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뼈가 으스러지는 자극적인 파열음이 사방을 뒤흔든 직후였다.
코피를 뿜으며 무기 랙 사이에 처박혔던 베르트가 사지를 부르르 떨었다. 기갑 강사이자 사관학교 수석 보좌관이라는 감투가 무색할 정도로 볼품없는 꼴이었다. 그의 얼굴은 이미 피와 먼지로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어, 음……."
이시우는 손에 쥔 '강제 합의용 막도장'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나무 도장 모서리에 묻은 선혈이 뚝, 뚝 바닥으로 떨어졌다. 손가락 끝에 닿는 묵직한 감각이 지나치게 생생했다.
'와, 방금 손 미끄러졌으면 내 대갈통이 깨졌겠는데? 역시 이 게임은 판정이 존나게 매워.'
겉으로는 천하를 호령하는 무신처럼 꼿꼿이 서 있었지만, 이시우의 속마음은 그야말로 식은땀으로 풍년을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급박한 문제가 눈앞에 들이닥치고 있었다.
치이이이이익-!
천장의 마법 조명등이 거칠게 호흡하듯 깜빡였다. 공기가 끈적하게 달라붙으며, 시야 전체에 마치 모니터 액정이 깨진 것 같은 붉은색 노이즈가 지직거렸다.
[경고!] [규격 외 연산 오류 및 물리 법칙 파괴가 임계치를 초과했습니다.] [시스템 보안 경고도: 5.12% 돌파!] [메인 시스템의 1단계 방화벽이 강제로 해제되며, '집행관'의 예비 추적자가 파견됩니다.]
훈련장 구석의 어두운 음영 속에서, 마치 검은 기름때 같은 폴리곤 덩어리들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기괴하게 일그러진 형상의 붉은 외눈들이 어둠 속에서 번뜩였다.
진짜 좆됐다. 대기업 스트리머로 떵떵거리며 은퇴하기도 전에 시스템 백신 프로그램한테 대가리가 깨져서 로그아웃당할 판이었다.
'야, 방송 키우려다가 내가 먼저 제삿밥 먹게 생겼잖아!'
이시우는 침을 삼키며 어떻게든 이 기괴한 현상을 무마할 방법을 찾으려 머리를 굴렸다.
그때였다.
"이…… 이, 비천한 벌레 같은 놈이……!"
무기 더미 속에서 베르트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코뼈가 완전히 으스러져 콧대 자체가 옆으로 꺾여 있었지만, 그의 눈에 서린 독기는 오히려 이전보다 수십 배는 더 흉포하게 끓어오르고 있었다. 베르트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품 안을 뒤적였다.
*퉤!*
그가 피가 섞인 가래침을 이시우의 발밑에 거칠게 내뱉었다. 기세를 짓누르겠다는, 악에 받친 발악이었다.
"감히…… 감히 사관학교의 정식 인스트럭터를 습격해? 이건 명백한 중죄다! 즉결 처분으로 목을 베어도 할 말이 없는 반역죄라고!"
베르트의 품에서 짓겨진 양피지 서류 한 장이 튀어나왔다. 붉은색 밀랍 인장이 선명하게 찍힌, 루드비히 사관학교의 공식 '퇴학 권고 및 자퇴 서약서'였다.
"당장 이 서류에 서명해라! 서명하고 이 신성한 교정에서 네 발로 기어나가란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당장 기사단을 소집해 네놈의 사지를 찢어 발겨 마수들의 먹이로 던져줄 테니까!"
베르트가 뿜어내는 마력의 압박이 매섭게 훈련장을 휘감았다. 비록 코가 깨져 목소리는 맹맹했지만, 베르너 교수의 혈족다운 묵직한 마나의 파동이 사방을 짓눌렀다.
이시우는 가만히 그 구겨진 양피지 서류를 바라보았다.
'아니, 방금 도장으로 처맞고도 정신을 못 차렸네? 역시 악역 엑스트라다운 능지 수준이다.'
긴장감? 그런 건 이미 안드로메다로 날려 보낸 지 오래였다. 이시우의 눈앞에는 실시간으로 요동치는 아웃사이더 방송망의 채팅창이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 [갓수_대기중]: 와 미친새끼ㅋㅋㅋㅋ 저걸로 코를 푸네ㅋㅋㅋㅋㅋ - [인방에인생배팅]: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베르트 표정 썩어들어가는 거 실화냐? 코 찌그러진 거 존나 킹받네 - [뇌절개구리]: 저거 특급 양피지라 장당 50골드짜리 방수지인데 개꿀잼이네ㅋㅋㅋ - [하꼬살려]: 야 근데 저 구석에 검은색 젤리 같은 거 뭐냐? 나만 보임? - [고인물은참지않긔]: 아 저거 훈련소 구석 벽돌 판정 깨져 있는 거 저거 나중에 쓸 수 있나? ㅋㅋㅋ 암튼 대가리 깨진 거 사이다 개꿀맛 ㅋㅋㅋ
시청자들의 드립이 폭발하자, 굳어 있던 이시우의 관종 센서가 짜릿하게 반응했다.
여기서 쫄아버리면 하꼬 스트리머로 평생 썩어야 한다. 방송 각은 타이밍이고, 뻔뻔함은 무기다.
이시우는 천천히 걸어가 베르트가 내민 퇴학 서류를 휙 낚아챘다.
"서명하라고?"
"그래! 당장 서명…… 어, 어?"
베르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시우는 양피지 서류를 반으로 뚝 접었다. 그리고 그대로 자신의 코에 가져다 대더니.
*팽-!!!*
우렁찬 소리와 함께 커다랗게 코를 풀었다.
사관학교의 공식 마법 직인이 찍힌, 장당 50골드짜리 특급 방수 양피지가 이시우의 콧물로 질척하게 젖어 들어갔다.
이시우는 코를 푼 양피지를 대충 구겨서 베르트의 발밑에 툭 던졌다.
"방수 처리가 잘 되어 있어서 그런지, 코가 아주 잘 풀리는군. 고맙다."
"이, 이이이……! 미친놈이?!"
베르트의 안색이 흙빛을 넘어 보라색으로 변했다. 가문과 학교의 권위를 담은 공식 서류를 코풀개로 전용한 기행에, 그의 뇌 회로가 완전히 정지해 버린 것이다.
동시에 이시우의 귓가에 쾌감 넘치는 경쾌한 효과음이 울려 퍼졌다.
[띠리링-!] [시청자들이 당신의 무지막지한 트롤링과 기행에 열광합니다!] [실시간 시청자 수: 142명 돌파!] [축하합니다! 시청자 '고인물은참지않긔' 님이 500포인트를 후원하셨습니다!] [후원 메시지: "코 푼 휴지 베르트 입에 처넣으면 추가 도네 간다 ㅋㅋㅋ"]
[누적 후원 도네이션 500포인트 돌파 보상 해금!] [특수 효과: **'기막힌 조소의 오라'**가 영구 지급됩니다!]
**[기막힌 조소의 오라]** *분류: 장식용 이펙트 (패시브/액티브)* *설명: 사용자의 주변 2m 반경으로 칠흑 같은 마력 잔상과 오한을 유발하는 어두운 안개 이펙트가 발생합니다. (주의: 대미지 0, 방어력 0. 오직 간지 및 똥폼 잡기용 장식 이펙트입니다.)*
'오호라, 이거지!'
이시우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비록 공격력이나 스탯을 올려주는 실용적인 버프는 아니었지만, 관종 스트리머인 그에게 이보다 더 좋은 장난감은 없었다. 게다가 지금 이 순간, 이시우의 눈앞에는 시스템의 경고도로 인해 생성된 집행관의 '검은 폴리곤 덩어리'들이 여전히 지직거리며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이시우는 주저하지 않고 새로 얻은 **'기막힌 조소의 오라'**를 활성화했다.
*스우우우우우…….*
그의 발밑에서부터, 마치 심연의 밑바닥에서 길어 올린 듯한 칠흑같이 어두운 검은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한 연기가 아니었다. 도네이션의 마력과 시스템의 연산 오류가 기묘하게 융합되며, 공기 중에 찌릿한 마찰음과 함께 기괴한 오한이 휘몰아쳤다.
이시우의 등 뒤에 일렁이는 검붉은 잔상들은, 마치 거대한 마수가 눈을 뜨고 그들을 내려다보는 듯한 압도적인 중압감을 자아냈다.
"……?!"
베르트의 어깨가 눈에 띄게 움츠러들었다.
그의 눈동자가 좌우로 사정없이 흔들렸다.
베르트의 시선에는, 이시우의 발밑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 검은 안개가 단순한 특수 효과로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마력의 극의에 도달한 자만이, 자신의 심상(心象)을 현실 세계에 투영할 때 일어나는 '영역 전개'의 전조처럼 느껴졌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오직 기세만으로 주위의 물리 법칙을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이, 이질적이다. 이 마력의 파동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베르트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자신이 뿜어내던 오만한 마력의 기세는, 이시우의 발밑에서 피어오르는 검은 안개에 닿자마자 마치 뜨거운 불판 위의 얼음처럼 흔적도 없이 녹아내렸다.
더욱이 이시우의 뒤편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붉은색 외눈들(집행관의 예비 추적자)이, 마치 이시우의 수하로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켰다.
"퇴학이라."
이시우가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어두운 안개 속에서 반쯤 가려진 그의 얼굴은, 기묘할 정도로 차분하고 냉혹해 보였다.
"겨우 이딴 종이 쪼가리로 날 내쫓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머리가 나쁘면 몸이라도 성해야지, 보좌관 양반."
이시우는 가볍게 발을 내디뎠다.
스르륵, 검은 안개가 그의 움직임을 따라 파도치듯 출렁였다.
베르트는 자신도 모르게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려 눈가를 비집고 들어갔지만, 감히 눈을 깜빡이지도 못했다. 조금이라도 틈을 보였다간, 저 눈앞의 괴물이 자신을 흔적도 없이 지워버릴 것만 같았다.
훈련장 저편에서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엘리시아의 두 손이 가슴께에서 꽉 맞잡혔다.
그녀의 보랏빛 눈동자에는 경외감과 함께 깊은 감동의 기색이 서려 있었다.
'아…… 역시 내 짐작이 맞았어.'
엘리시아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이시우 님은 단순한 보조 학도병이 아니야. 저토록 거대하고 이질적인 힘을 숨기고 있으면서도, 사관학교의 정치가들이 벌이는 유치한 기득권 싸움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낮추고 계셨던 거야.'
그녀의 눈에 비친 이시우는, 부패한 사관학교의 권력층에 맞서 홀로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는 '고결한 은둔 현자' 그 자체였다.
그가 베르트의 코를 부러뜨리고 퇴학 서류에 코를 푼 기행마저도, 엘리시아의 머릿속에서는 '비열한 권력의 압박에 굴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거부의 의사 표시'로 완벽하게 미화되어 재해석되고 있었다.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잔혹한 운명을 홀로 삭여내며, 오직 실력만으로 증명하려는 숭고한 사투…….'
엘리시아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정작 이시우는 속으로 딴생각을 하고 있었다.
'오, 안개 효과 가성비 지리네. 연출력 오졌다. 시청자 새끼들 도네 더 안 쏘나? 슬슬 약발 떨어질 시간인데.'
하지만 이시우의 거만한 도발과 압도적인 똥폼에 기가 완전히 눌린 베르트는, 이미 완전히 쥐새끼처럼 쪼그라들어 있었다.
"윽…… 으으윽!"
베르트는 이를 부득 갈았다.
여기서 더 개겼다간 정말로 저 정체불명의 검은 마력에 잠식당해 개죽음을 당할 것 같았다. 하지만 베르너 가문의 일원으로서 최소한의 자존심은 지켜야 했다.
"조, 좋다……! 오늘 네놈이 부린 얄팍한 수작은 내 머릿속에 똑똑히 기억해 두마!"
베르트는 구겨진 양피지를 주워들 생각도 못 한 채, 비틀거리며 뒷걸음질을 쳤다.
"하지만 잊지 마라! 사관학교는 오직 실력과 결과로만 말하는 곳이다. 곧 치러질 '제1차 실전 관문'은 낙제생들을 걸러내기 위한 진짜 지옥이니까! 그때도 그 오만한 낯짝을 유지할 수 있는지 내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겠다!"
말은 요란하게 했지만, 베르트의 발걸음은 거의 도망치는 것에 가까웠다.
그는 훈련장 철문을 거칠게 밀쳐 열고는, 꽁지가 빠지게 밖으로 뛰어 나갔다. 쾅! 소리와 함께 철문이 닫히며 베르트의 기운이 완전히 사라졌다.
"휴우."
이시우는 그제야 어깨의 힘을 뺐다.
동시에 발밑에서 피어오르던 검은 안개와 시스템의 붉은 노이즈도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경고!] [위협 요소가 인근 구역에서 이탈함에 따라, 시스템 보안 경고도가 소폭 하락합니다.] [현재 시스템 보안 경고도: 4.88%] [집행관의 예비 추적 단계가 일시 보류됩니다.]
'살았다, 씨바.'
이시우는 속으로 십년감수하며 이마의 땀을 닦았다.
만약 베르트와 여기서 진짜 마법 전투라도 벌어졌다면, 스탯 쥐뿔도 없는 이시우로서는 꼼짝없이 밑천이 드러났을 터였다. 다행히 도네이션 연출과 말빨, 그리고 시스템의 오작동이 만들어낸 환상적인 콜라보레이션 덕분에 손 안 대고 코를 풀 수 있었다.
"이시우 님!"
그때, 엘리시아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고, 평소의 차갑고 도도한 귀공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방금 보여주신 그 마력의 심상…… 그리고 베르트의 압박 앞에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시는 그 담대함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진정으로 가치 있는 강함이 무엇인지, 오늘 깨달았습니다."
"어? 아, 예. 뭐…… 대충 그런 겁니다."
이시우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얼버무렸다.
'이 눈나 또 혼자서 소설 쓰네. 뭐, 나쁘진 않지. 알아서 신격화해주면 나야 방송 각 뽑기 편하니까.'
그때였다.
쿵-!!!
갑자기 사관학교 대지 전체가 거대한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사정없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훈련장 천장에서 흙먼지가 우수수 떨어졌고, 바닥의 석판들이 기괴한 소리를 내며 솟구쳐 올랐다.
"……?! 이 진동은?!"
엘리시아가 황급히 자세를 낮추며 검자루를 꽉 쥐었다.
이시우의 눈앞에 번쩍이는 붉은색 시스템 알림창이 화면 가득 들어찼다.
[! 긴급 공지 !] [사관학교 전역에 가동되는 대형 미궁인 '제1차 실전 관문'의 강제의식 및 문호가 개방됩니다!] [대상 구역 내의 모든 생존자는 즉시 평가 시험에 강제 참여 조치됩니다.]
콰과과광-!!!
훈련장의 출구였던 거대한 철문이, 바닥에서 솟구쳐 오른 기괴한 핏빛 혈석(血石)의 장벽에 가로막혀 완전히 매몰되기 시작했다.
사방의 벽면이 갈라지며 기괴한 미궁의 벽들이 훈련장을 통째로 집어삼키며 확장해 나갔다.
퇴로가 완전히 끊겼다.
사관학교의 혹독한 생존율을 자랑하는 첫 번째 진짜 지옥이, 그들의 코앞에서 그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