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쩍, 하는 비명과 함께 목조 미닫이문의 하단부가 갈라졌다.

유리창 사방으로 가느다란 실금이 번지며 빗물이 스며들었다. 젖은 가죽 장갑을 낀 거친 손이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잠금고리를 난폭하게 젖혔다. 쾅 하고 문이 열리며 들이친 것은 비릿한 밤바다 냄새가 섞인 찬 바람과 장정 대여섯 명의 육중한 실루엣이었다.

"민동현이! 법원 특별 처분 집행이다. 좋은 말로 할 때 비켜라."

가장 앞줄에 선 사내가 붉은 직인이 찍힌 서류 봉투를 진석의 코앞에 들이밀었다. 사내의 가슴팍에 달린 명찰에는 '대성 F&B 자산관리팀 팀장 조상필'이라는 글자가 박혀 있었다. 그의 뒤로는 쇠지렛대와 해머를 든 인부들이 어깨를 들썩이며 주방 내부를 훑었다.

진석은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렌즈를 조상필의 얼굴에 정확히 맞추었다. 초점이 잡히며 붉은색 녹화 표시가 깜빡였다.

"촬영 중입니다. 계속 말씀하십시오."

"이새끼가 눈알을 어디다 대고……."

조상필의 오른팔이 올라가려던 찰나, 진석의 뒤쪽 어둠 속에서 구두 굽 소리가 낮게 울렸다. 가죽 가방을 어깨에 멘 한연우 변호사가 태블릿 PC를 켠 채 걸어 나왔다. 그녀의 시선은 조상필의 손에 들린 서류 봉투에 고정되어 있었다.

"형법 제319조 주거침입죄, 그리고 다중의 위력을 보인 경우에 해당하는 제320조 특수주거침입죄. 현재 야간 시간대임을 감안하면 소송 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까지 적용됩니다. 조상필 팀장님, 그 손에 든 문서의 법적 효력은 오늘 오후 4시부로 상실되었습니다."

한연우가 태블릿 화면을 돌려 보였다. 화면에는 대법원 나의 사건 검색 페이지가 선명하게 떠 있었다.

[사건번호: 202X카합10942] - 신청인: 민동현 (동현옥) - 피신청인: 대성 F&B 주식회사 - 결정사항: 부동산 명도 단행 가처분에 대한 집행정지 신청 기용 (송달 완료: 16시 12분)

"불법 점유 이전 금지 가처분 이의 신청서가 정식 송달되었습니다. 집행관을 동반하지 않은 자산관리팀의 독자적인 철거 행위는 법원의 명령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불법 자력구제에 해당합니다. 현 시간부로 귀하들이 이 문턱을 넘는 순간, 단순 주거침입이 아닌 특수손괴 및 업무방해 공동정범으로 현행범 체포 대상입니다."

한연우의 목소리에는 높낮이가 없었다. 오직 확정된 판례와 법 조항만을 나열하는 기계적인 평조였다.

조상필의 눈꺼풀이 잘게 떨렸다. 그의 시선이 진석의 스마트폰 카메라와 한연우의 태블릿을 번갈아 오갔다. 뒤에 선 인부들이 쇠지렛대를 슬그머니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법원 서류가 그렇게 쉽게 뒤집히는 줄 알아? 배 상무님이 직접 서명한 양도 서류야!"

조상필이 소리를 지르며 가방에서 또 다른 서류 뭉치를 꺼내 흔들었다. 대성 F&B의 내부 결재 직인이 선명한 대외비 분석 서류들이었다.

그 순간, 진석의 시야에 푸른색 시스템 인터페이스가 강렬하게 점멸했다.

[시스템 가이드 활성화] - 대상: 조상필이 소지한 대성 F&B 내부 대외비 폴더 - 스캔 범위: 분자 구조 및 텍스트 투과 분석 - 마비율 페널티 누적 위험도: 12% -> 15% (경고: 실제 미각 신경의 임시 마비 영역이 확장됩니다.)

진석은 턱을 굳게 다물었다. 혀끝이 차갑게 식어가는 감각이 느껴졌다. 미각을 잃어가는 공포가 척수를 타고 올라왔지만, 눈앞의 적들을 합법적으로 짓밟을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그는 스캔을 강행했다.

망막 위에 조상필이 들고 있는 서류의 내용이 활자로 재구성되어 투명하게 떠올랐다.

| 분류 | 세부 항목 | 분석 데이터 | | :--- | :--- | :--- | | 문서명 | 수입산 대체 감미료 공급 계약서 초안 (대외비) | 배선우 상무 친필 서명 포함 | | 성분명 | Saccharin-derived Sodium 3-oxo... (변형 사카린 유도체) | - | | 위험도 | 화학적 불순물 잔류율 4.2% (발암 위험률 42% 초과) | 식약처 수입 금지 품목 지정 기준 부합 | | 용도 | 대성 F&B 가맹점 전용 '도파민 결합 소스' 단가 절감용 | 기존 천연 매실 발효액 대체 목적 |

'이것이었군.'

배선우가 뒤에서 준비하던 거대한 식자재 카르텔의 썩은 냄새가 진석의 뇌리에 수치로 박혔다. 대성 F&B가 비용을 아끼기 위해 수입 금지 대상인 유해 감미료를 우회 수입하여 가맹점 소스에 배합하려던 계약서 초안이었다.

진석은 시선을 조금 더 옆으로 돌렸다. 조상필의 가방 틈새로 삐져나온 또 다른 보고서가 스캔 영역에 잡혔다. 그것은 최도현의 플래그십 매장 '도현가'의 주간 위생 점검 리포트였다.

[복선 데이터 시각화: 대성 F&B '도현가' 위생 실태] - 장소: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14길 '도현가' 메인 주방 - 오염 물질: Clostridium butyricum (낙산균) 오염도 78% 초과 - 조리 도구 표면 세균 수치: 8,400 RLU (기준치 500 RLU의 16.8배) - 특이사항: 유통기한이 14일 경과한 수입산 냉동 육류 육즙 유출로 인한 2차 교차 오염 발생.

진석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1화에서 최도현의 매장을 스캔했을 때 감지되었던 위생 불합격의 징후가 이미 임계점을 넘어 썩어 문드러지고 있었다.

진석이 스마트폰을 내리며 조상필을 똑바로 응시했다.

"조 팀장님. 지금 동현옥을 부수러 올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만."

"뭐라 마? 이 새끼가 미쳤나……."

"오늘 오후 2시, 대성 F&B의 스타 셰프 최도현이 운영하는 '도현가' 메인 주방에 대한 정밀 위생 불시 점검 신고가 식약처에 접수되었습니다. 신고서에 첨부된 데이터는 단순한 고발장이 아닙니다. 메인 주방 도마와 칼에서 검출된 낙산균 오염도 8,400 RLU의 정밀 시험 성적서죠."

조상필의 안색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네가 그걸 어떻게……!"

"식품위생법 제47조 및 동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기준치 15배를 초과한 세균 검출과 유통기한 경과 식재료의 교차 오염은 즉각적인 영업정지 15일 및 형사 고발 대상입니다. 지금쯤 식약처 특별사법경찰관들이 테헤란로 매장에 들이닥쳤을 시간일 텐데요."

지이잉.

진석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조상필의 바지 주머니에서 요란한 진동음이 울렸다. 조상필은 다급하게 전화를 꺼내 수신 화면을 확인했다. 화면에는 '배선우 상무'라는 네 글자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예, 상무님! 예? 지금 식약처에서…… 예, 예! 알겠습니다!"

조상필의 목소리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그는 전화를 끊더니 귀신이라도 본 듯한 눈으로 진석을 노려보았다.

"너, 이 개새끼…… 대체 무슨 짓을 꾸민 거야?"

"꾸민 것이 아니라, 법과 규정을 지키지 않은 대가를 치르는 것뿐입니다."

진석이 차분하게 대답했다.

"주거침입 및 재물손괴 미수 혐의로 경찰에 접수된 신고 번호는 112-9842입니다. 5분 뒤면 순찰차가 도착합니다. 불법 철거를 계속 진행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본사 스타 셰프의 영업정지 처분 소명 자료를 만들러 가시겠습니까?"

한연우가 태블릿을 들어 올리며 쐐기를 박았다.

"현장 촬영본은 이메일로 대성 F&B 법무팀에 동시 전송되었습니다. 소송 비용 청구는 본사 지주회사로 직접 송달하겠습니다."

조상필은 이빨을 빠드득 갈았다. 그의 손에 들린 서류 봉투가 무참하게 구겨졌다.

"철수해!"

그의 거친 명령에 인부들이 서둘러 연장을 챙겨 밖으로 빠져나갔다. 빗속으로 도망치듯 달려가는 그들의 뒷모습 위로 붉은색 테일램프 불빛이 어지럽게 흔들렸다.

철거반의 차량들이 굉음을 내며 골목을 빠져나가자, 숨을 죽이고 상황을 지켜보던 동현옥 안팎의 공기가 일순간에 가라앉았다.

가게 구석에서 숨죽이고 있던 동네 단골손님들이 하나둘 문가로 다가왔다.

"아이고, 민 셰프님! 정말 다행입니다!"

"이놈의 대기업 놈들, 천벌을 받을 줄 알았어!"

사람들의 안도 섞인 함성과 민동현의 깊은 한숨이 좁은 식당 내부를 가득 채웠다. 민동현은 주방 조리대에 손을 얹은 채, 떨리는 숨을 몰아쉬며 진석과 연우를 바라보았다. 그의 붉어진 눈시울에는 단순한 안도를 넘어선 깊은 탄복이 서려 있었다.

"진석아…… 연우 변호사님…… 고맙다. 정말 고맙다. 내 평생 이 가게를 빼앗기는 줄 알고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어."

그 순간, 진석의 안구 전면에 황홀한 금빛의 알림창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시스템 메시지] - 감정 동조 조건 충족: 다수의 고객 및 동맹(민동현)의 극적인 안도와 신뢰 형성 - 도파민(Dopamine) 방출 수치: 94% 급증 - 옥시토신(Oxytocin) 동조 수치: 88% 달성 - 획득한 감정 동조 포인트: +3,500 Point

[미각 환전 시스템 가동] - 보유 포인트를 소모하여 마비된 실제 미각을 환전합니다. - 소모 포인트: 3,000 Point - 현재 실제 미각 복구율: 15% -> 45% (마비율 30% 정상 조율 완료)

화아악, 하는 뜨거운 열기가 진석의 혀뿌리에서부터 목구멍까지 빠르게 번져 나갔다.

마치 마취가 풀리듯, 굳어 있던 설유두가 하나씩 깨어나며 공기 중의 미세한 염분과 빗물의 비린 맛, 그리고 주방 구석에 끓고 있던 육수의 깊은 감칠맛이 파도처럼 뇌세포를 때렸다.

완벽한 감각의 회복이었다. 비록 100%는 아니었지만, 요리의 미세한 간을 조율하기에는 충분한 수준이었다.

"진석아, 너 얼굴색이……."

민동현이 걱정스러운 듯 진석의 어깨를 짚었다.

"괜찮습니다, 어르신. 육수 간이 아주 잘 맞았네요. 파 맛이 조금 더 우러나면 완벽하겠습니다."

진석이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이전에 없던 확신과 활기가 실려 있었다.

한연우는 가방에서 낡은 종이 한 장을 꺼내 조심스럽게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것은 그녀의 아버지가 남겨둔 '미완성 레시피 법률 자문서'였다. 누렇게 바랜 종이 위에는 대성 F&B의 초기 특허 기술과 관련된 수많은 법적 허점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진석 씨, 이제 시작이에요. 최도현의 매장을 흔들었으니, 배선우는 더 극단적인 방법을 쓸 겁니다."

"알고 있습니다."

진석의 시선이 한연우가 꺼낸 자문서의 한 구절에 머물렀다.

[대성 F&B 특허 제049281호: 발효 미생물을 활용한 단백질 분해 소스 제조법 - 선행 기술 존재 가능성 높음. 전통 발효액 종균과의 유사성 검증 필.]

진석은 조용히 주먹을 쥐었다. 배선우의 숨통을 법적으로 완전히 끊어놓을 퍼즐 조각이 서서히 맞춰지고 있었다.

동현옥의 열린 문틈 사이로 차가운 밤바람이 다시금 밀려들었다.

진석은 습관적으로 골목 끝 어둠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가로등 불빛이 닿지 않는 어두운 골목 모퉁이, 검은색 벤츠 S클래스 한 대가 시동을 켠 채 정차해 있었다.

스르륵.

벤츠의 뒷좌석 유리창이 천천히 내려갔다.

가로등 불빛이 비친 차 안에는, 잘 재단된 실크 타이 정장 차림의 배선우 상무가 비스듬히 앉아 있었다. 그의 입가에는 비릿하고 잔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철거반의 실패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배선우가 손가락을 가볍게 까딱이자, 조수석에 앉아 있던 비서가 상체를 돌려 그의 입술에 귀를 가져다 대었다.

"법대로 하겠다 이거지?"

배선우의 목소리는 낮고 낮았다.

"저놈들 요리에 당장 발암 물질이나 위생 오염 세균 투여해. 그리고 내일 아침 가장 빠른 시간으로 검찰과 식약처에 정식 리포트 찔러라. 법으로 흥한 놈들은 법으로 썩어 문드러지게 만들어 줘야지."

유리창이 다시 차갑게 닫혔다.

검은색 세단은 빗길을 미끄러지듯 빠져나가며 어둠 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주방 안, 진석의 눈앞에 다시 한번 붉은색 경고 창이 점멸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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