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구구구구궁-!
무너져 내린 천장 잔해가 사방으로 튀며 고막을 찢을 듯한 파열음을 토해냈다. 콧구멍을 찌르는 매캐한 흙먼지 너머로, 사람 집채만 한 바위 덩어리들이 기괴하게 얽혀 거대한 실루엣을 완성해 나갔다. 높이만 해도 자그마치 5미터. 붉게 타오르는 마력의 안광이 어둠 속에서 번뜩였다. 사관학교 통제자 베르너 교수가 뒤공작으로 소환해 낸 감시자, 최상급 마수 '대지 골렘'이 그 육중한 자태를 드러낸 순간이었다.
"크어어어어어어-!"
대지 골렘이 포효하자 미궁의 바닥이 사정없이 뒤흔들렸다. 딛고 선 발판이 울렁거려 중심을 잡기조차 힘들 정도였다. 등 뒤의 퇴로는 이미 거대한 암석들로 가득 내려앉아 막혀 버린 상황. 도망칠 곳은 없었다.
"퇴로가…… 완전히 차단되었습니다!"
엘리시아가 검자루를 꽉 쥐며 외쳤다. 그녀의 하얗게 질린 손가락 끝바디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아무리 로젠가르트 가문의 천재라 한들, 아카데미 입학생 수준에서 마주할 리 없는 재앙급 몬스터 앞에서는 이성을 유지하기 힘든 법이다.
"시우 님! 제가 전면을 막아서겠습니다! 그 틈에 두 분은 어떻게든……!"
강태현이 우람한 어깨를 들썩이며 대형 방패를 고쳐 잡았다. 이 무식한 탱커 녀석은 벌써부터 눈에 핏발을 세우며 개죽음을 자초할 기세였다.
하지만 그들의 필사적인 각오와 달리, 이 사태의 원인 제공자이자 파티의 실질적 리더(?)인 이시우의 머릿속은 지극히 딴판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야, 이거 썸네일 각 제대로 뽑혔네.'
이시우는 뺨을 타고 흐르는 땀방울을 대충 훔쳐내며 실실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았다. 눈앞에 둥둥 떠 있는 투명한 홀로그램 창, '아웃사이더 방송망'의 실시간 채팅창은 이미 폭주 상태였다.
- ㅋㅋㅋㅋㅋ 아니 제작진 미쳤냐고? 뉴비 훈련소에 웬 레이드 보스가 나오냐 ㅋㅋㅋ - 딱 봐도 억까 운영자 베르너 새끼가 수작 부린 거임 ㅇㅇ - 시우야 좆됐다 이거 맞으면 캐릭터 영구 삭제 각인데? - 에헤이, 우리 시우 아직 보여줄 거 많다! 여기서 폐사하면 안 돼! - [개꿀잼몰카] 님이 500포인트를 후원했습니다! : "시우야 뒤지면 방송 접고 편의점 알바나 하자"
"알바는 무슨. 대기업 스트리머로 은퇴해서 강남 빌딩 사야 하는데."
이시우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의 눈빛은 공포가 아닌, 고인물 특유의 음험한 사냥꾼의 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똥망겜 '루드비히 사관학교'를 고이고 썩을 때까지 플레이했던 그였다. 이 괴물 녀석의 약점은 물론이요, 이 맵의 치명적인 설계 결함까지 뇌리에 통째로 박혀 있었다.
"태현아, 개죽음당하고 싶지 않으면 얌전히 방패 내리고 대기해."
"예? 하지만 저 괴물의 돌진을 막지 않으면 다들……!"
"씁. 형 말 들어라. 그리고 엘리시아."
이시우가 턱 끝으로 골렘의 왼편,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은 훈련소 강당의 구석탱이를 가리켰다.
"저기 구석에 바닥 벽돌 유난히 붉게 빛나는 모서리 보이지? 거기로 저 큰 돌멩이 녀석 좀 예쁘게 모셔와 봐."
"……네?"
엘리시아의 아름다운 눈동자가 흔들렸다. 대지 골렘의 무자비한 바위 주먹이 당장이라도 머리 위로 떨어질 판국에, 뜬금없이 구석탱이 벽돌로 유인하라니. 상식적으로는 미친 소리가 분명했다.
보통의 지휘관이라면 골렘의 관절 부위를 노려 기동성을 깎거나, 마력 핵이 존재하는 가슴을 집중 타격하라고 지시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시우의 명령은 전술의 전 자도 모르는 삼류 양아치의 트롤링에 가까웠다.
그러나 엘리시아는 평범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녀는 이시우가 행했던 기적들을 가장 가까이서 목격한 장본인이었다. 코가 깨진 베르트를 농락하고, 피의 미궁에서 상식을 초월한 예지력으로 덫을 피해 가던 그의 모습이 뇌리를 스쳤다.
'이시우 님이다. 그분이 이유 없는 지시를 내릴 리가 없어. 분명 저 구석에는 내 안목으로는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정교한 덫이나 결계가 준비되어 있는 것이 틀림없다……!'
찰나의 순간, 엘리시아의 머릿속에서 거대한 오해의 회로가 팽팽하게 돌아갔다. 그녀의 눈빛에 서려 있던 두려움이 숭고한 결의로 탈바꿈했다.
"알겠습니다. 시우 님의 뜻대로……!"
스릉-!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엘리시아가 신형을 날렸다. 그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순백의 검기가 대지 골렘의 어깨죽지를 스치며 요란한 스파크를 일으켰다.
깡-!
"크오오오오!"
자신에게 흠집을 낸 가녀린 인간 여성에게 분노한 골렘이 커다란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쿵, 쿵, 진동이 울릴 때마다 바닥의 균열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이시우는 그 꼴을 보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래, 바로 그거야! 호구처럼 유인당해 주는구나!'
그가 노리는 것은 정공법이 아니었다. 주먹질 몇 번으로 이 해골물 같은 게임의 최상급 보스를 잡으려면 손가락 뼈마디가 남아나지 않을 터였다. 고인물은 결코 제 힘을 들여 일하지 않는다. 오직 시스템의 맹점과 모순을 쥐어짤 뿐.
이시우의 뇌리에 2화에서 시청자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던 기억이 선명하게 스쳐 지나갔다.
***
[2화 라이브 방송 중] - 시우야, 근데 저 훈련소 강당 구석탱이 맵 디자인 좀 이상하지 않냐? - 어? 나도 저기서 훈련병 캐릭터 키우다가 벽 사이에 낀 적 있음 ㅋㅋㅋ - 아, 저기 3D 텍스처 겹쳐서 물리 연산 꼬이는 구역이잖아. 똥망겜 수준 보소. - 마수 몬스터들도 저기 들어가면 버벅거리다가 굳던데? 수정 안 됨? - 운영진이 하도 하꼬 게임이라 패치도 안 하고 방치한 썩은물 전용 이스터에그 구역임 ㅋㅋㅋ
***
"복선 회수 타이밍 지렸고."
이시우가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훈련소 강당 구석에 잔재하는 판정 왜곡 지형.'
시청자들의 그 넉살 섞인 지적이, 지금 이 순간 아웃사이더 방송망의 기적과 맞물려 완벽한 현실의 물리 법칙으로 변환되고 있었다.
"태현아! 엘리시아가 어그로 끄는 동안 너는 골렘의 오른쪽 다리를 방패로 밀어붙여! 어떻게든 저 구석 벽돌 너머로 한 발자국만 밀어 넣으란 말이야!"
"끄오오오! 알겠습니다, 시우 님! 이 강태현, 밀어붙이겠습니다!"
강태현이 짐승 같은 포효를 지르며 돌진했다. 그의 거대한 방패가 골렘의 오른쪽 발목을 강하게 들이받았다. 쾅-! 마력의 불꽃이 튀며 강태현의 입가에서 피 한 줄기가 흘러내렸지만, 그의 무지막지한 완력 덕분에 골렘의 거대한 신형이 아주 미세하게 왼쪽으로 쏠렸다.
"지금이야, 엘리시아! 뒤로 빠져!"
이시우의 날카로운 외침과 함께 엘리시아가 공중에서 제비를 돌며 뒤로 착지했다.
그 직후, 대지 골렘이 분노에 가득 차 거대한 왼발을 쿵 하고 내디뎠다.
그 위치는 정확히 이시우가 지목했던, 붉은 이끼가 낀 '판정 왜곡 지형'의 정중앙이었다.
서걱.
마치 진흙 속으로 발이 빠져들어 가듯, 골렘의 거대한 암석 다리가 바닥 벽돌 틈새로 부드럽게 스며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시스템 경고: 구역 내 물리 연산 데이터 충돌 발생.] [시스템 경고: 객체 '대지 골렘'의 좌표값 오류가 검출되었습니다.] [서버 랙(Lag) 현상 감지—강제 위치 보정 연산을 시작합니다.]
"……어?"
골렘을 향해 다시 검을 겨누려던 엘리시아가 동작을 멈췄다.
골렘의 거대한 신체가 기괴하게 떨리기 시작한 것이다.
덜덜덜덜덜덜덜!
마치 고장 난 세탁기처럼 탈탈거리며 진동하던 골렘의 몸뚱이가, 갑자기 초당 수백 번의 빈도로 위아래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3D 물리 데이터의 연산이 꼬이면서, 시스템이 골렘의 위치를 정상적으로 파악하지 못해 발생하는 '끼임 버그'의 시작이었다.
"크, 크어? 크어어어어어-?!"
대지 골렘의 붉은 안광이 극심하게 흔들렸다. 녀석의 인공지능 역시 이 초자연적인 현상에 공포를 느낀 것이 분명했다.
골렘의 오른팔이 허공을 휘저었지만, 벽 틈새에 끼어버린 왼발은 인과율의 사슬에 묶인 것처럼 단 1밀리미터도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움직이려 발버둥 칠수록, 겹쳐진 텍스처 사이에서 발생하는 무한한 마찰 판정이 골렘의 내부로 누적되었다.
두두두두두두두둥-!
"이, 이게 무슨 소리지요?"
강태현이 방패 뒤로 몸을 숨기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것은 단순한 타격음이 아니었다. 시스템의 물리 엔진이 충돌하며 뿜어내는 데이터의 비명이었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끼었어 미친 ㅋㅋㅋㅋㅋ - 와, 저 거대한 골렘 새끼가 윈드밀을 돌고 있네 ㅋㅋㅋ - 드르르르륵 소리 나는 거 보소 ㅋㅋㅋ 서브우퍼 터지겠다 이 새끼들아 ㅋㅋㅋ - 시우의 '주차 실력' 실화냐? 덤프트럭도 저렇게 주차 못함 ㅋㅋㅋ - 시청자 6,000명 돌파! 채널 랭킹 떡상한다!!!
[대지 골렘의 내구도가 물리 충돌 과부하로 인해 급감합니다.] [내구도: 95%…… 70%…… 40%…… 10%……]
단 1의 데미지도 직접 가하지 않았다. 그저 맵의 모서리에 녀석의 다리 한 짝을 찔러 넣었을 뿐인데, 시스템의 연산 오류가 스스로 괴물의 내부 서킷을 갈가리 찢어발기고 있었다.
"크어어어어어어어-!!!"
마지막 단말마와 함께, 대지 골렘의 거대한 바위 몸체가 안쪽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눈부신 백색 빛에 휩싸였다.
콰아아앙-!!!
엄청난 충격파와 함께 거대한 암석들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이시우는 익숙하다는 듯 강태현의 방패 뒤로 쏙 들어가 파편을 피했다. 엘리시아 역시 검을 휘둘러 자신에게 날아오는 돌가루들을 쳐내며 눈을 부릅떴다.
자욱한 먼지가 가라앉고, 훈련소 강당 구석에는 오직 부서진 돌무더기들만이 뒹굴고 있었다.
상처 하나 없이, 완벽한 무피해(No Damage) 공략 성공이었다.
"……말도 안 돼."
엘리시아의 검 끝이 바닥을 향해 스르륵 내려앉았다. 그녀의 호흡이 거칠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 비친 사방의 광경은 그야말로 신화의 한 페이지였다. 아카데미의 최고 실력자 중 한 명인 베르너 교수가 기만적인 수단까지 동원해 배치한 최상급 마수였다. 자신과 강태현이 목숨을 바쳐 싸워도 10분조차 버티기 힘들 거라 확신했던 절망의 벽.
그 괴수가, 단 한 번의 제대로 된 칼부림도 없이 스스로 무너져 내렸다.
'시우 님은…… 처음부터 이 모든 지형의 설계와 마력의 흐름을 꿰뚫어 보고 계셨던 거다.'
엘리시아의 가슴속에서 형언할 수 없는 전율이 휘몰아쳤다.
단순히 지형을 이용한 수준이 아니었다. 세상을 구성하는 물리 법칙 자체를 비틀어, 적의 거대한 힘을 그대로 적 자신에게 되돌려주는 신성(神性)에 가까운 지략. 그것이 아니고서야 이 허무하고도 완벽한 소멸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이시우 님…… 당신은 대체 어디까지 내다보신 겁니까?"
엘리시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녀의 아련한 눈빛에는 이제 단순한 신뢰를 넘어, 고결한 현자를 향한 깊은 경외심과 맹목적인 신격화의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우오오오오! 시우 님! 역시 제 스승님이십니다! 손가락 하나 대지 않고 저 거대한 돌덩어리를 가루로 만드시다니요!"
강태현 역시 흥분으로 벌게진 얼굴로 방패를 내팽개치고 이시우의 발치에 무릎을 꿇을 기세였다. 이 우직한 마초맨의 뇌리에는 이미 이시우가 '천하제일의 전술가'로 각인되어 있었다.
"어, 어어…… 그래. 다 계획된 거지. 내가 말했잖아, 형만 믿으라고."
이시우는 겉으로는 세상 모든 진리를 통달한 은둔 고수처럼 뻔뻔하게 어깨를 으쓱였지만, 속으로는 쾌재를 부르며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크으, 가스라이팅 개꿀맛이고요! 베르너 틀딱 새끼, 지금쯤 모니터링 룸에서 뒷목 잡고 쓰러졌겠지?'
예상대로 사관학교의 통제자 베르너가 배치한 난이도 조절 실패의 함정은 쓰레기통으로 완벽하게 직행했다. 이보다 더 통쾌한 역관광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이시우가 승리의 여운에 취해 시청자들의 도네 정산 창을 확인하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바스스스……
골렘이 폭발하고 남은 거대한 돌무더기 잔해 사이에서, 기이한 마력의 잔상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음?"
이시우의 날카로운 눈매가 가늘어졌다.
보통의 마수라면 마석이나 일반적인 장비 아이템을 드랍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부서진 골렘의 심장부 자리에서 서서히 떠오른 것은, 눈을 의심케 만드는 황금빛 스크롤 한 장이었다.
그런데 그 형태가 기묘했다. 일반적인 마법 주문서라기보다는, 마치 현대식 마트에서 발급해 주는 길쭉한 '영수증'의 형상을 띠고 있었던 것이다.
스으으으으……
황금빛 영수증 스크롤이 허공으로 천천히 떠오르더니, 이내 허공에 발생한 미세한 공간의 균열 속으로 빨려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이시우의 아웃사이더 방송망 화면에 붉은색 경고등이 요란하게 점멸하기 시작했다.
[위험! 시스템 보안 경고도 급상승!] [보안 경고도: 45% -> 68%] [경고: 비정상적인 데이터 파괴가 감지되었습니다. '집행관'의 추적 궤도가 갱신됩니다.]
공기가 순식간에 차갑게 얼어붙었다.
허공으로 빨려 올라가는 황금색 영수증 스크롤을 바라보는 이시우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다. 그것은 단순한 전리품이 아니었다. 이 세계의 메인 시스템이 작동하는 비밀, 혹은 자신을 말소하려는 거대한 위협의 서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