
민동현이 갓 구워진 전을 한 입 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맛이 아주 기가 막힌다. 진석아, 네가 간을 기가 막히게 맞추는구나."
진석은 엷은 미소를 지었지만, 속으로는 혀를 굴려 보았다. 짠맛과 단맛의 경계가 이전보다 조금 더 무뎌진 느낌이었다.
[시스템 상태 알림] [미각 마비율: 12% 유지 중] [감정 동조 포인트를 획득하여 미각을 환전하십시오.]
아직 미각 마비 페널티는 풀리지 않았다. 완벽한 회복을 위해서는 더 많은 손님에게 감동을 주고 포인트를 얻어야 했다. 그리고 배선우와의 싸움은 이제 막 서막을 올렸을 뿐이었다.
바로 그때, 한연우의 스마트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화면에는 '대성 F&B 법무팀'이라는 발신인이 떠 있었다.
한연우는 전화를 받지 않고 거절 버튼을 눌렀다.
"합의를 제안하려는 모양이네요. 하지만 어림없습니다. 우리는 끝까지 갑니다."
주방 안의 열기가 식어갈 무렵, 가게 문이 거칠게 열리며 낯선 남자가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두꺼운 봉투가 들려 있었다.
"강진석 씨 계십니까?"
진석이 앞으로 나섰다.
"제가 강진석입니다."
"대성 F&B 법률대리인 측에서 발송한 긴급 송달 문서입니다. 수령 확인 서명 부탁드립니다."
남자가 건넨 봉투를 뜯자, 그 안에는 두꺼운 서류 뭉치와 함께 붉은색 도장이 선명하게 찍힌 최고장이 들어 있었다.
진석은 차분하게 서류의 첫 페이지를 읽어 내려갔다. 그러나 내용을 확인한 진석의 미간이 미세하게 좁아졌다.
동시에 한연우의 태블릿 화면에 긴급 속보 알림이 팝업되었다.
[단독] 대성 F&B 산하 글로벌 푸드 웹진 '미식의 세계' 긴급 보도. "강진석 레시피, 인체 유해 화학 물질 오염 포착! 식약처 전면 즉각 조사 착수 예정."
한연우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이게... 무슨..."
허위 기사였다. 대성 F&B가 소유한 대형 수입 언론 웹진의 헤드라인에, 강진석의 이름과 함께 유해 물질 오염이라는 가짜 뉴스가 일제히 인쇄되어 인터넷 가판대와 포털 메인에 걸리기 시작한 것이다.
진석의 눈앞에 다시 한번 붉은색 경고 창이 점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