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가 한창인 상공의 빛 무리 너머로 붉은 빛줄기가 예리하게 심장을 찔렀다.
[위험! 시스템 보안 위협도 급증: 82% 돌파!] [1차 대응 보안 락(Security Lock)이 발효됩니다.]
망막을 찢고 들어오는 적색 시스템 경고문은 이시우의 시야를 강제로 점거했다. 눈을 깜빡여도 사라지지 않는 불길한 핏빛 타이포그래피. 온몸의 솜털이 곤두서고 등줄기로 식은땀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스승님?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안색이 흙빛이 되셨습니다!”
강태현이 거구에 어울리지 않게 안절부절못하며 이시우의 어깨를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이시우는 그 손길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눈앞의 상태창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보안 제약 적용 대상: 사용자 '이시우'] [현지 자산 동결: 개인 보관용 골드 통장 (잠금)] [보유 소모품 잠금: 아카데미 소장 특수 포션 7종 (사용 불가)]
‘내 돈…… 내 포션…….’
이시우의 동공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그동안 꼼수와 버그를 털어 가며 눈물겹게 모아둔 비상금과 고가의 도핑 포션들이 전부 회색빛으로 변해 있었다. 아이콘 위에는 자비 없는 쇠사슬 문양이 굳건하게 채워진 상태였다.
이건 단순한 시스템 페널티가 아니었다. 대기업 스트리머로 은퇴하겠다는 원대한 백수 계획의 자금줄을 통째로 끊어 버리겠다는 메인 시스템의 야비한 수작이었다.
[채팅창 반응] - ㅋㅋㅋ 운영자 억까 수준 실화냐? 돈줄을 묶어버리네 - 야 개꿀잼 몰카냐? 포션 사용 불가면 다음 레이드 어떻게 깸? - 시우 표정 봐라 ㅋㅋㅋㅋㅋ 진짜 나라 잃은 표정임 - 킹치만 우리 시우는 포션 없이도 벽에 끼우면 그만인걸? - 팩트) 돈 없으면 고기도 못 사 먹음. 아싸 스트리머 굶어 죽기 1초 전
채팅창은 벌써부터 초상집과 잔치판이 동시에 열린 것처럼 시끌벅적했다. 이시우는 속으로 끓어오르는 육두문자를 꾹 눌러 삼켰다. 이 세계의 억까는 언제나 상상을 초월했기에, 여기서 멘탈을 놓으면 그대로 시스템의 거름이 될 뿐이었다.
“시우 님…….”
그때, 은은한 은빛 머리칼을 휘날리며 엘리시아가 다가왔다. 그녀의 푸른 눈동자에는 깊은 슬픔과 함께,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든 경외감이 일렁이고 있었다.
“방금 사관학교 상공을 가른 검은 번개…… 그리고 시우 님의 그 고뇌에 찬 표정. 이제야 알겠습니다. 당신은 이 썩어 빠진 세상의 시스템 그 자체와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계셨던 거군요.”
‘아니, 나 그냥 전재산 압류당해서 빡친 건데.’
이시우는 차마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그저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살짝 돌렸다. 그 고독한 아싸 특유의 ‘말 걸지 마라’ 제스처가 엘리시아에게는 또 다른 숭고한 침묵으로 해석된 모양이었다.
“자신의 힘을 두려워하는 자들이 내린 부조리한 제약에 굴하지 마십시오. 비록 비열한 이들이 당신의 자원을 봉쇄했을지라도…… 로젠가르트 가문은 언제나 진정한 강자의 편입니다.”
엘리시아는 떨리는 손길로 자신의 손가락에서 가느다란 반지를 빼냈다. 푸른빛 마력이 희미하게 감도는, 그러나 가운데가 쪼개져 고리가 완전히 이어지지 않은 기묘한 형태의 반지였다.
“저희 가문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계승품입니다. 비록 지금은 마력이 쇠퇴해 반쯤 망가진 고리에 불과하지만…… 시우 님의 그 위대한 연마에 자그마한 보탬이라도 되기를 바랍니다.”
그녀가 내민 반지를 받아 든 이시우의 손끝에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닿았다.
[아이템: 로젠가르트의 깨진 고리 반지] - 등급: ??? (판독 불가) - 상세: 마력 순환이 끊어진 고대 전승의 잔해. 착용 시 아무런 스탯 변화 없음.
스탯 변화 없음. 그 네 글자가 이시우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아니, 진짜로 아무 쓸모도 없는 쓰레기 장신구잖아…….’
이시우는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반지를 대충 주머니에 쑤셔 넣으려 했다. 돈도 잃고 포션도 잃었는데, 들어온 건 스탯 1도 안 올려 주는 고장 난 반지라니. 이보다 더한 억까가 어디 있단 말인가.
바로 그 순간, 이시우의 눈앞에 떠 있는 아웃사이더 방송망의 채팅창에 기묘한 붉은색 도네이션이 찍혔다.
[닉네임 '방구석아인슈타인' 님이 500포인트를 후원하셨습니다!] [야, 시우야! 나 방금 저 반지 아이템 코드 캡처해서 패킷 디코딩해 봤는데 대박이다 ㅋㅋㅋ 저거 단순 장신구 아님. 내부 코드에 **'BYPASS_OFFLINE_01'**이라고 박혀 있는데? 이거 시스템 망 외부에서 강제로 명령 우회할 때 쓰는 마커 데이터야!]
‘……어?’
이시우의 눈이 번쩍 떠졌다. 방구석아인슈타인. 원작 게임의 클라이언트 데이터를 뜯어 물고 뜯던 악질 분석가 시청자였다. 그의 분석이 맞다면, 이 쪼개진 반지는 단순한 쓰레기가 아니었다. 세계관을 관리하는 시스템의 눈을 피해 비인가 연산을 수행할 수 있게 해주는, 이른바 **‘시스템 우회 열쇠’**라는 뜻이었다.
[채팅창 반응] - 헐 대박 ㅋㅋㅋㅋ 엘리시아 쟤 진짜 보물창고였네? - 킹리시아 찬양해! 은둔 현자 보필하는 정실 부인 포스 오지고요 - 근데 우회 마커가 있으면 뭐함? 지금 당장 쓸 데가 없잖아 ㅋㅋㅋ 포션 잠긴 건 여전한데? - 아, 맞네. 돈이랑 포션 락 걸린 건 어떻게 푸냐고 ㅋㅋㅋ
시청자들의 지적이 뼈를 때렸다. 아무리 좋은 우회 도구가 있어도, 당장 약을 못 빨고 돈을 못 쓰면 다가올 시험에서 개죽음을 당할 판이었다.
그때, 이시우의 뇌리를 스치는 번뜩이는 기억이 있었다. 그것은 아주 오래전, 이 게임의 훈련소 시절에 시청자들이 장난삼아 던졌던 한마디였다.
- 2화 훈련소 강강술래 하던 시절 채팅 내용: "야, 훈련소 강당 서쪽 구석탱이 벽돌 판정 깨져 있는 거 아냐? 옛날에 저기 비비다 보면 인벤토리 데이터 꼬여서 템 복사되던 버그 있었는데 ㅋㅋㅋ"
당시에는 그냥 흘려들었던 쓸데없는 고인물 밈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시우의 손에는 ‘비인가 우회 마커’인 깨진 반지가 들려 있었다. 그리고 그의 앞에는 시스템 보안 락으로 인해 강제로 잠겨 버린 인벤토리가 존재했다.
‘……판정 왜곡 지형에 바이패스 마커를 끼워 넣는다면?’
이시우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차가운 긴장감 대신, 썩은물 특유의 기괴한 도파민이 전신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화면 너머의 시청자들도 그의 썩소(?)를 포착하고 열광하기 시작했다.
- 오오온다 ㅋㅋㅋㅋ 시우 저 미친 표정 오랜만이다! - 또 무슨 기상천외한 예능 트롤링을 하려고 저러냐 ㅋㅋㅋ - 훈련소 강당? 설마 거길 가겠다고?
“따라와라.”
이시우는 한마디만 남긴 채, 단호한 걸음걸이로 훈련소 강당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엘리시아와 강태현은 영문도 모른 채, 그저 그 고결하고 당당한 뒷모습에 압도되어 묵묵히 뒤를 따랐다.
* * *
깊은 밤의 훈련소 강당. 먼지가 자욱하게 쌓인 서쪽 구석의 어두운 벽면 앞에 이시우가 멈춰 섰다.
붉은색 보안 락 경고등이 그의 주변을 위태롭게 맴돌며 감시의 눈길을 늦추지 않고 있었다.
[보안 감시망 작동 중……] [불법적인 자산 해제 시도를 감지할 경우 즉각적인 소거 절차가 개시됩니다.]
눈앞에 빤히 보이는 경고창을 무시하고, 이시우는 벽면의 특정 위치를 손가락으로 더듬었다. 줄눈이 미세하게 어긋나 있는, 육안으로는 절대 찾아낼 수 없는 0.1cm의 틈새. 원작의 연산 오류가 방치된 아주 작은 ‘판정 왜곡 지형’이었다.
“스승님, 이 먼지 구덩이에서 무엇을 하시는 겁니까? 혹시 고도의 마력 집중 훈련입니까?”
강태현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조용히 해라. 지금 시우 님은 보이지 않는 인과율의 사슬을 풀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하고 계신다.”
엘리시아가 조용히 강태현을 제지하며 숨을 죽였다.
이시우는 속으로 코웃음을 치며, 주머니에서 엘리시아의 쪼개진 반지를 꺼냈다. 그리고 그 반지를 어긋난 벽돌 틈새에 사정없이 쑤셔 박았다.
서걱!
완전히 맞물리지 않는 틈새에 금속 반지가 끼어 들어가는 순간, 이시우는 자신의 인벤토리 창을 강제로 활성화했다.
그리고 잠겨 있는 특수 포션의 슬롯을 드래그하여, 반지가 끼어 있는 벽돌 틈새의 판정 영역 위로 사정없이 비벼 대기 시작했다.
마우스도 없는 세상에서 오직 의지와 시스템 조작 능력만으로 행하는 극한의 ‘끼임 버그’ 유도 플레이였다.
[경고! 비정상적인 데이터 접근 감지!] [오류 발생: 물리 판정과 인벤토리 데이터의 충돌!] [위치 연산 실패…… 우회 마커 'BYPASS_01' 활성화……]
지이이이잉!
강당 구석의 공간이 기묘하게 일그러지며 붉은색 보안 락 사슬 무늬가 격렬하게 요동쳤다. 시스템은 이 물리적 끼임 현상을 ‘정당한 맵 데이터 오류’로 인식했고, 반지의 바이패스 코드는 보안 시스템의 감시망을 일시적으로 오프라인 상태로 오인하게 만들었다.
쉽게 말해, 시스템의 대가리를 일시적으로 완전히 깨부순 것이다.
투두둑!
[시스템 연산 모순으로 인해 일시적 잠금 해제!] [보유 소모품 '엘릭서급 특수 포션 7종'이 물리적 드롭 상태로 강제 사출됩니다!]
허공에서 은빛으로 빛나는 유리병들이 퐁퐁 솟구치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시우는 빛의 속도로 손을 뻗어 사출된 포션들을 낚아챘다. 단 한 방울의 스탯 낭비도 없이, 완벽하게 잠금을 우회하여 기연을 공짜로 회수한 순간이었다.
[채팅창 반응] - 미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저걸 저기다 껴서 포션을 뱉게 만드네??? - 인간의 탈을 쓴 고인물 그 자체다 진짜 ㅋㅋㅋㅋㅋ - 운영자 오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보안 락 걸었더니 버그로 뚫음 ㅋㅋㅋㅋ - 와, 진짜 지형지물 활용하는 거 보소. 대가리 깨지겠다
“……이, 이것은?”
엘리시아의 은빛 눈동자가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녀의 시선에는, 잠겨 있던 마력의 영약들이 이시우의 기이한 손짓 한 번에 공간을 찢고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보였다.
“세상에…… 시스템의 제약을 비웃기라도 하듯, 공간의 모순을 이용해 마력을 실체화시키셨어……. 시우 님, 당신의 경지는 도대체 어디까지 닿아 있는 것입니까?”
그녀는 감동에 젖어 눈시울을 붉히며 손을 모았다. 강태현 역시 입을 쩍 벌린 채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과연 전술의 신……! 룰 따위에 얽매이지 않는 그 기백, 평생 따르겠습니다!”
‘아니, 니들이 생각하는 그런 거창한 거 아니라고…….’
이시우는 포션을 품에 안고 남몰래 썩소를 지었다. 어쨌든 통쾌한 해소였다. 자신을 옭아매려던 베르너와 시스템의 야비한 수작을, 지형지물과 시청자의 복선 제보 하나만으로 완전히 박살 내 버렸으니까.
하지만 기쁨도 잠시.
위이이이이이이이이이잉—!
갑작스럽게 사관학교 전체를 뒤흔드는 거대한 마력 경보음이 강당의 정적을 무참히 깨부수었다. 동시에 강당 벽면에 투사된 거대한 마법 스크린 위로, 차갑고 엄숙한 베르너 교수의 얼굴이 떠올랐다.
“학도병들이여.”
베르너의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잔인한 독기가 서려 있었다.
“예정되어 있던 평가 방식을 변경한다. 이번 중간고사는 실내 모의전이 아니다. 지금 즉시, 아프락사스 대산맥 계곡 일대로 이동하라.”
그의 냉혹한 시선이 마치 화면을 뚫고 이시우를 꿰뚫는 듯했다.
“그곳에 봉인되어 있던 최흉의 마수 무리를 해방했다. 살아남는 자만이 사관학교의 일원으로 인정받을 것이다.”
[비상! 중간고사 '마수 대토벌전' 강제 개시!] [장소: 아프락사스 대산맥 계곡 (위험도: 극상)]
동시에 이시우의 눈앞에 새로운 시스템 적색 경고가 무자비하게 박혀 들었다.
베르너 교수의 뒤틀린 함정이, 드디어 그 이빨을 드러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